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해가 비치고 비가 내리기를 반복했던 3일간의 코펜하겐. 올해 3daysofdesign은 ‘Make This Moment Matter’를 주제로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변화무쌍한 날씨만큼이나 다채로운 전시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은 장면을 모았다.

Yellow Gathering


노란 카펫이 바닥을 덮고, 그 위에 거대한 소파가 광장처럼 놓였다. 올해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빕 VIPP은 바르셀로나 기반 스튜디오 메수라 Mesura와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새로운 만남의 장소로 바꿨다. 전시 중심에는 대화를 위한 ‘컨버세이션 피트’가 자리했는데, 스테인리스 테이블과 회전 의자가 이를 둥글게 감싸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한곳으로 이끌었다. 이때 전시장 벽을 감쌌던 노란 텍스타일은 전시가 끝난 뒤 한정판 스위블 체어로 다시 제작될 예정. 야외에는 브랜드 이름의 유래가 된 시소(Vippe) 설치물도 등장했다.
프리츠한센 리스닝 클럽

의자보다 헤드폰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프리츠한센이라니. 올해 프리츠한센은 <Sound Club>을 통해 가구와 소리의 관계를 들려줬다. 일본 오디오 브랜드 테크닉스와 협업한 리스닝 바에는 버건디 컬러의 카이저 이델 KAISER idell™ 램프와 턴테이블이 나란히 놓였고, 방문객들은 헤드폰을 착용한 채 아티스트 오비덕트 OviDuct와 윌원 Willone이 제작한 바이닐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리스닝 라운지와 플래그십 스토어를 잇는 동선에는 세실리에 만즈와 넨도 등의 신작과 2026년 컬렉션도 함께 공개됐다. 올해 프리츠한센이 강조한 것은 새로운 의자나 테이블의 탄생보다 가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조용한 웅장함

오도 코펜하겐은 항구 도시 노어하운에 위치한 오도 하우스에서 전시 <Quiet Grandeur>를 열었다. 놈 아키텍츠, 다니엘 시게루드, 아틀리에 악소, 크뢰이어세터-라센 등과 함께한 의자, 테이블, 조명 신작 7종을 선보인 것. 이들의 공통점은 부드러운 실루엣이었다. 단단한 원목과 직조 소재, 흙빛에 가까운 톤이 이어지는 공간 사이로 풍경화를 그려넣은 듯한 미카 리베의 대형 페인팅 디바이더가 놓이며 전시에 깊이를 더했다. 또한 오도 하우스의 시그니처인 로프트 공간에서는 플레밍 라센의 ‘더 타이어드 맨 The Tired Man’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소재와 플로럴 패턴을 입은 특별 에디션을 공개했다. ‘피곤한 남자’라는 이름 그대로 금방이라도 몸을 맡기고 싶어지는 푹신한 착석감과 포근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인근 시네마 룸에서는 라센 형제의 유산을 조명하는 영상도 함께 상영했다.


코펜하겐에 데뷔한 한국 브랜드 세 팀


코펜하겐에서 한국 브랜드를 만나 반가웠다. 레어로우, 일광전구(ILKW), 플랫포인트가 함께한 전시 <Portrait of Korean Living>은 가구와 조명보다 ‘한국인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스위스 스튜디오 지니 모이니에는 서울을 떠나 해외에 거주하는 한 사람의 집을 상상하며 전시를 구성했는데, 레어로우의 모듈 가구와 일광전구의 조명, 플랫포인트의 미니멀한 가구를 생활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여기에 작가 이지은의 회화가 더해지며 물건, 사람, 공간의 관계를 한층 선명하게 보여줬다. 북유럽 디자인의 중심에서 한국의 생활 풍경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Swedish Collector’s House


스웨덴 브랜드 더스티 데코는 18세기 아파트를 통째로 자신의 집으로 바꿔놓았다. 빈티지 가구와 현대 디자인, 예술 작품을 한 공간에 뒤섞어 브랜드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 것. 얼룩말 패턴의 소파와 러스티 톤 러그, 매튜 윌리엄슨의 페이퍼 램프, 베르그봄스와 협업한 조명 신작 등 존재감 강한 가구와 오브제가 공간 곳곳에 배치됐다. 여기에 미사키 카와이, 제프리 청, JJ 맨포드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더해지며 집 전체가 하나의 컬렉터스 하우스처럼 완성됐다.

