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미식의 환영

예상치 못한 미식의 환영

예상치 못한 미식의 환영

벨기에를 더 이상 초콜릿의 나라로 기억하지 못하게 할 감자튀김과 크로켓 그리고 맥주의 향연이 펼쳐진다. 입안에 침이 흥건히 고이고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벨기에 음식을 소개한다.

런던의 빅벤, 파리의 에펠탑,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유럽의 도시들은 저마다의 랜드마크로 기억된다. 하지만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를 대보라고 하면 대다수가 모를 것이다. ‘오줌싸개 소년의 동상’ 정도라도 생각해냈다면 아마도 유럽 여행 경험이 꽤 있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수도인 브뤼셀뿐만 아니라 벨기에라는 나라 전체가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쩌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라는 유럽의 초강자들 사이에 위치한 남한 면적 3분의 1 크기의 나라가 가져야 할 숙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왕실 모두가 이 지역을 차지하길 원했고 한때 소유했었다는 사실이 벨기에가 가진 매력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또한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의 벨기에가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문화적 스펙트럼의 원천이기도 하다.
자국 내에 또는 인근 국가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를 조합해 최상의 솜씨로 마무리해내는 것은 벨기에 사람들의 장기였다. 이를테면 유화가 그렇다. 15세기에 들어오며 당시 화가들이 안료에 달걀을 섞어 사용한 데 반해 기름에 개어 채색하는 기법을 고안한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1395~1441)에 의해 최초의 유화가 탄생되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증기기관을 수레에 처음으로 이식해 자동차라는 개념을 만든 것은 1668년 벨기에의 성직자 페르디난드 베르비스트였다. 이렇듯 기존의 것을 융합해 발전시키는 데 익숙한 벨기에 사람들이 발명자로서의 지위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겐 ‘프렌치프라이’로 더 익숙한 감자튀김, ‘프리츠’. ‘프랑스식 튀김’이라는 뜻의 프렌치프라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미국에서 쓰이기 시작했는데 벨기에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벨기에 사람에 따르면 이 음식은 1680년 이전에 남부 뮤즈 강변의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강에서 잡은 조그마한 물고기를 튀겨 먹곤 했는데 강이 얼어붙어 낚시를 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감자를 작은 생선 크기로 잘라서 튀겨 먹었다는 것이다. 그 유래야 어쨌건 감자튀김에 대한 애정으로 따진다면 벨기에 사람들이 단연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벨기에 북서부의 유서 깊은 도시, 브뤼헤에는 감자튀김의 모든 것을 전시해놓은 프리츠 박물관 www.frietmuseum.be/en/이 있다. 별것 아닌 감자튀김을 가지고 박물관까지 만드나 싶을 수도 있지만 이 박물관에 담긴 세심함은 감자튀김을 ‘별것’으로 생각하는 열정의 결과물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다. 감자의 생육과정, 시대별 감자튀김 조리법, 감자튀김 노점의 변천사, 그리고 각종 만화에 등장한 감자튀김 에피소드까지 모아놓은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감자튀김 노점으로 직행하고 싶을 만큼 시장기를 느끼게 된다. 그럴 땐 중앙 광장으로 가는 것이 상책이다. 노점 앞에서 호호 입김을 내불며 따끈따끈한 감자튀김이 튀겨지는 소리를 듣다 보면 정신은 아득해지고 입안은 침으로 흥건해진다. 두 번 튀겨서 바삭한 감자튀김에 다양한 소스를 뿌려서 먹다 보면 점심 한 끼가 어느새 해결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부이야베스와 크로켓의 참맛
서유럽의 중앙부에 자리 잡은 지리적 여건을 씨줄 삼고 이 지역을 거쳐간 수많은 열강들의 식문화를 날줄 삼은 것이 벨기에 요리라는 점을 깨달을 때 미식가들의 눈앞에는 천국의 문이 열린다. 대표적인 것이 부이야베스다. 마르세유 지역의 어부들이 팔고 남은 생선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 이 프랑스식 매운탕은 성대, 달고기 등 지중해에서 잡히는 흰 살 생선과 새우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벨기에식 부이야베스는 북해에서 잡히는 한류성 어종을 이용한다. 아구와 홍합, 작은 바닷가재를 넣고 끓여낸 진한 육수는 전날 벨기에 맥주를 지나치게 탐닉한 술꾼의 속을 달래기에 딱이다(다만 먹고 있다 보면 맥주 한잔이 더욱 간절해진다는 것이 함정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유래한 크로켓 역시 벨기에 사람들이 쉽게 최고의 자리를 양보하려 하지 않는 음식 중 하나다. 고기와 야채를 반죽해 달걀물과 빵가루를 묻혀 튀긴 것이 크로켓의 정의라는데 벨기에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벨기에 사람들이 최고의 크로켓으로 꼽는 치즈 크로켓과 새우 크로켓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4월부터 9월까지 북해에는 회색 새우로 불리는 최고의 맛을 지닌 새우가 올라온다. 신선한 회색 새우를 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껍질과 함께 볶은 후 육두구와 붉은 고춧가루로 양념하고 다시 달걀흰자와 빵가루를 묻혀 튀겨내는 새우 크로켓엔 북해의 신선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북해에 면한 오스트뒨케르케라는 항구도시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전통 방식으로 새우잡이를 하는 어부들을 볼 수 있는 장소다. 이곳에선 허리에 그물을 동여맨 말을 사람이 타고 직접 바다로 들어가 새우를 잡는다(이 방식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마다 6월의 마지막 주말이 되면 이곳에서 오스트뒨케르케 새우 축제가 열린다. 새우잡이를 위해 특별히 훈련된 말들을 앞세운 퍼레이드에는 해마다 선발되는 새우 아가씨(!)까지 참가한다. 풍성한 새우 요리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어릴 때부터 동네 빵집에서 파는 크로켓(또는 고로케)과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이라면 이맘때의 오스트뒨케르케야말로 크로켓 여정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닐지.

