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갤러리들이 지금 주목하는 여성 작가들. 젠더, 환경, 이민 등 동시대의 이슈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이들의 작업은 조용하지만 강한 질문을 던진다.

P21에서 선보인 개인전 [Astropoodles] 전경. 왼쪽부터 [Lapis], [Urania/Panurania, Galaxy baby Stars, they come and go], [Astropoodles], [Candy].

© 허동욱
P21 <Astropoodles>
소피아 미촐라
그리스 태생 작가 소피아 미촐라는 여성 인물 중심의 신화적 세계를 그린다. 고대 조각, 일본 애니메이션, 포르노그래피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한 캐릭터들의 서사를 회화 시리즈로 풀어낸다. 과장된 비율, 강렬한 색감, 연극적인 배경이 특징이며,애니메이션, 아티스트 북 등으로 작업을 확장해왔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에바 프레젠후버, 필라코리아스 등 유럽 주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작품 속 강렬한 색감과 곡선, 관능적인 신체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이미지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나? 색을 에너지원처럼 사용한다. 강렬한 컬러는 시각적 충격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드럽게 끌어들이는 빛이 되기도 한다. 회화는 나에게 퍼포먼스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캔버스 주변을 걸으며 춤을 추듯 표면과 공간을 익히는 과정 자체가 안무처럼 다가온다. 캔버스는 하나의 무대인 셈이다.
여성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이 매우 자유롭고 대담하게 느껴진다. 여성의 몸을 독립적이고 살아 있는 존재로 그리고 싶다. 나체, 대형 스케일, 정면 응시는 자신감과 힘의 선언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자매이자 연인이며, 유혹자이자 괴물 같은 존재다. 부드럽고 매혹적이면서도 위협적이고 복수심을 품을 수도 있는 존재다. 1인칭 시점에서 ‘여성의 몸 안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그리고자 한다.
이번 <Astropoodles> 전시에서는 다양한 포즈와 장면이 등장한다. 어떤 이미지를 그리고 싶었나? 마치 유체이탈한 것처럼, 우주 공간을 떠다니며 달빛 아래 변형되는 인물들을 그렸다. 예를 들어 ‘Cosmic Pilaf’에서는 필라테스 자세처럼 발끝부터 떠오르고, ‘Transgalactic Coquettes’에선 붉은 머리카락에 휘감긴 채 변신 중이다. 성적인 암시와 자기 탐닉도 있다. 아름다움과 기괴함, 풍만함과 왜곡이 뒤섞인 장면들이다.
달, 우주 등 배경의 상징은 무엇인가? 나에게 달은 ‘변형’의 상징이다. 마치 주기를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신체 같지 않은가? 우주는 도피의 상징이다. 내 인물들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서 팽창하고,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는 존재로 느껴지기 바랐다.

[Cosmic Pilaf], 2025, 리넨에 유화, 180 × 220cm. © 허동욱

[Perfect lovers, Co orbital motion, eclipse], 2025, 리넨에 유화, 25 × 30cm. © 허동욱

[Astroleap/astrochamp], 2025, 리넨에 유화, 70 × 90cm. © 허동욱
이번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람 얼굴을 한 푸들은 어떤 상상에서 비롯됐나? ‘달’과 ‘변신’을 주제로 한 신화들을 떠올렸다. 예컨대 한국의 구미호나 그리스 신화의 스핑크스처럼, 유혹자이자 포식자인 존재들이다. 내 인물들도 처음엔 여성 누드처럼 보이지만 점차 힘을 드러낸다. 사냥감이 아니라 플레이어다. 〈Astropoodles〉는 그 진화된 형태로, 유머를 더했다. 귀엽지만 살짝 위협적인 소형견 같은 이미지랄까. 그래서인지 난 이들이 무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과 어려운 순간은 각각 언제인가? 가장 즐거운 건 마지막 터치, 즉 ‘액세서라이징’하는 단계다. 털방울이나 리본, 눈과 입술의 반짝임 같은 디테일을 더할 때다. 가장 어려운 건 중간 단계.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고, 방향을 잡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관객들이 작품 속 인물에게 자신을 투영하거나 공감할 수 있기 바란다. 잠시라도 물리적인 몸을 잊고, 떠오르고, 부유하고, 변화하고, 자유로워지는 감각을 경험해보면 좋겠다.
현재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곧 첫 번째 모노그래프가 출간된다. 지난 7년간의 작업이 담겼고, 알리스 마혼의 에세이와 제니퍼 히기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다. 2026년 초, 에바 프레젠후버와 함께하는 빈 첫 개인전에 맞춰 공개될 예정이다. 가을에는 상하이에서 전시할 계획이라 준비 중이다.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주제나 매체가 있다면? 설치작업과 애니메이션을 좀 더 깊이 실험해보고 싶다.
요즘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정말 좋아하는 1970년대 애니메이션 ‘Belladonna of Sadness’, 피에르 가르뎅의 스페이스 에이지 컬렉션, 그리고 니나 시몬의 ‘21st Century’.

