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간 이래 단 한 번도 미쉐린 스타를 놓친 적 없는 알라 프리마의 김진혁 셰프. 그의 혁신과 창작력은 곧 알라 프리마의 개성이 된다.

카르나롤리 쌀로 만든 리조토. 닭 가쓰오부시로 우려 감칠맛이 풍부한 육수와 능이버섯, 누룩을 섞어 만든 능이버섯 페스토에 제철 보리새우와가을 트러플을 곁들였다.

차분하지만 개성 있는 알라 프리마의 내부 풍경.
통상적으로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가을은 비수기로 통하지만, 올가을 레스토랑 알라 프리마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추석 당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요리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여파일 것이다. 오너셰프 김진혁이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레스토랑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첫 발간된 2016년부터 지금까지 견고하게 미쉐린 스타를 유지해온 덕분일 것이다. 2015년 그를 포함해 단 3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알라 프리마는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당당하게 1스타를 거머쥐더니,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2스타의 자리를 유지해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미식과 미쉐린 레스토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알라 프리마 역시 주목받을 수밖에 없을 터. 군 제대 후 ‘꿈이 전혀 없었다’는 그가 형 소개로 청담동의 한 로바다야키에 합류했을 때부터 목표는 단 하나였다. ‘내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자.’ 칼질도 못 하는 상태로 주방에 들어갔을 땐 그 누구보다 단무지를 잘 써는 게 목표였고, 야키토리를 구울 땐 전국에서 야키토리를 제일 맛있게 굽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주어진 역할에서는 최고가 됐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엔 외식 대기업에서 일하다 ‘마흔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요리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게 뻔한데, 망하더라도 해보고 망하자’는 결심으로 차린 게 지금의 알라 프리마다.

알라 프리마의 김진혁 셰프.

알라 프리마의 혁신적인 요리와 꼭 닮은 레스토랑 내부 모습.

가게 한쪽을 장식한 2024 미쉐린 2스타 상패와 라 리스트 LA LISTE 상패들. 알라 프리마는 2018년, ‘라 리스트 2019’에 처음 등재된 후 최근 발표된 ‘라 리스트 2025’까지 계속해서 이름을 올렸다.
미식가들에겐 이곳이 코로나19 등의 위기를 버티고 지금까지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클래식’의 상징이지만, 김진혁 셰프의 손을 거쳐 즐겁게 변주된 메뉴들은 결코 고전적이지 않다. 김 셰프가 자부심을 느끼는 알라 프리마의 개성 또한 이것이다. “남들하고는 다르게. 이 디시를 보자마자 ‘이거 알라 프리마 요리잖아’ 할 정도로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어야죠. 식자재부터 남들이 잘 안 쓰는 것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고민해요. 의도적으로 한식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려 합니다. 물론 한식 카테고리에 우리 음식을 맞추면 외국 손님들에게 어필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게 타협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경험에서 우러난 새로운 요리를 해야 한다는 자존심도 있고요. 물론 제가 매니악한 만큼 단점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그 안의 장점을 최대한 극대화해서 앞으로 계속 이렇게 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뜨거운 냄비에 다이콩 모찌, 갯장어, 루콜라, 튀긴 우엉과 제피 페스토를 올리고 생선 육수를 붓는, ‘일식이라 하기도, 한식이라 하기도 뭣한’ 메뉴를 보면 손님들이 재미를 넘어 ‘익사이팅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돌아가기 원한다는 그의 말뜻이 이해될 것이다. 이런 매니악함은 다른 레스토랑과 차별화된 유니폼의 디테일과 한국에서 유일한 인테리어에도 묻어나는데, 미쉐린 가이드에서 알라 프리마는 창작력과 혁신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노베이티브’로 분류되고 있다.

훈연 향이 매력적인 가쓰오 타다키. 점다랑어 아래엔 맛의 개성이 약하고 촉촉해 나머지 식자재를 잘 살릴 수 있는 용과를 깔았다. 일본 미소를 가미한 헤이즐넛 페스토엔 알라 프리마의 개성이 묻어난다.

다이콩 모찌, 갯장어 등이 들어간 뜨거운 냄비에 직접 생선 육수를 붓고 있는 김진혁 셰프. 테이블에 서빙된 냄비에 육수를 부어 김을 내는 건 이곳 시그니처 스타일 중 하나다.
이탈리아어로 ‘즉흥적으로’, ‘첫 시도’를 뜻하는 알라 프리마답게 그의 첫 시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요리를 내놨는데 반응이 별로면 저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잖아요. 그런데 식자재마다 제철이 있으니 시즌이 끝나면 다음 해를 기다려야 돼요. 그럼 저는 1년 동안 더 생각을 하겠죠. 어떻게 하면 손님들 입맛에 더 맞출 수 있을지 고민도 하고, 부족했던 스킬도 더 노력하고. 그런 부분이 쌓이고 쌓이면서도 계속 새로운 시도가 되는 거예요.” 레스토랑 운영에도 첫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옛날엔 요리만 할 줄 알았지, 경영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었는데 최근에 많이 바뀌었어요. 몇 년 안으로 레스토랑의 공간이나 규모 등을 바꿀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인원을 분산시키고, 재료를 나눠 쓰면서 세컨드 레스토랑이나 캐주얼한 와인바 같은 곳을 차릴 수도 있고요. 운영한 지 10년이 되어가니 조금씩 깨닫게 되더라고요.” 새롭게 깨닫게 된 것 중엔 PR의 필요성도 있다. 과거 방송 섭외나 인터뷰 요청에 잘 응하지 않던 그가 변하게 된 데엔 직원들에 대한 남모를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PR이 없으니 직원들의 프라이드에도 영향이 미친 것. “스태프가 제일 중요하지. PR을 해야 레스토랑이 돌아가고, 그래야만 돈이 모여요. 돈이 모여야 직원 복지가 좋아지고, 직원 복지가 좋아야 함께 오래 갈 수 있고요.” 한국 파인다이닝계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서 가진 자부심에 대해 묻자 “앞으로 더 잘되어야 생길 것 같다”는 겸손함을 보이면서도, 먼저 ‘사명’이라는 단어를 꺼낸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직원과 후배 요리사들을 위해. “어디서든 부조리는 항상 있어요. 뭐라고 딱 꼬집어서 말하기 힘들지만, 그런 부조리들을 많이 바로잡아가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이 이 업계의 성장통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성장만 바라보고 쭉 달려오느라 놓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국 외식 문화가 더 성장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보낸 알라 프리마에서의 여정은 오너셰프로서 김진혁의 시야를 한층 더 넓혀줬다. 올해 10년 차를 맞은 알라 프리마의 10년 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레스토랑 플레이트들.

분주한 키친 스태프들의 모습.

프리토식으로 튀긴 제철 주키니꽃 위에 최고급 무늬오징어를 얹고, 레몬 소스를 더했다. 발효한 봄 머위꽃과 누룩이 들어간 주키니 퓨레는 단연 본요리의 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