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미스고 플라워 작업실. 목욕탕의 변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진행되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관념과 감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안고 돌아간다.
1 파란 문이 인상적인 미스고 플라워 앞에 서 있는 플로리스트 고은혜의 모습. 2 표를 받던 공간은 벽을 막아 작은 식물들로 장식했다.
마포구 북아현동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추었다는 통속적인 표현의 의미를 실감한다. 크고 작은 다가구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시간의 흔적을 고이 간직한 연륜깨나 쌓인 간판들이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평소 골목길 여행을 좋아하는 플로리스트 고은혜는 이 동네 토박이라면 다 아는 ‘능수목욕탕’을 보고 나서 특별한 작업실 만들기를 꿈꾸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1960년대의 목욕탕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내부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주인아저씨를 설득해 여탕을 사용하기로 했다. 인테리어를 담당한 권오재 씨와 함께 레노베이션의 컨셉트를 ‘시간의 흔적을 최대한 살리는 것’으로 합의를 본 후 공사에 들어갔다. 능수목욕탕이라고 새겨진 기존의 문을 떼어내고 ‘미스고 플라워’라는 파란 문을 달았고, 남탕과 여탕 사이에 있던 표 받던 공간은 벽을 메운 뒤 작은 식물들로 장식했다.
↑ 탈의실은 작업실로 사용되고 있다. 상판을 비틀어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작업대와 라커를 수납장으로 사용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내부는 탈의실과 욕탕으로 나뉘는데 탈의실은 바닥과 벽을 새로 마감했고, 욕탕은 사우나실을 철거해 디스플레이 공간을 만들었으며, 몇 개의 샤워기를 금색으로 칠한 후 묵은 먼지만 제거하는 정도로 공사를 마무리했다. 탈의실 천장을 철거하고 나니 목욕탕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몰딩 장식이 드러났다. 목욕탕으로 사용되기 전 이곳이 작은 호텔의 로비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말하자면 숙박을 위한 호텔이었다가 몸을 씻는 목욕탕이었다가 이제는 눈과 마음을 정화해주는 꽃집으로 격심한 변화를 겪은 셈이다. “공사를 시작하면서 동네에 사시는 분들께서 목욕탕이 새로 문을 여는 것이냐며 물어보셨어요. 꽃집을 연다고 했더니 몇몇 분은 목욕탕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변화가 없던 곳이 새 옷을 입는 것에 환영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1 욕탕 안은 꽃을 보관하는 용도와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 수납공간으로 사용되는 공간은 빈티지한 색감의 천으로 가렸다. 공사를 하면서 발견된 천장 몰딩은 기존에 칠해져 있던 색상과 최대한 비슷한 색을 칠해 복원했다.
새롭게 바뀐 내부는 향기로운 꽃들로 채워졌다. 탈의실은 작업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과거 라커로 쓰였던 것을 수납장으로 사용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목욕탕에서 가장 중요한 욕탕은 그녀의 스타일 감각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공간. 공간을 꾸밀 때 그녀가 중점을 둔 것은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던 만큼 너무 세련된 느낌보다는 과거의 시간과 교감할 수 있는 소품들을 사용해 장식했다. 가령 탈의실과 욕탕 사이에 있는 작은 창문에는 시골 풍의 창살을 달았고, 빈티지한 색상의 패브릭과 오래된 듯한 색감을 입은 드라이플라워로 공간 곳곳을 장식했다.
1 플로리스트 고은혜. 2 온탕이었던 공간은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녀는 워커힐 호텔 플라워팀에서 일하다가 피렌체의 플라워 스타일링 전문회사에서 일하며 견문을 넓히고 돌아와 첫 작업실을 오픈했다. 전형적인 꽃 스타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꽃을 꽂는 것이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때로는 나이에 걸맞는 명량함을 내보이기도 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미스고 플라워라는 다소 당찬 이름을 단 것도, 목욕탕을 꽃집으로 만든 추친력도 모두 그녀의 스타일을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으로 미스고 플라워는 우리의 발걸음을 자꾸만 북아현동으로 잡아끌지도 모르겠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박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