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밍 루밍

블루밍 루밍

블루밍 루밍

루밍이 세 번째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자신만의 색깔을 펼쳐온 그들의 시즌 3를 응원하며 루밍의 새로운 출발을 도운 조력자들과 한자리에서 만났다.

↑ 부피가 큰 가구와 조명을 널찍하게 전시할 수 있는 지하 1층 쇼룸.

리빙 브랜드에 관심 좀 있다는 이들이라면 빨간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만났던 9평 남짓한 루밍의 첫 번째 숍을 기억할 것이다. 방배동 한갓진 골목에서 숨겨온 선물 보따리를 풀 듯 다양한 디자인 브랜드를 소개해온 루밍. 트렌드를 이끄는 디자이너부터 감각 있다는 엄마들과 스타일리스트들의 발걸음으로 루밍의 빨간 대문은 바삐 열리고 닫혔다. 소개하는 브랜드가 많아짐에 따라 2013년 따뜻한 단독주택 같은 두 번째 숍으로 둥지를 옮겼는데 이곳 역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세 번째 둥지는 방배동 중심 거리에서 유일하게 곡선 형태로 지어진 건물에 자리했다. 지난 두 곳의 숍을 박근하 대표가 직접 매만졌다면 이번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플랏엠’의 선정현 실장과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워크룸 프레스’의 김형진 실장이 이끌었다. “직원도 늘었고, 소개하는 브랜드도 많아지면서 공간이 더 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새로 지어진 이 건물을 보게 됐고 지하와 1, 2층을 덜컥 계약해버렸죠. 그만큼 건물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처음엔 지금껏 그래왔듯 직접 인테리어를 하려다가 이 공간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로고도 루밍의 성격을 드러내는 형태로 바꾸면 어떨까 했고요.” 박근하 대표는 주위의 추천으로 플랏엠과 워크룸 프레스를 알게 되었는데 이 두 팀은 이미 여러 번 호흡을 맞춘 사이였기에 둘의 시너지는 믿고 장담할 수 있었다.

↑ 어떤 제품을 연출할지 미리 디자인했기 때문에 공간과 제품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박근하 대표가 생각했던 것은 바우하우스 시대에 사용된 도형과 색깔이었어요. 모두가 북유럽을 외칠 때 루밍은 이탈리아의 디자인과 조형적이고 건축적인 디자인을 꾸준히 소개해왔죠. 그런 부분을 공간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고민했어요. 루밍이 판매하는 제품과도 어울리는 공간이어야 했기에 숍에 자주 가서 제품을 보기도 했죠.” 플랏엠의 선정현 실장은 사소한 것까지 고려해 바우하우스 시대의 느낌을 살렸다. 세모 형태로 배열한 중간 벽과 원형을 떠올리게 하는 둥근 벽, 2층 바닥에 칠하고 싶었지만 예산 때문에 고민했던 노란색은 2층 키즈 코너에 칠해서 따뜻한 분위기를 살리는 등 더 나은 아이디어로 발전시킨 데에는 플랏엠의 공이 컸다. 루밍은 조 콜롬보의 이지 체어부터 임스 리클라이너 체어 등 장소가 협소해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가구와 조명을 지하 1층에 마음껏 풀어냈다. 루이스 폴센과 아르텍 조명 등 조명 코너를 마련했고 방문하는 이들이 미리 공간 구성을 예상해볼 수 있도록 스타일링을 곁들인 디스플레이를 제안하고 있다.

↑ 왼쪽부터 워크룸 프레스 김형진 실장, 루밍 박근하 대표, 플랏엠 선정현 실장.

↑ 다양한 부엌 용품을 만나볼 수 있는 1층.

1 워크룸 프레스에서 디자인한 루밍의 새로운 로고. 2 1층 공간의 백미인 나무 바닥재.

가장 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1층은 부엌 용품과 사무 용품, 러그, 꽃병 등 생활 소품 위주로 구성했다. 1층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바닥이다. 생산이 중단돼 이제는 만나볼 수 없는 30년 이상 된 오래된 바닥재를 루밍에 사용한 것이다. 요즘 유행인 헤링본 패턴이 아닌 예스러운 모자이크 바닥재가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건물의 인상을 부드럽게 만든다. “1층의 부엌 코너도 신경 썼어요. 바우하우스 시대의 절제미와 기능성을 겸비한 부엌을 보여주고 싶었죠. 무채색 집기류와 색깔이 화려한 부엌 용품이 대조를 이루면서 의외로 잘 어울려요.” 2층은 오직 아이들을 위한 제품으로 채워졌다. 놀이 장소부터 침대, 공부하는 책상 등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브루노 무나리의 아비따꼴로 침대를 비롯해 우프 가구, 빌락, 하이코 조명, 페르몹 키즈 라인 등 아이 방에 필요한 제품군을 총망라했다.

