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서 에디터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집에 들이고 싶은 작품들’을 공개한다. 도자, 가구,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 박종진, 김하늘, 김민재의 이야기 또한 놓치지 않고 담았다.
취향은 늘 두 극단 사이를 오간다. 그림은 오래 바라봐도 편안한 것을, 조형성 있는 작품은 공간 안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끌린다. 마음을 쉬게 하거나 공기를 단번에
EDITOR 원지은
바꿔놓는 작품들을 집에 들이고 싶다.
지인혜 <Bunch Chandelier 03>(2026), 찰스 버나드 갤러리

트럼펫 같기도, 해양식물이나 외계 생명체 같기도 하다. 조금은 징그러운 형상과 달리 알알이 맺힌 빛은 캔디처럼 달콤하다. 그림 앞에서는 편안함을 찾으면서도 이상하게 오브제는 이렇게 나를 압도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얀 워터스턴 <Primitive Excavations (Striations)>(2024), 찰스 버나드 갤러리

위처럼 보이지만 물푸레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다. 묵직하고 거친 몸체에서 가느다란 두 곡선이 유려하게 솟아오른다. 한 덩어리 안에 육중함과 가녀림이 동시에 있어 좋았다.
강우림 <Ran Floor Lamp_Cherry> 2025, 디자인마이애미 서울

길게 뻗은 나뭇가지 같기도, 거대한 꼬챙이 같기도 한 실루엣. 조각처럼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실제로 빛을 밝히는 플로어 램프다. 이 정도로 조형적인데 쓸모까지 있다면, 집 안의 포인트로 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장 미셸 오토니엘 <Sakura (A)(2026), 국제갤러리

오토니엘 하면 구슬처럼 이어진 유리 조각부터 떠올렸기에 금빛 꽃 한 송이는 색다르게 다가왔다. 화려하고 여성적인데, 울퉁불퉁한 꽃잎은 어딘가 원초적이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작가에게서 처음 보는 얼굴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올라퍼 엘리아슨 <The surprising yet predictable phenomenon of matter taking matter into its own hands>(2026), PKM 갤러리

원과 타원이 겹쳐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패턴. 어디선가 날아온 비행 물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러 색의 유리가 포개질 때마다 새로운 색과 형태가 생겨난다. 단순한 도형 몇 개로 이렇게 낯선 풍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재미있다.
유영국 <Work>(1989), 페이스 갤러리

색종이를 큼직하게 오려 붙인 듯한 색면 몇 개가 산이 된다. 산을 좋아해서인지 단순한 형태와 선명한 색만 남긴 풍경에 유독 눈이 간다. 앞서 고른 올라퍼 엘리아슨과도 묘하게 닮았다. 하나는 유리와 빛으로, 하나는 캔버스와 물감으로 만든 풍경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니요코 이쿠타 <Ku-190 (Free Essence-190)>(2026), 어 라이트하우스 콜드 카나타

금방이라도 깨질 듯 얇은 유리판이 겹겹이 쌓여 오히려 단단한 하나의 형태가 됐다. 보는 방향에 따라 빛도 윤곽도 조금씩 달라져 작품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바라봤다. 투명한 것이 쌓이며 만들어내는 묘한 밀도에 압도되어 한참을 바라봤다.
구정아 <SpSt Y>(2024), PKM 갤러리

금빛의 작은 사람이 한껏 몸을 비틀며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히 무슨 동작인지는 몰라도 상관없다. 반짝이는 금빛과 우스꽝스러울 만큼 역동적인 자세만으로 공간 한가운데 세워두고 싶은 충분한 이유가 됐다.
시선을 끄는 작가 INTERVIEW
박종진

