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마을로만 알려져 있는 이화동이 문화 마을이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이화동과 함께 인생 2막을 시작한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의 손길로 환골탈태한 근대건축물. 굽이굽이 골목마다 열리는 전시로 마을 그 자체가 박물관이 된 이화동을 찾았다.

 

이화동 건축 여행
종로구 이화동. 번잡한 도심 속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화동은 2006년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던 ‘아트 인 시티’ 사업으로 벽과 계단에 그림을 입혀 벽화 마을이라는 닉네임을 달았다. 그러나 10년 전 대학로에 쇳대박물관을 세운 최홍규 관장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 경관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이곳이 단순히 벽화 마을로 불리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간 전통을 지키는 쇳대 인생을 살아온 최홍규 관장이 인생 2막을 이화동과 함께하기로 한 이유도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을 위한 적산가옥을 지으면서 철저한 도시 계획 아래 만든 마을이기도 하지요. 당시 국민주택단지로 설계된 이곳은 단독 2층의 주택 형태로 건축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쓰던 흙벽돌 대신 신소재 콘크리트 벽돌을 사용해 만든, 지금으로 따지면 타운하우스인 셈이죠.”
이화동에서 만난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은 이 마을을 소개하는 도슨트가 되어 마을에 있는 건물의 역사에 대해 줄줄 읊는다. 작년 7월호 <메종>을 통해 당시 봉제 미술관 ‘수작’을 발표한 그는 이화동이 품고 있는 역사적인 가치와 꿈꾸고 있던 이화동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에 관한 계획을 들려준 바 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그가 말했던 조각들이 퍼즐을 맞추듯 윤곽을 드러냈다. 새롭게 단장한 공간들은 시간의 속살을 드러낸 보물 같은 곳으로 변모해 있었다. 마을 텃밭 인근에 자리한 ‘이화동 마을 박물관’을 비롯해 그간 수집해온 와인 오프너를 전시하는 카페 ‘개뿔’, 그리고 옛날 대장간에서 사용하던 각종 도구를 전시하는 ‘최가철물점 대장간’을 공개했다. 이화동 마을 박물관의 개관을 기념해 열린 <이화동 마을 박물관> 전시는 최홍규 관장이 계획한 10년 프로젝트. 좁다란 골목골목마다 위치한 11곳은 모두 이화동 마을에 반해 들어온 예술인들이 만든 공간이지만, 앞으로 매년 전시 공간을 늘려 주민 전체가 주인이 되는 동네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화동 마을 박물관 전시는 이번이 두 번째로 ‘주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 박물관’이라는 컨셉트 아래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전시를 구성하고 운영하고 있었다. 6월 22일까지 한 달 간 열리는 <이화동 마을 박물관> 전시는 최홍규 관장이 만든 4개의 공간을 비롯해 ‘공방 손놀림’, ‘목인헌’, ‘월류헌’ 등 7곳에서 함께 열렸다. 이중 최홍규 관장의 열정으로 탄생한 새로운 박물관 3곳은 이순의 나이까지 모아온 수집품들로 꾸몄다. 소품 하나에서부터 가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로만 응축해 디자인한 이곳은 이화동 골목에서도 가장 보석 같은 공간으로 빛날 것이다.

1 수많은 들쇠를 매달아놓은 천장. 2 정원과 이웃해 있는 휴식 공간.

이화동 대장간
2층 건물의 외벽을 타고 오르는 장미 덩굴이 아름다운 ‘이화동 대장간’은 최홍규 관장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다. 3개의 작은 건물을 이어 붙여 만든 건물 사이에 만든 작은 마당에 최홍규 관장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나무를 심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앞마당에 앵두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으셨어요. 나무를 볼 때마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곤 합니다.” 오랜 시간 쌓인 손길과 숨결이 느껴지는 낡은 공간은 번쩍거리는 새 물건들이 가득 찬 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독특한 구조의 건물 안에는 최홍규 관장이 디자인한 철조각 작품과 과거 쇠를 올려 두드릴 때 사용한 다양한 모양의 모루 등 대장간과 관련된 도구들이 방마다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다.

↑ 대장간에 만든 작은 정원.

1 1970년대 신문을 초배지로 사용한 벽. 2 이화동 대장간의 외관.

1 카페로 운영될 개뿔 박물관의 외관. 2 와인 스크루로 장식한 벽.

1,2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소품들.

개뿔
‘개뿔도 없다’라는 말에서 착안해 명명한 개뿔 박물관은 무엇이든 손쉽게 담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화동 마을에서 유일하게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경기대 안창모 교수의 고증을 통해 증개축된 부분을 없애고 원형을 복원했다. 이곳에 특히 빼놓지 않고 봐야 할 공간은 두 곳. 개뿔 박물관은 성곽 길을 만들면서 쌓은 돌담을 끼고 지은 탓에 건물의 한쪽 면이 돌담과 접해 있다. 공사를 하면서 회벽이 칠해져 있던 것을 복원 하는 작업을 통해 만들었다는 후문.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만나게 되는 돌담은 이 집의 역사를 말해주는 장치가 되는 셈이다. 2층 다락방에는 어린아이들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는데, 최홍규 관장이 애착을 갖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 곳곳에는 그동안 모아온 300여 점의 와인 스크루를 장식 소품으로 사용해 구경하는 재미를 더했다. 공간 곳곳에 배치된 가구와 조명 역시 최 관장의 손길로 채웠다.

↑ 미술감독 홍동원 씨가 그린 최홍규 관장. 철제 구조물로 만들어 간판처럼 사용했다.

↑ 이화동 박물관의 간판 글씨는 예술인 장사익 씨가 직접 써준 것. 배꽃오브제로 장식한 벽은 관람객들의 포토존.

↑ 이화동 박물관과 이웃해 있는 마을 쉼터

이화동 마을 박물관
아름드리 뽕나무가 그늘막을 만들어주는, 마을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이화동 마을 박물관. 이곳은 11곳의 전시관 중 등대와 같은 곳이다. 이화동을 상징하는 배꽃을 벽면에 장식한 건물은 방문객들의 플래시 세례를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ㅅ’자 모양의 야트막한 지붕이 한눈에 보이는 마을 박물관은 원주민들의 기증품으로 꾸며졌다. 자전거, 바구니, 주걱, 찬합 등 소소한 생활용품부터 3대째 이화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이 내놓은 가족 사진 등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 수십 년 전의 추억 속으로 안내한다. 1층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40~50년간 살면서 마을과 함께 나이 들어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쪽 방에서는 손 편지를 써서 마을 박물관에 설치된 우체통에 넣으면 원하는 주소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한다.

↑ 이화 마을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박물관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