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베를린을 편애하는 이유는 뭘까? 미술가 레이코 이케무라와 건축가 필립 폰 마트 부부가 마음의 평안을 얻는 베를린의 안식처를 소개한다.

작업실과 거주 공간을 함깨 갖춘 레이코 이케무라의 아틀리에 하우스 1층. © PhvM, Photo- Anita Back

그녀의 예술적 영감은 아틀리에 하우스에서 나온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 Leiko Ikemura & PhvM, Photo- Anita Back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레이코 이케무라. © Robert Schittko
미술가 레이코 이케무라 Leiko Ikemura의 베를린 집은 그녀의 작품을 닮았다. 이 곳은 작품을 만들고 전시의 영감을 떠올리는 작가의 아틀리에 하우스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작가는 30년 전 베를린미술대학 교수로 임명되면서 베를린에 왔다. 알려져 있다시피 베를린은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역동적인 도시다. 전쟁과 통일을 경험한 베를린의 에너지는 예술가의 창의력을 북돋우고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레이코 이케무라는 남편이자 건축가인 필립 폰 마트 Philipp Von Matt가 설계한 이 집에서 2016년부터 살고 있다. “얼마 전 대전 헤레디움 미술관에서 열린 나의 전시 <수평선 위의 빛 Light on the Horizon>가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전시이기 때문에 의미가 깊었어요. 작품 세계의 중요한 모티브인 ‘수평선’을 주제로 대표작을 보여주었으며, 평원을 염원하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전시로 인해 한국 미술 애호가들과 만날 수 있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또한 100년 전,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헤레디움 건물의 역사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희망을 주려는 작가적 태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작업실에서 정원을 바라보는 레이코 이케무라. © Leiko Ikemura & PhvM, photo- artitious.com
레이코 이케무라는 전시를 위해 남편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미술 공부를 했고, 스위스에서 작가 활동을 시작해 독일에서 살고 있는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다. 남편 또한 스위스 출신이니, 이러한 국제적 배경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의 아틀리에 하우스에도 이러한 특징을 잘 찾아볼 수 있다. “1층에 6m 높이의 작업실이 있고, 2층에는 거주 공간이 있어요. 예술과 건축에 대한 우리 부부의 창조적 관심은 이상적 아틀리에 하우스를 만드는 것을 넘어 건축적 가치가 있는 공간을 완성하자는 것에 의견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예술과 삶의 조화는 우리의 아틀리에 하우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요. 일본 교토 전통 스타일의 작은 정원은 작업실 중심입니다. 사무실과 서재, 필립의 작업실과 거실은 위층에 있어요. 공간마다 빛과 구성이 적절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였고, 각 방은 분리되어 있지만 한편으론 연결되어 있기도 하지요.”

건축가 필립 폰 마트의 설계 스케치.

아름다운 나선형 계단. © PhvM, Photo- Anita Back

© PhvM, Photo- Anita Back

햇살이 잘 비추는 거실. © PhvM photo Anita Back
레이코는 이 아틀리에 하우스의 모든 곳을 예찬한다. 공간마다 고유한 특징과 특별한 빛, 그림자가 있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곳을 하나만 꼽을 수 없다. “이전의 집은 작업실과 거실이 멀리 떨어져 있고, 필립의 작업실도 분리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필립은 이 아틀리에 하우스를 새롭게 설계하면서 일하는 것과 사는 것, 내부와 외부 세계 사이의 연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작업에만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 어시스턴트가 작품을 관리하는 아카이브를 집 외부에 운영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작품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미술가에게는 아카이브가 중요합니다.”