↑ 실제 아이 방을 옮겨온 듯한 2층 키즈 코너.

↑ 아이 방에 어울리는 각종 가구와 조명도 전시하고 있다.

↑ 야심차게 디스플레이한 아비따꼴로 침대.

입구에서부터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루밍의 로고도 신선하다. 1층 카운터 쪽 벽에 a부터 z까지의 알파벳 폰트도 붙여놓았는데 이것은 워크룸 프레스의 작품이다. “로고 의뢰 시 가독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고객들이 많아요. 잘 읽힐지,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인지를 고민하는 거죠. 루밍 역시 그랬어요. 하지만 루밍이란 이름과 발음에서 동그라미가 연상됐고 그렇게 원을 활용해 로고를 만들다 보니 지금의 폰트를 디자인하게 됐죠. 짧은 시간 동안 루밍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기란 어려웠지만 플랏엠 실장님의 이야기도 듣고 실제로 숍에 가보기도 하면서 떠오른 많은 생각을 표현했더니 이런 디자인이 나왔네요.” 워크룸 프레스 김형진 실장이 로고의 작업 과정을 소개했다. 박근하 대표는 사람들이 루밍의 새로운 로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고. 결정하기 전날엔 밤을 꼴딱 새우면서 고민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직원들에게 로고를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저장하고 계속 보라고 했어요. 처음엔 낯설어하는 직원들도 로고가 점점 예뻐 보인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결국 마음을 정하게 됐죠.” 동그란 원에는 모서리가 없다. 소외나 열외 없이 보듬어 안는 원의 포용력으로 루밍은 안락하고 견고한 세 번째 둥지를 틀 수 있었을까. 2015년 봄, 만개한 루밍은 청년 같은 싱그러움으로 더 멀리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에디터 신진수 | 포토그래퍼 박상국

CREDIT
이화동 건축 여행

이화동 건축 여행

이화동 건축 여행

벽화 마을로만 알려져 있는 이화동이 문화 마을이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이화동과 함께 인생 2막을 시작한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의 손길로 환골탈태한 근대건축물. 굽이굽이 골목마다 열리는 전시로 마을 그 자체가 박물관이 된 이화동을 찾았다.

 

이화동 건축 여행
종로구 이화동. 번잡한 도심 속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화동은 2006년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던 ‘아트 인 시티’ 사업으로 벽과 계단에 그림을 입혀 벽화 마을이라는 닉네임을 달았다. 그러나 10년 전 대학로에 쇳대박물관을 세운 최홍규 관장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 경관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이곳이 단순히 벽화 마을로 불리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간 전통을 지키는 쇳대 인생을 살아온 최홍규 관장이 인생 2막을 이화동과 함께하기로 한 이유도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을 위한 적산가옥을 지으면서 철저한 도시 계획 아래 만든 마을이기도 하지요. 당시 국민주택단지로 설계된 이곳은 단독 2층의 주택 형태로 건축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쓰던 흙벽돌 대신 신소재 콘크리트 벽돌을 사용해 만든, 지금으로 따지면 타운하우스인 셈이죠.”
이화동에서 만난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은 이 마을을 소개하는 도슨트가 되어 마을에 있는 건물의 역사에 대해 줄줄 읊는다. 작년 7월호 <메종>을 통해 당시 봉제 미술관 ‘수작’을 발표한 그는 이화동이 품고 있는 역사적인 가치와 꿈꾸고 있던 이화동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에 관한 계획을 들려준 바 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그가 말했던 조각들이 퍼즐을 맞추듯 윤곽을 드러냈다. 새롭게 단장한 공간들은 시간의 속살을 드러낸 보물 같은 곳으로 변모해 있었다. 마을 텃밭 인근에 자리한 ‘이화동 마을 박물관’을 비롯해 그간 수집해온 와인 오프너를 전시하는 카페 ‘개뿔’, 그리고 옛날 대장간에서 사용하던 각종 도구를 전시하는 ‘최가철물점 대장간’을 공개했다. 이화동 마을 박물관의 개관을 기념해 열린 <이화동 마을 박물관> 전시는 최홍규 관장이 계획한 10년 프로젝트. 좁다란 골목골목마다 위치한 11곳은 모두 이화동 마을에 반해 들어온 예술인들이 만든 공간이지만, 앞으로 매년 전시 공간을 늘려 주민 전체가 주인이 되는 동네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화동 마을 박물관 전시는 이번이 두 번째로 ‘주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 박물관’이라는 컨셉트 아래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전시를 구성하고 운영하고 있었다. 6월 22일까지 한 달 간 열리는 <이화동 마을 박물관> 전시는 최홍규 관장이 만든 4개의 공간을 비롯해 ‘공방 손놀림’, ‘목인헌’, ‘월류헌’ 등 7곳에서 함께 열렸다. 이중 최홍규 관장의 열정으로 탄생한 새로운 박물관 3곳은 이순의 나이까지 모아온 수집품들로 꾸몄다. 소품 하나에서부터 가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로만 응축해 디자인한 이곳은 이화동 골목에서도 가장 보석 같은 공간으로 빛날 것이다.

