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목동이 되어

남미의 목동이 되어

남미의 목동이 되어

은 장신구로 꾸민 말을 보고 있으면 아르헨티나의 화려한 전통과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펼쳐진 대초원 팜파스에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근대식 건물과 도로, 테라스가 있는 카페가 즐비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Buenos Aires는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유럽과 닮아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쪽으로 한 시간 반가량 차를 몰면 과거 속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드는 산 안토니오 데 아레코 San Antonio de Areco에 도착한다.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대초원 팜파스 Pampas 지역 중앙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숙련된 장인이 가죽과 은, 뿔로 만든 전통 장신구를 볼 수 있는데 이 장신구에서 남미의 카우보이인 가우초 Gaocho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19세기에 검소하게 살던 유목민의 삶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들의 정신은 마을 지역 축제를 통해 이어가고 있다.

↑ 호텔 밤바에 있는 식당 밖에 있는 사무실은 예전에 말과 마차를 보관하던 곳이였다. 마구 두 개가 자연스럽게 건물을 장식하며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벽의 흑백사진이 현대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목장의 황금기를 재현한 축제는 도시에서 꿈꾸는 전원 생활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소설가 리카르도 구이랄데스 Ricardo Güiraldes (1886~1927)가 1926년에 발표한 성장 소설인<돈 세군도 솜브라 Don Segundo Sombra>에서도 엿볼 수 있다. 리카르도는 이 책에서 가우초를 묘사하며 외부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이 출간되고 여러 해가 지난 뒤 가우초의 문화에서 소재를 얻은 마을 축제가 생겨났다.

↑ 지어진 지 오래되어 보이는 이 마구간은 사실 말을 좋아하는 프랑스인이 매입하면서 얼마 전 재건축한 것이다. 그는 근처에 있는 폴로 경기장에서 승마를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매년 11월이 되면 일주일 동안 말 조련 시합과 고리 걸기 놀이, 가우초 전통 춤과 노래, 민속 시장 등 다양한 전통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마을을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카우초의 후손들이 지켜온 위업과 옛 유목 문화, 평야에서 자유로이 말을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이 남미의 이 작은 마을로 모여든다.

↑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마틴은 말 몸통에 끈을 두르고 올라탔다. 가죽으로 만든 발걸이에 양말을 신지 않은 채 발가락을 걸어 놓은 모습이 시원해 보인다. 그는 말을 다루는 기술을 뽐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본래 농장 건물이었던 호텔 ‘밤바 Bamba’는 지역 장인이 건물의 개성을 살려 개보수한 곳으로 이방인에게 과거 유목민의 삶과 느린 생활 방식을 경험하게 해준다. 저녁이 되면 이슬로 촉촉해진 잔디밭에 수 백마리의 반딧불이 반짝이는 이곳에서 우리는 도시와는 아주 거리가 먼 또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바람을 막기 위해 플라타너스를 심은 가로수길을 따라 가다 보면 드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있는 전통적인 양식의 건물에 도착하게 된다. 1830년에 지은 대지주의 농가였던 밤바는 현재 호텔로 바뀌었다. 작은 마차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곳에 도착하면 느리게 흐르는 시간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 허리띠 아래에 찬 호화로운 은 장식품은 가우초의 또 다른 긍지이다. 화려하고 멋진 칼자루와 칼은 산 안토니오 데 아레코의 장인이 만든 세공품이다.

에디터 앙-세실 상세 Anne-Cécile Sanchez | 포토그래퍼 르노 마리옹 Renaud Marion

CREDIT
남미의 목동이 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식을 외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식을 외치다

재미 교포 셰프 코리 리가 운영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모던 한식 레스토랑 ‘베누’가 드디어 미슐랭 3스타를 획득했다. 개리 단코, 블루버드 등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격전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한식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코리 리 셰프를 이메일로 만났다.

↑ 베누의 조리실에서 포즈를 취한 코리 리 셰프.

2010년에 레스토랑 베누 Benu를 오픈한 지 4년 만에 미슐랭 3스타를 따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미슐랭은 유럽 레스토랑에 후했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에서조차 미슐랭 3스타를 받는 것은 비현실에 가까웠다. 17살 이후로 런던과 파리 등 유럽의 유명 레스토랑에 경험을 쌓아오면서 유럽의 미슐랭 문화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베누에게 미슐랭 3스타는 어떤 의미인가? 미슐랭 3스타를 받는 것은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이것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베누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 샌프란시스코의 문화 중심지인 소마 Soma에 위치한 베누의 모던한 외관.

당신은 베누를 오픈하기 전, 토마스 켈러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프렌치 런드리 French Laundry의 수석 셰프까지 올랐다. 거기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프렌치 런드리에서 9년 동안 일하면서 요리는 물론 조리 도구 선택법, 효율적인 주방 시설 관리법, 레스토랑 경영, 홍보 등 레스토랑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세계 어떤 레스토랑이든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배울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삼겹살과 김치, 멸치조림 등 한국인의 일상 음식이 베누에서는 색다르게 해석된다. 나의 요리는 항상 레스토랑이 위치한 지역에 근간을 둔다. 지역에서 바로 구할 수 있는 싱싱한 식재료와 지역 문화가 요리에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베누의 요리 주제는 한마디로 샌프란시스코라고 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한국인을 비롯해 수많은 동양인이 산다. 그래서 기본적인 파인 다이닝 요리에 한국적인 요소를 접목하게 됐다.

