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의 낮과 밤을 즐길 수 있는 투어 가이드

코펜하겐의 낮과 밤을 즐길 수 있는 투어 가이드

코펜하겐의 낮과 밤을 즐길 수 있는 투어 가이드

디자인 페어의 열기를 뒤로하고, 3일간 머물며 발견한 인상적인 장소들.
호텔, 갤러리, 디자인 숍, 레스토랑과 카페까지 코펜하겐의 낮과 밤을 즐길 수 있는 투어 가이드.

손끝의 조형, 루이스 로
한때 온라인으로만 동경하던 오브제 브랜드 루이스로를 직접 마주하게 된 순간. 2018년 오픈한 루이스 로 갤러리는 브랜드의 조형적 미학을 오롯이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미니멀하지만 결코 평면적이지 않은 디자인, 재료 고유의 질감과 형태에 집중한 조형 언어가 공간 전체를 채운다. 스툴, 글라스, 오브제, 조명 하나하나가 단정한 조각처럼 놓여 있고, 갤러리 한쪽에는 로컬들이 사랑하는 카페 ‘더 로 바 The Roe Bar’가 함께 자리한다. 이번 3dd에서는 디자이너 듀오 멘체 오텐스타인과 루이스 로 앤더슨의 협업으로 완성한 새로운 가구와 오브제를 대거 선보이기도 했다.

무채색 풍경, 스튜디오 올리버 구스타프

코펜하겐 기반의 디자이너 올리버 구스타프의 스튜디오. 역사적 뮤지엄 빌딩을 개조해, 그의 독창적인 ‘멜랑콜리적 순수미’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자체 제작 가구 라인과 리미티드 오브제, 세계 각국에서 엄선한 디자인 제품, 희귀 앤티크로 가득하다. 15년간의 세계 탐험에서 비롯된, 장르와 시대를 초월하는 모노크롬적 미학이 오감을 사로잡는다. 현재 이곳에서는 미셸 라미와 함께한 전시 이 열리고 있다. 릭 오웬스의 조각 같은 가구를 중심으로, 스칼렛 루즈, 지오반니 바산 등의 예술 작품이 공간을 채운다. 사전 예약은 필수며, 운이 좋다면 열정 가득한 구스타프의 큐레이션 아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50년대로의 체크인, 호텔 알렉산드라
덴마크 디자인의 황금기이던 1950년대를 고스란히 품은 부티크 호텔. 핀 율, 아르네 야콥센, 베르너 팬톤 등 데니시 모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오리지널 가구가 객실마다 놓여 있다. 각기 다른 디자이너에서 영감을 받아 꾸민 22개 객실은 작지만 조화롭고, 시대적 디테일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맞춤형 멀티 퍼니처, 우드 톤 중심의 따뜻한 소재감, 최소한의 조명까지. 작지만 포근했고, 무엇보다 폭 안기는 듯한 침대 덕분에 꿀잠이 가능한 곳. 호텔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렌털 서비스도 꼭 이용해볼 것! 도시를 천천히 둘러보기에 이보다 더 코펜하겐다운 방법은 없으니까.

탐독하는 서점, 뉴 맥스
책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 2016년 덴마크 유틀란드의 호르센스에서 예스퍼스반가드와 예스퍼 옥스홀름 미켈센에 의해 설립되어, 2021년 코펜하겐 첫 쇼룸으로 확장됐다. 놈 아키텍츠의 요나스 비에르 푸울센이 설계한 쇼룸은 고전 도서관의 품격을 현대 노르딕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그저 책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머물며 탐독’하고픈 분위기가 특징. 이번 3dd 기간에는 펌리빙과 함께 욘 웃손의 집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와 북토크를 선보이며 책과 공간, 디자인을 입체적으로 엮어낸 바 있다.

