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zon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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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야생을 만날 수 있는 미국 서부 지역은 언제나 모험가들에게 매혹적인 여행지였다. 다른 한편으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소노라 Sonora 사막과 피닉스 주변의 매혹적인 붉은 협곡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건축물을 짓고 싶은 건축가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모험가들이 세대를 이어 방문하는 이곳에서, 전설적인 고속도로 ‘로드 66’를 타면 멋진 건축물 투어를 경험할 수 있다.



시멘트로 지은 원추형 천막집이 있는 위그왐 빌리지 모텔 Wigwam Village Motel. 이 모텔은 로드 66의 상징 중 하나다.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이 미국의 ‘어머니 길’이라고 부른 로드 66는 동부 해안과 서부를 잇는다. 모텔에 주차되어 있는 아름다운 빈티지 카는 모텔 주인의 것으로 서부 영화의 나라, 미국에서 로드 무비를 찍기 위해 대기 중이다.

여행자들은 무엇 때문에 미국 남서부 아리조나 주까지 먼 길을 찾아오는 걸까? 이 지역의 86% 땅이 처녀지이고, 1년에 300일이나 해가 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급격한 인구 증가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아리조나 주의 수도인 피닉스 시와 그 주변은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대도시가 되었다. 피닉스 주변의 자연 풍경은 신비로울 만큼 아름답다. 무질서한 자갈밭에 거대한 변경주 선인장이 솟아나고, 돌투성이 사막에서 자라는 독특한 식물 오코틸로 Ocotillo 다발과 키 작은 관목 메스키트 Mesquite 덤불이 푸르름을 더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광활한 ‘건축물 놀이터’로 만들어 끝없는 과시욕을 드러낸다. 극한의 환경 속에 세워진 대담하고 놀라운 건축물은 유토피아적이면서 생태학적인 비전을 담아내며 이 지역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건축가들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박물관, 재단, 도서관 등의 건축물을 이곳 기후에 최적화된 걸작으로 만들었다.
사막에 지은 엘스워스 레지던스 Ellsworth Residence로 유명해진 ‘무중력 전도사’ 마이클 P. 존슨부터 바튼 바 라이브러리 Barton Barr Library에서 빛의 마술을 보여준 윌 브루더까지 이 지역의 스타 건축가들은 그들의 선구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흔적을 좇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사우스 웨스트 모던 South West Modern 스타일은 오가닉한 건축물에서 비롯된다. ‘사막의 자연 속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짓기 위해 정제된’ 건축물을 짓는 것이다. 이런 기조에 따라 그들의 건축물은 키가 작고 땅 위에 가볍게 내려앉는다. 그리고 투명한 창과 벽을 통해 바깥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인다. 잘 구획된 이 ‘도시 실험실’의 마지막 집들을 지나치면 갑자기 텅 빈 사막과 마주한다. 사막 너머 북쪽에는 경이로운 광물의 풍경이 펼쳐진다. 불그스름한 적철광 절벽과 석회암 봉우리들이 솟아난 협곡이 현기증을 일으킨다. 협곡 아래에는 거친 물살이 흐른다. 할리우드 서부 영화의 배경이 된 이 모든 풍경을 보고 생태 운동가와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자연에 대한 찬가를 노래한다. 아리조나의 또 다른 도시 세도나 Sedona에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시를 둘러싼 가파른 붉은색 바위에 대지의 에너지가 집중된 소용돌이인 보텍스 Vortex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협곡 곳곳에는 인디언 부족에게서 의식과 비법을 이어받은 스파와 자연 치유 세미나가 성행하고 있다. 이 지역에 오래전 살았던 인디언 부족들은 주변에 신비로운 주거지를 조성했다. 그들은 처녀지를 과수원으로 바꿔주는 ‘천둥새’의 보호를 받으며 이미 오가닉한 이곳을 최대한 자연 요소에 가깝게 정비했다. 그 후 침략자 무리가 연이어 이곳을 정복했다. 정복자를 뜻하는 콘키스타도르 Conquistador로 불렸던 에스파냐인들은 16세기 초 멕시코와 페루 등을 침략했다. 이를 시작으로 멕시코 군대, 이주한 개척자들 특히 몰몬교도들, 카우보이와 호전적인 보안관들 그리고 미국 서부 지방으로 떠나는 둔중한 열차까지 침략은 이어졌고, 인디언들은 거주 지정 지역으로 이송됐다. 시대적으로 마지막에 이곳을 침략한 정복자들은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전설적인 고속도로 로드 66를 통과했다. 로드 66는 빛의 화가로 불리는 제임스 터렐의 전설적인 아트 프로젝트로 유명한 로든 크레이터 Roden Crater 근처의 화산암을 지나 베르드 밸리 Verde Valley의 유령 도시까지 이어진다. 이 거친 야생의 땅에서 최첨단 기술과 자연보호자들의 놀라운 동맹이 맺어지면서 사막은 다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샤펠 오브 더 홀리 크로스(1956년)’는 마가렛 브런스윅 트라우드가 프랭크의 아들인 로이드 라이트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불그스름한 적철광 절벽 사이에 거대한 시멘트 십자가를 매단 모습이 굉장하다. ‘에너지 볼텍스’가 있는 이곳은 여전히 신비로운 뉴에이지 추종자들이 자주 찾는다. 이 성당에서는 경이롭고 영적이면서 물리적인 광경을 보러 온 사람들을 모두 맞이한다.



