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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구조와 질서를 금속으로 풀어낸 신혜정 작가의 장신구.

피아제 로즈 컬렉션이 더해지며 금속으로 빚은 자연과 다이아몬드 장미가 시들지 않는 꽃처럼 영원히 머문다.

들꽃, 열매, 가을 이파리 등 식물 본연의 부드럽고 섬세한 형태를 형상화한 아트 주얼리 작품들.

비움의 장신구, 신혜정 공예가

오랫동안 ‘자연’을 중심 주제로 작업해오셨습니다. 자연을 모티프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유학한 로체스터는 자연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유학생인 제 일상은 단조롭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자연을 관찰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지도교수님이 제게 금속공예의 기법적 표현은 능숙하니 감성 표현에 더 신경 써보라고 조언해주며, 일대일 수업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수업을 오랜 시간 진행해주셨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자연의 형태와 색감, 질감에 관심 갖게 되었고, 그렇게 관찰한 자연의 특징을 다양한 금속공예 기법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패션 주얼리 회사에 다니셨다고요. 상업적인 디자인에서 아트 주얼리 작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 우연히 패션 주얼리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트 주얼리 작가로 활동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미국에서 취업이나 비자발급을 받기가 너무 어렵던 시기라, 회사에서 비자를 서포트해주고 베네핏도 좋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패션 주얼리 분야는 흐름이 빠르고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진행하기 때문에 일이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예술가로서 나만의 작업 세계를 펼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한 것 같습니다. 그 후로 한국에 귀국하면서 예술장신구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현재 성신여대 미술대학 공예과 금속 분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형태를 작품으로 옮기는 과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작업은 자연물을 수집하고 관찰하고 스케치한 뒤 제작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떨어진 나뭇가지를 줍거나, 열매를 관찰하며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과의 대화와 상상력이 제 작업의 중요한 원동력이 됩니다. 관찰한 자연물을 때로는 과장하거나 축소해 표현합니다. 차갑고 딱딱한 물성을 지닌 금속을 가지고, 따뜻하고 유연한 자연의 모습을 표현해가는 과정이 매우 즐겁습니다.

2022년, 학고재에서 열린 개인전 전경.

자연을 관찰하며 발견한 조형적 규칙성은 어떤 것인가요? 자연물을 오래 관찰하다 보니 그 구조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경험하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자유롭고 불규칙해 보이지만, 자연물의 세부 구조는 사실 매우 정교한 규칙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자유로움 속에 숨겨진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질서의 배열은 인간이 만들어온 표현 방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합니다. 독일 사진작가 카를 블로스펠트 Karl Blossfeldt의 식물 사진을 보면 각 식물의 구조적 질서와 조형성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피상적으로 보이는 세계의 너머를 보려는 것이 창작자의 근원적 욕망이라고 한다면, 보이는 것 이면에 자리한 보이지 않는 새로운 질서를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러한 자연의 질서를 조형적으로 해석해 ‘숨겨진 이면’ 시리즈를 2022년부터 이어오고 있습니다.

최근 작업은 이전보다 훨씬 단순하고 미니멀한 형태로 변화한 것처럼 보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원형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해왔습니다. 표현 기법이 점점 익숙해질수록 작품은 더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아졌지만, 동시에 뭔가 결여된 느낌도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지금의 방식이 내가 원하는 조형 표현인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의 본질을 표현하는 방법이 ‘더함’이 아니라 ‘덜어냄’ 혹은 ‘비움’일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함과 복잡함의 문제라기보다 표현하려는 대상과 현상을 더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재료에서도 특히 은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가공에서는 금과 은만큼 좋은 재료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단단하면서도 열을 가하면 잘 늘어나고 변형이 자유롭습니다. 용접이나 땜을 할 때도 접합이 잘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은의 영롱한 색감을 매우 좋아합니다. 은의 순백색은 하얀 도화지와 같아서 생각을 확장하고 시야를 넓혀주는 힘을 가진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공예가이자 성신여대 공예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신혜정 작가.

망치로 두드려 형태를 만드는 수작업 과정이 마치 하나의 수행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망치로 두드려서 형태를 성형하고, 다시 망치로 표면을 다듬는 과정인 제 작업이 다른 금속공예 작업과 많이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수공예적인 마감이기도 하고 작업 시간이 더 걸리는 과정인데, 공예가라 그런지 작업에 몰입하는 시간이 좋습니다. 반복작업을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져 그 안에서 평안한 상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명상과 같은 시간이라고 느껴집니다.

장신구는 신체에 착용될 때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다른 미술 장르와 차별화 된 특성을 갖는 것 같아요. ‘착용되는 예술’이라는 장신구의 특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몇 해 전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회화를 구매한 적이 있습니다. 집에 걸어두고 감상하고 있지만 저 혼자만 보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과 실제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장신구는 신분이나 지위, 개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저는 장신구가 착용자의 생각과 개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독립적인 예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색과 표면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요. 저는 작업의 주요 소재로 은을 사용하며, 은의 변색을 최소화하기 위해 ‘순은올리기’ 방식으로 표면을 마감해왔습니다. 지난해 씨앗갤러리에서 열린 <흑은백> 전시에서는 황화칼륨을 사용해 은의 표면을 검게 착색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하얗게 마감된 은이 순백의 소녀 같은 느낌이라면, 검게 착색된 작업은 늠름한 청년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작업 콘셉트의 전환이나 형태 변화로도 작업의 진행이 어려운 순간을 작가는 자주 직면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색감 표현의 다양성은 작가의 생각을 환기하게 하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독일 뮌헨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주얼리 전시 슈무크 2026의 신혜정 작가 부스.

현재 독일 뮌헨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주얼리 전시 슈무크 Schmuck 2026에 참여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슈무크는 어떤 성격의 전시이며,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요? 독일 뮌헨에서 매년 3월 열리는 슈무크는 현대 장신구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 전시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의 작가가 지원하고 60여 명이 선정됩니다. 이 시기가 되면 뮌헨 도시 전체가 거대한 전시장처럼 변하고, 갤러리와 카페 등 곳곳에서 현대 장신구 전시가 열립니다. 저 역시 현대 장신구 작가로 지원했고, 올해 작품이 선정되어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국제 아트 주얼리 무대에서 느끼는 동시대 흐름과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들려주세요. 아트 주얼리라는 분야가 낯선 분도 많을 겁니다. 아트 주얼리는 현대 장신구 혹은 예술 장신구라는 명칭과 혼용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사회적 메시지로부터 개인의 서사에 이르기까지 예술 장신구의 주제는 다양합니다. 표현 방법에서 개념적 조형성 또는 장인적 기법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등 다양하게 시도되어왔습니다. 지난 20년간은 물성 탐구를 통한 조형 표현을 극대화한 작업이 상당히 많이 시도되고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 일상이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작가 개인의 고유한 생각이 담긴 아트 주얼리가 좀 더 주목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제 작업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실제 자연에서 채집한 나뭇가지들을 다듬어 아트 주얼리로 승화시킨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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