세 번째 도전 끝에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받으셨는데, 수상작 <착시의 층위 Strata of Illusion>(2025)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수상작은 제가 만든 단일 기물 중 가장 큰 작품이라 어느 정도 변형은 예상했지만, 그렇게 대칭적으로 안쪽으로 말려 들어갈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종이를 정직하게 쌓아올린 시간과 밀도가 있었기에 실패라기보다 작품이 만들어낸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종이를 쌓아 도자기로 만드는 지금의 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유학 시절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실험을 하면서 종이를 처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젖은 종이를 한 장씩 쌓아두었는데, 당시 머물던 카디프의 해안 절벽처럼 보이더군요. 결국 종이에 흙물을 입혀 적층한 뒤 굽는 지금의 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 도자기가 되기 위해 반드시 종이가 필요하지만, 가마 안에서는 종이가 사라져야 한다는 점도 흥미로웠고요.
수천 장의 종이를 한 켜씩 쌓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처음 종이 더미를 보면서 한 켜 한 켜 쌓아온 시간과 행위가 응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국 쌓는다는 것은 시간과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보는 사람도 그 층을 통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마에서 나온 작품을 다시 그라인더로 깎는 과정을 거친다고요. 보통 도예는 소성을 마치면 더 이상 형태를 바꾸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종이가 타고 사라진 자리에는 공극이 생겨 소성 후에도 표면을 깎아낼 수 있었어요. 가마에서 나온 결과를 먼저 충분히 바라본 뒤, 그 안에 숨어 있는 형태를 찾아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생각으로 작업합니다.
12년간 이어온 적층 작업은 이제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아직 지금의 작업 안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종이 자체의 질감과 재료성을 더 적극적으로 다뤄보고 싶어요. 내년 2월 대만 수호 페이퍼 뮤지엄 레지던시에서는 다양한 종이를 활용해 종이만으로 작업을 완성하는 방법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또 실외 프로젝트나 공공미술, 협업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확장해보고 싶습니다.
정소윤 <나를 지키는>, 서울공예박물관

새 둥지 같기도 하고, 높은 산에 짙게 내려앉은 안개 같기도 하다. 염색한 투명사를 겹겹이 쌓아 만든 풍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모호한 형상이 더 좋았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지 않고도 집 안에 작은 풍경 하나를 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
프레셔서 오코요몬 <I pray for that which I cannot hold>(2026), 멘데스 우드 DM

아주 가끔 취향과 동떨어진 귀여운 것에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빼앗긴다. 두 손을 모으고 수줍게 선 이 곰도 그랬다. 진지한 작품들 사이에 기분 전환 삼아 하나쯤 끼워두고 싶은 곰이다.
히로시 스기모토 <Brush Impression 1617 (River)>(2024), 리슨 갤러리

강서경 <자리 #24-10>(2023 – 2024), 국제갤러리

처음에는 한 폭의 추상화인 줄 알았다. 가까이 보니 염색한 화문석과 철제 프레임, 실과 가죽이 겹쳐진 조각이다. 평면과 입체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좋지만, 그린, 옐로, 핑크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색이 나의 취향에 가깝다.
이채 <Wind-Infused 바람에 스며든>(2026), 화이트스톤 갤러리

푸른색과 단순한 형태가 마음에 들어 멈춰 섰는데, 알고보니 꽃과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추상화한 그림이었다. 자연의 본래 모습을 이만큼 덜어냈는데도 어딘가 식물과 바람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겹겹이 스며든 푸른색이 좋았다.
패브리커 <Sparrow Chair, Green 02>(2026), 찰스 버나드 갤러리

투명한 몸 안으로 갈비뼈 같은 철근이 훤히 드러난다. 의자인데도 앉기보다 한참 들여다보고 싶다. 인테리어를 오래 취재해서인지 이렇게 소재부터 이상하고 실험적인 의자를 만나면 유독 소유욕이 생긴다.
한눈에 강렬하기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새로운 디테일이 보이는 작품에 끌린다. 익숙한 사물과 풍경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와 작은 위트를 지닌 작품이라면 오래 곁에 두고 싶다.
EDITOR 원하영
존 발데사리 <National City (W,1,2,3,4,5,6,B)>(1996), 슈프루트 마거스

평범한 풍경도 이렇게 보니 꽤 재미있다. 작가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내셔널 시티의 익숙한 길과 풍경 위에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서로 다른 농도의 원을 그려넣었다. 여덟 점을 나란히 걸면 하나의 긴 컬러 스펙트럼이 완성된다. 집에 걸어두면 공간에 유쾌한 한 끗을 더해줄 듯하다.
토니 크랙 <Ivy>(2016/2025), 타데우스 로팍

담쟁이덩굴이 나무가 된다면 이런 모습일까? 나무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깎고 변형해 구불구불 이어지는 곡선의 조각을 만들었다. 단단한 나무의 물성과 달리 형태는 한없이 유연하다. 제목처럼 벽을 타고 오르는 식물의 움직임이 떠오른다.
박선기 <Space Structure 20260430>(2026), 021갤러리

이배 <Brushstroke S1>(2025), 조현화랑

유연한 붓질이 캔버스가 아니라 공간을 가로지른다. 오랫동안 숯을 중심으로 작업해온 이배는 회화의 기본 요소인 붓질을 입체적인 조각으로 옮겼다. 단단한 조각인데도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서도호 <Perfect Home – Sant’Angelo in Pontano, Seoul, New York, Seoul, New York, New York, Berlin, Berlin, Seoul, Seoul, New York, Clapham>(2026), 리만머핀