[Under Maple Trees], 2025, 구리판에 유화, 프레임 포함, 50 × 40cm. © CHOI&CHOI Gallery and the artist

[Amitabha Buddha], 2021, 리넨에 유화, 250 ×185cm. © CHOI&CHOI Gallery and the artist

[Nurses and Cranes], 2025, 알루미늄 복합 패널 위 유화, 프레임 포함, 60 × 80cm. © CHOI&CHOI Gallery and the artist

© CHOI&CHOI Gallery and the artist
초이앤초이 갤러리 <In Times of Light>
헬레나 파라다 김
독일 쾰른에서 자란 한국계 스페인 작가 헬레나 파라다 김은 이민 1세대 간호사인 어머니의 사진첩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회화로 풀어낸다. 특히 전통 한복에 담긴 개인의 서사를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한 연작들을 선보여왔다. 최근에는 작업실 뒤 정원을 가꾸며 시작된 자연에 대한 관심을 식물 정물화로 이어가고 있으며, 피고 지는 꽃의 이미지에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적 시선을 담고 있다.
전시 제목인 <In Times of Light>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빛’은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을 직접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지만, 이 제목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긍정성과 희망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과 전반적인 비관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예술은 조용한 저항이 될 수 있다. 해답은 제시하지 않더라도, 아름다움은 위안이자 인간성을 지키려는 몸짓이 된다.
대표작 ‘Stella Maris’는 르네상스 회화와 한국 전통 혼례복인 활옷이 만난 작품이다. 활옷은 정교한 수공예뿐 아니라 세대를 잇는 ‘기억의 그릇’이라는 점에서 매혹적이었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혼례식에 단 한 번 입고, 딸에게 전하던 예복.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닳고 수선되며 조각보처럼 변해갔다. 나 역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품고 있어, 그런 조합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 작품에서는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성모자상’을 인용했고, 활옷 속 창처럼 보이는 부분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장면을 삽입했다.
‘Nurse and Cranes’ 연작에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어머니의 사진 앨범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중반, 어머니는 간호사로 독일에 오셨는데 그때 찍힌 사진 속 단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배경은 창덕궁의 19세기 병풍 이미지인데, 유니폼 입은 여성들과 학의 형태가 닮아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이 연결을 통해 여성 이주의 경험이 더 큰 신화적 서사로 확장되기 바랐다.
흐릿한 얼굴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어떤 의도가 있는가? 학창 시절에는 생생한 초상화를 많이 그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성보다는 ‘부재’와 ‘여백’이 더 중요해졌다. 특히 ‘Hanbok Figures’ 연작에서는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아우라를 지닌 존재로 인물을 그린다. 그들은 실제 한국 이주 여성들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디아스포라의 상징이기도 하다. 흐릿함은 멜랑콜리와 연결되며, 정체성의 점진적 소실에 대한 조용한 성찰이다.