유토피아적인 친환경 도시 아르코산티 Arcosanti의 웅장한 공동 카페 건물. 높은 아치에 매달린 종은 브론즈와 세라믹으로 만든 것으로 이 마을의 주요 생산품이다. 이 마을은 완전환경계획 도시 Arcology의 ‘그루’ 건축가 파올로 솔레리가 1970년부터 아주아 프리아 리버 Azua Fria River 상류에 짓기 시작해 여전히 건설 중이다.



맥도웰 레인지 MacDowell Range 아래 콩과 식물인 팰로버디 Palo Verde로 둘러싸인 아라비안 라이브러리 Arabian Library. 코르텐강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리처드 세라에 대한 오마주로 ‘토털 그린’ 인증을 받았다. 건축가는 피닉스 주변에 도서관을 많이 지은 리처드+바우어 Richard+Bauer.



학생들이 많이 사는 피닉스의 템피 Tempe에 지은 넬슨 파인 아트 센터 Nelson Fine Arts Center. 건축가 앙투안 프레독은 사막의 황갈색 톤과 조화를 이루면서 시멘트 블록을 지어 올렸다. 건축가는 마야 신전에서 영감을 얻어 여러 개의 볼륨을 뒤섞어 미로처럼 구성했다.



‘남서부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 마이클 P. 존슨이 서그와루 Saguaro 선인장이 자라는 케이브 크릭 Cave Creek의 건조한 언덕 위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지었다. 건축가는 태양의 이동 경로를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간을 곡선으로 배치했다.

제임스 터렐의 하늘이 보이는 컨셉추얼한 공간 시리즈 ‘스카이 스페이스 Sky Spaces’ 중 하나인 ‘에어 어페어런트 Air Apparent’. 컬러 조명에 의해 빛에 대한 자각을 왜곡시키는 이 작품은 크리스티 텐 에이크가 조경을 디자인한 대학 캠퍼스 정원에 있는 윌 브루더의 메탈 구조물 위에 떠 있다.


건축가 윌 브루더는 바튼 바 라이브러리의 넓은 강의실에 천창을 설치했다. 그리고 햇빛을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해 플루트처럼 생긴 기둥 위에 광학렌즈를 달았다. 하지가 되면 기둥이 촛불처럼 공간을 밝힌다.


베르디 리버 Verde River가에 있는 굴곡진 절벽의 그늘 아래 아도브 벽돌로 지어진 몬테주마 캐슬 Montezuma Castle. 1425년 시나구아 Sinagua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이 살았던 최초의 ‘건물’이다. 다섯 개의 층에 90개의 방이 실내 계단으로 이어지며 작은 창이 열기를 막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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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상 르루 Vincent Leroux/Temps Machine

키티버니포니가 지은 집

키티버니포니가 지은 집

키티버니포니가 지은 집

키티버니포니의 사옥 겸 쇼룸인 메종 키티버니포니의 초대를 받았다. 괜히 ‘메종’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은 아니었다. 국내 디자인 브랜드의 저력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이곳은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


1 단독주택을 완전히 리뉴얼 한 메종 키티버니포니. 2 내부 벽은 나무로, 바닥은 돌로 마감한 별장 같은 1층 쇼룸.


