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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의 형태와 소재, 전시를 경험하는 방식까지. 페어 기간에 반복적으로 포착된 흐름 15가지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06 디지털 이후의 공예

© Mauro Tittoto

디지털 기술이 점점 더 완벽하고 균일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손의 노동과 제작 과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표면이 강한 존재감을 만들었다. 일정하지 않은 위빙, 손으로 꼬고 엮은 흔적, 불에 녹고 굳으며 생긴 표면의 질감까지. 지나치게 매끄럽게 정리된 마감보다 사람의 개입이 느껴지는 물성이 더 중요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까시나는 필립 스탁의 ‘오트 Hotte’를 통해 이러한 흐름을 보여줬다. 농부들이 등에 메던 과일 수확 바구니에서 출발한 암체어로, 굵기가 제각각인 버드나무를 손으로 엮어 완성했다. 모로소는 무라노섬 여성 장인들의 유리 비즈 공예 전통에서 출발한 ‘트윙클 Twinkle’을 선보였다. 에드라는 손으로 성형한 폴리카보네이트를 반복적으로 엮고 녹여낸 ‘아마레 A’mare’와 ‘베로니카 Veronica’를 공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두가 첨단 기술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그 안에 수공예적 흔적을 다시 남기려 했다는 점이다.

비즈 공예에서 출발한 모로소의 트윙클 디바이더. © Ludovica Canzutti

필립 스탁이 까시나를 위해 디자인한 오트. © Luca Merli

© Alessandro Mogg

07 소프트 볼륨의 진화

미노띠의 오리온 소파. © Paola Pansini

빈센트 반 듀이센이 몰테니앤씨를 위해 디자인한 줄리안 소파.

지난 몇 년간 이어져온 극도로 부드럽고 둥근 소파 흐름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변주됐다. 푹신한 볼륨 위로 광택감 있는 래커 구조와 단단한 프레임이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말랑한 업홀스터리 안에 구조적 리듬이 더해지며, 소파는 이전보다 훨씬 조형적이고 건축적인 존재감을 갖게 됐다. 미노띠의 ‘오리온 Orion’은 이러한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줬다. 겹쳐진 볼륨과 래커 마감 프레임, 기하학 구조가 어우러지며 하나의 작은 건축 시스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몰테니앤씨 역시 빈센트 반 두이센의 ‘줄리안 Julian’을 통해 부드러운 착석감 위에 광택 래커 암레스트와 구조적 프로파일을 더하며 조각 같은 존재감을 강조했다. 타치니는 ‘디알로고 Dialogo’와 ‘리나 Lina’ 같은 리이슈 컬렉션에 글로시 및 매트 래커 팔레트를 적용하며 형태와 볼륨 자체를 더욱 강조했다.

부드러운 패브릭에 래커 소재를 조합한 타치니의 디알로고와 리나 체어.

08 SNS 시대에 다시 호출된 디자인 아이콘

야구 글러브 형태에서 착안한 폴트로노바의 조 소파. © Pietro Savorelli

뾰족한 선인장을 닮은 마르치오 체키의 파키로. © Ercoli Giancola

복각 디자인은 이미 몇 년째 이어져온 흐름이다. 하지만 올해 특히 눈에 띈 건, 1960~80년대 래디컬 디자인 가운데서도 유독 강한 형태감과 유머, 과장된 스케일, 포토제닉한 디자인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실루엣을 가진 아이콘들을 다시 호출했다는 것이다. 구프람은 1975년 마르치오 체키의 ‘파키로 Fachiro’를 다시 선보였다. 뾰족한 가시로 뒤덮인 형태지만 실제로는 부드럽게 앉을 수 있는 암체어로, 시각적 착시와 유머를 동시에 활용한 디자인이다. 멤피스 역시 1981년 마사노리 우메다의 복싱링, ‘타와라야 링 Tawaraya Ring’을 축소 버전으로 공개했다. 가에타노 페세의 디자인 역시 다시 주목받았다. 메리탈리아는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브로드웨이 Broadway’를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였고, 까시나는 유기적으로 녹아 내리는 듯한 형태의 ‘달릴라 Dalila’를 아웃도어 버전으로 재해석했다. 폴트로노바의 ‘조 Joe’ 소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70년 등장한 거대한 야구 글러브 형태의 소파는 여전히 강렬한 시각적 임팩트를 유지했다. 물론 모든 리이슈가 유쾌한 조형성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텍타는 바우하우스의 D4 체어를 지속 가능 소재와 순환 구조 시스템으로 업데이트했고, 까시나는 찰스 & 레이 임스의 미발표 드로잉을 조명 컬렉션으로 확장했다.

