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탄생한 작업실부터 가족과 함께한 거실, 오래 사용한 가구와 손때 묻은 도구까지. 윤형근이 24년간 살고 작업한 서교동 집과, 김창열이 30여 년의 시간을 보낸 평창동 집이 생전의 흔적을 간직한 채 문을 열었다. 작품 너머 두 예술가의 취향과 생활, 작업의 시간을 따라가봤다.
윤형근의 집
번트 엄버와 울트라마린 블루를 섞어 거의 검게 보이는 색을 만들고, 두 기둥 사이에 여백을 남겼다.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윤형근이 1970년대부터 이어온 ‘천지문(天地門)’ 연작이다. 색과 형태를 극도로 덜어낸 그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 세계인데 진리에 사는 것, 진리에 생명을 거는 것. 그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거예요.” 그림보다 인간이 바로 서는 것이 먼저라고 여긴 그가 24년간 살고 작업한 집에는 어떤 것들이 남아 있을까?

홍대 앞 번잡한 골목의 검은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붉은 벽돌 집과 작은 정원이 나타난다. 터는 장인이자 스승인 김환기가 1963년 국민주택으로 분양받은 곳으로, 윤형근은 1967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1983년 옛집을 허물고 다시 지을 때 건축가인 동생 윤도근에게 설계를 맡겼지만 공간의 기능과 형태, 재료를 정하는 데 직접 관여했다. 집은 1층 작업실과 2층 주거 공간으로 나뉜다. 아들 윤성열은 그 구성이 아버지의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기억한다. “제일 중요한 건 집과 화실이 꼭 같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어요. 생활 안에서 작업이 나와야 된다는 아버지의 생각이 반영되었죠.” 높은 층고와 노출된 천장의 1층은 한쪽 벽 전체를 창으로 내어 자연광을 들였고, 창밖으로 소나무와 거친 석물이 놓인 정원이 이어진다. 반면 2층에는 나무 천장과 격자 창호, 한지를 사용했다. 파리 체류 중 보아온 주거와 작업 공간에서 얻은 경험에 모던한 구조와 한국적인 재료를 함께 풀어냈다. 작업실에는 낮은 상과 의자, 넓적한 붓과 물감통, 공구가 남아 있고, 바닥에는 작업 중 흘러내린 엄버와 블루의 물감이 군데군데 스며 있다. 윤성열의 기억 속에도 아버지는 늘 이곳에 있었다. 그가 작업실 문을 열고 놀아달라고 하면 그리던 것을 내려놓고 바로 따라나서지만, 다시 작업에 들어간 뒷모습은 평소 놀아주던 아버지 같지 않고 엄격했다고 한다. 집과 함께 공개된 아카이브에는 작업 중인 윤형근과 이곳을 찾은 손님들의 사진, 집 짓던 당시의 도면과 일기, 가족사진과 편지가 남아 있다. 윤성열은 해외에서 작가들의 집과 작업실을 방문하며 사용했던 도구와 손길이 닿은 물건에서 느껴지는 ‘그 사람의 숨결’을 기억한다고 했다.


이번 복원 역시 구조와 마감재는 물론 가구와 기물의 위치까지 생전 모습에 가깝게 남겼다. 2층으로 올라가면 윤형근의 취향이 보다 구체적으로 보인다. 19세기 고가구와 조선 백자 사이에 북유럽 가구와 현대미술이 놓여 있고, 약장과 찬탁 같은 고가구는 실제 생활 가구로 사용했다. 김환기가 사용하던 소나무 탁자와 찬탁, 그가 수집한 도자기 일부도 이 집으로 건너왔다. 아들이 책꽂이가 필요하면 직접 나무를 사다가 만들어줄 만큼 손으로 만들고 고쳐 쓰는 데도 익숙했다. 거실에는 윤형근이 깊이 존경했던 추사 김정희의 목각 현판과 1991년 직접 구입한 도널드 저드의 <89-32>가 자리한다. 조선의 목가구와 백자, 추사의 글씨와 미국 미니멀리즘 작품까지, 시대와 국적은 제각각이지만 한 공간에서 의외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가 무엇을 골라 오래 곁에 두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집을 보는 흥미로운 방식이다. 안방과 내실에는 아내 김영숙의 그림과 19세기 고가구, 재봉틀, 아들이 어린 시절 그린 그림과 가족사진 등 가족의 시간이 남아 있다.


윤형근은 좋은 작품에는 결국 그것을 만든 사람의 품위가 드러난다고 믿었다. “한두 장은 거짓말해서 만들 수 있어도 쭉 계속하다 보면 그 사람의 품위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가 사용한 가구와 도구, 오래 곁에 둔 작품과 가족의 물건까지 보고 나면 이 말이 비단 그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가 작가의 집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완성된 작품 뒤에 가려진 한 사람의 취향과 습관, 관계와 일상이 공간에는 고스란히 축적되기 때문이다. ‘윤형근의 집’은 작품만으로는 다 읽을 수 없었던 한 작가의 삶을 간직한 가장 사적인 아카이브가 아닐까 싶다.









