매년 프랑스 루아르강 유역의 성을 푸르게 물들이는 ‘쇼몽 쉬르 루아르 국제정원축제’의 올해 주제는 ‘정원, 무대의 주인공’이다. 영화 속 스크린에서 흘러나와 살아 있는 풍경이 된 여섯 장면을 소개한다.

공존하는 행성
생태계를 짓밟고 그 위에 파괴라는 이름의 문명을 쌓아올리는 대신, 자연과 교감하며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식.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 속 세계는 그런 이상향을 그린다. 나비족이 살아가는 행성 ‘판도라’는 원시적이면서 미래적이고, 낯설지만 아름다우며, 강렬하고 초월적이다. 침략에 의해 수동적으로 파괴되는 대신, 이에 맞서며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는 생명력마저 지녔다. 디자이너 알렉시 트리쿠아르 Alexis Tricoire, 수경 디자이너 로맹 르베스콩 Romain Le Bescond이 함께 만든 정원 ‘아바타’는 이런 살아 숨쉬는 행성을 조경으로 표현했다. 연못 속 산소의 순환을 돕는 폭포, 자연 필터로 기능하는 수생식물은 스스로 자정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담았다. 연못 위에 놓인 지름 6.5m의 대나무 캐노피는 영화 속 판도라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이 지나 덩굴식물이 구조물을 타고 오르면, 이곳은 자연스럽게 그늘을 만들고 머물 수 있는 쉼터가 된다. 공중식물 틸란드시아, 포플러 칩으로 장식된 둥근 벤치 또한 관객을 <아바타>의 세계로 이끄는 요소다. 영화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기후 변화에 대한 실질적 해법을 제공하는 예술적이고도 환경 친화적인 실험이다.


INTERVIEW
창작상 수상자, 올가 키셀레바

창작상 Prix de la Création 수상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씨앗’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배제구역에서 씨앗을 채집하고 발아시키는 작고 겸손한 행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일이 인정받았다는 것은 저뿐 아니라 ‘죽은 땅’이라 불리는 곳에서 생명이 지속되는 방법을 연구해온 모든 이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영화 <잠입자>를 테마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선택이라기보다 필연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재난 이후의 생명, 죽은 땅으로 여겨지는 장소에서 다시 시작되는 생태를 다뤄왔습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체르노빌 사건이 발발하기 전, 이미 <잠입자>를 통해 그와 관련한 이미지를 제시했어요. ‘존’은 위험하고 금지된 공간이지만, 바깥 세계보다 더 활력 있고 충만한 곳입니다. 저는 관람객이 폐허를 절망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원했습니다. 재난은 세계의 끝이 아니고, 생명은 그 안에서 스스로를 재조직하니까요.
이 정원을 통해 반영하고자 한 오늘날의 현실은 무엇인가요? <잠입자>는 재난 그 자체보다 재난 이후를 상상한 영화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 팬데믹, 기후 위기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정원 또한 그런 ‘이후의 삶’을 반영합니다. 오염된 땅은 죽은 땅이 아닙니다. 방사선을 에너지처럼 활용하는 균류, 손상된 숲을 연결하는 균근 네트워크, 배제구역에서 발아하는 씨앗들은 생명이 계속해서 지속되고 적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죠. ‘회복’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닌, 새로운 생존 방식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복원이 과거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면, 회복은 재난을 품은 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내죠. 이 정원 역시 재난의 흔적을 지우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 위에서 생명이 다시 적응하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정원을 조성하며 식물이 만들어낸 뜻밖의 장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배제구역과 유사한 환경에서 채집한 씨앗들이 예상보다 빠르고 강하게 싹을 틔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척박한 조건이 생명을 억누르기보다, 오히려 활력을 깨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한 내용을 식물이 직접 증명해준 순간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재료로 작업한다는 것은, 작가 생각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반응하고, 때로는 예상을 뒤흔들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회복의 정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잠입자>(Stalker, 1979)에는 황폐한 도시 속 출입이 금지된 구역, ‘존 Zone’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전쟁일 수도, 기술적 사고일 수도 있다. 푸른 풀숲 속 붕괴된 문명의 잔해만이 이곳이 한때는 인간이 살던, 지금은 버려진 폐허임을 암시할 뿐이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법칙과 시공간의 규칙이 뒤틀린 신비로운 세계. 아티스트 올가 키셀레바 Olga Kisseleva와 조경가 마얀 무슈니크, 알랭 라토레, 사비니앙 샤텔, 건축가 필립 발하데르는 이 ‘존’을 인간 중심적 행태에 맞선 자연의 반란으로 해석했다.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된 현장에서조차 자연의 생명력은 꺾이지 않는다. 원전 폭발이 일어난 지대에서는 방사선의 에너지를 토대로 성장하는 생물이 자라고, 불타거나 중금속에 오염된 토양에는 지의류와 이끼가 자리 잡아 다른 생명체를 위한 양분을 준비한다. 세계의 균열과 재난의 틈새에서조차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회복력, 그것이 ‘스토커: 회복과 재생의 정원’ 속 세계다.