낯선 호텔의 등장, 호텔 프라이하븐
노르드하븐은 코펜하겐 북동쪽 끝자락으로서, 오래된 항구를 재생해 만들어진 신흥 개발지다. 산업 유산을 그대로 품은 이곳엔 지금도 새 건물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고, 바다와 메트로가 공존하는 드문 구조 덕에 조용하고 느리게 흐른다. 이곳에 새롭게 등장한 호텔 프라이하븐 Frihavn은 이번 3dd 기간에 기자단을 위해 단 3일간 사전 오픈을 했다. 아직 구글 검색도 되지 않고, 외벽 공사가 한창이었다. 방 구조는 꽤 독특한 편이다. 낮은 계단을 몇 개 오르면 침대가 있고,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아주 작은 라운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대리석 위에 나무로 짠 의자 2개, 침대와 연결된 작은 책상과 벽 조명 등 호텔보다는 디자인 레지던시 성격에 가까워 보인다. 호텔 바로 앞엔 아틀리에 셉템버가, 가까운 거리엔 오도 하우스 호텔이 있다. 정식 오픈은 8월이다.

현대미술의 심장, 코펜하겐 컨템포러리

현대미술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리프스할레 섬의 대형 용접 공장을 개조해 만든 7000㎡ 규모의 국제 아트센터로 설치미술, 퍼포먼스, 비디오아트 등 대규모 현대미술을 전시한다. 2016년 설립 이래 요코 오노, 브루스 나우먼, 클라우디아 콤테 등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개최해왔다. 현재는 전시 가 진행 중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감정, 정체성, 기술의 윤리를 탐색하는 15개 팀 작가들이 각자의 언어로 미래 기술 생태를 표현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갈 계획이라면, 근처 코펜하겐 스트리트 푸드 마켓에서 음식을 즐기거나 항구를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해볼 것을 추천한다.

한입의 코펜하겐, 스튜디오×키친
코펜하겐 중심가, 프레데릭스스타덴 인근의 가장 트렌디한 카페 중 하나. 아틀리에 셉템버, 프라마, 보테가 발리에 등과 함께 이 지역 특유의 ‘쿨 바이브’를 퍼뜨린다. 이 힙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스튜디오×키친은 벨기에 듀오 뮬러 반 세베른의 디자인 가구들이 중심을 이루는 공간이다. 미니멀하면서도 차가운 듯 세련된 노르딕 감성을 전한다. 아침엔 커피와 조식, 낮에는 가벼운 런치와 달콤한 페이스트리를 즐길 수 있다. 피크 타임에 방문하면 오랜 시간 웨이팅하게 될 수 있으니 붐비는 시간을 피할 것!

시대를 넘나드는 안목, 뤼 베르트
1994년, 미칼라 예센이 설립한 뤼 베르트는 코펜하겐 디자인 신의 상징 같은 존재다. 1700년대 건물 특유의 우아함 위에, 동시대 디자인과 빈티지 오브제를 절묘하게 조율해 감각적인 공간을 완성한다. 한 점 한 점 선별한 아트 피스와 가구가 어우러진 쇼룸에는 시간의 결이 느껴지고, 같은 공간에 자리한 뤼 베르트 갤러리는 덴마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신진 및 기성 작가들의 전시도 이어진다. 이번 3dd 기간에는 세계 각지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하이엔드 가구와 예술 오브제를 큐레이션해, 뤼 베르트만의 안목이 돋보이는 특별한 쇼케이스를 펼쳤다.

한낮의 낭만, 라 반치나
코펜하겐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곳. 항만 노동자들의 대기실로 사용되던 작은 목조 건물에 들어선 레스토랑 겸 와인바. 매일 아침 조식을 시작으로, 그날그날의 농장에서 직접 들여온 재료로 만든 요리를 선보인다. 메뉴에는 고기가 없고, 대신 신선한 생선 요리와 커피, 구운 빵, 내추럴 와인이 자리한다. 메뉴는 매일 창문에 써 붙인다. 예약 없이 매력적인 블루 하우스 안팎 어디든 자리를 잡으면 된다. 레스토랑 옆 부두에서는 연중 수영을 즐길 수 있고, 웹사이트를 통해 사우나도 예약할 수 있다. 데크에 자리를 잡고 하나둘 물속으로 뛰어드는 코펜하겐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곳이야말로 천국이 아닐까’ 싶던, 그 여유롭고도 아름다운 풍경이 아직 눈에 선하다.