손잡이와 스위치에 에너지와 기억이 담긴다는 서도호의 말에 오래 머물렀다. 매일 무심코 만지는 작은 것들이 한 집에서의 시간을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Perfect Home〉 앞에서 괜스레 우리 집의 손잡이와 스위치를 한 번씩 더 바라보게 된다. 나에게도 좋은 기억이 담긴 작은 흔적들이 더 많아지기를.
유봉상 <BB20260606>(2026), 리앤배

아트 페어에서 타일을 만날 줄이야. 추상적이고 색채 중심적인 회화 작업을 선보여온 겐지로 오카자키가 이번에는 타일을 하나의 화면처럼 구성했다. 핑크와 옐로, 반복되는 패턴이 시선을 붙잡는다.
레이첼 윤 <Surrender>(2026), 지갤러리

중고 마사지기에 인공 식물과 금속 부품을 결합해 기계와 생명체 사이의 조각을 만드는 레이첼 윤. 목 마사지기 위에 인공 난초와 체인, 유리를 엮어 낯선 생명체처럼 완성했다. 몸을 편안하게 해주던 기계가 오히려 어딘가 긴장감 있는 오브제로 변한 모습이 재미있다.
시선을 끄는 작가 INTERVIEW
김하늘

버려진 마스크와 폐플라스틱에 이어 이번에는 글라스울에 주목했습니다. 이 소재를 가구로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모레퍼시픽 용산 본사 스토어의 재건축 과정에서 버려지는 자재를 살펴보다 글라스울을 발견했어요. 유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파이버글라스를 가구에 사용한 임스 부부의 작업이 떠올랐죠. 글라스울과 파이버글라스를 직접 결합해보는 실험을 시작했어요. 새로운 소재와 공법을 함께 익혀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텍스처와 표면의 미감을 발견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이번 디자인 마이애미 서울과 인갤러리에서는 미네랄울을 사용한 대형 롱 테이블로 작업을 확장했습니다. 기존 GW 시리즈가 글라스울을 사용한 스툴과 체어였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단단한 미네랄울을 사용해 작업의 규모를 확장했어요. 전시 공간의 스케일에 맞춰 하나의 긴 테이블로 발전시킨 것이죠. 모든 형태가 반원에서 시작해 서로 조립되는 구조는 기존 작업과 연결됩니다. 특히 미네랄울의 녹색이 잘 드러날 수 있는 텍스처를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바인더의 컬러와 비율을 조절하며 소재 본연의 색과 질감이 어우러지는 지점을 찾았습니다.

관객들은 GW 시리즈에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처음에는 조형적인 형태에 관심을 보이다가 가까이에서 작품을 본 뒤 소재와 제작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가구이면서 조각이나 건축물처럼 느껴진다는 반응도 인상적이었죠. 익숙한 소재가 새로운 물성과 조형성을 가진 가구로 변하는 점을 흥미롭게 봐주신 것 같아요.이번 작업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제가 작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익숙하게 지나칠 수 있는 소재를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에요. 새로운 소재와 공법을 시도하며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도 계속 시도하고 만들어가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줄리안 오피 <Knokke 1.>(2024), 리슨 갤러리

익숙한 줄리안 오피의 이미지가 구슬이 되니 새롭다. 색을 입힌 나무 구슬을 촘촘하게 연결해 멀리서는 평면 회화처럼, 가까이서는 각각의 질감이 보인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보던 오피의 그림을 입체적으로 만나는 재미가 있다.
최지원 <Fever>(2026), 디스위켄드룸

도자기 인형의 얼굴을 가까이 포착해 얼굴의 광택과 매끄러운 질감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생명이 없는 인형인데도 붉게 달아오른 볼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온기가 느껴질 듯하다. 사랑스러운 얼굴과 비어 있는 듯한 눈빛이 묘하게 어긋나며 오래 시선을 붙잡는다.