합정동 주택가 골목에서 단연 돋보이는 외관을 가진 ‘메종 키티버니포니’에는 키티버니포니의 사옥 겸 쇼룸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인 M.K.B.C 서점이 입점해 있다. 사옥 문을 열고 들어서니 8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연남동에 키티버니포니의 사무실이 처음 오픈했을 때, 작지만 감각적인 공간을 보며 브랜드의 미래를 기대했었다. 시간이 지나 키티버니포니는 꾸준히 성장했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됐다. 키티버니포니의 김진진 대표는 블랙 마니아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각종 잡지와 인테리어 단행본에서 그녀의 집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심미안을 지니고 있다. 성격은 정반대지만 키티버니포니에 누구보다도 애정을 갖고 있는 마케팅 담당 이홍안 실장과의 호흡도 브랜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사옥을 지으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장소와 공간을 알아보는 것도 힘들었고, 사무실과 쇼룸을 어떤 식으로 공유해야 할지 등 매 순간이 결정의 연속이었죠.” 키티버니포니는 고민 끝에 상수동 쇼룸 작업을 함께했던 사이건축에게 외관과 전체적인 골격을 맡겼고 인테리어는 플랏엠에 의뢰했다. “건축과 인테리어라는 다른 분야에서 두 업체가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두 업체에 조심스럽게 협업에 대해 여쭤봤어요. 다행히 흔쾌하게 맡아주셨죠. 사이건축 특유의 담백한 건축으로 기존 단독주택을 리뉴얼했고 마당 쪽에 하나의 건물을 증축해서 사무실과 서점으로 활용하기로 했어요. 인테리어는 플랏엠에서 진행했는데 쇼룸의 특성을 살린 제작 가구와 디자인 가구의 조화, 세련된 마감 등 플랏엠만의 군더더기 없고 실용적인 인테리어가 녹아 있어요.” 2개 층으로 사용하고 있는 쇼룸 1층은 들어서는 순간 1970년대 미국 별장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이고 독특한 인상을 풍긴다. 천장과 벽을 온통 나무 패널로 마감했고 플랏엠에서 디자인하고 키티버니포니의 원단으로 커버링한 파란색, 녹색의 동글동글한 소파가 시선을 끈다. 2층에는 리버티 원단으로 제작한 블랭킷을 비롯한 아이들을 위한 키즈 아이템 코너도 마련해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볼 수 있었던 대부분의 제품을 둘러보기에 최적화된 쇼룸이다. “메종 키티버니포니라는 이름을 붙인 데에는 키티버니포니의 제품을 집에 적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상품을 진열하고 구입하는 장소라기보다는 마치 누군가의 집에 와서 구경도 하고 프리츠 한센의 의자나 USM 유닛 같은 디자인 가구도 보면서 눈이 즐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맞은편 건물에는 사무실과 서점인 M.K.B.C가 입점해 있다. M.K.B.C는 메종 키티버니포니 북 스토어&카페의 약자로 키티버니포의 예민한 눈으로 고른 비주얼 아트 북을 엄선해 소개하는데, 일단 들어서면 책마다 꼼꼼하게 소개를 적어둔 아트 북에 마음을 뺏길 것이다. 제품 디자인부터 로고나 라벨 하나까지도 정성 들여 준비한 키티버니포니는 카피 제품이 난무하는 국내 디자인 업계에서 그들만의 특별한 디자인과 정체성 그리고 높은 품질로 인정받아왔다. 메종 키티버니포니의 작은 나무 간판 아래에는 ‘since 1994’란 문구가 적혀 있다. 1994년은 자수공장을 이끌어온 김진진 대표의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한 해다. 메종 키티버니포니를 오픈하면서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거듭난 키티버니포니에게 ‘since 1994’란 문구는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그들의 미래를 짐작케 하는 일종의 징표다.




1 볕이 잘 드는 2층 쇼룸에는 키티버니포니의 침구류를 디스플레이했다. 2 플랏엠에서 제작한 실용적인 가구와 키티버니포니의 소소한 아이템이 어우러진 공간.