[Green Earth], 2025, 리넨에 유화, 140 ×100cm. © CHOI&CHOI Gallery and the artist

[Stella Maris], 2024, 리넨에 유화, 150 × 200cm. © CHOI&CHOI Gallery and the artist

[San Geronimo], 2021, 리넨에 유화, 230 ×160cm. © CHOI&CHOI Gallery and the artist
직물이나 병풍 등 디테일은 아주 선명하게 묘사된다. 내 회화의 핵심은 선명함과 여백의 균형이다. 직물의 질감 같은 감각적인 요소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즐긴다. 동서양 회화 전통을 모두 참조하며, 그 경계에서 작업한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언제나 ‘만남’에서 시작된다. 사람일 수도, 예술 작품이나 감정일 수도 있다. 보이지 않던 기억을 가시화하는 과정이다. 미완의 그림을 멀리서 바라보며 그 가능성을 상상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고,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언제 이 그림이 완성되었는가’를 판단하는 일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관객도 나처럼 어떤 ‘만남’을 경험하기 바란다. 이름 없는 인물들이 감정을 환기하는 순간. 물론 이주 여성, 간호사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나는 뿌리 뽑힘, 정체성의 탐색, 상실, 융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결국 무엇을 느낄지는 관객의 몫이다.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주제나 매체가 있다면? 최근엔 금속 표면에 그리는 데 흥미를 느끼고 있다. 반사성 있는 재질은 또 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식물 이미지 연작처럼 개인사와 무관한 작업도 병행하고 싶다.
현재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곧 쾰른의 브라운스펠더에서 전시를 연다. 병풍 형식의 작업이 중심인데, 수련을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이와 더불어 쾰른 동아시아미술관에서 선보일 병풍 작업도 진행 중이다.
요즘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작업실 정원. 자연의 색과 질감, 곤충과꽃 등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받는다. 조용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끝없이 새로운 세계다.

© 송석우

이해반, 배틀그라운드 lll Battleground Group lll 연작. 천장의 설치작품은 [피어나는 조각들 Fragments in Bloom](2024). 그 아래에는 [멜랑콜리한 대지의 환영들 Figments of melancholic soil](2024).
지갤러리 <The Mutable Line>
이해반
국경과 경계의 풍경을 회화와 설치, 비디오 등으로 풀어내는 이해반은 특정 장소의 정치적, 지리적 맥락을 연구하며, 이데올로기와 자연이 충돌하는 지점을 시각화한다. 네덜란드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며, 회화적 상상과 리서치를 바탕으로 동시대의 복합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네덜란드 헤이그를 베이스로 활동하다가 5년 만에 한국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계기와 소감이 궁금하다. 지난 2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에서 1년간 작업하게 되었다. 환경이 바뀌니 새로운 동료 작가들과 관계도 맺고 작업에 몰입할 수 있어 감사하게 느낀다. 서울의 자극적인 에너지도 예전보다는 스스로 조율할 수 있게 되어 들뜨지 않고 집중하고 있다.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 구상은 어떻게 진행되나? 작업마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특정적인 장소 접근에서 출발한다. 전시 공간이나 환경에 따라 작업 형식과 매체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내가 경험한 신체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대형 파노라마 풍경 회화로 관객이 제한된 풍경 안에 몰입하게 하거나, 오브제와 설치로 공간의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작업 이전에는 리서치 트립을 통해 관련 이미지와 이야기를 수집하고, 드로잉으로 여러 레이어를 쌓아간다. 이렇게 축적된 요소들이 작업실에서 구체적 형태를 갖춘다.
지갤러리에서 선보일 신작에 대해 소개한다면?〈Battleground〉 시리즈는 ‘폭발’과 ‘개화’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충돌하며, 혼란 속 평온을 갈망하는 심리적 지형을 그린다. 사실과 추상이 뒤섞인 회화적 실험을 통해 경계의 풍경에서 감정의 균형을 탐구한다.
이번 단체전의 주제인 ‘경계와 기준’은 작업에 어떻게 반영되었나? 사람이 떠난 지정학적 경계지에는 지뢰 경고나 벙커 같은 인공 표식이 남고, 이는 자연과 섞이며 기하학적 추상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긴장과 균형의 순간에 주목하며,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복합적 감각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했다.

