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경험이 쌓여 오늘날의 정체성이 될 수 있도록. 오스틴 강 셰프만이 풀어나갈 수 있는, 묵정의 단 하나뿐인 한식 이야기.

묵정의 오겹살 요리. 직접 만든 홍삼된장소스에 오겹살을 2~3일간 숙성시킨 뒤 참나무에 4시간가량 훈연한다. 함께 서빙되는 장아찌는 고수, 셀러리, 연근, 갓, 아스파라거스.

검은 우물을 형상화환 묵정 내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스틴 강 셰프가 유년 시절 접한 한국 음식은 보통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한식과는 조금 달랐다. 멕시코, 중국, 일본, 브라질 등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이웃, 친척과 함께 즐기던 김치, 전, 훈제갈비와 샐러드, 살사소스와 와인까지. 그것이 오스틴 강 셰프가 생각한 한정식이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한식을 풀어가는 것이 큰 숙제가 된 이유이자,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그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요리에 반영하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그러던 중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본업도 잘하는 남자’로 출연해 안성재 셰프에게 들었던 코멘트는 셰프로서 걸어온 지난 여정을 되돌아보게 했다. ‘여러 국가의 콘셉트를 너무 강요한다’는 것. “안성재 셰프님도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다 보니, 제 입장을 잘 아셨을 거예요. 영어로 길게 대화를 나누고 나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더라고요. 너무 급하게 임팩트만 생각한 맛이었던 거죠. 사실은 방송 촬영 전 새로운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곱씹은 뒤 처음부터 새롭게 리브랜딩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묵정. 지난해 11월 중구 묵정동에 오픈했는데, 한국 발효음식에 서양식의 느낌을 가미한 퓨전 한식 레스토랑이다. 처음부터 다시 식당 준비를 하고 메뉴를 개발하는 동안, 그는 세 가지 질문을 머릿속에 품었다. 요리를 시작한 이유와 자신의 출신지,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두 가지였다. 건강한 식단의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통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가 수영, 수구 선수 출신이기도 하고 모델 일도 하다 보니 식단에 대해 많이 생각하거든요. 음식을 보면 열량과 탄수화물, 단백질 비중부터 살피고 나서, 이것이 소화가 잘 될 음식인지, 다음날엔 얼마나 부을지 생각해요.”

묵정의 캐주얼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오스틴 강 셰프.

항아리와 한지 조명으로 인테리어에 한국적 미감을 더했다.
마침 5년 전 후니 킴 셰프를 통해 한식 치유 공간 ‘오지나’의 백운 고문 가족과 인연을 가졌던 그였다. 당시 1년 동안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한식의 역사, 식재료의 농사법과 발효 과정은 물론 미생물과 유산균의 작용까지 공부했던 셰프는 김치, 멸치액젓, 홍삼 된장과 간장 등 한국의 발효 식재료들을 직접 담가가며 그 가능성을 봐왔다. 이를 활용해 메뉴로 개발할 당시 프렌치 식당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양식 조리법을 가미한 퓨전 요리를 선보이면서도, 한식에 대한 존중심을 담아 한국의 색을 더 살리기로 결정했다. ‘영양이 풍부하면서도, 많이 먹어도 불편하지 않은 요리’라는 키 테마는 자주 먹는데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소화되는 스태프 밀에서 힌트를 얻었다. 한국의 발효 음식에 낯설어하는 외국인 손님을 위해 향이 강한 음식의 맛을 조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과거 김치조차 먹기 힘들어했던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게 건강한 동시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스틴 강 셰프의 경험과 정체성이 녹아든 메뉴들이 탄생했다. 참나무를 통해 훈연한 비프 립 요리나, 오겹살 메뉴도 그 일부. 훈연할 때 자주 쓰이는 미국의 사과나무 대신, 한국 참나무를 사용한 것도 의도한 바다.

묵정의 비프립 요리. 찹쌀고추장소스에 마리네이드한 립을 2~3일 숙성시키고 참나무에 4시간가량 훈제한다.

묵정의 2층 공간.

웰컴 드링크로 제공되는 콤부차.
묵정은 식당이 위치한 묵정동의 어원인 ‘검은 우물’에서 모티브를 따서 만든 공간이다. 1층엔 우물을 형상화한 공간이 있고, 웰컴 드링크 콤부차는 청정한 물을 의미하는 동시에 발효 음료라는 점에서 묵정의 아이덴티티를 잘 나타내기도 한다. ‘아이덴티티’라는 단어는 그와 대화하는 동안 반복해서 등장했다. 묵정을 오픈한 지 이제 약 3개월이 지난 시점, 오스틴 강 셰프는 그와 자신이 만든 요리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까지 찾았을까? “실마리는 조금 찾았지만, 아직은 더 많이 찾아야 해요. 그래도 제가 지금까지 한 것 중 제일 재미있어요.” <마스터 셰프 코리아 4>로 대중 앞에 처음 등장해 9년이 흐른 지금, 앞으로 9년 뒤의 목표를 묻자 솔직하게 “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미소 지으며 말한 그다. 실제로 오스틴 강 셰프는 자신이 개발한 메뉴의 소화도와, 건강적인 효능 등을 측정해보기 위해서 한동안 묵정의 요리만 먹고 철인 3종 경기까지 직접 뛰었다고 한다. 그는 이 정도로 ‘본업’에 진심이다.

묵정의 빙수. 발효한 유기농 흑설탕 얼음에 직접 만든 연유를 올린 것이 특징.

오스틴 강 셰프.

요리를 훈연할 때 쓰이는 참나무 장작과 오븐.

묵정의 내부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