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의 바람과 햇살, 바다와 땅으로 차려낸 자연의 한 끼.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빚어낸 테이블포포
김성운 셰프의 식탁.

알을 가득 머금은 여름철 성게 요리. 태안의 해녀들이 채취한 활성게 위에 직접 재배한 아말피 레몬 소르베를 얹었다.
지난 2월, 2014년 오픈 이래 굳건하게 서래마을의 자리를 지켜오던 테이블포포가 한남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단순한 주소지 이전 이상의 변화였다. 기존 공간이 어두운 돌 재질의 벽과 은은한 조명으로 안정적인 분위기를 냈다면, 새로운 공간은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밝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상반되는 분위기를 갖췄다. 접시와 커틀러리는 모두 김성운 셰프의 취향과 감각을 반영해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것으로 채워졌다. 바뀐 것은 인테리어만이 아니다. 서래마을 시절 중장년층 고객에 맞춰 다소 전통적인 구성을 선보인 메뉴는 한남동이라는 지역 특성에 맞춰 좀 더 젊고 경쾌하게 바뀌었다. “여전히 방문하는 단골 손님들도 계시지만, 전체적으로 손님 연령대가 열 살 이상은 더 어려졌어요. 자연스럽게 요리도 젊어질 수밖에 없었죠.”

테이블포포 매장 전경.

레스토랑을 지휘하는 김성운 셰프.
여름 시즌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는 태안산 성게. 동해 성게에 비해 세 배 이상 큰 태안 성게는 김성운 셰프가 직접 고향인 태안의 해녀들에게서 공수하는 대표 식재료다. 성게 외에도 태안산 낙지와 문어, 흰다리새우, 보리새우 등 다양한 제철 해산물이 메뉴에 오르내린다. 김성운 셰프의 요리는 태안에서 시작된다. 테이블포포는 태안에 위치한 1만 평(약 3만3100㎡) 규모의 포포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사용하는 팜투테이블 방식을 지향한다.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 유대 관계를 쌓으며, 식재료를 수급받기도 한다. “태안은 논과 바다, 육지와 갯벌이 지중해처럼 잘 융합된 곳이에요. 흙도 모두 황토로 구성되어 있어 농작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기도 하고요.” 태안의 황토에서 자란 마늘과 생강, 갯벌에서 잡은 낙지와 조개류, 농장에서 길러낸 채소 등 식재료 하나하나에는 땅과 바다, 그리고 시간을 들인 정성이 스며 있다. 하지만 그에게 태안은 단순한 식재료 공급지가 아니다. 가족이 직접 농사를 짓고, 어릴 적부터 자란 고향이며,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다. “병원을 가고, 약을 처방받는 것만이 치유는 아니잖아요. 저는 고향을 찾고, 동료 셰프나 손님들이 태안의 식재료에 감탄할 때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에요.” 김성운 셰프는 현재 태안군에 천연 해양치유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태안해양치유센터를 준비 중이다. 고향에 대한 사랑이 그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다.

테이블포포 이름처럼 매장을 채운 ‘4인용 테이블’.

태안의 포포 농장에서 기른 건강한 식재료.

제철 문어를 활용한 문어 요리. 구운 파프리카에는 문어 머리, 감자, 버섯과 라구 소스를 스터핑했다.
유러피안 퀴진을 기반으로 한 테이블포포의 요리는 일관되게 계절성과 정직함을 강조한다. 2018년 첫 미쉐린 스타를 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 영예를 유지해왔다는 점은 이를 명확히 입증한다. “사실 처음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만 해도 큰 목적 없이 시작했는데, 명예로운 상을 받고 나니 더 좋은 재료를 찾고, 손님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식당을 한남으로 이전한 것 또한 그 일념의 일환이다. 2002년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던 프렌치 레스토랑 ‘팔레 드 고몽’에서 처음 요리를 배운 순간부터 새로운 터전으로테이블포포의 자리를 옮긴 지금까지, 그의 관심사는 오직 요리에 있었다. “제가 원래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에요.” 새벽에 출근해 14시간 동안 근무하며 ‘생존’을 위한 배움의 시절을 지난 현재, 그의 과제는 주소지를 이전한 테이블포포 2.0을 잘 정착시켜 무탈하게 운영하는 것. 주방과 홀이 각각 다른 층에 있어 초반엔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다. 장기적인 목표를 묻자, 마치 오랜기간 생각해온 듯 주저 없이 답한 그였다. “고향에도 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마지막 목표예요. 이런 도심이 아닌 자연을 보면서 식사할 수 있는, 프랑스 라귀올에 있는 미셸 브라 셰프의 레스토랑 같은 곳이요.” 테이플포포는 말 그대로 ‘4인용 식탁’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네 식구가 모여 식사하던 화목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회상하고, 이를 구현하고자 붙인 이름이다. 고향과 가족, 그리고 요리에 대한 애정으로 차려낸 그의 요리가 단순히 식사를 넘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경험을 선사해주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태안의 동백오일과 유자 드레싱을 곁들인 새우 요리. 새우 속은 직접 재배한 쌀과 토마토, 양파 피클, 펜네를 채워넣은 뒤 캐비아와 태안산 허브로 마무리했다.

송화염, 동백 오일, 아말피 레몬, 곱창돌김 등 태안의 식재료는 모두 테이블포포 요리의 재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