평생 가도 다 맛볼 수 없는 수제 맥주
전통의 토대 위에 창의성이라는 새로운 집을 짓는 데 능숙한 벨기에 사람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먹거리는 다름 아닌 맥주다. 벨기에 제3의 도시, 헨트에서 자동차로 30분가량 떨어진 곳엔 허이헤라는 맥주 양조장이 있다. 생산량으로 벨기에에서 7위에 해당하는 이 업체에서 만드는 맥주의 가짓수만 해도 50가지다. 이 맥주 양조장의 매니저 필립 드볼더는 말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언제나 최고의 장인이죠.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면서 단순히 스파이스나 과일을 맥주에 던져넣는 일은 있을 수 없어요. 경험을 바탕으로 결과를 예측하고 나온 결과물을 다시 철저히 검증해서 확신이 있을 때에만 고객에게 제공하죠. 하지만 새로운 실험에 대해선 언제나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지역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헨트 관광청 직원 얀닉 드 코큐의 설명이다. 벨기에 전역에선 지금도 450개의 맥주 양조장에서 최소 3000여 종류의 맥주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아쉬움은 곧 조바심으로 바뀌었다. 평생 가도 다 맛볼 수 없는 그 맥주들을 하나라도 더 맛보고 떠나야 하겠기에. 벨기에에서 이렇듯 많은 종류의 맥주가 생산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가진 지역색을 자랑스러워하고 그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벨기에 사람들의 성향 때문이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대세’와는 무관한 비주류의 취향까지도 존중하려는 태도도 한몫한다. 벨기에 남부의 왈롱 지역에선 초가을 무렵부터 사냥해서 잡은 야생 조수로 만든 지비에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것은 사슴, 토끼, 멧돼지, 오리 등의 고기다. 어떤 맛일지 상상의 나래를 펴보지만 막상 먹어보면 소나 돼지에 비해 먹을 만한 부위가 많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향이 나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규모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가축의 고기로 충족시킬 수 없는 취향도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벨기에에선 이처럼 비주류의 고기로 만든 요리들까지 당당히 메뉴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벨기에 남부의 시메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에서 스페인식 생선절임 에스카베체와 맥주가 들어간 소스에 졸인 토끼고기 스테이크 그리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시메 맥주와 치즈를 앞에 놓고 앉았다. 놀이공원에 처음 와서 놀이기구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은 이내 서로 다른 종류의 초콜릿이 잔뜩 들어 있는 선물 상자를 받은 아이의 두근거림으로 바뀌었다. 벨기에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질적인 요소가 가득한 식탁 앞에서 취해야 할 태도는 하나뿐이니 말이다. 벨기에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들을 한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것 말이다.

탁재형(다큐멘터리 PD) | 에디터 이경현 |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

CREDIT
예상치 못한 미식의 환영

Global(3) Newyork

Global(3) Newyork

매혹하는 사진, 뉴욕은 재즈, 자꾸만 생각나네

매혹하는 사진
현대미술과 일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사진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갤러리를 소개한다. 요시밀로 갤러리 Yossi Milo Gallery는 뉴욕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 전문 갤러리로 한국인으로는 유일무이하게 이명호 작가가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요시밀로 갤러리의 가장 큰 특징은 소속 작가들 대부분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사진을 만든다는 것으로 완성도 높고 이색적인 이미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은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긴 복도를 지나 안쪽의 메인 공간으로 이어져 있어 다른 갤러리와는 다르게 전시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좋다. 전시 일정은 웹사이트를 참고할 것.
주소 245 Tenth Ave. New York, NY 10001
문의 www.yossimilo.com

뉴욕은 재즈
1 빌리지 뱅가드 Village Vanguard 1935년에 문을 연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클럽으로 하루에 두 번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특히 1930년대의 무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당시의 빈티지한 실내 분위기와 재즈의 조화가 돋보인다. 역사가 깊은 장소인 만큼 재즈 마니아들의 명소이기도 하다.
주소 178 7th Ave. St. New York, NY 10014
문의 www.villagevanguard.com2 스몰스 Smalls 1960년대풍의 소박하면서도 거친 듯한 인테리어가 특징인 곳. 재즈 라이브쇼에 어울리는 아늑한 공간은 이곳의 장점으로 손꼽을 만큼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우며, 하루에 세 번 라이브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주소 183 W 10th St. New York, NY 10014
문의 www.smallsjazzclub.com3 팻캣 Fat Cat 세 곳 중 가장 넓은 라이브 무대 공간을 보유하고 있어 많은 관람객과 뮤지션이 함께 공연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음악 외에도 당구, 탁구, 체스 등의 오락을 즐길 수 있어서 특히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재즈 클럽이다.
주소 75 Christopher St. New York, NY 10014
문의 www.fatcatmusic.org