1
신축한 건물 1층에는 서점 M.K.B.C 서점이 자리 잡았다. 2 키티버니포니의 안목으로 고른 비주얼 아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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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키즈 존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블랭킷과 쿠션도 볼 수 있다. 2 1층 창가에 전시한 길종상가와 협업한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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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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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살 빌라의 멋진 변신

38살 빌라의 멋진 변신

38살 빌라의 멋진 변신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이 더해진 40평 남짓의 빌라. 과감한 벽 마감과 다채로운 공간 분할로 한층 풍요로워진 이 집은 도서관, 카페, 캠핑장이 부럽지 않은 재주 많은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1,3 햇살이 잘 드는 거실. 길게 드리워진 베란다 그림자 덕에 공간이 더욱 풍성해 보인다. 2 식물, 특히 선인장 가꾸기에 푹 빠진 집주인 문성진 씨.

한때 카페 같은 집이 유행이었다. 그러면서 커피숍에서 볼 법한 메뉴판을 주방 벽에 억지스럽게 달아놓고 위안을 삼았다. 갤러리 같은 집은 또 어떤가. 작품에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레일 조명을 형광등 대신 달아놓진 않았나. 상업 공간에서 보았던 멋진 것을 그대로 집 안에 옮겨놓다 보면 어설프고 불필요한 장식이 수반된다. 그렇다. 집과 가게는 엄연히 다르다. 용도가 정해진 상업 공간과 달리 집은 잠도 자고, 요리도 하고, 책도 보고, 가끔은 운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다변적이다. 카페 같은 집이 카페 같을 수 없는 이유다.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기 위해 무난하고 평범한 인테리어가 해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흰색 벽지로 무장한 그 심심한 공간에서 느끼지 못했던 어떤 특별한 감흥, 나를 감동케 하는 무엇을 집 안에 구현하고 싶다는 욕구에 우리는 응해야 하니까.


20여 년 전, 당시로서는 드물게 마당 있는 집을 레스토랑으로 고친 ‘올리바’를 오픈하고 그 후 여러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문성진 씨는 오랫동안 상 공간 인테리어를 구상해온 만큼 집 안에도 과감한 시도를 하는 데 비교적 열려 있었다. 특히 나이든 건물이 갖고 있는 매력을 찾아내는 안목의 소유자로 오래된 집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아파트에 살았던 그녀는 방배동에 38년 연식을 지닌 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을 찾아내고 이곳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거주와 전시장을 겸하는 하우스 갤러리처럼 집과 다른 프로그램이 결합된 구조로 계획했어요. 최근 우리나라에 조금씩 등장하고 있는 형태죠. 요즘 집을 공방처럼 사용하며 클래스를 운영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잖아요. 이 집도 다양한 클래스나 하우스 파티를 하기 적합한 곳으로 고려했죠.” 이 집의 인테리어를 맡은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의 임태희 소장이 설명했다.



1,2
거실과 이어지는 작은 응접실은 독일 빈티지 가구로 채워놓았다. 칠판 페인트를 칠한 슬라이딩 도어는 딸아이의 캔버스. 어느날 자고 일어나 보니 꽃을 그려놓았는데 아직 미완성이란다. 3 어둠침침했던 창고의 문을 뜯어내고 책장을 달아 작은 서가로 만들었다.

문성진 씨의 레스토랑 인테리어를 설계하며 2008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임 소장은 2년 전 건강 문제로 사업을 정리한 후 수제 비누와 향초, 쿠킹 클래스 등을 진행하는 라이프스타일 디렉터로 전향한 그녀를 위해 특별한 집을 계획했다. 먼저 40평 남짓한 공간을 여럿으로 나눴다. 거실은 긴 원목 테이블이 있는 메인 거실과 슬라이딩 도어로 여닫을 수 있는 작은 응접실로 나누고, 거실과 주방은 거울로 된 파티션을 사이에 놓아 필요에 따라 열고 닫으며 공간을 분리해서 쓸 수 있도록 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평수가 작아서 넓힐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어요. 주방은 기존 야외 복도였던 부분을 터서 집 안으로 들였고, 식물을 좋아하는 집주인의 취향을 고려해 거실에는 작은 베란다를 새로 만들었죠.” 최가철물점의 최홍규 관장이 만들어준 철제 베란다는 최근 식물 가꾸기에 빠진 문성진 씨의 취미 공간이 되었다. 사람이 간신히 서 있을 정도로 좁은 크기이지만 이 작은 베란다 하나가 더해지면서 집 안이 한층 다채로워진 것. 또 거실에 있던 기존 창고는 문을 터서 작은 서가로 만들고 메인 거실을 사무실이나 서재로 겸할 수 있도록 했다. 임태희 소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벽과 벽이 이루어내는 레이어다. 공간에 들어서면 벽 너머에 다른 공간이 보이고, 그 너머에 문과 창이 있어 공간에 한층 깊이감을 준다. 동선 또한 복잡하기 때문에 훨씬 풍부한 느낌이 든다. “레스토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동선이죠. 일하는 사람과 홀에 있는 사람이 부딪히면 안 되잖아요. 이 집도 그런 동선에 신경 썼어요. 거실을 통하지 않고도 주방에서 세탁실,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까지 일자로 연결될 수 있도록 뒤쪽에 통로를 내었는데 집안일을 할 때 아주 효율적이죠.” 집주인인 문성진 씨가 덧붙였다.



