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의 기억 위에 다시 세운 문화의 건축물. 역사의 층위를 품은 그랑 팔레가 본래의 아름다움과 기능을 되살려
새로운 시대의 공공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샤티용 아키텍의 설계 아래 새롭게 태어난 그랑 팔레의 돔 공간, 나브. © Charly Broyez

건물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플라스 상트랄레.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시작으로 파리 중심에 자리해온 그랑 팔레가 4년간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지난 6월 전면 재개장했다. 샤티용 아키텍트 Chatillon Architectes의 설계 아래, 이 상징적인 건축물은 7만7000㎡에 달하는 공간을 새롭게 단장하며 다시금 문화의 무대로 돌아왔다. 3천장이 넘는 도면과 기록을 바탕으로, 이들은 공간의 시야를 회복시키고 전시 관람의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확장했다. 전시 공간 역시 근본부터 재정비됐다. 수천 점의 조각과 장식, 그리고 중앙 회랑부터 센강까지 가로지르는 동선을 복원하며, 부근에 250여 종의 식물을 도입해 도시 생태계까지 고려한 설계를 주도한 샤티용 아키텍트와 이야기를 나눴다.

웅장한 외관을 갖춘 그랑 팔레의 모습. © Charly Broyez

샤티용 아키텍트를 이끄는 시몽 샤티용과 프랑수아 샤티용. © Antoine Doyen

1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로통드 당탱의 모습. © Antoine Mercusot

완벽한 대칭을 자랑하는 그랑 팔레의 당탱 내부. © Charly Broyez
그랑 팔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자 상징과 같은 건물이다. 프랑스인이자 건축가로서,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랑 팔레가 가진 상징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19세기, 순수미술 Beaux-Arts은 단순한 학문보다는 하나의 문명적 과업에 가까웠다. 당시 프랑스는 자국의 위상을 굳게 믿고 있었고, 만국박람회는 기술과 예술, 문화를 세계에 선보이는 무대였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그 정점에서 한 세기의 대미를 장식할 가장 대담하고 혁신적인 건축, 회화, 조각을 전시할 기회였다. 여기에서 ‘그랑 팔레 데 보자르 Grand Palais des BeauxArts’라는 아이디어가 나와 샹젤리제 정원 한가운데 이 건축물이 세워지게 됐다. 그 자체로 하나의 건축적 문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예술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했을 때, 리노베이션을 계획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역사적인 건축물을 작업할 때엔 많은 제약과 고려 사항이 따른다. 특히 그랑 팔레처럼 규모가 큰 구조물의 경우엔 복원과 재해석이 필요한 공간이 많다. 건물 안에 숨어 있던 디테일과 아름다움을 다시 전면에 드러내고 싶었다. 계획 내내 중심에 둔 질문은 ‘무엇을 추가하고, 무엇을 남기며, 무엇을 제거할 것인가’였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복원이 아닌, 이 건물을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준비하는 일이었다. 결국 ‘이 건물이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 오랜 시간 어떻게 쓰일 수 있을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3천 장이 넘는 도면과 기록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는데. 남겨야 할 것과 교체해야 할 것을 결정하는 일은 신중해야 했다. 수천 건의 아카이브 문서를 조사했고, 빌딩정보모델링 BIM 기술을 도입해 정보를 정리했다. 이처럼 역사적 건물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BIM 기술이 사용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총 15GB에 달하는 데이터는 측량 도면 수천 장, 포인트 클라우드, 아카이브 도면 등을 포함한 15만 개 이상의 정보로 구성된 35개의 디지털 모델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통해 그려내고자 한 궁극적인 그림이 있다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공간을 ‘다시 엮어내는’ 일이었다. 역사적 공간과 갤러리, 발코니, 철제 구조물, 조각상 등을 복원하는 것이 한 축이었다면, 또 다른 축은 그것들이 제 기능을 다하도록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었다. 방문객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 공간인 르 레제다, 르 그랑 카페를 만들고 40개의 엘리베이터와 30개의 계단 또한 추가했다. 르 레제다는 미쉐린 스타 셰프 티에리 막스 Thierry Marx가 운영한다. 그 결과, 이 건물은 대규모 행사를 위한 넓은 공간과 함께 더 작고 섬세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건물 남쪽 외곽에 자리한 갤러리의 토대. © Antoine Mercusot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인 살롱 센. © Cyrille Weiner


모던한 구조와 계단은 건물에 새롭게 설치한 요소 중 하나다. © Cyrille Weiner

측면에서 바라본 그랑 팔레의 장 페로 파사드. © Antoine Mercusot
리노베이션을 거치며 새롭게 조성된 전시 공간에 대해 설명해달라. ‘플라스 상트랄레 Place Centrale는 건물의 중심 공간으로, 한쪽에는 2024 파리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돔 공간인 나브 Nave, 반대쪽에는 로통드 당탱 Rotonde d’Antin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공간들을 나눴던 파티션은 처음 건물이 세워졌던 당시를 재현하기 위해 과감히 제거했다. 이 중심 공간에는 그랑 팔레 Rmn과 보수 공사로 조만간 휴관에 들어갈 퐁피두 센터가 큐레이팅하는 전시 이 열릴 갤러리들이 배치되어 있고, 하부층에는 새로운 방문자 서비스 공간인 살롱 센 Salon Seine 또한 마련돼 있다. 로통드 당탱에서는 또 다른 갤러리 공간이 이어지고, 나브에서는 대형 설치 작품과 이벤트가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계획돼 있다.
그랑 팔레를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게 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 또한 기울였다고 들었다. 건물을 둘러싼 새로운 그랑 팔레 정원은 바로 옆 샹젤리제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됐다. 곡선형 화단과 산책길, 잔디밭, 그리고 다양한 식물로 구성해 샹젤리제 정원과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처칠 대로에는 상록수 덤불을 심고, 250종 이상의 식물, 장미, 다년생 식물, 구근류 등 6만여 그루의 식물을 심었다. 새로 조성된 잔디밭은 건물 지붕에서 모은 빗물로 관수되며, 새롭게 심은 식물 중 대부분은 파리 지역 자생종에서 선택해 지역 생물 다양성과 곤충을 보호하기로 했다.
이번 리노베이션을 통해 ‘수십 년 동안 감춰졌던 건물의 정체성을 되살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랑 팔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랑팔레는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진 건물이고, 동시에 단 하나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건축가 앙리 드글랑 Henri Deglane, 알베르루베 Albert Louvet, 알베르 토마 Albert Thomas가 각각 설계한 3개의 주요 구조물로 구성됐으며, 이를 또 다른 건축가인 샤를 지로 Charles Girault가 총괄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건축 양식이 충돌하고 연결되며, 프랑스 건축사 전체를 이야기하는 독특한 흐름이 형성됐다. 우리는 이제 그 이야기에 우리 손으로 새로운 장을 더할 수 있게 됐다. 건축을 넘어, 프랑스 문화의 상징이며, 혁신과 사유, 호기심이 교차하는 중심지로 말이다.
앞으로 이 건축물이 대중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 바라는가? 그동안의 그랑 팔레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이 건물은 단지 하나의 전시장이 아니라, 원래부터 하나의 문화지구로서 설계되었다. 이번 리노베이션은 이 공공의 아이콘을 진정한 ‘공공 건축물’로 되돌리는 과정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단지 멀리서 감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건물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이 상징적인 공간을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잊힌 구석과 디테일, 숨겨진 보석들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 공간을 걸을 때, 웅장한 구조만이 아니라 작고 세심한 디테일에도 눈을 돌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