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전통적이지 않은 한국 요리. 조셉 리저우드 셰프의 에빗에서는 지금까지 맛볼 수 없던 또 다른 한국의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에빗의 오리 요리. 합천에서 공수한 오리를 10일 동안 드라이에이징한 뒤 숯불에 구웠다. 산사나물 열매로 만든 퓨레와 슬라이스한 반시를 곁들였다.

에빗의 다이닝 공간. 한국적인 뉴트럴한 컬러 톤에, 오방색 중 ‘창조’의 의미를 지닌 푸른 컬러를 포인트로 사용했다.

카메라를 보고 웃음 지어 보이는 셰프 조셉 리저우드.
2024년 하반기 방영한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장면 중 하나는 호주 출신의 조셉 리저우드 Joseph Lidgerwood 셰프가 태극 문양의 부채를 들고 장어를 훈연하는 장면이었다. 한국말이라고는 전혀 하지 못할 것 같아 보이던 그가 2라운드 배틀에서 선보인 요리는 ‘담백한 바다 장어’. 바다 장어를 약주에 끓인 다음, 복분자주 글레이즈를 바른 후 사과나무 숯불에 구운 음식이다. 비록 경쟁 상대와의 약소한 차이로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했지만, 한국 식재료에 대한 셰프로서의 지식을 증명하기엔 충분한 순간이었다. “보통 외국 출신의 셰프가 한국에 오면 자국 음식을 요리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저는 한국의 식재료로 한국 요리를 하니 많은 분이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그가 ‘인생 요리’로 겨루는 라운드에 진출해 선보이고 싶었던 음식은 메주 도넛. 찹쌀과 메주 가루로 만든 반죽 안에는 캐러멜라이즈 크림이 들어 있다. 도넛 위에는 흑마늘 퓨레와 멸치 달고나, 오메기떡으로 만든 흰색 토핑이 올라간다. 이는 전통적인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동시에 ‘단짠’ 문화를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까지 고려해 개발한 메뉴다. “디시를 개발할 때, 식재료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까지 고려해가며 만들어요. 호주에서는 고기와 같은 짠 음식과 설탕을 같이 먹지 않는데, 이런 ‘단짠단짠’은 한국의 문화를 잘 반영하기도 하잖아요.”

플레이팅에 집중하는 조셉 셰프의 모습.

프라이빗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레스토랑에서 직접 절인 절임 메뉴.
조셉 셰프의 한국 식재료에 대한 관심은 2016년에 전 세계를 돌며 팝업 레스토랑을 하던 ‘원 스타 하우스 파티 One Star House Party’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하며 시작됐다.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하기 전 호주와 영국, 미국 등 저명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느낀 점은 이 국가들의 식재료가 너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캐비어, 트러플 같은 고급스러운 재료만 사용한다는 것. 어쩌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특성상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국 식재료에 더욱 끌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같은 재료이지만 손질하고 요리하는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식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한국 식재료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가능성 때문이에요. 한 가지 재료로 여러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하잖아요. 이 재료는 이 방식으로만 쓰여야 한다는 관념을 따르는 대신, 일부러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려 노력하기도 하죠. 물론 제가 여기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익숙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게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전통적인 한국의 방식을 따르지 않기에 창의성을 더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이던 안성재 셰프는 그에 대해 “한국 셰프는 생각할 수 없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을 다른 각도로 바라본다”고 했다. 물론 외국인에게는 익숙지 않은 식재료를 연구하고 색다른 요리로 개발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지난 몇 년간 메뉴 개발에 애를 쓰다 마침내 2024년 겨울 출시한 으름 메뉴가 그 대표적인 예다. 으름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 과일인 만큼 흥미로운 동시에 어려웠던 재료다. 그 지난해에도, 지지난 해에도 도전했지만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드디어 2024년 말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한 끝에 성공했다. 그렇게 탄생한 에빗의 으름 메뉴는 얼핏 보면 달걀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푸아그라 파르페에서 형식을 착안했다. 함께 서빙되는 밤 와플에 얹어 먹으면 풍부함과 동시에 기분 좋은 씁쓸함이 입안을 채운다. 모든 식재료가 그렇듯 제철 기간인 2~3주 동안밖에 선보이지 못하지만, 셰프로서 의미 있는 성취였다.

에빗의 내부는 한국의 항아리, 옹기, 방짜에서 영감을 받아 유기적이고 곡선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창의적인 레시피는 지방의 원산지를 돌며 식재료를 채집하거나, 농부와 양식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얻는 영감에서 탄생한다. 실제로 조셉 셰프는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제철 식재료를 공수하러 전국 방방곡곡으로 향한다. “최근엔 굴 메뉴를 개발하기 전, 한국의 야생 굴에 대해 배우기 위해 태안으로 향했어요. 그곳에서 직접 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굴이 서식하는 장소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물론 그냥 박스로 배송받으면 저도 편하지만, 그게 흥미롭지는 않잖아요. 제가 한국 출신이 아니다 보니 식재료에 대한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2주 전엔 유자를 공부하러 여수 유자축제에 다녀왔고, 송이버섯을 채집하러 영양에 가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식재료에 대한 지식은 아직 초보자라고 생각해요. 쓰고 싶고, 개발하고 싶은 식재료들이 여전히 너무 많아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메뉴씩 개발 중입니다.” 현재는 모과로 담근 김치를 개발 중인데, 모과의 영어 단어 ‘퀸스 Quince’와 김치를 합성해 ‘퀸치’라는 이름을 미리 생각해뒀다며 웃음을 보인다. 전국에서 직접 식재료를 공수해오는 덕분에, 에빗을 방문한 외국인 손님들은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의 여러 지방을 여행한 듯하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

‘인생 요리’로 선보이고 싶었다는 메주 도넛.

레스토랑에서 직접 말린 반시.

한치를 주재료로 한 물회. 신안에서 나는 이끼의 일종인 바위옷으로 젤리 식감의 묵을 만들어 올렸다.
2019년 처음 문을 연 에빗은 오픈 1년 만인 2020년 미쉐린 1스타를 받은 뒤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어느덧 운영 7년 차를 맞이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2025년 새해 계획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계속해서 한국 음식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유명세를 얻고 안정되면 이제는 좀 살살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저는 계속해서 최고의 레스토랑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고 노력할 겁니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탐험하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아요. 좋은 셰프는 레스토랑을 처음 시작한 이유를 항상 상기하고 초심을 잃지 않는 셰프라 생각해요. 저는 한국 식재료에 대해 파고들고자 에빗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저 자신과 음식에는 항상 진솔할 거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잃지 않을 거예요.” 레스토랑의 이름 ‘에빗’은 대대로 물려 받는 가족의 미들 네임이다. 요리에 대한 자신의 배움과 지식을 전수하려는 마음에서 이를 사용했다. 실제로 에빗의 직원 중 30%는 외국인 셰프다. 노르웨이,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수준 높은 셰프들이 한국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애정만으로 한국행을, 그리고 에빗을 택했다. 이들의 지식과 열정은 에빗을 통해 전개되고 확장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