메리탈리아의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브로드웨이.
녹아 내리는 듯한 형태의 달릴라 체어. © Luca Merli
우메다의 복싱링을 축소 버전으로 재생산한 타와라야 링.

09 더 얇고 가벼워진 아웃도어 가구

플렉스폼의 아웃도어 전시 <The Private Lives of Objects>에서 공개한 마르게리 체어와 타라 아웃도어 원형 테이블은 인피니에서 판매한다.

두껍고 묵직한 라탄과 티크 중심이던 아웃도어 가구가 한층 가벼워졌다. 얇은 튜블러(파이프나 튜브처럼 긴 원통형 구조) 프레임 위에 쿠션을 띄우듯 얹은 구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 시야를 막지 않는 선형 구조 덕분에 가구는 풍경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아웃도어 역시 실내 가구처럼 정제된 인상을 갖기 시작했다.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가 선보인 ‘비달렌타 Vidalenta’는 폭신한 쿠션 아래로 가느다란 메탈 튜빙 구조가 지나가며 부드러운 볼륨과 구조적 긴장감을 동시에 만들었다. 스티븐 벅스가 로쉐보보아를 위해 디자인한 ‘카탈리나 Catalina’ 역시 곡선형 튜블러 스틸 프레임 위에 풍성한 쿠션을 얹은 구조로, 단단한 메탈과 부드러운 시트 사이의 대비를 강조했다. 에티모의 ‘벳시 Betsy’는 좀 더 클래식한 접근이다. 얇은 메탈 다리와 로프 위빙 구조를 조합해 식민지풍 베란다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얇은 구조가 특징인 에티모의 벳시 체어.

© Luca Merli

© Luca Merli

3인용 소파, 1인용 라운지 체어, 선 베드 등 다양한 형태로 출시된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의 비달렌타 아웃도어 가구.

10 광물처럼 존재하는 유리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한 전시 <Tales in Glass>를 통해 신규 컬렉션을 선보인 갈로티 & 라디체. 인피니에서 만나볼 수 있다. © CarlottaManaigo

© Melania Dalle Grave c DSL Studio
블로운 글라스 큐브를 건축적 구조로 확장한 6:AM의 전시. © Tommaso Mariniello

유리가 장식 소재를 넘어, 하나의 물질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재료로 새롭게 부상했다. 매끈하고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보다 기포와 층, 두께, 불균일함이 드러나는 표면이 더 많이 눈에 띄었고, 작은 오브제를 넘어 공간을 나누는 디바이더나 거대한 설치 구조물처럼 스케일 역시 한층 커졌다. 이는 깨끗하고 균일한 마감보다 재료가 지닌 우연성과 물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최근 디자인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것은 6:AM이었다. 이들은 보테가 베네타 런웨이를 위해 제작한 블로운 글라스 큐브를 전시장 중심에 거대한 건축적 구조처럼 설치하며, 유리를 오브제가 아닌 공간의 언어로 확장했다. 투명한 블록들이 만들어내는 빛의 층과 두께, 미세한 불균일함은 마치 얼음이나 광물 덩어리를 연상시키며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어놓았다. 바르비에 & 토소 역시 유리의 물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번 전시를 디렉션한 루카 니체토는 “과거를 향수처럼 재현하기보다 오늘의 언어로 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말하며, 리브드 글라스와 광학적 진동, 기포와 광물 같은 표면을 통해 무라노 유리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특히 ‘리토스 Lithos’ 시리즈는 광물 파우더가 만들어낸 기포와 불균일한 표면을 그대로 드러내며 마치 암석층 같은 질감을 강조했다. 드라가 & 아우렐과 살비아티의 <Affinity in Light>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균열과 기포, 울퉁불퉁한 질감을 남긴 블로운 글라스를 콘크리트와 레진 같은 무거운 재료와 충돌시키며, 유리의 섬세함보다 재료 자체의 긴장감과 존재감을 부각했다.

드라가 앤 아우렐과 살비아티 협업 전시 <Affinity in Light>. © Riccardo Gasperoni

광물처럼 보이는 표면으로 무라노 글라스를 새롭게 해석한 바르비에 앤 투소의 컬렉션. ©Mattia Paro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