미쉐린 스뫼레브뢰드, 아만스 1921
스뫼레브뢰드 하나로 미쉐린의 주목을 받은 곳. 덴마크 점심 문화의 품격을 완전히 새로 쓴 레스토랑 아만스 1921은 아담 아만스가 2006년 문을 연 이래, 한때 저급한 패스트푸드로 치부되던 오픈 샌드위치를 섬세한 요리로 끌어올렸다. 직접 갈아 만든 사워도우 호밀빵 위에 수제로 마리네이드한 청어, 크리미한 무스, 신선한 채소와 크런치한 토핑이 정교하게 겹쳐진다. 그 완성도는, ‘오픈 샌드위치계의 에르메스’라 불릴 만하다. 정통 덴마크식으로 즐기고 싶다면, 스뫼레브뢰드 한 접시에 덴마크 스타일의 샷 스냅스를 곁들여보자. 허브를 우려낸 스냅스는 매끄러우면서 깊은 풍미로 음식의 감도를 한층 끌어올려줄 것이다.

CREDIT

에디터

TAGS
백년 동안의 고독

백년 동안의 고독

백년 동안의 고독

한 세기가 지나서야 우리에게 도달한 힐마 아프 클린트의 감각 이전의 추상, 그리고 예술의 잠재 행태로서의 회화.

힐마 아프 클린트, (No. 7, 성인기), 그룹 IV, 10점의 대형 그림, 1907, 종이에 템페라, 캔버스에 부착, 315 × 235cm.

힐마 아프 클린트, (No. 1, 인식의 나무), W 연작, 1913, 종이에 수채, 과슈, 흑연, 잉크, 45.7 × 29.5cm.

힐마 아프 클린트, <나선형 계단에 관한 조형 습작(빛과 그림자)>, 1880, 종이에 목탄, 흑연, 62 × 49cm.

예술은 언제나 동시대의 감각만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그 시차를 가장 예리하게 보여주는 작가다. 20세기 초, 칸딘스키보다 이른 시기에 추상 회화를 전개한 그의 회화는 시대가 감당하기엔 너무 앞서 있었다. “내가 죽은 후 20년 동안 내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미래를 위한 그림”이라 명명한 그의 작업들은 한 세기에 걸친 지연 끝, 마침내 우리에게 도달했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은 바로 그 시간의 틈을 가로지른 전시다. 전시는 총 139점의 회화, 드로잉, 기록을 통해 클린트의 회화적 사유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이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제목에 쓰인 ‘적절한 소환’이라는 표현은 그에 대한 반문에 가깝다. 활동한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그를 다시 불러야 하는가. 이 질문은 클린트의 작업이 한 시대에 머문 유산이 아닌, 오늘날의 감각과 미학을 다시 해석하게 하는 살아 있는 언어임을 전제한다.

힐마 아프 클린트, (No. 2), 그룹 X, 제단화, 1915, 캔버스에 유채, 금속박, 238 ×179cm.

힐마 아프 클린트, <지도: 영국>, 1932, 종이에 수채, 흑연, 70 × 48.5cm.

전시 중심에는 연작 〈신전을 위한 회화〉가 자리한다. 인간의 삶과 의식, 우주의 구조를 시각화한 이 작품들은 나선, 원, 대칭, 점 등의 기호로 구성된 복합적 상징 체계다. 형이상학적 사유가 회화의 구조로 전이된 기호들 사이로, 기하학과 색채가 영혼과 직관의 파장을 기록한다. 이후 전개된 〈인식의 나무〉,〈원자〉, 〈무제〉 연작에 이르러서는 미시적 세계와 내면의 질서를 연결하는 더 정제된 형식이 출현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조형을 넘어선, 감각과 인식이 교차하는 사유의 구조물이다. 전시가 구성된 방식 역시 이 회화적 질서를 반영한다. 작가의 사유와 질문을 따라가는 전시 구성은 클린트의 작업들을 하나의 서사로 환원하기보다는, 감각의 흐름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배열되었다. 그의 생애를 다룬 할리나 디르스츠카 감독의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 미래를 위한 그림>을 상시 상영하고, 전시 후반부에 ‘감각 소환장’을 마련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를 단지 선구적인 여성 추상화가로 정의하는 것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사유가 지닌 급진성을 제한하는 일이다. 그는 단지 앞선 시기를 살아간 화가가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언어로 회화의 미래를 선취한 존재였다. 감각이전의 형상, 질서 이전의 구조를 탐구한 그의 질문은 오랜 시간의 침묵 끝에 지금 우리에게 도달했고, 마침내 우리는 그 질문 앞에 응답할 준비를 갖췄다. 전시는 오는 10월 26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CREDIT