거울인데, 나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래된 거울 위에 흰 천을 덮은 듯한 형태를 더했는데, 천처럼 보이는 주름 역시 대리석 레진으로 만든 것. 보이지 않는 부분에 오히려 상상력이 더해진다.
김환태 <Chimi Chair>(2026), 디자인마이애미 서울

신타 비달 <Unité d’Habitation 1>(2026), 갤러리 징크

중력이 사라지면 집은 어떤 모습일까? 르 코르뷔지에와 알바 알토 등 근대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신타 비달은 중력과 원근법을 뒤틀어 하나의 건축물 안에 서로 다른 삶의 장면을 펼쳐놓는다. 여기에 눈에 익은 워너비 가구들까지 자리하니, 불가능한 공간인데도 괜히 한 칸쯤 내 방으로 갖고 싶어진다.
최성일 & 김현서 <Light 01>(2025), 디자인마이애미 서울

조명인데, 잘 익은 과일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과일 속 씨앗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작은 LED를 씨앗처럼 배치했다. 불을 켜는 순간 촘촘한 구조 사이로 빛이 번지며 또 다른 표정을 만든다.
슈무 <Descent of the Black Spirit>, <Horse and Little Bird>(2026), 린시드

아름다운데, 어쩐지 서늘하다. 슈무는 목판 위에 수만 번의 흔적을 새겨 동식물의 풍경을 만든다. 해골과 하얀 말이 등장하는 두 작품은 한 편의 잔혹 동화처럼 삶과 죽음을 펼쳐낸다.
25세 때 좋아했던 작가를 여전히 좋아한다. 오를 작품이 아니라 되팔지 않을 작품을 고른다. 컬렉터가 된다면 절제된 형식의 작품들 사이로 유머도 빠트리고 싶지 않다.
EDITOR 박슬기
노순천 <Empty Human>(2023), 돈나 아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이다. 어느 공간에 두어도 그 공간과 일체를 이룰 것이다. 이런 조각품이라면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출퇴근길마다 인사를 건네며 감상할 수 있겠다.
노기쁨 <26-painting-10-2>(2026), 갤러리 조은

노기쁨 작가의 오일 페인팅을 하나만 집에 데려오는 것은 무척 아쉽다. 사물의 경계가 서로에게 번져 들어가는 형상 때문일까? 그림의 모서리마저 벗어나 서로에게 연결되려는 듯하다. 여러 개의 낱말카드를 섞어 하나의 문장을 만들 듯 여러 점의 그림을 배치해 맥락을 만들고 싶어진다.
성능경 <大韓全圖 – S’s descendants will see unification>(1991), 리만머핀

아방가르드는 미완으로 완성된다고 믿는다. 작가는 여러 장의 사진 중 무엇을 보여줄지 의도적으로 고르지 않았으며, ‘S씨의 자손들은 통일을 볼 것이다’라는 제목마저도 미결의 예언으로 남았다.
맨디 엘 사예그 <Grand Collection of World Art (Canon)>(2026), 타데우스 로팍

‘파이낸셜 타임스’의 지면, 다양한 나라의 지폐, 회화 도판 등 읽을 수 있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잔뜩 쌓아올린 후 격자로 덮어 읽을 수 없게 만들었다. 벽 한쪽에 이 작품을 걸어두고 그 앞에서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같은 책을 읽으면 어떨까?
루스 아사와 <Untitled (S.845, Wall – Mounted Tied Wire, Open-Center, Five – Branched Form Based on Nature)>(1976), 데이비드 즈위너

루스 아사와가 마른 사막 식물을 선물받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려고 했지만 너무 복잡해 포기하고, 철사를 꼬아 만든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철사를 꼬아 만드는 행위가 곧 식물이 자라나는 방식과 유사했다는 점. 작가는 이를 두고 “철사가 지시하는 대로 따랐다”고 말했다. 차갑고 단단한 재료도 그 물성이 극대화되어 다른 무언가로 변하는 자리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바로 이 생각을 갖고 싶었다.
신민 <존맛 떡꼬치 엔젤> (2026), P21

자칫 엄숙해질 수도 있는 프리즈 페어. P21 부스 입구를 지키던 이 작품은 단연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띄워주었다. 물론 쾌활한 겉모습 뒤에는 신민 작가가 줄곧 짚어온 이 시대의 숨겨진 노동이라는 묵직한 서사가 깔려 있을 테다. 그렇지만 아무리 진지한 이야기도 끝까지 귀 기울이게 만드는 힘은 결국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이 친근한 외관에 있는 게 아닐까?
아니카아니카 이 <HLKR£Kþ§†MLJ>(2026), 페이스갤러리

이번 프리즈 기간에 공개된 아니카 이의 신작이다. 해독 불가능한 기호의 제목부터 매혹적이다. 인간의 언어와 기계 오류, 특수기호가 뒤섞인 이 제목은 인간과 비인간, 디지털 코드 간의 경계를 해체해온 작가의 세계관을 단숨에 보여주고 있다.
볼프강 틸만스 <still life Prinzessinnenstrasse>(2010), 데이비드 즈위너