창문 너머의 장면

창문의 블라인드가 올라가고, 주인공 제프의 방 건너편 아파트와 안뜰이 드러난다. 화면은 곧 창문 너머 이웃들의 일상을 하나둘 비춘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이창>(Rear Window, 1954)의 첫 장면은 그렇게 시작한다. 다리를 다친 채 방 안에 갇힌 제프에게 창문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이자, 타인의 삶을 바라보게 만드는 스크린이다. 동시에 볼 수는 있지만 쉽게 개입할 수 없는 거리감과 무력감을 만들어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아질리스 뒤베 Azilis Dubée와 아드리앵 로렐리 Adrien Laurelli는 이러한 영화적 장치를 정원 안으로 옮겨왔다. 입구에 놓인 푸른 프레임은 현실의 색채 세계에서 흑백의 허구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를 상징하고, 벽돌 벽은 영화가 개봉한 1950년대 뉴욕의 건물 외벽을 재현했다. 공간 안 펼쳐진 무채색의 안뜰은 당시의 흑백영화를 떠올리게 하고, 중앙의 테이블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존재를 암시하듯 연출했다. 창문처럼 배치된 구조물 사이로 들어서면, 스크린 속 장면을 바라보는 관객이 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매 순간 변화를 야기하는 바람과 그림자, 빛을 통해 세트는 이 서늘한 영화의 주 무대로 기능한다.


꿈의 세계

조경가 세실리아 잠포니 Cecilia Zamponi와 사라 페라로 Sara Ferraro의 정원은 완벽하게 설계된 꿈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에서 영감을 받은 이 정원의 이름은 ‘Les Racines du Rêve’, 직역하면 ‘꿈의 뿌리’다. 영화 속 꿈의 세계는 타인의 침투와 조작이 가능한 구역이다. 정원은 바로 그 현실과 꿈속 세계의 경계에 주목했다. 입구의 나무가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린 존재라면, 이어지는 두 벽은 관람객을 자연스레 심연의 세계 속으로 인도한다. 이후 거울처럼 반사되는 타원형 공간에 다다르면 현실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여러 겹으로 반사된 실루엣과 빛은 어디서부터가 실제이고, 어디서부터가 환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의도적으로 배치된 은빛 식물들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강화한다. 이어지는 작은 숲은 ‘꿈’이 한층 더 깊어지는 구간이다. 이들은 가느다란 줄기와 그림자의 반복을 통해 방향감이 흔들리도록 의도했다. 마지막에는 현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바깥을 향해 열린 둥근 벽, 그리고 밝은 색채의 꽃들은 감각을 환기하며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거울과 물, 나무와 꽃이 유동적인 몽타주를 이루는 정원에서 현실과 상상, 보는 것과 꿈꾸는 것 사이의 경계는 꿈처럼 희미해진다.
가상과 실재 사이

정원 ‘트루먼의 정원’의 부제 ‘The True Man Sows(진정한 인간은 씨를 뿌린다)’는 영화 <트루먼 쇼>의 언어적 유희에서 출발했다. 짐 캐리가 연기한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는 자신이 리얼리티 TV 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환상임을 서서히 깨닫는다. 이 정원은 트루먼이 진실에 도달해가는 여정을 하나의 무대로 연출했다. 영화처럼 정원은 통제된 듯한 기하학적인 공간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트루먼의 현실이 그랬듯, 길에는 곧 균열이 번진다. 세트의 틈처럼 열린 공간 너머로는 현실 세계를 예고하는 화려한 식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원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푸른 벽은 진실을 찾아 떠난 트루먼이 마침내 도달한 세계의 끝, ‘가짜 하늘’을 오마주했다. 영화는 그가 문을 열고 세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막을 내린다. 그 너머에서 그가 무엇을 마주했는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지만, 이 정원은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건넨다. 식물을 심고, 가꾸고, 활용하는 도구에 따라 정원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방향을 갖게 된다는 것. 그렇게 정원은 다시 변화하고, 예상을 벗어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호흡한다.
쥬라기 식물들

자연과 공룡을 사랑하는 두 친구 코렝탕 파이퍼 Corentin Pfeiffer와 로맹 마레 Romain Maire가 상상한 정원, ‘쥬라기 식물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쥬라기 공원> 속 주인공이 공룡이었다면, 이곳의 주인공은 공룡이 존재하던 시대를 통과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식물들이다. 머리 위로 우거진 나무고사리와 원시적인 형태의 소철, 은행나무, 속새는 모두 인간보다 오랜 시간을 지나온 시대의 증인이다. 흙을 대신해 놓인 화산석조차도 당시의 시대를 반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됐다. 인간 문명이 자연을 길들이고 수많은 식물종의 멸종을 불러오기 전, 더 원초적이고도 충만했던 시절. 정원 입구의 거대한 문은 시간을 가로지르는 통로이자, 잊힌 세계로 안내하는 영화적 포털로서 기능한다. 오래된 미지의 세계를 표방하는 정글 곳곳에는 금속의 공룡 설치물이 놓여 있다. 자연광은 영사기처럼 공룡 피규어를 비추고 일렁이는 그림자를 만들며, 장면을 한층 입체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 정원에서 유일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은 박제된 과거의 유산이 아닌, 오늘도 자라고 있는 생명이다. 공룡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 끝났지만, 식물은 여전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