에디터

TAGS
헷갈리는 미술 작품 사이에서

헷갈리는 미술 작품 사이에서

헷갈리는 미술 작품 사이에서

작품이 서로 닮아가는 시대, 예술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닮음과 동조의 메커니즘 속에서, 진짜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의 프라다 파운데이션 전시. © Elmar Vestner

리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 © Ian Art Consulting

현재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루스 아사와의 회고전은 오는 9월 2일까지 진행된다. © 2025 Ruth Asawa Lanier, Inc., Courtesy David Zwirner / Don Ross

오는 9월 22일까지 보스톤 ICA 미술관에서 열리는 치하루 시오타의 대규모 전시.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 © Bottega Strozzi

구겐하임에서 열린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 © Wikimedia

지난 스위스 아트 바젤 페어에서 루스 아사와 Ruth Asawa(1926~2013)의 작품이 950만 달러(약 130억원)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에서 활동한 일본 출신의 여성 예술가로서, 뒤늦게 재평가받기 시작하여 그녀의 작품으로 만든 우표가 발행되는가 하면, 현재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진행 중이다(4월 5일부터 9월 2일까지). 철사줄을 정교하게 엮어 만든 고유의 조각품은 무겁지 않고 가벼운 조각, 받침대 없이 공중에 매다는 형태로 조각의 개념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같은 일본 출신 작가 치하루 시오타(1972~ )의 작품이 연상된다. 오사카 출신으로서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인데, 실을 이용해서 공간 속에 거미줄 같은 그물망을 설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치하루 시오타의 대규모 전시회는 현재 보스톤 ICA 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5월 22일~9월 22일). 이 두 작가는 일본 여성 작가라는 공통점 외에는 서로 활동한 시간도 공간도 다르고, 한 작가가 다른 작가를 모방한 것도 아닌데 신기할 정도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런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2023년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크게 연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2024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전시한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의 작품도 유사하다. 작가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지만 마네킹이나 인형을 활용해 실재처럼 연출하여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전법을 구사하는 형식상의 공통점이 있다. 또한 하늘에 매달린 반짝거리는 조형물은 올라퍼 엘리아슨, 토마스 사라세노도 만들어 헷갈리기 일쑤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홍콩 작가 카싱 룽의 라부부 캐릭터는 오타니 워크숍의 공룡 캐릭터와 이빨이 닮았다. 어떤 작품을 보면 또 다른 작가가 생각나 헷갈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공통점을 포착하며 작품을 제대로 봤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이러한 유사성은 모두 우연일까? 놀랍게도 이런 현상은 자연계에도 있다. 물리학자 스티븐 스트로가츠의 ‘동조 Synchronization’ 현상 연구에 따르면, 반딧불은 제각기 빛을 깜빡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차 동시에 깜빡이게 되고, 심지어 여러 개의 메트로놈을 틀어놓으면 엇박으로 움직이다가 점차 같은 박자로 맞춰진다고 한다. 생명체끼리 서로 신호를 주고 받고, 심지어 메트로놈 같은 비생명체 경우에도 진동으로 상호작용을 하며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정보전달 효율을 높이는 구조로 수렴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그 실체가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에 대한 연구다. 예술도 이 세계의 일부라는 점에서 동조의 메커니즘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은 예술계의 케케묵은 모방설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 서로 베낀 것이 아니라, 집단 지성의 결과로 하나의 예술적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예술 사조가 만들어지면, 다음에는 그에 반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오면서 예술적 진화가 이루어져 왔다. 자연계에도 동일화 이후에는 변이가 나타나며 진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지금은 동조 현상만 지속되고 있는 느낌이다. 무엇이든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니 새로운 이미지도 금새 식상해져 참조가 되기 어렵다. 활로를 찾기 위해 인간의 눈이 아닌 기계나 로봇, 인공지능에서 희망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라고 여겨질 만한 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이 시대의 거울이라는 점에서 이런 흥미로운 가설도 세워본다. 예술가들이 일부러 창작 욕구를 뒤로 미룬 채, 동의어를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임계점에 정체되어 포화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모두가 점점 똑같아지고 있는 시대의 답답함을 좀 더 많은 사람이 깨닫게 되었을 때, ‘짠’ 하고 보여줄 다음 페이지의 예술을 기대해본다.

CREDIT

에디터

WRITER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