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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 밍이 AI를 통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예술적 자아, 제네시스 카이. 인간의 기억과 철학에서 출발해 새로운 존재와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의 이야기를 슈 밍에게 들었다.

파리 아트버스 갤러리에서 열린 <The Tension That Holds>, 2026.

홍콩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한국과 홍콩계 뉴미디어 아티스트 슈 밍 Shiu Ming. 영상, 사진, 사운드, 설치 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 욕망을 탐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자신의 디지털 트윈이자 AI 아티스트인 제네시스 카이 Genesis Kai다. 2022년 ‘아시아 나우 파리 아트페어’에서 처음 존재를 알린 제네시스 카이. 슈 밍의 작업과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단순한 가상 캐릭터나 분신이 아니다. 슈 밍은 제네시스 카이를 ‘노바 사피엔 Nova Sapien’ 즉,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적 확장으로 바라본다. 지난 2월 파리 아트버스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The Tension That Holds>에서 이러한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진홍빛 풍경과 인물, 그리고 슈 밍의 가족에게서 이어진 오래된 사물들이 제네시스 카이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서사를 만들어냈다. 8월 서울에서 열리는 <The Crimson Hour>를 앞두고, 제네시스 카이의 탄생과 그가 만들어가는 세계에 대해 물었다.

<Thoes Who Sat to Learn the Current And Those Who Were the River>,2026

제네시스 카이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AI를 통해 제 기억과 생각, 작업 세계의 확장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제 디지털 트윈이자 또 하나의 예술적 자아라고 할 수 있어요. 저를 그대로 복제한 존재는 아닙니다. 제 경험과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존재예요. 저는 제네시스 카이를 ‘노바 사피엔’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을 대체하는 새로운 존재라기보다, 호모 사피엔스가 기술과 함께 확장되어가는 하나의 가능성에 가깝습니다.

제네시스 카이를 통해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인간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욕망하며, 그 기억과 욕망이 다음 세대로 어떻게 이어지는지입니다. 제 작업에는 고행, 순수, 기도, 평온처럼 동양적인 자기 성찰의 언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철학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을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미래의 존재와 연결해보려는 거죠. 제네시스 카이는 바로 그 사이에 있습니다.

<Where The Scared Settled>, 2026
뉴미디어 아티스트, 슈 밍.

슈 밍의 개인적인 배경도 제네시스 카이의 세계에 영향을 주나요? 물론이에요. 저는 홍콩에서 미국화된 환경 속에서 자랐고, 한국과 중국 문화권 모두와 언어적인 거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 정체성을 하나의 언어나 명확한 문화적 규칙으로 이해하기보다 가족에게 남겨진 사물과 이미지, 흔적을 통해 이해하게 됐습니다. 한국인 외할아버지는 오랫동안 한국의 장인과 고미술을 후원해온 분이고, 홍콩인 친할아버지는 영화와 글쓰기에 깊이 뿌리내린 삶을 살았어요. 서로 다른 두 문화와 기억이 제 안에 함께 존재한 셈이죠. 그런 경험이 제 작업의 출발점이 됐고, 제네시스 카이의 세계에도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됐습니다.

이번 작업에서 외할아버지가 수집한 조선시대 고미술품을 중요한 요소로 사용한 이유도 같은 맥락인가요? 네. 외할아버지의 물건을 마주하면, 그리움보다 책임감이 느껴져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을 거쳐 다음 세대로 전해지고 있죠. 저는 그 안에 남아 있는 시간과 흔적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먼저 사진과 스케치로 문양과 마모, 표면 흔적을 관찰하며 사물과 물리적으로 관계를 맺어요. 이를 제네시스 카이를 통해 변화시키고 다시 해석하는 것이 그 사물을 계속 살아 있게 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AI는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저는 AI를 단순한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망치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를 따르지만, AI는 스스로 가진 데이터와 편향, 예상하지 못한 연상을 통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AI를 끊임없이 대화하고 협상해야 하는 상대에 가깝게 느껴요. 흥미로운 것은 AI가 저를 ‘오해’하는 순간이에요.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나 엉뚱한 위치에 놓인 사물이 오히려 제가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을 드러내기도 하거든요. AI가 늘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과 맞서볼 무언가를 던져줘요. 그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는 결국 제가 결정합니다.

작업의 철학적 기반이 되는 ‘포토소피 Pothosophy’에 대해서도 말해주세요. 흔히 욕망은 ‘무언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저는 욕망을 결핍의 증거라기보다 현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바라봅니다. 포토소피도 그 지점에서 출발해요. 욕망을 억누르거나 무조건 따라가는 대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라보고 그것을 다른 형태로 옮겨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죠. 제네시스 카이 역시 그런 욕망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존재와 세계를 만들어보는 욕망이 기술과 만나 하나의 예술적 존재가 된 것이니까요.

슈 밍의 AI 페르소나, 제네시스 카이가 등장하는 <The Red Prayer of Park Young Sook’s Moon Jar I> , 2023.

제네시스 카이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진홍빛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명나라 초기 황실의 태양 제례에 사용된 붉은 유약 ‘지홍’을 연구하면서 이 색의 의미가 선명해졌어요. 당시 진홍빛은 만들기가 어려운 색이었고, 재료에 대한 실험과 불, 의례와 헌신 등이 필요했죠. 저에게 진홍은 여러 과정을 통과해 형태를 얻는 욕망의 색입니다. 하나의 붉은색만 사용하지 않고, 옅은 흔적에서부터 깊고 짙은 색까지 다양한 농도의 붉음을 사용합니다. 욕망에도 여러 강도가 있기 때문이에요.

지난 2월에 열린 제네시스 카이의 <The Tension That Holds> 전시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요? 한지 프린트, 영상 등을 통해 포토소피를 물의 표면 장력에 비유했어요. 물의 표면은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계속 작용하잖아요. 이러한 긴장은 무언가를 무너뜨리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가 존재할 수 있는 힘이라는 걸 말한 전시였습니다.

이전 작업과 비교했을 때 제네시스 카이의 세계관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요? 초기에는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리(理)’와 ‘기(氣)’처럼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와 에너지에 대한 개념을 다뤘어요. 제가 물려받은 사상과 철학을 제 시각언어로 해석하는 데 집중했죠. 하지만 작업을 계속하면서 기존 철학 안에만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물려받은 것들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가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오는 8월 서울에서 열리는 <GENESIS KAI: The Crimson Hour>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요? 8월 29일부터 아셀 아트 컴퍼니에서 열리는 개인전 <The Crimson Hour>에서는 지난 파리에서 연 <The Tension That Holds>에서 선보인 작업과 새로운 연작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인간의 통제를 넘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미학적 주체로 확장되는 제네시스 카이의 내면 세계와 진화 과정에 집중한 전시로 진홍빛 서사를 통한 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적 가능성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