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 로저 비비에, 딥티크 그리고 피에르 프레 이. 그저 산발적으로 풀어낸 단어 같지만, 마린 몽타구 Marin Montagut라는 사람에 의해 이 단어들의 세밀한 교집합이 만들어진다. 빈티지 진과 앞섶을 풀어헤친 마리니에르 셔츠를 즐겨 입는 그의 모습을 보면 파리지앵을 마주한 듯한 인상을 쉽사리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남프랑스 툴루즈출신으로 세인트마틴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한 뒤에야 파리로 넘어와 영화미술, 데커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내공을 쌓아왔다. 그랬던 몽타구가 파리 전역을 자신만의 삽화로 도식화한 가이드 맵북 ‘봉주르 파리’를 발간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이후 베르사유 궁전의 가이드 브로슈어, 18세기 판화를 모티프로 한 피에르 프레이의 월페이퍼 등의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잠재력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동시에 제품 디자인에도 걸출한 재능을 보였다. 파리를 대표하는 백화점 봉 마르셰에 직접 고안한 쿠션 컬렉션을 선보이는 팝업 스토어를 오픈하면서 말이다. 이를 시작으로 동명의 브랜드 마린 몽타구를 론칭 하고, 꾸준히 새로운 데커레이션 아이템을 선보였다. 마침내 작년, 파리 한 복판에 위치한 룩상부르크 공원 근처에 자신의 부티크 오픈 소식을 알려왔다. 팝업스토어를 통해서만 한정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마린 몽타구 컬렉션의 오프라인 안식처가 탄생한 것. 연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벽과 타일 바닥은 구태여 손보지 않았다. 대신 세이지에 가까운 짙은 녹색톤으로 벽을 칠하고, 프렌치식 건물 특유의 예스런 느낌을 부각하는 오크 소재의 빈티지 선반과 캐비닛 등의 가구를 들여 마치 파리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앤티크 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인다. 이는 골동품 상인이었던 가족과 프랑스의 데커레이터 크리스티앙 사페와 함께 일했던 경험을 알면 보다 흥미롭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다.
숍 곳곳의 디테일을 살펴보다 보면, 마찬가지로 공간과 결을 같이하는 여러 컬렉션에 시선이 꽂히게 된다. 테이블 웨어부터 유리 공예, 월 데커레이션, 텍스타일과 향초 그리고 마린 몽타구만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집대성된 아트북까지 종류 또한 다양한데, 모두 프랑스의 생활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에나멜 포슬린 소재의 핸드메이드 도자, 가족이 대를 이어 운영 하는 리옹의 실크 공장에서 조달되는 스카프와 쿠션 등을 보면 생활성에도 심혈을 기울였음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마레 지구와 룩상부르크 공원 등 파리의 풍경이나 타로카드 등을 모티프로 한 몽타구의 수채화 삽화 와 일러스트레이션이 대부분의 제품에 브랜드 로고처럼 새겨져 있어 더욱 가치 있다. 흥미로운 협업도 주저하지 않는다. 양질의 문구를 선보이는 센 넬리에 하우스와 협업해 팔레트나 스케치북 등 아트 스테이셔너리를 선보이는가 하면, 프랑스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벽 장식품을 구현하기 위해 직접 파리의 골목 구석구석에 위치한 공방과 장인들과의 합작품도 판매한다. 과거 프랑스의 흔적을 활용한 컬렉션도 이곳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한 예로, 18세기경의 고서에서 디자인적인 영감을 받은 시크릿 박스 시리즈는 귀중품을 비밀리에 보관하기 위해 책 형태의 작은 보관함을 만들어 이를 서재나 도서관에 보관했다는 과거의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복원했다. 그리고 재활용 유리로 만들고 수작업으로 색을 입힌 유리공예 컬렉션인 가벼움의 숨결 A Breath of Lightness은 해당 시대에 대한 헌사라는 의미를 담았다. “나의 상상과 나의 이름을 지닌 이 공간과 소품이 여러분에게 지난 파리의 나날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으면 합니다. 마치 한낮의 꿈을 꾸듯 말이죠. ”그의 말을 실현이라도 하듯 도시에 켜켜이 쌓여 있는 아름다운 시간과 한 남자의 머릿속 상상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마린 몽타구는 지금 가장 파리스러운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