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직접 고른 한 권보다 누군가 건네준 한 권이 더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봄기운이 완연히 내려앉은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출판인들이 계절에 어울리는 독서 리스트를 보내왔다.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마음의 양식을 차곡차곡 쌓아줄 7권의 책을 소개한다.
맛있는책방 ‘장은실’ 편집장
요리책의 매력은 레시피를 전달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장은실 편집장은 식재료부터 집밥, 술안주, 저속노화 식단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맛있는’ 경험을 책 위에 풀어낸다. 이를 담는 무형의 책방인 맛있는책방은 현재 30권 이상의 책과 함께 독자들에게 먹음직스러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PICK 1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저, 양윤옥 번역 ㅣ 현대문학)

대다수의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일’을 하는 어른으로 자라난다. 아이를 키우는 일, 직장을 다니는 일, 책을 만드는 일까지.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바로 그 모든 이들이 한 번쯤 읽어보길 바라는 책이다. “규칙적인 것이 비난, 질타, 상처 이 모든 것들을 평준화합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일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소설가로서의 삶 속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조용한 지혜가 깃들어 있다. 일을 싫고 따분한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평생을 동반자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덕분에 나 역시 작은 반복이 지닌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배웠다.
PICK 2 :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테라오 겐 저, 남미혜 번역 ㅣ 아르테)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는 일본의 인기 가전 회사인 발뮤다를 창업한 테라오 겐의 자적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분류상 자기 계발서에 가깝지만, 글을 풀어내는 문장 하나하나가 무대에 오르기 전 심호흡을 고르는 배우의 독백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읽으면 읽을수록 단순한 성공담을 넘어 저자의 태도와 감각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그의 인생으로 빚은 발뮤다라는 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 어디에도 없던 아름다운 기억을 제품이라는 형태로 상품화한 그의 천재적인 아이디어. 기능에만 충실한 딱딱한 산업 제품이라 여겨지던 가전에 부드러움과 온기를 입혀낸 발상의 원천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몽스북 ‘안지선 대표’
날것의 글이 근사한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저자 발굴부터 기획, 편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을 홀로 해내는 안지선 대표는 몽스북의 책이 ‘즐거움이 살아 숨 쉬길’ 바라며, 오늘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문장과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PICK 1 : 밤에 우리 영혼은(켄트 하루프 저, 김재성 번역 ㅣ 뮤진트리)

“그러던 어느 날 애디 무어는 루이스 워터스를 만나러 갔다.” 첫 문장부터 단번에 매료된 소설. 삶의 긴 여정 어디쯤에서 일어날 법한 특별한 경험을 ‘지금부터 들려주겠다’고 예고하는 듯한 “그러던 어느 날”이라는 표현이 유독 마음을 건드린다. 노년의 삶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 이웃에 살던(서로 내외하던) 70대 남녀가 나누는, 어쩌면 파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대화조차 전혀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차분하고 우아하게, 그러나 용감하게 현실의 외로움에 정면으로 맞서는 당당한 태도. 그리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행복을 꾸려가고자 하는 정직한 마음이 공감 갔던 <밤에 우리 영혼은>. 영화로도 실사화됐지만, 상상력을 덧입혀 읽을 수 있는 소설 버전이 훨씬 매력적이다.
PICK 2 : 예술이 필요한 시간(이세영 저, 마로니에북스)

미술관의 관람객들이 SNS 업로드용 사진을 남기기 위해 몰려다니는 인플루언서(혹은 지망생)으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였을까. 어느새 전시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시들해졌다. 그러다 마주한 <예술이 필요한 시간>은 그간의 감정을 되돌리기에 충분했다. 예술을 대하는 저자의 순수하고도 솔직한 태도에 몇 번이나 심장이 쿵쿵 뛰었고, 덩달아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미술관 리스트도 늘어났다. 무엇보다 이 책의 진가는 목차에 등장하는 여러 전시관을 직접 찾아다니며,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보통 사람은 찾아내지 못할 통찰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와 같은 굵직한 전시를 맡아온 저자의 이력이 그 시선을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브.레드 ‘이나래 대표’
월간지 에디터에서 출발해 출판사를 이끄는 대표에 이르기까지, 이나래 편집장의 삶은 언제나 ‘책’이라는 축 위에서 이어져 왔다. 생활, 미식, 공간, 환경, 여가 등 일상 가까이의 소재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녀는, 독자들이 책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가꿀 수 있길 희망한다.
PICK 1 : 꽃의 말(나탈리 샤인 저, 박경리 번역 ㅣ 브.레드)

책 선물만큼 주저되는 품목도 없을 것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선물하기에 좋은 책을 출간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꽃의 말>은 그렇게 태어난 책으로, 프랑스 도서를 원작으로 한다. 손에 딱 들어차는 이 작은 분홍빛 양장본은 옆면에 로즈골드 금장이 더해져 손에 쥐는 순간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난다. 앤티크한 꽃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 너머로 페이지를 한 겹 한 겹 넘기다 보면, 꽃말과 그에 얽힌 이야기, 역사, 설화가 차분히 펼쳐진다. 옮긴이 박경리의 추천사를 빌려 말하자면, ‘꽃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지금 이곳, 오래전 어느 먼 지방, 나와 당신 앞에서 피고 지며 흘러온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PICK 2 : 푸른 기록(신상욱 저 ㅣ 소요서가)

봄이면 마음이 먼저 들썩인다. 봄바람을 따라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기도, 소생하는 자연의 생명력에 이끌려 훌쩍 떠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쉬운 대로 여행서를 펼쳐 든다. <푸른 기록>은 그런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쪽 염색가인 저자가 쪽빛을 찾아 십여 년에 걸쳐 중국, 베트남, 라오스, 태국, 일본의 오지를 누빈 기록으로, 수려한 문장과 밀도 높은 묘사, 진솔한 고백이 깊은 온기를 전한다. 무엇보다 가슴과 머리에서 흘러 넘쳐 쓰인 듯한 글들이 나를 붙든다. “밭에서 늙으신 할머니는 잡초나 다름없어 보이는 쪽을 못마땅해 하셨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색도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열정과 흥분과 광기를 잃은 삶은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PICK 3 : 꽤 낙천적인 아이(원소윤 저 ㅣ 민음사)

세상이 치여 시무룩해진 성인의 눈을 단번에 붙잡는 제목과, 상큼하면서도 어딘가 울적한 정서를 품은 표지에 이끌려 집어 든 <꽤 낙천적인 아이>. 풋내기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울고 웃긴 삶의 궤적을 낙천적인 목소리로 풀어낸 원소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책을 읽은 나의 한줄평은 ‘즐겁고, 웃기고, 통쾌하다!’ 절로 끄덕여지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와 재치 있는 농담이 맞물리며, 술술 읽히는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누구나 한 자락씩 간직한 유년의 기억을 이토록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다니. ‘코미디언들은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내 생각을 증명하듯 소설 속 문장과 표현, 흐름 모두 놀라울 만큼 영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