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엔 미술가의 인테리어 2

파리지엔 미술가의 인테리어 2

파리지엔 미술가의 인테리어 2

“대부분 빈티지 디자인 가구로 프랑스 가구 브랜드 로쉐 보보아 제품이 많습니다. 식탁 위에는 한국 작가 일란의 ‘일월오봉도’가 걸려 있고, 독일 에센에서 작업하는 도예가 이영재의 그릇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처음 파리에 올 때 고가구를 여러 개 가지고 왔을 만큼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어린 시절부터 컸어요.”

 

사디 소아미 그림 아래의 책상은 피에르 플랑의 1950년대 빈티지다. 책상 위 컬렉션 소품이 흥미로운데, 가장 왼쪽의 조각은 로렌스 파귄 Laurence Pagouin의 것이며, 그 옆에는 미셸 뒤포르 Michel Duport의 작품이다.

 

거실과 침실 등 모든 공간의 벽에 붙박이장을 만들어 수납을 최대화하는 것에 집중했다. 지금 리빙룸과 다이닝룸의 컬렉션 전시 테마는 ‘그린’ 컬러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컬렉션을 교체하는 것도 그녀의 즐거움이다. 소장하고 있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헝가리 작가 베러 몰너르 Vera Molnar의 것이다. 베러 몰너르는 이수경 작가와 함께 갤러리 오니리스의 전속으로 활동하는 99세의 여성 거장인데, 예술 작품에 최초로 컴퓨터를 사용한 미술가로 유명하다. 단순해 보이지만 기념비적인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무라노의 아름다운 글라스 컬렉션. 왼편의 작품은 카차 라그랑 Kacha Legrand의 화이트 조각.

 

최근에는 핀란드 사진 작가 산나 카니스토 Sanna Kannisto의 작품을 소장했다. 국립공원에 천막을 치고 하얀 배경에서 미장센을 만들어 새를 촬영하는 작가의 열정에 반했다. 그녀가 컬렉션하는 이유는 투자 가치와는 상관없이 작가의 작품에 매혹되었기 때문인데, 이 작가가 편애하는 작품들과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이수경 작가는 불문학을 전공하고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30세가 넘어 미술을 시작한 특별한 이력이 있다. 그녀는 대학원에 재학할 당시 첫 조교 월급으로 인사동에서 강아지 그림을 컬렉션했을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컸다. 이 그림은 파리 아파트 현관에 여전히 걸려 있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 소장 작품은 지금은 없어진 화랑에서 구입한 장욱진 화백의 판화다.

 

‘일월오봉도’ 아래에 놓인 도자기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도예가 이영재의 작품.

 

파리에서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회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회화는 미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개인이 바라보는 시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영향과 동시대가 가지고 있는 현상에 민감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 방법으로 직관적 표현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회화에는 문화적이거나 집단적인 상념이 들어 있진 않아요.”

 

현관에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이 그녀의 첫 번째 컬렉션 강아지 그림이다.

 

공간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도시와 환경을 바꾸어 작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파리 작업실에서의 작품 활동이 중심이고, 브뤼셀과 서울에서는 1년에 3개월 정도 머문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왕복 일곱 시간이 걸리지만, 같은 유럽이고 불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비슷한 점도 많다.

“유럽에서는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간혹 유럽 사람들이 내 작품의 색감이 한국적 감성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는 상당히 유럽적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흥미로워요(웃음).”

 

파리 작업실은 바뇰레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산업혁명 시대에 지어진 염색 공장이었기에 특유의 낭만이 있다. 오는 11월에 있을 판교 운중갤러리 개인전 준비에 한창이다.

 

그녀는 초기부터 추상 작업을 했다. 이는 지엽적이고 문화적인 굴레를 벗어나 일반적인 코드를 버린 자유로운 시각을 요구하는 추상의 본질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개념이나 선험적으로 계획한 것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이해를 통해 천천히 화폭에 행위가 쌓이고 지워지고 반복되면서 하나하나의 형태가 드러난다. 이런 행위는 오랜 기다림을 통해 나오며, 익숙한 제스처의 반복이 아니라 한순간의 직감으로 나오는 흔적들이다. 또한 관찰하며 변형시키는 행위에 또 다른 행위가 겹쳐지면서 예상치 않은 형태가 생성되기 시작한다. 그녀가 근래에 선보인 작업은 1000개의 ‘문패’ 연작이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대문 앞 문패를 오랜만에 서울에서 다시 보니, 문패에 이름이 새겨진 세대주가 아니라 문패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형상화하고 싶었던 것.

