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순간, 피에르 위그의 작품은 스스로 진화하며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휴먼 마스크 Human Mask>, 2014 피노 컬렉션, 안나 레나 필름 제공.

<리미널>, 2024~현재. 작가, 갤러리 샹탈 크루젤, 마리안 굿맨 갤러리, 하우저&워스, 에스더 쉬퍼, 타로 나수 제공.

<카마타>, 2024~현재. 작가, 갤러리 샹탈 크루젤, 마리안 굿맨 갤러리, 하우저&워스, 에스더 쉬퍼, 타로 나수 제공.

<리미널> 전시 전경. © 레스
어떤 존재는 태어나면서부터 정체성이 명확하게 정의되지만, 어떤 존재는 그렇지 않다. 어떤 공간은 처음부터 정적인 상태로 머무르지만, 어떤 공간은 살아 움직인다. 피에르 위그 Pierre Huyghe의 세계는 후자에 가깝다.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리미널 Liminal>은 하나의 완결된 전시라기보다 지속적으로 변하고 반응하는,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진 환경에서 전개된다. 위그는 작품에 대해 ‘보는’ 행위를 해체하고, ‘겪는’ 차원으로 확장한다. 그의 작업에서 관객은 단순히 감상자가 아니라, 공간과 관계를 맺으며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기능한다. 전시장의 센서는 환경을 감지하고, 데이터는 학습되며, 존재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상호 반응하며 변화한다. 전시 공간을 채우는 것은 단순한 설치물이 아니라, 스스로 진화하는 독립적인 생명체들이다. 위그의 세계에서는 고정된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과정 자체가 작품의 일부이며, 이를 통해 전시는 기존 형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된다. 전시 제목인 ‘리미널’은 작가에게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순간, 그 안에서 새로운 감각과 사고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신작 <리미널>, <카마타>, <이디엄>을 비롯해 지난 10여 년간 위그가 탐구해온 세계를 집약한 12개 작품을 포함한다. <카마타>에서는 인간의 흔적을 연구하는 기계가 등장하며, <암세포 변환기>에서는 실시간으로 증식하는 암세포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수족관 시리즈 역시 살아 있는 유기체가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생태계를 보여준다. 그의 작업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중심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 기계와 유기체, 데이터와 감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시스템을 형성할 뿐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구축하며,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와 기계가 공존하는 세계를 제안한다. 위그는 “나는 이야기의 형태가 선형성을 벗어날 때 흥미를 느낀다. 역사를 넘어선 서사 밖의 허구에 관한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혼돈을 지날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능성의 투영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환경이고, 시스템이며, 살아 있는 또 하나의 세계다. <리미널>을 경험하는 순간, 익숙한 사고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이 태어나는 찰나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전시는 오는 7월 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자료제공: 리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