1 수많은 들쇠를 매달아놓은 천장. 2 정원과 이웃해 있는 휴식 공간.

이화동 대장간
2층 건물의 외벽을 타고 오르는 장미 덩굴이 아름다운 ‘이화동 대장간’은 최홍규 관장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다. 3개의 작은 건물을 이어 붙여 만든 건물 사이에 만든 작은 마당에 최홍규 관장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나무를 심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앞마당에 앵두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으셨어요. 나무를 볼 때마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곤 합니다.” 오랜 시간 쌓인 손길과 숨결이 느껴지는 낡은 공간은 번쩍거리는 새 물건들이 가득 찬 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독특한 구조의 건물 안에는 최홍규 관장이 디자인한 철조각 작품과 과거 쇠를 올려 두드릴 때 사용한 다양한 모양의 모루 등 대장간과 관련된 도구들이 방마다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다.

↑ 대장간에 만든 작은 정원.

1 1970년대 신문을 초배지로 사용한 벽. 2 이화동 대장간의 외관.

1 카페로 운영될 개뿔 박물관의 외관. 2 와인 스크루로 장식한 벽.

1,2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소품들.

개뿔
‘개뿔도 없다’라는 말에서 착안해 명명한 개뿔 박물관은 무엇이든 손쉽게 담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화동 마을에서 유일하게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경기대 안창모 교수의 고증을 통해 증개축된 부분을 없애고 원형을 복원했다. 이곳에 특히 빼놓지 않고 봐야 할 공간은 두 곳. 개뿔 박물관은 성곽 길을 만들면서 쌓은 돌담을 끼고 지은 탓에 건물의 한쪽 면이 돌담과 접해 있다. 공사를 하면서 회벽이 칠해져 있던 것을 복원 하는 작업을 통해 만들었다는 후문.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만나게 되는 돌담은 이 집의 역사를 말해주는 장치가 되는 셈이다. 2층 다락방에는 어린아이들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는데, 최홍규 관장이 애착을 갖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 곳곳에는 그동안 모아온 300여 점의 와인 스크루를 장식 소품으로 사용해 구경하는 재미를 더했다. 공간 곳곳에 배치된 가구와 조명 역시 최 관장의 손길로 채웠다.

↑ 미술감독 홍동원 씨가 그린 최홍규 관장. 철제 구조물로 만들어 간판처럼 사용했다.

↑ 이화동 박물관의 간판 글씨는 예술인 장사익 씨가 직접 써준 것. 배꽃오브제로 장식한 벽은 관람객들의 포토존.

↑ 이화동 박물관과 이웃해 있는 마을 쉼터

이화동 마을 박물관
아름드리 뽕나무가 그늘막을 만들어주는, 마을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이화동 마을 박물관. 이곳은 11곳의 전시관 중 등대와 같은 곳이다. 이화동을 상징하는 배꽃을 벽면에 장식한 건물은 방문객들의 플래시 세례를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ㅅ’자 모양의 야트막한 지붕이 한눈에 보이는 마을 박물관은 원주민들의 기증품으로 꾸며졌다. 자전거, 바구니, 주걱, 찬합 등 소소한 생활용품부터 3대째 이화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이 내놓은 가족 사진 등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 수십 년 전의 추억 속으로 안내한다. 1층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40~50년간 살면서 마을과 함께 나이 들어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쪽 방에서는 손 편지를 써서 마을 박물관에 설치된 우체통에 넣으면 원하는 주소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한다.

↑ 이화 마을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박물관 내부.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