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을 지켜 나가는 덴마크 가구 브랜드 칼한센&선의 대표 쿤드 에릭 한센이 한국을 방문하고 덴스크 성북점에서 특별 전시를 열었다. 창립자의 손자이기도 한 쿤드가 들려준 브랜드 역사에는 한 가족의 사명과 꿈이 서려 있었다.
1 덴스크 성북점에서 만난 칼한센&선의 대표 쿤드 에릭 한센. 2 한스 베그너가 디자인한 CH88. 3 1970년에 디자인되었지만 지금 봐도 세련미가 느껴지는 트레이 테이블 CH417. 4 프리츠 헤닝센의 시그니처 의자 FH429.
칼한센&선 Carl Hansen&Søn의 창립자 칼 한센은 1908년, 덴마크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오덴세에 작은 워크숍을 설립하고 맞춤 주문 가구를 제작했다. 당시부터 세심한 수작업을 거쳐 최고 품질의 가구를 제작했는데,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해 급속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1934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칼한센&선의 세일즈 매니저로 일하던 그의 아들 홀거 한센 Holger Hansen이 회사를 이끌게 되었다. 새로운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홀거는 1947년에 한스 베그너 Hans J. Wegner를 영입, 칼한센&선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위시본 의자 CH24를 완성하게 된다. 그 외에 카레 클린트 Kaare Klint의 사파리 의자, 모겐스 코흐 Mogens Koch의 폴딩 의자, 올 벤셔 Ole Wanscher의 콜로니얼 의자 등 20세기 디자인을 대표하는 가구를 줄지어 선보였다. 홀거가 심장마비로 타계했을 때 아들 쿤드 에릭 한센 Kund Erik Hansen의 나이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그래서 홀거의 아내인 엘라 한센 Ella Hansen이 대신 회사를 운영하다 2002년, 쿤드가 장성하고 나서야 회사를 물려줬다. 쿤드는 덴마크 역사를 담은 가구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히고자 최근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프리츠 헤닝센의 시그니처 의자를 다시 부활시켰다. 그리고 북유럽 디자인을 사랑하는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주목하고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을 방문한 소감이 궁금하다. 일 때문에 서너 번 정도 방문한 적이 있어서 익숙하다. 날씨도 맑고 치안도 잘되어 있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서울 말고 다른 곳은 방문해본 적이 없는데 다음에는 한국으로 여행을 오고 싶다.
한국은 북유럽 디자인이 특히 대세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다고 생각하나? 겨울이 긴 덴마크에서는 6개월 정도 집 안에 생활하기 때문에 집 안을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 한국도 추운 가을, 겨울이 있는데 일단 환경적인 요건에서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한국과 덴마크 디자인이 모두 간결하고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북유럽 디자인을 이질감 없이 친근하게 느끼는 게 아닐까.
칼한센&선이 오늘날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3대에 걸쳐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하나의 역사를 건설했다. 나에게는 혈통만 가족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300명의 직원도 가족이고 그들도 나처럼 지키고 싶은 가족들이 있다. 그들을 떠올리면 회사를 잘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그게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덴마크 가구 디자인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듯한데, 전통과 컨템포러리 디자인 간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하고 있나?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시트의 패브릭이나 다리 소재 등 선택의 폭을 넓히면서 좀 더 개인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것이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새로운 디자이너들과도 계속 협업해 나갈 테지만 우리가 품질에 관한 노력을 가장 많이 해온 만큼 품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눈여겨보는 디자이너가 있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활동하는 디자인 그룹 에오스 EOOS와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최근 우리 브랜드의 DNA 주입을 끝냈다. (웃음) 에오스는 가구, 공간, 제품 디자인 등을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올해 엠브레이스 Embrace 의자를 함께 출시했는데 앞으로도 에오스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칼한센&선에서 제작하는 가구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제품은 무엇인가? 프리츠 헤닝센의 시그니처 체어를 가장 좋아한다. 1954년 그가 마지막으로 디자인한 제품인데, 그의 유언에 따라 모든 스케치와 도면을 불태우는 바람에 재현할 방법이 없어 직접 의자를 해체해가며 구조를 알아냈다. 내게는 사연이 많은 의자라서 애착이 많이 간다.
1,4 칼 한센&선의 가구로 꾸민 쿤드 에릭 한센의 저택. 2 한스 베그너가 세 번째로 디자인한 위시본 체어 CH24는 칼한센&선의 대표 아이템이다. 3 너도밤나무 원목 프레임으로 제작한 소파 CH163.
리프로덕트 제품은 디자이너가 동일하더라도 소재에 따라 가격이나 품질 등이 약간씩 달라진다고 들었다. 칼한센&선에서 초창기 생산할 때와 지금 비교해보면 어떤 점이 달라졌나? 출시 당시와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서 공정 과정에서 특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모든 가구를 100% 자연 소재로 만들고 이음새도 본드 없이 구조만으로 연결하는 등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손기술이 있을 텐데 100년이 넘는 동안 어떻게 지켜왔나? 연세가 많은 장인들은 세대교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체적으로 장인 교육 시스템을 갖춰 몇 년씩 수련시키고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칼한센&선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신제품을 준비, 개발할 때의 기준이 있다면? 새로운 디자인을 선정할 때는 지금까지 출시된 가구 라인과 잘 어울리는지 가장 먼저 고려한다. 우리가 디자이너의 개성이나 튀는 아이디어를 수용하기보다는 디자이너가 칼한센&선의 DNA를 정확히 이해하고 전체 구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기준만 잘 맞출 수 있다면 나머지는 전부 열려 있다.
비싼 가구만 갖다 놓는다고 멋진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인테리어는 무엇인가? 자기한테 맞는 게 무엇인지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필요에 의해, 나한테 맞는 가구를 찾아서 인테리어를 하는 게 필요하다. 나는 덴마크 국가에서 지정할 만큼 보존할 가치가 있는 1617년에 지어진 저택에 살고 있다. 공간이 넓은 만큼 가구도 많은데 칼한센&선 가구뿐만 아니라 편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다른 브랜드의 제품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구조가 정형화되어 있는 데다 유행 중인 북유럽 가구와 소품으로 채우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사는 이의 취향보다는 획일화된 스타일이 느껴지는데, 북유럽 디자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알려달라. 북유럽 가구보다는 정신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북유럽의 정신은 그 문화나 환경이 집 안에,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는 거다. 그 동네의 분위기나 색깔이 반영된 집 같은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사를 간다고 싹 바꾸는 게 아니고 중고 가구를 사서 쓰는 등 세월의 흔적이 있는 물건을 갖고 가는 게 좋겠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 삶을 즐기는 당신만의 방법이 궁금하다. 아내와 아이들, 고양이 두 마리와 개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가족들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또 나는 여행하고 경험하는 데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새로운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면 나 역시 젊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