에디터를 꿈꾼 이들 중에 볼프강 틸만스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적어도 잡지 지면을 갤러리의 벽과 같은 자리로 끌어올린 사진가라는 데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집에 두어도 설명이 필요 없다. 창턱의 과일이든 하늘의 콩코드든, 그의 사진이라는 것을 모두 알 테니까.
프레드릭 닐슨 <Mixed Emotion>(2023), 찰스 버나드 갤러리

완벽한 통제 대신 흐트러짐 속에서 솟아나는 ‘엉망진창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말았다. 매끈하게 세공된 정통 유리 조각이 아니다. 마치 스트리트웨어 디자이너나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그날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마구 빚어낸 듯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시선을 끄는 작가 INTERVIEW
김민재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인 신작 의자들은 3주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나요? 서울로 작업하러 오기 전, 뉴욕 작업실에서 구상할 시간이 잠깐 있었어요. 제작 기간을 줄이려고 의자에 반복해서 쓰이는 요소들은 뉴욕에서 미리 만들어보고 규격을 정해 두었어요. 일부는 3D 스캔을 떠서 서울에서 편차 없이 똑같이 만들 수 있게 준비했고요.
미리 정해둔 요소는 어떤 것이었나요? 두 가지 너비의 좌판, 팔걸이는 왼손잡이용 3개와 오른손잡이용 2개, 다리는 네 발 다리, 십자 다리, 썰매 다리를 각각 3개씩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해두면 시스템에서 나오는 다양성이 의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이라고 봤어요. 그 덕분에 저는 의자 하나하나의 캐릭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의자 이름은 형태보다 먼저 정하나요, 아니면 완성한 뒤에 짓나요? 대개 형태를 완성하고 나서 지어요. 처음부터 인상이 강해서 이름이 계속 떠오르는 작품도 가끔 있어요. 보통은 방향을 열어두고 작업하기 때문에, 완성 후의 인상에 맞춰 이름을 붙이는 편입니다. 이번에 만든 <Chair_Quirky>, 그러니까 ‘개성 있는 의자’가 그런 경우예요. 작업 중간쯤 ‘이 의자는 조그만데 참 고집 있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점이 두드러지게 마감했고, 이름도 그에 맞춰 지었습니다.

마리아 하사비 <Together>(2026), 더 브리더

키프로스 출신의 안무가인 작가는 움직이는 신체를 정지된 조각처럼 다룬다. 사진을 바라보는 나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는데, 이는 정지된 상태에서도 미세하게 떨리는 근육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윤지영 <After Her>(2026), PIBI 갤러리

허물을 벗어 걸어둔 것처럼 무척 취약해 보였다. 그간 봐왔던 윤지영 작가의 대담한 조각에 비하면 크기도 크지 않은 편이라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훌륭한 작품의 정의 중 하나가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게 해주는 데에 있다고 본다. 이 작품을 곁에 둔다면 누군가 혹은 나를 투영한 취약함을 보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에텔 아드난 <Le poids du monde 33>(2017), 갤러리르롱

복잡할 것 없어 보이는 작품의 제목이 ‘이 세상의 무게’라니, 뜻을 알고 나니 달라 보인 경우다. 작품의 크기도 작은데 컬러는 굉장히 강렬해서 현장에서도 존재감이 확실했다.
윤형근 <Burnt Umber 94-66>(1994), 갤러리박

취재차 윤형근 화백의 집에 갔다가 그의 일기장을 보았다. ‘흙이 나무가 된 것을 본 이후로 어쩐지 모든 것에서 허무함이 느껴진다’는 문장이 두고두고 떠오른다. 작가의 그림 전반에 깔린 담담한 침묵을 위한 공간을 집 한쪽에 마련하고 싶다.
박아람 <Apparatuses>(2026), 갤러리 SP

그래픽 회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컬러? 형태? 아니면 도형 간의 관계? 겉으로 봐서는 영원히 해석할 수 없는 2진법의 코드다. 디지털 스크린의 차가운 질감과 그리드를 언어로 해석하려 들면 난제가 되겠지만 음악의 리듬처럼 느끼고자 한다면 훨씬 명쾌하다.
세르주 아투퀘이 클로티 <Human Consumption>(2026), 갤러리 1957

프리즈 기간 내내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에게 눈길이 갔는데, 원초적인 인상에 공예적인 완성도를 더한 작품들이 많았다. 이 작품은 가나의 물자 부족 시기에 식용유와 식수를 담는 데 쓰였다가 버려진 용기를 기억과 생존의 시각 언어로 탈바꿈한 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