 

파리 작업실은 바뇰레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산업혁명 시대에 지어진 염색 공장이었기에 특유의 낭만이 있다. 오는 11월에 있을 판교 운중갤러리 개인전 준비에 한창이다.

 

“문패의 조형적 특성은 유럽 가문의 문장과 기호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DNA의 변형처럼 같은 규격 안에서 다양한 드로잉과 색이 조합을 이뤄요. 나무 위에 그리고, 오려내고, 칠하고, 붙이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문패’ 연작이 하나의 부조 작품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작품이 회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봅니다.” 오는 11월에는 판교 운중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리며, 내년에는 부산 어라운드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니 그녀를 다시 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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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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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a Math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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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엔 미술가의 인테리어 1

파리지엔 미술가의 인테리어 1

파리지엔 미술가의 인테리어 1

재불 미술가 이수경은 파리와 브뤼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한다. 그녀의 사적인 공간인 아파트와 작업실에서 파리지엔 미술가의 라이프스타일과 작품 세계를 살펴보자.

 

침실과 연결되는 거실 풍경. 이번에는 블루와 그린 컬러의 컬렉션 작품들을 걸었으며, 그녀의 집에 자신의 작품은 한 점도 없다는 것이 흥미롭다.

 

파리 20구의 작은 숲 맞은편에 이수경 작가의 아파트가 있다. 이 동네는 파리에서는 보기 드물게 푸른 숲이 있고, 갤러리가 많은 마레 지구까지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위치가 좋아서 매력적이다. 이수경 작가는 이 거리를 오가다 풍광에 반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다. 올해만 여덟 번의 전시를 선보였을 만큼 프랑스에서 가장 바쁜 작가이기도 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갤러리 오니리스 Galerie Oniris, 벨기에의 마르크 민자 갤러리 Marc Minjaw Gallery, 한국의 아트사이드를 비롯해 3개국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국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의 <문패 Munpei>, 아트사이드의 <침묵의 진동(Vibration of Silence)> 전시가 막을 내렸다.

 

왼쪽의 벽난로는 프로시안 스타일이며 여전히 작동 가능하다. 식탁 위에는 일란의 ‘일월오봉도’가 걸려 있다.

 

이수경 작가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파리, 브뤼셀, 서울의 세 곳에 작업실을 운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그녀의 유럽 작업실이 최소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 작업실은 바뇰레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이전에 염색 공장이었다고 한다. 벨기에 브뤼셀 화실은 200년 전 수의학 학교로 지어졌는데, 에펠 타워를 만든 에펠의 기술로 만든 만큼 지금은 벨기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태다. 이처럼 그녀는 전시가 있을 때마다 3개국의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하며, 또 다른 대륙으로 떠나는 모험도 즐긴다.

 

200여 년 전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진 아파트 외관. 길 건너에 작은 숲이 있어 전망도 아름답다.

 

이 작가의 파리 집 역시 오스만 양식의 200년 된 아파트 2층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에 만들어진 계단과 나무 바닥, 창문과 벽난로 등의 디테일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창밖으로 파리지앵들이 산책하는 오솔길이 보이며, 육중한 대문에서부터 200년 전부터 내려온 낭만이 전해지고 있다.

“작업실을 오가며 이 아름다운 거리를 유심히 보았는데, 아파트를 발견하게 되어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이 집에는 내가 수집한 미술과 공예 작품, 디자인 가구가 가득한데, 내 작품은 한 점도 없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내 작품은 작업실에 가서 보면 되기 때문에 굳이 집에 걸지 않았어요.”

 

거실에 걸린 사디 소아미 Saadi Souami 작가의 작품 앞에 앉은 이수경 작가의 모습.