색깔이 환상적인 그녀의 회화 작품 ‘Face in blue’. © Jochen Littkemann
부부의 생활 공간에서는 그녀의 작품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흥미롭다.
레이코는 자신의 작품은 작업실과 아카이브에만 두고 있으며, 독일 사진가 칸디다 회퍼의 작품 등 몇몇 동료의 작품을 생활 공간에 설치했다. 헤레디움 전시에서 인상적인 작품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수평선 그림, 기도하는 토끼 조각, 소녀 조각, 산수화 연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새로운 예술적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유리와 같은 다양한 재료로 여러 주제를 실험하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추상화를 작업 중이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생물을 관찰하고 광활한 자연을 경험하며,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바다에서 위로를 받곤 한다. 그녀의 명상적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는 관람객이 많았다. 그녀 스스로도 작품 활동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있는 걸까? “네, 그렇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예술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탐구할 수 있습니다. 예술의 은유하는 힘을 기대하며 이를 통해 작가의 메시지가 관람객의 감정에 닿기 바랍니다. 작품 활동은 나 자신에게 고군분투하는 행위이지만 때로는 예술적으로 성취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남편이자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 필립은 “아틀리에 하우스는 미술관 디자인과 일종의 공통점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곳을 소유한 예술가의 자유가 우선이기 때문에 건축 과정에서부터 방해받지 않고 공간과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 또한 그는 베를린 도시 전체에서 이 건축물이 어우러지는 것까지 고려했다. 세월의 흔적이 깃든 도시 맥락에 근거해 외관은 회반죽을 입힌 벽돌 석조 건물로 마감했다. 그렇게 외관은 단순하고 내부는 독창성을 가진 건축물이 최종 완성되었다. 현관은 도시와 완전히 다른 두 세계 사이를 잇는 완충 역할을 하며, 무겁고 두꺼운 벽으로 인해 한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를 품는다.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펼쳐지는 6m의 천고는 방문객의 찬사를 자아낼 것.

작업실의 천고는 6m에 이른다.
이 집의 특징은 자연 채광과 조명인데, 햇빛이 적정하지 않다면 예술 작품에 독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순수한 일광은 아틀리에 하우스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공간마다 빛과 그림자는 신중하게 계산되어 있으며, 여러 종류의 유리와 창문을 사용해 용도에 맞게 적용했다. 집에서 쉴 때나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들 때 자연스러운 빛을 만끽할 수 있다면 이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예술과 건축의 동거는 단숨에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 또한 작업실의 창문 디자인은 대단히 절제되었는데, 이는 창 밖으로 시선을 뺏기지 않을 작가의 집중력을 위한 선택이었다. 작업실 벽은 자유롭게 못을 박아 그림을 걸 수 있을 만큼 두껍고 간결하다. 하지만 레이코는 자신처럼 작업실과 거주 공간을 갖춘 아틀리에 하우스를 만들고 싶은 독자에게 조언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모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무언가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별한 아틀리에 하우스를 통해 오랫동안 꿈꾸던 욕망을 실현하고 꿈을 펼치고 싶은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 집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바랍니다.”

자연광이 매력적인 욕실 풍경. © photo- PhvM

레이코 이케무라 부부과 인근에서 놀러온 강아지. © Photo Yumiko Urae

기도하는 토끼 소녀 조각은 우리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사진 ‘broken flowers’가 걸려 있는 공간. © LI & PhvM photo- PhvM

국립도쿄아트센터에서 선보인 그녀의 환상적인 회화 작품. © Leiko Ikemura, Our Planet Earth and Stars photo PhvM – 92 von 139
그녀는 주목받는 미술가로서 올해 여러 전시를 선보였고, 2025년 열릴 전시 준비로 더욱 분주하다. “얼마 전 열린 프리즈 런던에서 리슨갤러리와 함께 전시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독일 쿤스트할레 엠덴 Kunsthalle Emden과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Museum of Contemporary Art Tokyo에서 개인전이 열립니다. 2025년에도 기대하는 전시들이 있어요. 5월에는 리슨갤러리 뉴욕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미술관에서도 전시가 열립니다.” 베를린의 겨울은 혹독하지만, 열정으로 가득 찬 그녀 집에서만큼은 이를 느낄 수 없다. 레이코 이케무라의 아름다운 영감은 아틀리에 하우스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