김창열 화가의 집

예술가가 떠난 뒤에도 집은 그의 시간을 기억한다. 손때 묻은 책상과 오래된 의자, 작품을 그리던 자리, 매일 오르내리던 계단까지. 서울 평창동 언덕길에 자리한 ‘김창열 화가의 집’은 김창열 화백이 1988년부터 2021년 타계하기 전까지 30여 년간 가족과 함께 살며 작업하던 곳이다. 파리를 오가며 활동하던 그가 국내에서 작업을 이어간 유일한 작업실이기도 하다. 생전 자신의 작업실을 시민에게 공개하고자 한 작가의 뜻에 따라 공공문화시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번 리노베이션은 플랫폼 건축사사무소의 최수연, 홍재승 건축가가 맡았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을 설계하며 김창열의 작업 세계를 건축적으로 해석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달랐다. 제주가 작품을 담기 위한 새로운 건축을 설계하는 일이었다면, 평창동에서는 기존 주택의 구조와 재료, 가구와 집기까지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한 때가 한겨울이었어요. 작업실에는 약간의 한기가 남아 있었고, 높은 공간에는 경건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가 놓여 있었고, 김창열 화백은 그 의자에 앉아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이곳이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한 예술가의 생활과 사유가 축적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마주한 작업실 모습은 이번 리노베이션의 방향을 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가 됐다. 건축가들이 처음 던진 질문도 ‘무엇을 새롭게 만들 것인가’보다 ‘이 집의 어느 시간을 남길 것인가’였다. 1988년 당시 청사진 도면과 가족의 기억, 현장에 남은 재료와 흔적을 함께 살피며 집이 지나온 시간을 차근차근 짚어갔다.


김창열 화백은 집 설계 과정에도 깊이 관여하며 생활과 작업을 위한 공간을 자신의 방식대로 구상했다. 특히 작업실은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집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1984년 우규승 건축가가 설계한 이 주택은 경사진 대지를 따라 지상 2층, 지하 2층으로 이어진다. 도로에서 몇 계단을 내려 현관을 지나고 다시 아래로 향하면 높은 층고의 작업실에 닿는다. 중정을 중심으로 생활 공간이 펼쳐지고, 그 안쪽 깊은 곳에 작업 공간이 자리한 구조다. 김 화백은 생전 이곳을 ‘동굴’에 비유하며 아틀리에 안으로 빛을 많이 들이지 않았다. 실제 작업실에는 창문이 없고, 옆 서재의 둥근 천창으로 들어온 빛이 책상 위를 비춘다. 중정에서 바라보면 우물처럼 보이는 천창은 고향 집에 있던 우물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외부 풍경과 거리를 둔 어둡고 높은 공간. 그곳에서 김 화백은 오랜 시간 작업에 몰입했다. 리노베이션에서 건축가들이 주목한 것은 새로 더할 것보다 이미 남아 있는 것들이었다. 공사에 앞서 집 전체를 3D 스캔하고 가구와 집기의 위치까지 기록했다. 잠시 옮겨야 했던 물건은 원래 자리와 주변 공간과의 관계를 확인한 뒤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작업실 가구나 거실 벽난로처럼 작가와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요소는 가능한 한 그대로 남겼다. 과거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보다, 오랜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공간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동선에는 김창열의 작업 세계를 건축적으로 풀어냈다. 최수연, 홍재승 건축가는 김창열의 작품을 건축적인 형태로 재현하기보다 그의 작업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빛과 그림자, 비어 있음과 채워짐의 관계를 공간의 경험으로 풀어냈다. 기존의 ㄷ자 구조에는 회랑과 중정을 더해 ‘回’의 흐름을 만들었는데, 김창열의 대표 연작 <회귀>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지하 작업실에서 시작된 빛과 시선은 중정과 회랑을 지나 다시 지상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외부 회랑도 본래 모습으로 되돌려 실내와 중정을 연결하는 길로 남겼다. 빠르게 지나치는 대신 천천히 걸으며 집의 깊이를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한편 개인 주택을 공공문화시설로 바꾸면서 필요한 변화도 더했다. 경사진 대지를 오갈 수 있도록 외부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마련하고, 작품과 자료를 보존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한때 가족의 일상과 김창열의 작업이 포개져 있던 집은 이제 새로운 사람들의 발걸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물방울을 그리던 손은 사라졌지만, 그가 바라보았을 빛과 오갔을 계단, 앉아 있던 의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예술가의 집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작품을 보러 가는 것과 조금 다른 일인지도 모른다.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 한 사람이 살아가며 작업을 이어온 시간의 풍경을 마주하는 일. 물방울이 머물던 시간은 그렇게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