↑ 베누의 인기 메뉴 중 하나. 굴을 올린 삼겹살 김치.

7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음식에 더욱 익숙할 것 같은데 김장까지 직접 담근다고 들었다. 한식은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인가? 김치를 비롯한 한국 음식의 기본적인 맛은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하지만 김치를 만드는 법은 과학자 UC 데이비드를 통해 배웠다. 김치의 발효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준 사람이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한국 식재료는 무엇인가? 요즘은 말린 멸치를 많이 사용한다. 식감과 맛의 변화가 무궁무진하다. 한식 재료는 아니지만 말린 전복에도 관심이 많다.

↑ 동양의 단아함이 느껴지는 베누의 정원.

당신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인가? 나의 모국이자 내 요리 영감의 원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와서 한국적인 정서를 본토에서 많이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한국을 더 알고 싶지만 이민자로서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셰프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 체력과 상식. 셰프의 실력과 문화적 이해력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요리를 만든다.

↑ 코리 리가 창의적으로 표현한 도토리묵.

한국 음식에 대한 위상이 달라졌다. 한국 음식 열풍은 5년 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한식 하면 갈비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세계인들이 한식의 보다 다양한 면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먼저 오랫동안 준비해온 책 <베누>가 오는 4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또한 베누의 새로운 코스 메뉴를 구성 중이다.

에디터 송정림 | 사진 제공 베누

CREDIT
남미의 목동이 되어

영혼을 깨우는 예술

영혼을 깨우는 예술

예술 작품이 사치 혹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에 취향과 시각을 대변할 수 있는 작은 그림 한 점을 걸 수 있는 예술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으니 말이다.

↑ 이안아트컨설팅 쇼룸에 걸린 장은의 작가의 싱글채널 작품.

경기도 저조하고, 미술 시장의 열기도 가라앉았지만 오히려 ‘아트 인테리어’가 인기인 것은 왜일까? 해답의 실마리는 한때 폭풍처럼 사람들을 휩쓸고 간,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힐링’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운 시기를 견뎌야 하는 지금 내 형편 안에서 자신에게 최대한의 호사를 허락하는 ‘작은 사치 small luxury’가 화두였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 해마다 열리는 국제적인 미술 박람회인 바젤 아트페어.

예술은 내가 자신에게 허락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실용성이 없다는 점에서는 사치이지만 효용성만을 중시하는 이 사회에서 지치고 소외된 나를 달래준다는 점에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루브르 미술관이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 소장품들은 왕실 귀족들이 감상하고 고이고이 간직해온 ‘보물 상자 cabinet of curiosity’였다. 내가 나의 공간을 예술 작품으로 꾸미는 것은 나만의 뮤지엄을 만드는 것과 같다.
내가 선택한 작은 예술품 하나가 그 공간에서 나를 대신하고,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된다. ‘당신이 먹은 것이 바로 당신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섭식의 중요성을 경고한다면, 이제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우리는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이 다시 우리를 형성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덕분에 예술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고 있다. 재산 증식의 대상으로서의 예술 작품이 아니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아무거나 걸어놓는 이발소 그림도 아니다. 내 주변의 작은 소품부터 하나씩 내 취향으로 선택한 예술 작품으로 바꿔 나가려는 움직임, 그리고 틈나는 대로 갤러리와 미술관을 방문하고 미술사를 공부하며 삶 속에 창조적 정신이 스며들 수 있도록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나가려는 예술 사랑의 열풍이다.

↑ 다양한 프린트 그림을 판매하는 이케아.

그 방증은 인테리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SPA 브랜드가 앞다퉈 홈 컬렉션을 론칭했고, 이케아 상륙에 맞서 우리 브랜드도 컬렉션을 강화하는 등 전반적으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림 액자가 다양해진 점이다. 전문적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경제적인 가격대의 그림 액자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점도 늘고 있다. 아트 퍼니처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차피 있어야 할 가구라면 실용성과 심미성을 갖춘, 게다가 작가가 만든 독창적인 작품에 조금 더 비용을 내고서라도 구입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최근에는 나홀로족의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작은 크기의 원룸이라도 책꽂이에는 예술 관련 서적을 꽂아두고, 종이로 된 모빌을 늘어뜨려 예술의 향기가 물씬 풍기도록 꾸미는 것이 유행이다. 비록 진품이 아니라 프린트라 할지라도 유명 작가가 아니라 신인 일러스트레이터의 드로잉이라 해도 내 공간에 나만을 위한 그림 하나를 걸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당신의 공간에 예술 작품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소중한 당신의 영혼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 에디터 신진수

CR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