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네덜란드에서 개최되는 북유럽 최대 디자인 행사 더치 디자인 위크. 그곳에서 만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디자이너 5인을 소개한다.
버려진 테니스 공에 새 생명을
테니스가 세계에서 가장 비환경적인 스포츠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가? 그 이유는 테니스 공의 짧은 수명과 그에 대비되는 길고도 탄소 집약적인 제조 공정 때문. 그렇게 제조되는 연평균 4억 개의 공 중 오직 1%만이 재활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테니스의 어두운 민낯에 집중한 사운드 바운스 Soundbounce의 디자이너 마틸드 위터크 Mathilde Wittock는 버려진 테니스 공에 벤치, 의자, 방음벽으로서 새 삶을 부여했다. 디자인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는 대신, 이미 현실에 만연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다.
가구가 된 양모
세계 시장을 장악한 호주산 고급 메리노 울에 밀려 폐기되거나 소각되는 유럽산 양모의 비율은 전체 생산량의 약 90%에 달한다. 유럽의 자연에서 방목되는 양들은 토지의 탄소 저장량을 늘리는 역할을 하기에 유럽산 양모의 효율적인 활용이 더욱 시급한 시점이다. 플록 Flock은 전통 펠트 기술과 디지털 제조 기법을 결합해 유럽산 양모의 섬유적 특성에 적합한 펠팅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견고한 양모 스툴이 탄생했다. 이 펠팅법을 위해 특별 제작한 기계는 양모의 밀도를 조절해 섬유의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동시에 무거운 하중 또한 버틸 수 있게 해준다. 디지털 기술의 정밀함과 전통적인 방식을 결합해 폐기되던 유럽 양모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순간이다.
의자의 또 다른 기능
의자의 기본적이고도 궁극적인 기능은 편안한 쉼을 제공하는 데 있지만,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벤 Design Academy Eindhoven의 졸업생 제이드 프리히 Jade Fritsch는 이에 또 다른 목적성을 부여했다. 에너지난으로 난방에 어려움을 겪는 유럽의 상황을 생각해 자연 발열 기능을 가진 의자를 선보인 것이다. 박람회에 마련된 졸업전시회에서 선보인 작품 ‘트리트먼트 포 어 리커넥션 Treatment for a Re-connection’은 의자를 구성한 점토, 섬유, 모래의 자연적 특성을 통해 열을 발생시키고, 이를 분산해 미기후를 생성, 의자에 직접적으로 접촉한 이의 체온을 데워주는 기능을 갖췄다. 전기나 석유, 가스 대신 태양광, 풍력 등의 자연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오프그리드 off-grid 리빙 문화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한, 미래 지향적인 동시에 현실적이고 유기적인 시도다.
종이로 만든 전자기기
2022년 2월, 전 세계에서 생산된 6200만 톤의 전자기기 중 전자 폐기물로 버려진 건 22.3%에 그쳤다. 나머지 80%가량은 땅에 묻히거나 소각된 셈.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쉬운 소형 기기들의 특성상 ‘잘 분해되는 것’ 또한 제작 과정 못지 않게 중요하다. 잘 분해되려면 우선 잘 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 파페 Pape는 고밀도로 압축한 종이와 재활용 가능한 PCB 보드로 연기 탐지기와 와이파이 라우터를 만들어냈다. 파페의 젊은 디자이너 프란지스카 커버 Franziska Kerber는 꾸준한 재료 혁신과 연구를 통해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염된 식물에서 도자로
네덜란드 디자이너 마르테 메이 Marte Mei는 암스테르담의 사회 혁신 공동체 드 꺼블 De Ceuvel 에서 자란 식물의 재에서 중금속을 추출해 도자기 유약을 만들고, 이를 통해 원예 도구를 제조해냈다. 드 꺼블은 과거 조선소를 운영하며 오염된 땅을 생태 진화적 순환 도시로 탈바꿈한 공간으로, 땅 위로는 정화 기능을 가진 식물들이 빼곡히 심겨 있다. 이런 드 꺼블의 특별한 토양적 특성 때문에 수확된 식물들의 중금속 함유량은 높을 수밖에 없었고, 메이는 도자기 유약을 만들기에 충분한 양을 추출할 수 있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원예 도구는 다시 드 꺼블의 식물을 가꾸는 데 사용된다. 진정한 제로웨이스트와 자연 순환의 과학이 작은 원예 도구에 담겨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