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딸의 집과 부모님의 한국적인 집이 위아래로 머무는 곳. 건물 전체를 내 집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세입자를 배려한 넉넉한 마음이 엿보이는 조은사랑채를 찾았다.
↑ 묵직하고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동숭동 조은사랑채. 두껍고 무거운 문이 내부를 더욱 아늑하게 만든다. 조은사랑채는 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
↑ 큐레이터인 딸의 방. 창가에 모듈형 소파를 두어 배치가 자유롭다. 쿠션은 직접 천을 떼서 만든 것.
↑ 나무 패널을 켜켜이 쌓아 벽처럼 만든 작업실 쪽 화장실. 문을 닫으면 옷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로구와 성북구를 가르는 낙산의 풍경과 복닥거리는 도시의 대조적인 이미지가 공존하는 대학로. 여러 번 이곳을 지나다녔지만 주택가가 있을 줄은 몰랐다. 바로 뒤에 낙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아래로는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동숭동 언덕에 위치한 조은사랑채를 만났을 때 생경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조은사랑채는 총 4개 층의 다세대주택이다. 공동주택으로 불리길 원하는 이곳은 밖에서 보면 한 가족이 사는 집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건축주인 가족은 3층과 4층에 살고 있고, 나머지 층은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게 총 8가구가 보금자리를 꾸린 하얀 집이다.
2010년 파리에서 열렸던 이상 탄생 100주년 전시에서 큐레이터와 작가의 관계로 연을 맺은 건축주와 건축가 박창현 소장은 뜻이 잘 맞았기에 이런 건물 즉, 건물 전체를 내 집처럼 생각할 수 있는 주택을 지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건물이라 하면 건물 전체를 내 집처럼 생각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30년 정도 이 자리에 있던 단독주택에서 살았어요. 집이 낡아서 이왕 다시 짓는 김에 우리 가족도 살고 다른 가족도 임대 형태로 들어와 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렸죠. 에이라운드 박창현 소장님과 공동주택에 관한 뜻이 맞았어요. 몇 년 계약하고 살다가 나가버리는 일반적인 다세대주택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었죠.” 삭막한 빌라 입구와는 다르게 이곳은 육중한 회전 출입문이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분리해주어 안쪽 공간이 더욱 아늑하다.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고 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건물 내부의 느낌이 달라지는 내부 공간도 인상적이었다. 현관문 앞의 공간을 자신들이 좋아하는 식물이나 자전거 등으로 소박하게 꾸밀 수 있다는 점 역시 그랬다.
↑ 자유로운 분위기가 돋보이는 딸의 작업실 공간. 철제 책장에 꽂혀 있는 책과 CD가 멋스럽다. 디자인 의자로 포인트를 준 공간.
↑ 1 주황색 바체어가 놓인 딸의 주방 공간. 주방 옆쪽은 좌식형 거실이 있다. 2 딸의 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식 욕실. 작은 테라스에 식물을 옹기종기 디스플레이해 이색적인 욕실 공간이 됐다.
프라이빗 룸 Private Room으로 표시된 3층과 4층은 큐레이터인 딸과 부모님이 사는 공간이다. 딸의 공간은 현관문에 섰을 때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뉜다. 오른쪽은 작업 공간으로, ㄴ자로 낸 창문에는 낙산이 그림처럼 걸려 있다. 예전부터 사용하던 널찍한 테이블과 벤치, CD와 책이 빼곡히 꽂힌 철제 책장을 놓았고, 모듈형으로 이리저리 맞추면서 사용할 수 있는 소파 위는 동대문에서 원단을 떼어다가 만든 쿠션과 방석으로 장식했다. 운치가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작업 공간이다. 반대편은 온전히 생활을 위한 공간이다. 작은 주방과 좌식 코너, 그리고 이 집의 백미인 욕실이 있다. 작업 공간 쪽과 주거 공간의 욕실 모두 독특하다. 작업 공간 쪽 욕실은 나무를 켜켜이 쌓아 벽을 만들어 문을 닫아두면 옷장이나 또 다른 방으로 착각할 법하고, 주거 공간 쪽 욕실은 데크를 깔고 하얀색 욕조를 두어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건식 욕실로 완성했다. 데크에는 크고 작은 식물 화분을 둬 욕실이라기보단 예쁜 파우더룸처럼 보인다. 건물 입구의 문고리처럼 욕실 문고리도 가죽 마감인 이유가 궁금했다. “보이는 대로의 느낌이 있어요. 철은 차가운 느낌, 가죽은 따뜻한 느낌처럼요. 만졌을 때 느껴지는 촉각에 더 신경을 쓰고 싶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이요. 손에 닿는 가죽 문고리의 느낌이 집에 대한 인상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처럼 조은사랑채는 디테일 하나까지도 내가 사는 집이라는 느낌을 준다.
↑ 1 어머니가 취미로 만드는 한국 전통 목가구와 즐겨 켜시는 가야금. 2 한식 스타일로 꾸민 부모님의 침실.
↑ 좌식 생활을 즐기는 가족이지만 주방만큼은 서구식 가구를 두었다. 실내에도 식물이 빠지지 않는다.
↑ 부모님 집의 현관문을 열면 집 가운데에 놓인 중정이 보인다. 사계절 내내 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3층의 부모님 집은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현관문을 열면 유리로 마감한 작은 중정을 통해 보이는 낙산의 풍경에 먼저 감탄하게 된다. 가야금을 켜고, 한국 전통 목가구를 취미로 배우고 있는 어머니의 취향을 반영한 듯 부모님 집은 한국적인 요소를 반영했다. 특히 부부 침실은 한식 바닥과 천장, 창호지를 바른 격자문 등 모던하고 자유로운 스타일인 딸의 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침실 앞에는 작은 소파를 두어 응접 공간을 만들었고, 좌식 생활을 즐기는 부모님을 위해 거실에는 가구를 두지 않았다. 대신 부엌 쪽 식탁과 주방 가구 등은 요리를 하기에 편리한 서구식이다. 집 안의 중심인 중정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어머니가 직접 만든 작은 가구들의 그림자가 어우러져 고즈넉한 집. 이전의 단독주택에 비해 내부 면적이 좁아져서 수납 문제 때문에 조금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부모님도 새로운 집에 점점 적응을 하고 계신다고. 중정에는 직사각형 작은 연못을 만들어 수생식물도 기르는 재미도 있다. 함께 사는 이들을 배려한 공동주택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집이 되었다. 획일적인 다세대주택의 모습에서 벗어나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공동주택을 꿈꿨던 건축가와 이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건물주의 만남은 이처럼 성공적이었다.
에디터 신진수│포토그래퍼 박상국│ 설계 및 시공 에이라운드 www.aroundarchitec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