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분리파의 세련된 감각, 바우하우스의 구조적 균형, 그리고 일본 전통 건축의 미학이
녹아든 라 빌라 N 하우스. 건축가의 손길을 다시 한 번 거쳐 태어난 이 역사적인 건물은 건축적 실험과 감각이 결합되어 있다.

카트자 파거가 디자인한 블랙 가죽 소파와 에나멜 세라믹 테이블이 거실의 중심을 잡는다. 빅터 규디의 브론즈 조각, 벽면에 걸린 직물 작품, 조형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알루미늄 스툴이 조화롭게 자리한다.

건축과 자연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라 빌라 N의 외관. 대형 창과 프렌치 도어를 통해 실내외 경계가 허물어지며, 정원과 건축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진다.

빛과 자연을 품은 서재. 카트자 파거가 디자인한 오쿠메 원목과 벨벳 소재의 암체어가 편안한 균형을 이룬다.

20년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경력을 쌓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카트자 파거.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석고 마감의 나선형 계단과 바닥의 헤링본 패턴 오크 마감이 따뜻한 감성을 더한다.
울창한 수목과 희귀종이 자라는 면적 1700㎡의 프라이빗한 정원 속,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건축물이 숨쉬고 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와 로버트 말렛-스티븐스 Robert Mallet-Stevens의 가까운 동료 피에르 바르브 Pierre Barbe가 설계한 이 타운하우스는 20세기 초 프랑스 건축의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다. 한때 점묘파 화가 자크 마르탱 페리에르 Jac Martin-Ferrières가 거주하며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은 이곳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집이 품고 있던 건축적 유산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했다. 2021년,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활동해온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카트자 파거 Katja Pargger는 이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맡았다. “과거의 건축적 정수를 유지하면서, 오늘날의 감각과 자연을 더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어요.” 그녀는 본래 건축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실내와 실외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로 설계를 확장했다. 그렇게 이곳은 라 빌라 La Villa N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복원 과정의 핵심은 건축이 본래 지닌 우아한 구조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대리석 조각으로 마감된 외벽은 원형을 유지한 채 현대적 감각을 더했으며, 내부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아르누보 운동의 한 갈래인 비엔나 분리파 Viennese Secession와 오스트리아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 Josef Hoffmann의 영향이 반영된 공간으로 재구성되었다. 특히 빛과 형태가 조화롭게 교차하는 인테리어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공존하며,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시간이 축적된 듯한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라빌라 N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설계에 있다. 길게 뻗은 창문이 정원과 실내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며, 루돌프 쉰들러 Rudolf Schindler의 캘리포니아 건축과 일본 전통 가옥에서 볼 수 있는 엔가와(툇마루) 개념에서 영감을 받은 테라스는 경계를 허물며 공간 속으로 자연을 스며들게 한다. “이곳에서는 실내와 실외가 분리되지 않아요. 건축이 곧 정원이 되고, 정원이 건축의 일부가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건축가 카트자 파거가 말한다.

공간 곳곳에 예사롭지 않은 소재와 형태를 지닌 오브제들이 가득한 라 빌라 N.

목재의 따뜻한 질감과 미니멀한 조형미가 인상적인 하이 백 블랙 래커 가구가 대조를 이루는 서재.

부드러운 자연 소재가 돋보이는 욕실. 맞춤 제작한 라임스톤 욕조, 문어 모자이크 타일 바닥, 유약 처리된 테라코타 화병이 놓여 있다.

블랙 가죽 베드 커버와 기하학적 패턴의 블랭킷이 멋스러운 대조를 이룬다. 침대 발치에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가죽으로 제작된 벤치가 놓여 있다.
라 빌라 N의 가장 과감한 변화 중 하나는 예전의 아틀리에를 대신해 실내 수영장이 자리한 것이다. 절제된 디자인의 이 공간은 커다란 수직 창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여름이면 마치 야외에서 수영을 즐기는 듯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건축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공간을 채우는 가구와 예술 작품이다. 카트자 파거가 직접 디자인한 검은 가죽 소파가 거실 한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요제프 호프만의 의자와 알도 로시 Aldo Rossi의 암체어가 클래식과 모던이 균형을 이루는 장면을 연출한다. 공간 곳곳에는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이 배치되어,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건축과 자연이 소통하는 방식의 일부로 기능한다. 소재의 활용 역시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나는 소재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는 것을 좋아해요. 돌, 석회, 나무, 유리, 금속 등. 이 모든 재료들이 최대한 본연의 질감을 간직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그녀는 바우하우스 철학을 기반으로 목재, 가죽, 스테인리스 스틸, 래커, 석회 등 천연 소재의 가공을 최소화한 형태로 배치했다. 성당 천장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거실은 일본식 오크 패널로 마감되어 공간에 부드러운 온기를 더하며, 계단은 한 조각의 금속으로 제작된 후 석고로 마감되어 조각 작품처럼 부드럽게 공간을 감싸고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하루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가로지르며,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기록한다. 차분한 색감과 절제된 형태 속에서 자연과 건축이 교감하고, 재료의 질감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라 빌라 N이 추구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인 것. “건축은 수학적인 질서 속에서도 의외성이 있어야 해요. 기본이 탄탄할수록, 예상치 못한 요소를 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지고 감각을 일깨우는 경험이 되는 곳이기 바랐어요.” 라 빌라 N은 과거와 현재, 건축과 자연, 구조와 감성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서, 감성을 자극하는 하나의 건축적 작품으로 존재한다.

공간 곳곳에 예사롭지 않은 소재와 형태를 지닌 오브제들이 가득한 라 빌라 N.

목재의 따뜻한 질감과 미니멀한 조형미가 인상적인 하이 백 블랙 래커 가구가 대조를 이루는 서재.

부드러운 자연 소재가 돋보이는 욕실. 맞춤 제작한 라임스톤 욕조, 문어 모자이크 타일 바닥, 유약 처리된 테라코타 화병이 놓여 있다.

블랙 가죽 베드 커버와 기하학적 패턴의 블랭킷이 멋스러운 대조를 이룬다. 침대 발치에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가죽으로 제작된 벤치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