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와 윤형근, 두 작가를 시작과 끝으로 한국과 해외 작가들의 서로 다른 듯 닮은 세계가 살포시 포개어진다. 미술계에 새 바람을 불고온 전시, ‘RM × SFMOMA: Between You and Me’다.
RM, 아트 컬렉터에서 큐레이터로

오픈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은 프레스 프리뷰를 열었다. BTS 멤버 RM(김남준)이 직접 등장해 기획 의도를 소개하는 모습 은 파장이 워낙 컸기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미 보았으리라. SFMOMA 관장 크리스토퍼 베드퍼드는 “90년이 넘는 미술관 역사에서 한국 미술을 가장 큰 규모로 선보이는 자리 라며 이번 전시는 여러 면에서 새로운 시도” 라고 말했다. 한국 미술 전반의 위상을 높임은 물론 샌프란시스코 아트 신 에도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어주고 있다.
RM이 열렬한 아트애호가이자 컬렉터임은 잘 알려졌다. 이번 전시는 그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전시 서문에서 그는 그림 앞에서는 그 저 보는 사람이면 되었기에 미술이 편안한 언어였다고 말한다.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오히려 자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더 또렷해졌고, 그래서 우리 작가들이 더 궁금해졌다고. 한국 근현대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다가 그 작 가들을 위주로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작가 위주에 해외 작가까지 포 함하면 그의 컬렉션은 어느덧 4백 점을 넘어섰다.
손을 잡고 천천히 같이, 바다로 나서듯


이번 전시는 RM의 첫 큐레이팅 프로젝트로, SFMOMA의 두 큐레이터가 함께 참여했다. RM은 작품을 고르며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개인 적으로 말을 거는 작품인가?’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가?’ 선 정된 1백80점 중 1백42점은 RM의 컬렉션에서, 36점은 SFMOMA 소장 품에서 왔다. 김효은 공동 큐레이터는 이 만남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의 작가들이 어떤 관심과 질문을 공유하는지 위주로 살펴봤다고 소개한다.
RM의 지극한 정성은 전시장 곳곳에서 느껴진다. 손글씨 소개문과 직 접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는 친구를 집에 초대해 좋아하는 작품을 소개하 듯 자연스럽다. 벽면 텍스트와 작품 레이블, 오디오 등 모든 콘텐츠는 영어 와 한국어로 제공된다. 첫 전시실의 주제는 ‘파아란 물(Blue Water)’. 친숙 한 블루와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전시를 바랐다. 가장 먼저 보이는 김 환기의 푸른 점화 시리즈는 SFMOMA 소장품인데, 여기엔 사연이 있다. 1970년대 김환기가 세상을 떠나고, 아내 김향안은 그의 작품을 미국 기관 에 기증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때 SFMOMA에서 받아들인 작품이 지 금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RM의 첫 컬렉션과 ‘집’을 테마로 한 공간

‘친구가 있는 풍경(Friendscape)’에서는 RM이 2019년 구입한 첫 컬렉 션으로서, 이대원(1921~2005)의 <북악산>(1976)이 눈에 띈다. 그는 이 대원의 화면에서 자신을 미술 세계로 처음 이끈 쇠라의 점묘화를 떠올렸다 고 한다. 한편 집(Home)을 테마로 한 공간은 실제 RM의 집과 비슷한 분 위기로 꾸몄다. 장욱진(1917~1990)의 작은 회화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도 느껴진다. 그는 장욱진의 <길>(1986)을 ‘집이 보이기 시작할 때의’ 행복한 발걸음이라고 소개한다.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은 손상기(1949~1988)의 작품에 이르면 아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생전에 재개발 구역의 허름한 집에서 살았던 작가 는 다친 척추 때문에 낮은 눈높이로 늘 높은 흰 벽을 그렸다. RM이 소장한 <공작도시-아이러니>(1987)는 유럽 가구들이 놓여 있는 부잣집에 작가의 그림이 걸린 아이러니를 담은 것이다. RM은 이 그림을 자신의 거실에 걸고 바라볼 때면 ‘나도 그저 그런 되게 재미없는 부잣집 샌님이 되어가고 있 지 않나’ 하고 찔려 하면서 다시 정신을 차린다고 한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윤형근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시선을 더 넓게 이끄는 작품도 있다. 이응노(1904~1989)의 <군상>(1988)이다. 주제가 5·18 민 주화운동임에도, RM의 소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이끌어낸 다. “먹으로 쓴 사람들입니다. (중략) 1980년 봄,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 하던 수많은 시민이 군인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때, 그는 그 소식을 파리 에서 듣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군상을 그렸습니다.” 어떤 국가에서 왔든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관객은 타국의 낯선 이야기 속에서 오히려 끈끈하게 연결되는 것 같다. 마지막 전시실 ‘다색(Umber)’ 은 윤형근(1928~2007)에게 헌정한 공간이다. 잘 알려졌듯 그는 RM이 가 장 사랑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윤형근 의 ‘청다색’에서 ‘청’은 하늘과, 장인이자 스승인 김환기의 푸름에서 왔고, ‘다’는 그가 딛고 산 땅에서 왔습니다.” 윤형기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과정에서 여러 번 끌려갔고 사형 직전까지 놓이는 등 참혹한 시대를 살아냈 다. “분노를 표면 아래로 가라앉히며 색을 겹치다 보니, 청다색은 거의 다 타버린 검정이 되었습니다. 이 검정이 삼킨 것들을 저는 감히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윤형근의 작품 세계를 차분하게 조명하며, 전시는 조용히 마무 리된다. 시대와 문화, 국가는 서로 다르고 하나의 맥락으로 묶인 전시도 아 니지만, 모든 것이 하나의 감정으로 연결된다. 예술이라는 세계가 주는 설 렘이다. 잊고 있던 그 순수한 감정을 RM이 기억하게 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