 

약간의 리노베이션을 했지만 과거의 유산은 전혀 훼손하지 않았다. 특히 가끔씩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은 세월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는데, 지금은 이렇게 질 좋은 나무를 구하기 어려워서 그 가치가 더욱 높다고 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창밖 풍경이 아름다운 시원한 거실이 펼쳐진다. 왼쪽에는 다이닝룸, 오른쪽에는 리빙룸이 있다. 파리지엔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그녀의 집에서 유러피언 감성과 동양의 정서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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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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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a Math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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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스타일리스트의 집

리빙 스타일리스트의 집

리빙 스타일리스트의 집

공간 연출과 스타일링, 전시를 기획하는 뷰로 드 끌로디아와 공예가의 기물을 우리의 언어로 다시 만들어 소개하는 뷰로 파피에. 비슷한 듯 다른 이 두 브랜드를 이끄는 스타일리스트 문지윤은 새로운 둥지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아버지가 선물한 변호사의 책장. 문지윤 실장은 매일 이곳을 오가며 기물을 탐구하는 시간을 보낸다. 왼쪽을 채운 흑자 기물은 모두 소사요 김진완 작가의 작품.

 

2019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항상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프레임이나 미학적 의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의식은 물론 무의식 속에서조차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에 천착하는 스타일리스트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가족의 품을 떠나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리빙 스타일리스트 문지윤 실장도 그중 하나. 경기도 외곽에서 전원생활을 꿈꿨던 그가 강북 산자락의 85㎡ 남짓한 아파트에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강남에서 나고 자라 한평생을 살았어요. 작업실도 집과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15년 동안 논현역과 신사역 사이만 왔다 갔다 했죠. 주 생활 반경이 걸어서 20분 내였어요(웃음).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은 2~3년 전부터였던 것 같아요. 부모님 집이 아파트였던지라 자연과 가까운 곳에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인생의 챕터를 바꿔보고 싶었달까요. 주변에 집 짓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땅도 찾아봤어요. 그런데 막상 집을 짓는다는 게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동안의 시간에 대해 보상심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삶의 터전을 옮기자는 결심을 하자 스스로의 생활 전반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자연스레 주어졌다. 프랑스 유학 시절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혼자 살아본 적도 없는 데다 단순히 공간을 연출하고 꾸미는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 모든 과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차츰 받아들였다. 예상치 못했던 펜데믹 기간과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건축 자재비, 인건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단은 한번에 너무 많은 점프를 하지 말고 한 단계 한 단계씩 충분한 시간을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부엌 한쪽에 캐비닛을 배치해 자주 사용하는 기물들을 넣었다. 빈티지 바실리 체어는 프랑스에서 친구가 선물해준 것. 벽에 걸린 작품은 모두 고지영 작가의 작품.

 

먼저 강남이 아닌 곳을 찾아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아파트만큼은 피하고 싶어 독특한 형태의 주택부터 샅샅이 찾았다. 중개사를 따라 별 기대 없이 온 한 아파트에서 지난했던 여정이 잠시 멈췄다. 거실 창을 가득 메운 초록빛 나무와 숲, 전광판과 건물로 둘러싸여 있던 강남의 아파트에서는 단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머물다 갈 집이라는 생각에 구조는 크게 손대지 않았다. 벽지를 깔끔하게 바르고 문 손잡이를 바꾼 게 전부다. 직업의 특성상 얼마든지 쉽게 손볼 수 있었지만 부러 그대로 두었다. 늘 기호에 맞게 바꿔버리는 버릇을 집에서만큼은 내려놓고 싶었다.

“이전에는 이렇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 일을 하다 보니 직업병이 생겼어요. 무언가 시각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계속 신경이 가는 거죠. 한번은 식당에 갔는데 무의식적으로 선반 위치를 바꾸고 기물을 재배치하고 있더라고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거나, 새로 바꾸는 것에 몸이 빠르게 반응하는데 주어진 공간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움을 찾는 능력이 퇴화된 것 같았어요.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떡하지? 천장을 막아버릴까? 싱크대 문짝을 바꿔버릴까? 계속 전전긍긍했어요. 막상 공간이 생겼지만 그 안에서 물건을 이용해 저만의 공간을 꾸미는 경험은 없었던 거죠.”

 

다양한 작가들의 차 도구를 보관해둔 장.

 

이사하면서 새로 구매한 것이라곤 가전과 제작한 침대가 전부다. 그 외에는 모두 작업실과 집에서 사용하던 가구와 소품을 그대로 옮겨와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새집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지 않은 공간이 만들어진 이유. 집에 놀러 온 지인들로부터 여기서 몇 년을 산 사람 같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다. 먼저 거실에는 다이닝 겸 업무를 볼 수 있는 긴 테이블과 의자, 데이베드, 캐비닛 등을 배치했다.

