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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식물관 PH에서 진행한 개인전 <Hidden Connection>. © Sikmulgwan

자연, 그중에서도 이름 모를 풀과 같은 작은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창기에는 의외의 공간에 자리 잡은 식물들의 생명력에 시선이 갔어요. 예를 들어 건물 벽 틈이나 보도블록 사이에 억척스럽게 뿌리내린 풀 한 포기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장면 같은 것들이요. 그런 존재들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순간과 존재, 그리고 시공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산책하면서 들풀이나 낙엽을 채집해 작업실에 놓는다고요. 어떤 것들이 주로 작가님의 시선을 붙잡나요? 꽃이 만개하거나 잎이 무성한 식물보다 잎이 다 지고 시들어가면서도 애써 버티고 서 있는 식물에 더 눈길이 가요. 정점에 있는 것보다 사라지고 시들어가는 것에서 삶의 덧없음을 느끼기도 하고, 미적으로도 제 취향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렇게 채집한 자연물을 작업실 벽에 붙여두거나 병에 꽂아두고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깁니다. 바로 작품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곁에 두고 오래 바라보다 보면 문득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거든요. 향후 작업을 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죠.

그런데 작품에서는 식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오히려 최대한 덜어낸 것 같은데요. 저는 식물 자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주목하는 것은 식물 자체보다 식물이 뿌리내린 시공간, 그리고 빛과 바람 등 식물이 관계 맺고 있는 여러 맥락이에요. 이런 것들을 작품에 끌어들이기 위해 사실적인 묘사보다 최소한의 구조와 요소로 작품을 구성하려 합니다. 시의 함축성이 생략을 통해 더 큰 의미를 끌어들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저만의 기준이라면 조금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식물 같지 않지만 식물처럼’입니다.

돌을 조합한 작품 ‘The Air Between’, 2026.
 황동을 주 재료로 작업하는 김동해 공예가.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과 바람이나 빛, 흔들림처럼 시적인 표현은 언뜻 상반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황동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황동이 주는 시각적 효과와 물리적 특성을 좋아합니다. 햇살에 걸친 풀을 보면 금빛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그 모습에서 황동선이 연상되기도 했어요. 마른 풀의 색과도 닮아 있고요. 그래서 황동은 제가 산책하며 만난 자연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예요. 물리적으로는 구리와 아연이라는 서로 다른 두 금속이 결합한 소재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구리의 무른 성질을 아연이 보완하면서 제가 원하는 탄력 있는 곡선과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거든요. 제가 관심을 갖는 것도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생기는 관계인데, 재료 자체가 이미 그런 결합의 결과라는 점이 재미있어요. 시간이 지나며 공기와 반응해 색이 변하는 것도 매력이고요.

모빌처럼 관객이 지나가며 만드는 작은 바람이나 전시장의 공기와 빛에 따라서도 작품이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작품은 관객과 공간을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본다는 행위 역시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관객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제가 기억하는 자연의 감각이 작품을 통해 각자 기억 속 자연과 연결할 수 있다면, 그 순간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 작업을 이야기할 때 ‘고요한 연루’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두 단어는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갖나요? 저에게 ‘고요함’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無)의 상태가 아니에요. 멈춰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채는 상태에 가깝죠. ‘연루’라는 단어를 고른 건 ‘관계’나 ‘연결’이라고 하면 내가 선택해서 맺은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에요. 존재의 관계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의미에서 연루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요. 하나의 존재 역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요소와 시공간 안에서 얽혀 있다고 봅니다.

그날의 바람과 빛에 따라 변주되는 ‘풍경 III’.

초기작부터 최근의 <기억의 단면>, <가느다란 바람>까지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초기에는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식물 형상의 리듬 같은 조형적 요소를 형태로 옮기는 데 집중했어요. 최근에는 공간과의 맥락과 시의성에도 주목하고 있고, 자연물 자체보다 ‘포착된 기억 속 장면’에서 작업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기억의 단면(Fragment of Memory)>과 <가느다란 바람(A Whisper of Wind)>에는 잘려나간 듯한 기하학적 프레임이 등장하는데요. 어딘가 잘려나간 프레임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작품이 확장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작업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초기작을 꼽는다면요? 돌에 가느다란 황동 선이 달린 모빌 <풍경(quiet) #1>을 꼽고 싶어요. 초반에 진행한 작업이지만 지금까지 이어지는 제 작업 세계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여러 곳에 소개되기도 했고, 이후 이어진 많은 작업과 생각 역시 이 작품에서 비롯되었어요.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연상케하는 ‘Weep’, 2024. 

예정된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가까운 일정으로는 오는 10월 성북문화재단에서 개최하는 성북아트위크의 연계 행사인 문화재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성북동의 문화재와 작가를 매칭해 해당 장소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프로젝트예요. 내년 상반기에는 디스위켄드룸 갤러리에서 열릴 전시를 준비하고 있고, 하반기에는 일본 군마현 나카노조 지역에서 열리는 나카노조 비엔날레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는 소재나 스케일을 좀 더 과감하게 확장한 작업도 볼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자연이라는 레퍼런스가 형태 안에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 흔적이 조금 더 옅어지고 순수한 구조와 공간의 관계로 넘어가는 작업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양한 소재와 스케일의 변주도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모습이 다채로운 것처럼요. 특히 공간 전체와 관계 맺는 대형 설치 작업도 다양하게 해보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작업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초기작을 꼽는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