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이너 김나리 소장과 함께 떠난 전라도 나주 탐방기.

안채는 궁중 목수가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고, 일자형이다. 기와 지붕에 와송이 많아서 더욱 아름다웠다.

부엌을 만든 외벽의 비율과 구성은 몬드리안 같은 미를 느끼게 해준다.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두 시간이 채 안 되어 도착한 나주. 전라도 여행을 할 때 몇 번이고 지나친 곳이지만, 이번에는 남파고택과 남평주조장을 보기 위해 작정하고 찾았다. 태어난 곳은 경상도이지만, 처음 전라도 땅을 밟은 22세 이후로 내 힐링 스폿은 대부분 이곳에 있었다. 보길도를 답사하러 갔다가 전라도의 자연과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그래서 어쩌면 전생에 전라도 사람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후로 전라도 여행 시 알 수 없는 이끌림이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된 것은 남파고택에서 묵은 하룻밤이었다. 몇날 며칠 설레며 기다린 일정이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나주 곳곳을 안내해줄 남평주조장의 윤태석 대표를 만나서 그의 고향 마을을 둘러본 후, 다음에는 남평마을회관에서 재워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그렇게 나주는 내게 더욱 가까운 도시가 되었다. 나주는 험한 산이 거의 없다. 대신 낮은 구릉과 반짝이는 강, 그리고 기름진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이런 지형 때문인지, 도시 자체가 한없이 평온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나는 자연환경이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데, 나주 풍경을 보면 그 말이 더욱 와닿는다. 남파고택 박경중 원장은 “한때 전주와 함께 전라도를 대표하는 도시였고, 조선 시대에는 나주 관아가 위치한 행정 중심지이기도 했다. 나주평야 덕분에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1차 산업이 중심이던 시대가 지나고 나서 산업적으로 다소 침체된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한전 본사가 이전하면서 혁신도시가 조성되었지만, 구도심과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 보였다. 고려 시대부터 ‘천 년의 도시’로 불렸던 나주가 이제는 곰탕으로만 유명해진 것이 아쉬웠다. 이번에 탐방하고 온 곳들이 잘 지켜져 그 아름다움이 알려지고, 일제 시대 잔재 건물인 나주경찰소, 나주극장도 아픔의 잔재이지만 잘 해석되어서 MZ 세대들도 찾는 깊어진 나주를 기대해본다.

부엌의 벽은 장작의 그을음에 자연스럽게 그을러져서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검정 벽이 되어 있었다.

근대 100년 전후의 생활양식을 알려주는 남파고택의 유물들.

대대로 내려오는 나주에서 보는 리얼 나주반.

유명한 남파고택 음식의 근본이 되는 씨간장과 장이 있는 뒷마당의 장독대.
나주 도심에 위치한 남파고택
남파고택은 1884년 조선 후기 남파 박재규가 지어서 본채, 사랑채, 별채로 증축이 되었다는 전라남도 최대 규모의 고택이다. 일제 시대 항일운동과 나주 사회운동, 그리고 근대 교육의 산실이었던 역사적인 곳이다. 여러 이야기가 담긴남파고택은 현재까지 종손과 종부가 거주하고 있는데,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산인 곳이다. 남파고택 바깥 사랑채에서 묵던 날 고택을 관리하는 박경중 원장이 녹차를 우려주면서 담백하게 들려주신 집안 얘기, 나주 얘기를 잊을 수가 없다.남파고택의 대표 음식으로는 반동치미, 소고기로 만든 음식, 녹두누룩으로 만든 술이 유명하다고 한다. 고택의 반상을 나중에 꼭 경험하고 싶다 .

현재의 남평주조장.

일제 시대부터 지나온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주조장 내부.

윤태석 대표와 남평주조장의 마스코트 반려견 ‘마대’.

실제 술을 보관했던 항아리들.
남평주조장
1932년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주조장으로서 오랜 세월 나주의 농업과 함께 성장해왔으며, 지역민들에게 친숙한 막걸리를 제조해왔다. 주조장 주인이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여러 번 바뀌었으나 현재는 10년 전 이곳을 매입한, 여러 곳에서 박물관장을 지내오신 윤태석 대표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2032년 박물관으로 완공해서 이곳에서 나온 수많은 근대 유물의 가치를 알리고 보존할 것이라 한다. 나주 남평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대표적인 건물이 될 곳으로 기대된다. 드들강의 이름을 딴 드들이술도 서울에서 곧 마셔보게 되길.

전수 교육관 전경.

샛골나이와 쪽 염색.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
정관채 염색장은 한국의 전통 천연염색 기술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곳인데, 특히 나주에서 유명한 천연염색 명인 정관채 선생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정관채 선생은 오랜 시간 쪽, 홍화, 감물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활용해 천연염색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전파해왔다. 자연 염색에 필요한 쪽과 잿물 등을 직접 생산하고 있는데, 그 자부심과 의지가 대단했다. 이 염색장은 작업장뿐 아니라 염색 체험과 전시를 통해 전통 염색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공간이다.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염색된 작품들이 역사와 시간이 스며든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이번엔 시간이 짧아서 염색 체험은 하지 못하고 설명만 듣고 왔는데, 다음에는 체험을 통해 천연염색을 좀 더 느껴보고 싶었다.

안성현 시인의 노래비가 있는 드들강.

전라남도 산림연구원의 나주 메타세콰이어 길.

폐역이 된 남평역.

도래 마을의 한옥.
나주의 자연과 역사가 깃든 장소
나주의 도래마을은 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마을로, 고즈넉한 한옥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특히 조선 시대 명문가였던 좌합 송씨 가문의 집성촌으로 유명하며, 지금도 옛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드들강은 영산강의 지류로, 여름이면 물놀이 명소로 사랑받고, 강 주변에는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길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며, 특히 가을이면 붉고 노란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남평역은 과거 남평 지역의 철도 교통 중심지였던 곳으로, 현재는 운행이 중단된 폐역이지만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감성적인 공간으로 변모해 사진 촬영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