© 최철림

최수진, [Sunset Splash], 2025, 캔버스에 유화, 207 ×170cm.
최수진
최수진은 여행과 일상에서 마주한 장면을 기억과 감각으로 재조합해 회화적 공간을 만들어간다. 회화 과정 자체를 시각화한 ‘제작소’ 시리즈를 비롯해, 시간과 이미지가 겹쳐지는 장면을 꾸준히 탐구해왔다. OCI미술관, 대만 관두미술관, 베이징 아트미아 등 국내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작업을 선보이나? 총 다섯 점의 회화를 준비했다. 태양이 저물기 시작하는 골든 아워부터 깊은 밤 사이에 펼쳐지는, 낯설고 이상한 감각과 질문을 담고자 했다. 현실과 공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에 감지되는 낯선 현상을 관찰자 시점으로 그려냈다. 고요하고 평온하지만 어딘가 기묘한 감정의 결이 있는 시간이다.
이번 단체전의 주제인 ‘경계와 기준’은 작업에 어떻게 반영되었나.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뿐 아니라, 소리와 지리적 경계에 대해 더 깊이 의식하게 되었다. 현재 파주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는데, 지난여름부터 최근까지 어렴풋한 대남방송이 들려왔다. 마치 삭제된 데이터 구간처럼 북한이라는 존재를 소리로 체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기괴하게 어긋난 듯한 사운드를 들으며 역사적, 정서적 간극을 떠올렸다. 이후 대북방송에 대해 알게 되면서 발신자와 수신자의 모호한 위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명확한 수신자를 가지지 못한 질문, 입안에서 웅얼거리듯 맴도는 그 물음에 대해 회화로 응답하고자 했다.
요즘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고선경, 유선혜, 강혜빈 시인의 시집. 특히 강혜빈의 ‘미래는 허밍을 한다’를 좋아하는데,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무심한 멜로디처럼 흘러나오는 ‘허밍’이라는 감각이 회화적으로도 닮았다고 느낀다. 시에서 평범한 단어들을 산뜻하게, 때로는 짓궂게 배열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발화하기엔 너무 사소하고 내밀한 감정을 ‘허밍하듯’ 그려내고 싶은 요즘이다.

© Hyundai Museum of Kids Book and Art

카밀라 알베르티, [The Biome of Shared Skins. Gonfalon 2], 2025, 잎과 녹을 활용한 바이오 프린팅 면과 새틴 원단, 블루베리 천연 염색, 컴퓨터 자수, 225 ×112cm.
카밀라 알베르티
이탈리아 출신의 시각 예술가, 카밀라 알베르티는 버려진 사물과 자연 재료를 통해 공존과 순환을 이야기한다. 고대 기술과 연금술에서 영감을 받아 물질 변형을 시각화하고, 서로 다른 생물 간의 새로운 관계를 상상한다. ‘2025 밀라노 트리엔날레’, ‘2024 몰타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2023 광주 비엔날레’ 이탈리아 파빌리온 초청 작가로 소개된 바 있다.
지갤러리에서 선보일 신작에 대해 소개한다면? 2023년부터 시작된 두 연작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과 서울 창동 레지던시에서 작업하며, 샤머니즘과 한국 무속신앙에 영감을 받아 ‘죽음과 생명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실험해왔다. 폐기물이 다른 생명종에 의해 식민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천연 염료와 식물성 접착제로 재가공해 조각, 직물 작업으로 확장했다. ‘The Alchemy of Melted Bodies’는 부패하는 자연물을 염료로 재가공한 조각 작품이고, ‘The Biome of Shared Skins’는 권력의 상징인 중세 깃발에서 영감을 받은 배너 형태의 직물 작업이다.
이번 단체전의 주제인 ‘경계와 기준’은 작업에 어떻게 반영되었나. 나에게 경계는 뚜렷한 선이 아니라 건너고, 풀어헤치고, 다시 엮을 수 있는 투과 가능한 문턱이다. 그간 작업에서 꾸준히 경계가 흐려지고 형태가 전이되는 회색지대에 주목해왔다. 사람이 떠난 폐허가 식물과 곤충의 서식지가 되며 생태계로 바뀌는 순간처럼, 우리 ‘몸’ 역시 수많은 미생물과 생물 종이 공생하는 복합 유기체다. 나는 이러한 경계의 불안정성을 통해 위계적 사고나 문화적 고정 관념에 질문을 던지고, 변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두려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내 작업은 늘 ‘경계와 그 너머’에 집중한다. 생과 사,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인공 사이의 분절된 경계가 실은 얼마나 모호하고 유동적인지 드러내고 싶었다. 모든 물질은 생명과 접속하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이 전시로 인해 우리가 잊고 있던 ‘공존’의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되기 바란다. 우리는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