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빠질 수 없는 아이템, 술. 전통주부터 와인, 위스키 등에 달하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해 전문가에게 물었다. 이 밤을 빛내줄 주인공은 무엇인가요?
크룩 그랑 뀌베 171eme 에디션
‘샴페인 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말 파티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데 샴페인만큼 훌륭한 선택지가 없다. 그중에서도 ‘샴페인의 왕’으로 통하는 크룩 그랑 뀌베를 생산할 때는 다년간 재배된 10종 이상의 포도가 사용되어 ‘멀티 빈티지’라고 부른다. 게다가 한 병 만들 때마다 ‘라이브러리’라는 크룩 셀러에 보관 중인 수천 개의 리저브 와인이 최소 100종 이상씩 블렌딩되어 좀 더 뛰어난 복합미와 넓은 표현력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최근 릴리즈된 172 에디션이 아닌 지난해 출시된 171번째 에디션을 소개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충분한 재고, 그리고 다른 오래된 에디션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 때문이다. 무엇보다 데고르주망 Disgorgement 시기로부터 1년 이상이 지나 시음 적기에 들어서, 고급 샴페인 특유의 고소한 브리오슈 뉘앙스도 있다. 다채로운 풍미와 최고의 밸런스를 가진 만큼 올 연말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해줄 것이다.
– 배성민, ‘알라프리마’ 소믈리에
라프로익 10y CS
“구형이 신형보다 낫다.” 스카치 하면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말이다. 위스키 애호가라면 과거 1960~90년대 올드보틀을 찾기 마련이지만 이제는 너무 비싸서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일관성 있게 품질이 고른 위스키를 만나면 더욱 반갑다. 라프로익 증류소의 10년 캐스크 스트렝스가 그렇다. 평소 ‘라프로익 10y CS’는 배치에 상관 없이 눈 감고 구매하는 편이다. 현재 총 17 배치까지 나왔지만, 어느 하나 못난이가 없다. 미국의 금주법 기간에 의약품으로 취급될 만큼 맛이 독특해서 소비자들의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요오드나 정로환 맛이 지배적이지만, 이 ‘병원 맛’을 벗겨내면 다채로운 열대과일들이 입안을 즐겁게 해,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될 것이다. – 김지호, <위스키디아: 당신의 취향을 찾아주는 위스키 안내서> 저자
장성만리
연말 모임 자리는 불특정하다. 술꾼들의 모임이 있고, 술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의 모임이 있다. 음식 메뉴도 다양할 터. 이런 불특정함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술은 뭐가 있을지 고민해봤다. 장성의 해월도가에서 만들어지는 ‘장성만리’는 화사한 산미가 매력적인 연꽃으로 담은 술이라 술자리의 첫 술이나 중간 술 정도로 권할 때가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바디가 안정감을 만들어주고, 산미가 과하지 않아 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마실 수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섬세한 발효의 미학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임병준, ‘바 참’ 대표

호도나스 2019
세바스티앙 히포 Sebastien Riffault는 프랑스 루아르 지역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와인 메이커다.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루아르 상세르 하면 몇몇 생산자를 떠올리는데, 그중 꼭 언급되는 생산자이기도 하다. 호도나스 Raudonas처럼 생기 있고 활력 있으면서 밝은 느낌의 레드 와인은 손에 꼽히는 것 같다. 한입 머금고 있으면 방금 옆에서 짜준 듯한 크랜베리와 라즈베리의 감칠맛이 나고, 피니시는 아주 미세하게 쌉쌀한 맛이 있어 여운도 준다.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파티에 간단한 치즈 또는 향신료가 첨가된 음식과 잘 어울린다. 참고로, 고객 한 분이 이를 스토리에 올리자 생산자가 오피셜로 ‘최고로 잘 만든 빈티지’라는 DM을 보내기도 했다.
– 박정재, ‘파브 서울’ 대표
카발란 솔리스트 비노바리끄
모임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술도 훌륭하다. 한창 모임이 무르익고 가져온 술이 다 떨어질 때 즈음이면 ‘위스키 한 병 있으면 좋겠는데’ 싶은 순간이 온다. 대만 위스키 카발란 솔리스트 비노바리끄와 초콜릿 약간이면, 센스 있는 마무리를 선사할 수 있다. 단점이라 생각돼온 덥고 습한 대만 기후가 오히려 위스키 숙성에 매력 포인트가 되어, 진득하고 깊은 캐러멜 같은 말린 망고와 체리의 달콤함이 함께 느껴진다. 카발란 위스키는 일단 구매하자마자 오픈해서 한 잔 마시고, 다시 뚜껑을 닫아 보관해두었다가 갖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보틀을 바로 오픈할 때보다는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날수록 더욱 조화롭고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언제 구매해 오픈해 두었는지까지도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다. – 이정윤, ‘다이닝미디어아시아’ 대표
뮈스카 밤뷸 2021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은 뮈스카 품종을 즐겨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에서 뮈스카는 꽤나 매력적이다. 프랑스 보르도와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경력을 쌓은 오스트리아의 여성 생산자 유디트 벡 Judith Beck의 와이너리는 독특하게도 노이지들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따뜻한 와인 생산지다. 부르고뉴와 비슷한 기후 조건을 보이는 곳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흰 꽃의 아로마 향으로 시작해, 머금고 있으면 레몬과 레몬제스트, 유자 맛을 느낄 수 있고, 다 마시고 나면 풀과 허브 향의 여운이 있다. 종종 품종에 선입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면 놀라시곤 한다. 개구진 아이를 바라보는 것 같은 미소를 띠게 하는 맛과 잔향이 매력적이다. – 박정재, ‘파브 서울’ 대표

루이 로드레 컬렉션 244
연말 모임 자리에 술을 갖고 나간다면, 기왕이면 기억에 남는 술이 좋을 터. 엄청 화려하고 값비싼 메인 와인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타이밍’을 노려보는 것도 좋기에 시작이나 끝을 장식하는 술을 추천한다. 연말 모임의 시작에는 뭐니 뭐니 해도 샴페인이 빠질 수 없다. 어떤 샴페인이든 스타트를 끊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주종은 없다. 샴페인 중에서는 백화점 와인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샴페인의 왕, 크룩 그랑 뀌베를 가져간다면 주목받기에 좋다. 크룩은 와인을 진지하게 즐기는 애호가와 라벨 드링커를 둘 다 만족시키는 특별한 와인이니까. 샴페인은 뭐든 다 좋지만 크룩보다 좀 더 캐주얼한 옵션으로는 10만원 미만의 ‘루이 로드레 컬렉션 244’도 훌륭한 선택이다. 양식 요리는 물론이고 삼겹살까지 아우를 수 있는 청량한 버블감과 산미, 그리고 조화로운 향미가 ‘데일리 샴페인의 표준 교과서’ 같은 느낌이다.
– 이정윤, ‘다이닝미디어아시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