자꾸만 생각나네
뉴욕은 지금 라멘 춘추전국 시대라 할 정도로 라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자갓서베이와 이터 Eater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 무라멘 Mu Ramen이 가장 눈길을 끈다. 긴 나무판을 세워 물결치는 듯한 곡선으로 장식한 천장과 실내 인테리어가 매우 인상적인 이곳은 현재 팝업 스토어로 정식 매장을 준비 중이다. 생면을 사용한 쫄깃한 면발이 특징으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스파이시 미소’와 ‘돈코츠 2.0 라멘’이다. 특히 돈코츠 2.0 라멘은 육수 맛이 일품이니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맛보길.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5시 30분부터 10시까지 영업하며 당일 방문 전에 예약은 필수다.
주소 1209 Jackson Ave. Lic. NY 11101
문의 +1-(0)917-868-8903
정환영(뉴욕 통신원)

CREDIT
예상치 못한 미식의 환영

Global(2) London

Global(2) London

미국의 자부심을 만나다, 터키 전통의 맛, 추억의 한 스푼

미국의 자부심을 만나다
1907년 구두 왁스 제조를 시작으로 시계, 가죽 소품, 다이어리, 의류, 가방, 자전거 등으로 제품 라인을 확장한 100년 전통의 미국 브랜드 샤이놀라.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자부심을 제품에 녹여낸 높은 품질로 확고한 사랑을 받고 있는 샤이놀라의 런던 최초의 매장이 지난 2014년 말 카나비의 뉴버그 스트리트에 오픈했다. 1층에는 대표 아이템인 손목시계와 가방, 재킷 등의 가죽 소품이, 지하에는 미국에서 일일이 손으로 조립한 다양한 수제 자전거가 진열되어 있다.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제품을 만들다는 것이 브랜드의 모토이며 대부분의 제품이 품질만큼 높은 가격을 자랑하기에 선뜻 구매하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 하지만 전설적인 샤이놀라 구두 왁스나 다이어리 제품은 모두 2만원대 미만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주소 3 Newburgh St, London, W1F 7RS
문의 +44-(0)20-7287-0155 www.shinola.co.uk

터키 전통의 맛
하카산, 요와차 등의 고급 중식당과 저렴하면서도 캐주얼한 아시안 레스토랑인 와가마마와 부사바, 잇타이 등을 모두 히트시키면서 영국 레스토랑 업계에서 동양인으로는 유일무이하게 성공가도를 달려온 알란 요 Alan Yah가 아내의 나라 터키로 눈을 돌렸다. 소호에 지난해 12월에 오픈한 바버지 Babaji는 터키식 요리를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식당으로, 케밥이 아닌 터키식 피자라 할 수 있는 피데 Pide와 만두와 흡사한 만티 Manti, 양고기 스튜, 각종 샐러드 등 다양한 터키 요리를 선보인다. 터키에서 직접 공수해온 터키 전통 문양이 아름다운 그릇들과 식당 가운데 자리한 전통 화덕, 블루와 골드 등 전통적인 터키의 색감을 차용한 인테리어 등 터키의 맛과 멋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주소 53 Shaftesbury Avenue, London, W1D 6LB
문의 +44-(0)20-3327-3888

추억의 한 스푼
이스트런던의 브릭레인에 시리얼 전문 카페인 ‘시리얼 킬러’가 새롭게 오픈했다. 전 세계에서 공수해온 120여 종류의 시리얼과 20여 가지의 다양한 토핑, 시리얼에 빠져서는 안 되는 우유 역시 30여 종을 구비하여 개인의 취향에 맞춰 시리얼을 제조해 먹을 수 있다. 카운터에 진열되어 있는 현란한 색상의 시리얼 박스와 톡톡 튀는 인테리어로 오픈한 지 3달 만에 브릭레인의 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대, 중, 소로 구별된 그릇에 제공되는 시리얼은 각각 3.5파운드(6천원대), 3파운드(5천5백원대), 2.5파운드(5천원대)이다. 고칼슘, 저지방 등 특별한 우유를 원할 경우 20펜스, 토핑을 원할 경우 50펜스가 별도로 추가된다. 40%에 가까운 높은 당분 함유량으로 아침상에서 퇴출당한 달콤한 시리얼을 초콜릿 토핑과 함께 한 스푼 가득 입에 넣는 순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샘솟을 것이다.
주소 139 Brick Lane, London, E1 6SB
문의 www.cerealkillercafe.co.uk
글&사진 정지은(런던 통신원)

CR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