Past Meets Present


칼한센앤선의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덴마크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펼쳐졌다. 전시 <Balanced Principles>는 한스 J. 베그너의 유산을 출발점 삼아 새로운 디자인과 클래식을 함께 소개했다. 특히 식물의 줄기와 잎에서 영감을 받은 외이빈 슬라토의 베고니아 펜던트와 파브리시우스 & 카스톨름이 디자인한 시미터 체어가 시선을 끌었다. 여기에 가죽 좌판을 적용한 한스 J. 베그너의 위시본 체어까지 더해지며 익숙한 클래식에 새로운 변화를 보여줬다. 화려한 신제품 발표보다 좋은 디자인이 어떻게 시간을 견디고 이어지는지를 보여준 전시였다.
히노키의 미학

코펜하겐 노어하운에서 열린 전시 <Japanmade Vol.1>은 일본 브랜드 다섯 곳이 한자리에 모인 협업 프로젝트였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브랜드는 가리모쿠가 전개하는 마스 MAS였다. OEO 스튜디오가 설계한 박스 형태의 전시장 안에는 가구와 조명, 생활용품이 놓였고, 일본산 히노키 목재가 가진 질감과 향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마스는 와타루 쿠마노의 WK 소파 시리즈와 다니엘 리바켄의 DR 조명 시리즈를 선보였다. 특히 히노키 원목을 감싸듯 은은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조명은 가구보다 하나의 조형물에 가까웠다. 화려한 신제품 경쟁 대신 소재 자체에 집중한 전시로, 일본 브랜드다운 절제된 미감을 보여줬다.




침대에 담긴 결혼 이야기

테클라는 코펜하겐 중심부에 자리한 17세기 궁전, 샤를로텐보르그에서 전시 <The Heart of Living>을 선보였다. 패치워크 퀼트와 19세기 스칸디나비아의 박스 베드를 중심으로 북유럽의 생활문화를 들여다보는 전시였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전시장에 함께 놓인 ‘호프 체스트’. 이는 과거 스웨덴의 미혼 여성들이 결혼을 앞두고 침구와 리넨을 모아두던 가구라고 한다. 우리에게 혼수 문화가 익숙하듯, 북유럽에도 침실을 중심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하던 전통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브랜드 아카이브 컬러로 완성한 퀼트와 묵직한 원목 박스 베드가 어우러지며, 테클라는 침실이 단순히 잠자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기억이 쌓이는 장소임을 보여줬다.


빛이 된 한 장의 천


이세이 미야케의 ‘A-POC ABLE’은 올해 처음으로 3daysofdesign에 참여했다. A-POC(A Piece Of Cloth)는 하나의 천 안에 옷의 모든 구조를 미리 짜 넣는 이세이 미야케의 혁신적인 제작 시스템이다. 이번에는 스위스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오이와 협업한 ‘TYPE-XIII’ 조명 시리즈를 선보였다. ‘한 장의 천과 한 가닥의 와이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조명으로, 주름진 패브릭 셰이드를 프레임에서 분리해 다른 색상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꽃봉오리를 닮은 형태와 은은하게 번지는 빛이 인상적이었는데, 옷 만드는 기술이 조명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확장된 순간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캐나다에서 온 조명 브랜드


올해 A-N-D는 코펜하겐에 첫 유럽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며 전시 <North Quarters>를 선보였다. 건물 전체를 하나의 쇼룸처럼 활용한 전시로, 층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명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 1층에는 크리스천 우의 3m 길이 다이닝 테이블 위로 ‘컨투어’와 ‘페블’ 조명이 목걸이처럼 길게 늘어섰고, 지하에는 프로토타입과 플로어 조명을 배치해 보다 가까이에서 제품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최상층. 수십 개의 ‘컬럼’ 조명이 규칙적으로 늘어선 풍경이 마치 빛으로 만든 설치 작품을 바라보는 듯했다.
헤리티지 위에 쌓은 신작들



앤트레디션의 전시 <Traces>는 공예와 문화, 소재와 생산 과정에 남겨진 자취를 따라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했다. 가장 눈길을 끈 공간은 베르너 팬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 공개된 적 없는 아카이브와 함께 플라워팟 VP1 애니버서리 에디션, 와이어 시리즈 신작을 선보이며 그의 실험 정신을 되짚었다. 일본 디자이너 야나기하라 테루히로의 첫 컬렉션 ‘넘브라 Numbra’도 함께 공개됐다. 직선, 빛, 그림자의 관계를 탐구한 조명 시리즈로, 조용하지만 강한 존재감을 남겼다.
The Shape of Scent



3daysofdesign에서 매년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브랜드 중 하나인 프라마. 올해는 가구 대신 ‘향’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시 <The Mechanics of Scent>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향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머무는지를 탐구한 프로젝트다. 종이, 점토, 나무, 금속으로 만든 8개의 ‘센트 스컬프처’가 설치됐고, 향이 스며든 종이가 흔들리거나 점토 볼이 오일 위를 오가며 향을 퍼뜨렸다. 프라마와 아티스트 데이비드 가드너가 함께 만든 이 장치들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향을 전달하는 도구였다. 아파트 57A에서는 새로운 유니온 시리즈와 01 소프트 시팅 시리즈를 처음 공개했다. 늘 익숙한 공간을 전혀 다른 감각을 바라보게 만드는 프라마다운 실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