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의 형태와 소재, 전시를 경험하는 방식까지. 페어 기간에 반복적으로 포착된 흐름 15가지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01 전시장으로의 체크인




호텔을 차용한 전시는 이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올해 눈에 띈 건 단순히 호텔이라는 형식을 빌리는 수준을 넘어, 실재하지 않지만 충분히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가상의 호텔 경험’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현했는지에 있었다. 잠시 머물고 스쳐 지나가는 호텔 특유의 체류 방식과 환대의 감각 자체가 전시의 핵심 언어가 된 것이다. 닐루파의 <Nilufar Grand Hotel>은 데포 전체를 하나의 허구적 호텔로 구성하며 관람객이 실제 투숙객처럼 체크인 데스크를 지나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다이닝 룸과 라운지, 스위트룸, 명상실 등 실제 호텔 구조 역시 그대로 옮겨왔다. 닐루파 창립자인 니나 야사르는 “실재하지 않지만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오브제들이 이 공간의 진짜 ‘거주자’가 되는 호텔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컬렉티블 디자인과 빈티지, 동시대 오브제들이 뒤섞인 공간은 집 같은 쇼룸보다 오래된 영화 속 호텔이나 여행지 로비에 가까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반면 톰 딕슨은 실제 호텔 프로젝트를 전시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그는 밀라노 외곽의 역사적 건물을 개조한 ‘무아 무아 호텔’에 신작 조명과 가구, 바이스프링과 협업한 침대를 공개했다. 그는 “호텔은 먹고, 만나고, 자고, 일하고, 쉬는 공간이며, 집 밖의 또 다른 집이자 현대 도시 라이프스타일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호텔은 전시와 호스피탈리티, 리테일, 라이프스타일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보다 입체적인 디자인 플랫폼으로 기능했다.
02 가구를 돋보이게 하는 건축 프레임



가구의 구조와 소재, 형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부스를 하나의 건축적 프레임처럼 활용한 연출이 두드러졌다. 제품을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기보다는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오브제 자체의 존재감과 조형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로 유니포는 헤르조그 & 드 메롱과 협업한 <Non Places>를 선보였다. 전시는 스튜디오 클라스가 기획했으며, 이들은 “인식 가능한 환경을 재현하기보다 오브제들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추상적 프레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비앤비 이탈리아 역시 같은 흐름을 보여주었다. 로 피에라 전시장 안에 마련된 부스를 설계한 포르마판타즈마는 ‘전형적인 쇼룸이 아닌 건축적 공간’을 핵심 개념으로 내세웠다. 장식적인 스타일링과 생활 소품 대신 격자형 천장과 대리석 파티션, 자연광, 목재와 코코넛 파이버 카펫 같은 재료만으로 공간을 구성했고, 그 덕분에 제품의 실루엣과 재료감은 더욱 명확하게 읽혔다. 이는 미니멀한 연출의 유행이라기보다는 디자인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의 변화다.



03 도시와 시스템으로 확장된 디자인 세계

올해 살로네 델 모빌레의 핵심 키워드는 ‘A Matter of Salone’, 즉 ‘살로네의 본질’이었다. 지난해 테마인 ‘Thought for Humans’가 인간 중심 디자인과 감성적 경험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디자인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가? 그 답은 형태나 스타일이 아닌 ‘물질(Matter)’에 있었다. 돌과 나무, 금속, 섬유, 꽃잎 같은 재료를 전면에 내세운 공식 비주얼은 디자인의 출발점이 결국 소재와 감각, 그리고 물성 자체에 있음을 암시했다. 이는 단순히 소재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살로네 델 모빌레의 회장 마리아 포로는 “제품에서 경험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전시장에는 컬렉터블 디자인과 실험적 작업을 조명한 ‘살로네 라리타스 Salone Raritas’, 호스피탈리티와 워크플레이스, 공공 공간 중심 프로젝트를 다룬 ‘살로네 콘트랙트 Salone Contract’가 새롭게 등장했다. 디자인이 더 이상 하나의 오브제에 머물지 않고, 공간과 도시, 산업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연결하는 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변화는 디자인 위크 전반의 분위기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불확실성과 피로감이 일상이 된 시대, 사람들은 화려한 미래보다 손의 흔적이 남은 소재와 촉각적인 감각,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의 분위기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자연스러운 나뭇결과 유기적인 곡선, 수공예적 디테일, 패브릭과 조명으로 만들어낸 부드러운 레이어는 올해 디자인의 중요한 흐름이었다. 기술과 디지털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인간적인 감각과 장인정신의 가치가 더욱 선명해진 셈이다. 결국 올해 살로네가 보여준 것은 하나의 제품을 넘어 도시와 산업, 문화와 사람의 관계를 다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밀란의 진짜 경쟁력 역시 여기에 있다. 제조업과 장인, 학교와 갤러리, 브랜드와 문화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도시 전체의 생태계. 디자인이 더 이상 오브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관계와 경험, 환경 전체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04 희소성을 향한 디자인


디자인과 예술, 산업과 공예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가운데 소량 생산과 장인정신, 실험성을 담은 리미티드 에디션과 유니크 피스들이 더 이상 장외 전시장이나 외부 갤러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로 피에라 박람회장 안으로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올해 새롭게 시작한 ‘살로네 라리타스’가 있다. 28개의 국제 갤러리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리미티드 에디션과 유니크 피스, 앤티크, 실험적 작업을 한데 모으며 컬렉티블 디자인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살로네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를 두고 마리아 포로는 “서로 분리되어 있던 디자인 세계를 연결하고, 컬렉티블 디자인의 언어와 국제 디자인 시장의 실질적 차원을 잇기 위한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이는 산업 디자인과 갤러리 디자인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은 살로네 사텔리테 Salone Satellite에서도 이어졌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유리와 돌, 세라믹, 위빙, 목재 같은 촉각적인 소재를 현대적인 생산 논리 안에서 새롭게 해석했고, 공예를 단순한 전통이나 유산 보존이 아닌 혁신의 방식으로 다뤘다. 손의 흔적이 살아 있는 재료와 비정형적 질감, 느린 제작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작업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05 Yellow Accent


차분한 뉴트럴과 자연주의 색감이 오랫동안 이어진 가운데, 유독 옐로 컬러가 반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와 브라운, 우드 중심의 안정적인 공간 안에 노란색이 작은 포인트처럼 등장하며 공간 분위기를 환기시킨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의 노란색이 과거처럼 강렬한 팝 컬러나 네온 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버터 옐로보다 선명하지만 형광빛보다는 부드러운, 빈티지한 온도를 지닌 옐로가 주를 이뤘다. 이 같은 흐름은 지금의 시대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전쟁, 전반적인 피로감 속에서 디자인은 점점 더 정서적 안정감과 긍정적인 감각을 중요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심리적으로 에너지와 낙관, 따뜻함을 상징하는 노란색이 공간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까시나와 카락터는 새롭게 리이슈한 베르네 팬톤의 1960년대 ‘피콕 체어’에 빈티지한 옐로 톤을 적용했고, 닐루파 데포의 <그랜드 호텔>전시에서는 데이비드/니콜라스가 노란색 침대를 배치해 공간에 즉각적인 생동감을 더했다. 모로소의 ‘클레이 패밀리’ 역시 부드러운 볼륨감 위에 옐로를 입히며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낙관과 감정의 온도를 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