“현장 작업을 위해 만들었던 것이 대부분이지만 언젠가는 제 공간에서 쓸 생각으로 디자인해왔어요. 거실에 배치한 가구는 의자를 제외하고 모두 제작한 거예요. 가구 제작 관련 일을 하는 동생 덕분에 원하는 수종과 느낌으로 어렵지 않게 제작할 수 있었어요.” 테이블 앞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비가 눈에 띄는데, 평소 따스하고 자연스러운 소리의 연주나 보컬을 좋아하는 문지윤 실장의 취향을 잘 아는 친구가 구성해준 것. 독일 그룬딕 사의 빈티지 튜너와 앰프, 턴테이블, 프로악 사의 북셸프 스피커 등을 추천받아 배치하고, 별도로 소장하고 있던 케프 사의 R5 톨보이 스피커 등을 가져와 함께 두었다.

 

돌인지, 쇠인지, 철인지 모를 물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소사요 김진완 작가의 무유 흑자 기물들.

 

안방이라 할 수 있는 가장 큰 방은 다양한 소품과 기물로 채운 분더캄머를 방불케 한다. 한쪽 벽면에는 30년 넘게 가구 사업을 하신 아버지가 선물한 변호사의 책장(Lawyers Bookcase, 유리문으로 여닫을 수 있는 디자인)을 배치한 뒤 여러 작가의 작품과 책, 소품을 올렸다. 매일 이곳을 오가며 기물의 형태와 색, 비례를 자연스럽게 탐구하는 시간을 보낸다.

“방 한가운데 검은 원탁을 두고 차실로 생각하고 있어요. 다양한 소지와 유약을 입은 차 도구도 수집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곁에 두고 틈틈이 써보면서 찻자리의 자유로운 운동을 즐기고자 해요. 새로운 기물을 개발하고 전시, 연출, 판매 기획을 할 때도 직접 매일 만져보고 사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어요. 대신 작품이나 기물이 일상을 압도하거나 모시듯 살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죠. 단정하고 다정하게 생활을 북돋우는 사물과 함께 지내는 곳이 저의 집이길 바라는 것처럼요. 이사하면서 불필요한 가구나 집을 꾸미기 위해 새 제품을 들이지 않고, 최대한 가지고 있던 것들의 자리를 찾아주고자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에요.”

 

창 너머로 푸른 숲이 펼쳐지는 거실 모습. 하루종일 볕이 따스하게 들어온다.

 

 

늘 수많은 물건과 소품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는 스타일리스트라도 유독 좋아하는 기물이 하나씩은 있다. 문지윤 실장에게는 차 도구를 비롯한 도자 그릇이 대표적.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소사요 김진완 작가의 기물만큼 그의 마음을 동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 늘 스스로를 절차탁마하는 작가의 심성을 비롯, 흑자 차 도구가 지닌 단단한 생김새에 한눈에 반해버린 뒤 기물의 설계와 쓰임을 알고 싶어 차를 본격적으로 공부했을 정도다. 지식을 훑고 습득하기보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고자 자세를 갖춰 발을 내딛는 의미에 더 가까웠다고 말하는 그. 집 안 곳곳에 걸려 있는 고지영 작가의 크고 작은 회화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품고 싶은 마음의 결과다.

 

바닥에 놓인 달항아리와 매병은 모두 소사요 김진완 작가, 도자 소반은 윤세호 작가, 매병 뒤에 놓인 그림은 고지영 작가, 벽에 걸린 그림은 김승규 작가의 작품.

 

“일과 삶의 괴리가 있었던 시기가 있어요. 밖에서는 항상 아름답고 좋은 기물을 다루는데, 막상 제 삶이 너무 바쁘니 주변을 돌보지 못했던 거죠. 그런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제가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점점 가짜 같고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마음이 가는 것들에 더 집중하고 줄여 나갔어요. 그제서야 좋아하는 것들이 점차 선명해진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으로 채운 새 공간에서 아침을 맞이한 지도 이제 한 달. 그는 창 너머 불어오는 바람과 들려오는 소리처럼 아주 작은 것이 일상의 단면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언젠가 자신을 꼭 닮은 집을 짓겠다는 목표의 마침표를 찍게 될 긴 여정의 서막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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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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