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아름다운 벽지는 18세기 중산층의 손끝에서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기술과 취향,
그리고 시대를 담은 프랑스 벽지의 예술적 가치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뉴욕 RISD 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렌치 월페이퍼의 예술> 전시는 5월 11일까지 진행된다. © courtesy RISD

1840년대 베니스 풍광을 담은 벽지. © courtesy RISD
봄이 왔다. 굳이 이사를 가지 않더라도, 신선한 변화를 위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도배가 아닐까? 바로 이때 화사하고 우아한 포인트 벽지를 찾기도 하는데, 벽지 문화는 언제부터 왜 시작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전시회 <프렌치 월페이퍼의 예술>이 뉴욕 RISD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벽지는 집을 장식하는 ‘재료’ 정도로 여겨졌기에 시간이 흐르고 취향이 변하면 그저 버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는 그 시대의 사회상과 취향, 기술, 나아가 사회적 맥락과 경제 상황까지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후아드 Huard 컬렉터 부부는 1920~30년대에 버려진 벽지를 열정적으로 수집했고, 그 가치를 알아본 미술관은 1934년 컬렉션을 인수했다. 소장 컬렉션 500여 점 중 이번 전시에는 벽지, 도안 등 100여 점이 소개된다. 벽지 예술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종이 재료의 취약성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전시는 볼 기회가 많지 않을 듯하다.

아르 데코 감성의 뒤낭 컬렉션은 드 고네이 제품으로 유앤어스에서 판매. ⒸAlexandra Shamis

꽃과 새, 화병 등을 회화적으로 그려낸 피에트라 뒤라 컬렉션은 드 고네이 제품으로 유앤어스에서 판매. ⒸAlexandra Shamis
벽지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신분이 점점 높아지고 경제력을 확보하게 된 18~19세기의 중산층 시민이다. 그들은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 벽을 장식하던 아름답고 화려한 프레스코 혹은 타피스트리 대신 종이를 바르기 시작했다. 또한 18세기 중후반 목판인쇄 기술의 보급으로 화려한 패턴과 섬세한 장식이 대량생산하게 되어 그 영향을 미쳤다. 화가에게 주문하거나 타피스트리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벽지는 신분의 벽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허락된 사치스러운 인테리어인 셈이었다. 장식의 주제는 대체로 신화나 목가적 풍경, 전원생활, 혹은 이국적인 도시 풍경으로 로코코 궁중 문화에 대한 동경을 표출했다. 이 시기 인쇄술은 종이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천에도 인쇄할 수 있게 되면서 ‘투왈 드 주이 Toile de Jouy’라는 것도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인쇄산업의 근거지였던 주이 장 조자스 Jouy-en-Josas의 지명을 따서, ‘주이 지역의 천’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목판에서 동판으로, 기계식 롤러프린트 등 인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무늬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정교한 것으로, 또 점차 풍경화나 역사화 같은 대형 파노라마 장면까지 구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같은 무늬를 인쇄해 천은 커튼으로, 종이는 벽지로 통일감 있는 실내 인테리어를 구성하기도 했다. 수작업처럼 보이지만 기계화로 대량 확산되었던 중산층의 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섬세한 손기술로만 구현이 가능한 희귀한 작업이 됐다. 기술을 재현해내는 과정에서 이왕이면 가장 어려운 과정에 도전하는 벽지 전문가들도 생겨나고 있다. 주로 중국이나 프랑스에서 상류층을 위해 제작한 직접 손으로 그리거나 목판 인쇄 후 수작업으로 색을 채워넣는 벽지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벽지의 문화도 제작 방식, 크기, 용도, 계층 등에 따라 다양한 층위가 있다. 그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벽지 예술’에 대한 새로운 토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컬렉터와 디자이너 모두의 관심을 끌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