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라는 명분 아래 인간의 욕망과 실패의 구조를 모형으로 재구성하는 톰 삭스의 작품 세계.

© Joshua White

© Alex W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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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 Joshua White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톰 삭스 전> 전시 전경. © Joshua White
텍스트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은 언제나 손으로 다듬어진다. 톰 삭스의 세계는 그 물리적 충동에서 출발한다. 테이프와 목재, 합판, 폐소재와 글루건 등 산업화된 세계의 잔재들은 그의 손을 거치면 새로운 우주가 된다. 그는 나사의 상징을 덧입은 기계와 모듈과 도구를 정교하게 재현하지만, 그 모든 정밀함은 철저히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 대량 생산이 아닌 수공의 반복을 통해 기술의 신화를 해체하고, 인간적 집념으로 다시 써 내려간다. 톰 삭스의 작업은 일종의 역설이다. 무한한 우주를 탐사하기 위해 선택한 매체는 극도로제한된 일상적 재료이고, 고도의 기술을 상징하는 구조물은 의도적으로 어설픈 수작업의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에서 관객은 ‘진짜 탐사’의 감각을 마주하게 된다. 완벽하게 작동하는 시스템보다, 뒤틀리고 닳아 있는 구조물 안에서 오히려 더 깊은 현실감을 느낀다. 그는 정교한 허구의 세계를 통해 오히려 기술과 진보의 신화를 해부하고, 인간 욕망의 물리적 구조를 파헤친다.
톰 삭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연작 200여 점 전체를 한자리에서 펼치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톰 삭스 전>은 그가 오랜 시간 구축해온 우주 탐사 서사의 최신 장이다. 화성에 착륙해 암석을 채집하고,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서 다도회를 열고,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는 장면들이 조형물과 설치, 영상의 형태로 펼쳐진다. 이는 더 이상 우주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이 무엇을 꿈꾸는 존재인지에 대한 사유다. 탐사라는 명분 아래 반복되는 제의, 훈련, 실험은 과학과 종교, 전쟁과 엔터테인먼트가 교차하는 이 시대의 심리적 풍경을 증폭시킨다. 톰 삭스는 질문한다. ‘우리가 우주를 탐사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믿음의 구조를 만드는 일인가? 무엇을 위한 시스템이고 누구를 위한 도전인가?’ 그의 작업은 전시라기보다 의례이고, 장식이 아닌 훈련이며, 재현이 아니라 고백이다. 그것은 단순히 보고 지나치는 물건이 아니라, 관객의 시간과 감각을 요구하는, 하나의 사적 체험이다. 기계가 진실을 말하지 않던 시대에, 톰 삭스는 손의 언어로 새로운 우주를 만든다. 탐사의 본질은 어디에도 닿지 못함에 있다. 그러나 그 실패조차 인간적인 방식으로 품어내는 이 거대한 연극은, 우리에게 익숙한 미래의 상징을 가장 낯선 방식으로 다시 경험하게 한다. 전시는 오는 9월 7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뮤지엄 전시관 1관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