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속 오래된 호텔에서 시작된 집.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는 뉴욕의 아파트에 프랑스 가족의 예술 컬렉션과 조각 같은 가구, 대담한 색채가 어우러졌다.


호텔 객실에 아침 햇살이 내려앉은 순간. 데이비드 호크니의 콜라주 작품 에는 사 라진 마이플라워 호텔의 한 장면이 담겨 있다. 크리나 아르기레스쿠 로가 드 Crina Arghirescu Rogard는 15 센트럴 파크 웨스트의 집을 구상하던 중 이 그림을 만났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실제로 그곳에 머물고 있는 듯한 고요한 분위기였다. 흥미롭게도 지금의 아파트가 들어선 곳은 바로 그림 속 호텔이 있던 자리다. 1926년 문을 연 호텔은 사라졌지만, 오 래된 그림은 이 집의 출발점이 됐다. 로버트 A. M. 스턴 아키텍츠가 설계한 이 건물은 밝은 인디애나 석회암 외관과 고전적인 비례에서 묵직한 우아함 이 느껴진다. 크리나는 건축이 기품을 이어가면서도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 방식에 어울리도록 풀어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유럽을 오가며 살아가 는 프랑스 가족이 원한 것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집. 예술 작품을 편안하게 감상하고, 시간이 흐르며 컬렉션을 하나씩 늘려갈 수 있 는 공간이었다.


약 278㎡ 규모의 아파트는 원래 두 개의 독립된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를 하나로 연결하면서 크리나는 집 안을 걷는 경험부터 다시 설계 했다. 가족이 조용히 머무는 곳에서 손님과 어울리는 공간까지 동선은 자 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중심에는 센트럴 파크를 향해 열린 거실이 있다. 바 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창 너머로 나무와 공원의 풍경이 펼쳐지고, 오 렌지색 벨벳과 모헤어로 만든 곡선 소파가 창을 향해 길게 몸을 뻗는다. 그 아래에는 이끼를 닮은 짙은 초록색 카펫을 깔았다. 가구의 높이를 낮추 고 창 앞을 비워둔 덕분에 시선은 막힘 없이 바깥으로 이어진다. 계절과 시 간에 따라 달라지는 공원 풍경이 거실 표정을 계속해서 바꾸는 것이다. 가 구 역시 단순히 앉거나 물건을 올려두는 용도에 머물지 않는다. 공간에 놓 이는 순간 또 하나의 조각이 된다. 파올로 코로나 Paolo Corona의 가구 는 독특한 형태와 묵직한 존재감으로 시선을 붙들고, 존 주니어 킴 John Junior Kim의 조명은 빛과 그림자로 공간에 또 다른 표정을 더한다. 주방 에서는 붉은색 다리가 인상적인 다이닝 테이블이 기다린다. 아티스트 리즈 홉킨스 Liz Hopkins와 협업해 만든 맞춤형 레진 테이블로, 여러 겹의 반투 명한 표면이 마치 땅속 지층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예술 작품들이 시선 끝에 놓이면서 활기를 더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KRJST 스튜디오의 태피스트리로 시작해 클라우디아 도링 바에스 Claudia Doring Baez, 에스더 루이즈 Esther Ruiz의 작품이 벽과 공 간에 색을 더하고, 노르딕 노츠의 러그와 맞춤 제작한 거울이 서로 다른 장 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집주인의 취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돈된 갤러리와 편안한 생활 공간 사이, 그 미 묘한 경계에 이 집의 매력이 있다.





존재감이 강한 물건들을 모아두고도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는 것은 비워둔 자리까지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크리나는 각 오브제 사이에 여백을 두고, 크기와 위치를 세심하게 조율했다. 곡선으로 휘어진 가구와 표면의 질감을 따라 빛이 움직이면 색도 조금씩 달라진다. 낮에는 선명했던 형태 가 저녁에는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식이다. 이 집을 채우는 것은 예 술 작품과 디자인 가구만이 아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공원의 풍경, 시간 에 따라 달라지는 빛, 그 사이를 오가며 쌓여갈 가족의 일상까지 모두 집의 일부다. 호크니의 그림이 오래된 호텔의 한순간을 담아냈듯, 이 집도 언젠 가 가족의 기억 속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예술을 가까이 두되 생활을 밀 어내지 않고, 아름다운 물건을 모으되 서로를 가리지 않는 집. 시간이 흐르 며 컬렉션이 늘어날수록 이곳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