1,2 38년 동안 나무 루버에 갖혀 있던 벽돌을 살려 거칠게 마감한 것이 특징인 주방. 3 기존 야외 통로였던 곳을 확장하며 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철골로 지지대를 만들었고, 그 옆에는 맞춤 제작한 그릇장을 놓았다. 4 주방과 이어지는 방들. 각 방마다 방 주인의 생일을 적어놓은 점이 위트있다.

이 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바로 텍스처. 짙은 나무로 둘러싸인 기존 루바 벽을 떼어내고 나니 층층이 쌓인 벽돌이 맨살을 드러냈다. 이 부분을 벽지나 페인트로 깔끔하게 바르지 않고 벽돌의 거친 질감을 살려 벽을 마감한 것이다. 낮았던 천장은 시원하게 터서 3.5m 정도의 높이로 살리고 기존 천장이었던 부분을 암시하는 듯한 연출을 통해 재미를 더했다. 거실 한쪽 벽면은 회색 벽돌에 아무런 마감을 하지 않고 기존 천장까지만 흰색 페인트로 칠하고 또 그 선에 맞춰서 거울 파티션과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한 것. 4.5m의 거대한 아일랜드 식탁이 압도하는 주방 역시 위쪽 벽돌은 흰색 페인트로, 아래쪽은 벽돌 사이를 흰색 시멘트로 거칠게 메워 질감이 펼쳐내는 시각적인 재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오가닉한 요리를 만들 때 정말 아무런 조미료도 넣지 않으면 맛이 없어요. 설탕이나 소금을 쓰되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맛있고 풍부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죠. 그것처럼 이 집도 이 건물이 본래 갖고 있던 재료를 잘 쓰는 것이 숙제였어요.” 전문 셰프를 초청해 오가닉을 주제로 쿠킹 클래스를 열 계획이라는 문성진 씨는 이 집이 ‘오가닉 하우스’가 되기를 희망했고 다양한 질감으로 벽 마감을 하며 이러한 고민을 해결했다.


안방과 드레스룸, 고등학생 딸아이의 방은 클래스나 파티가 열릴 주방과 이어진다. 각각의 방문에는 호텔처럼 번호가 적혀 있는데 알고 보니 방 주인의 생일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가족들의 생일을 절대 잊을 수가 없는 데다 함부로 열면 안 될 호텔 방 같은 느낌이라 외부 사람이 왔을 때도 개인 공간을 지킬 수 있는 재치 있는 발상이 돋보였다. 원래 물탱크가 있던 자리에 작은 방을 만들고 한 켠에 조리대를 놓은 옥상은 야외 파티나 집에서의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문성진 씨의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볕이 잘 들어 책을 읽기도 좋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상공간과 주거 공간의 요소가 교묘히 겹쳐지며 여러 즐길 거리로 채워진 이 다재다능한 집은 누구라도 부러워 마지않을 그런 곳이었다. 

 

 

 



1 침대 위에 걸어놓은 사진은 비투프로젝트 대표의 작품. 흰색 리네로제 침대와 흑백사진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2 문성진 씨가 만든 수제 비누와 화장품. 3 현관으로 향하는 통로 역시 옛날 계단과 벽돌을 살리고 노출 콘크리트를 더해 거친 멋을 냈다. 4 다락방을 갖고 싶다는 딸아이의 바람을 고스란히 반영한 방.



1,3 물탱크가 있던 옥상에 작은 루프톱을 만들어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2 바비큐 파티로 캠핑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옥상. 잔뜩 심어놓은 꽃나무가 만개할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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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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