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March Editor´s Words
대한민국에 얼마 남지 않은 주택가에 살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부촌도 아니고 오늘 저녁 옆집 반찬이 청국장인지 생선구이 인지 후각만으로 감별할 수 있는 하늘 아래 달 동네도 아니다.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그렇듯 유년 시절은 단독주택에서 보내다가 처음 아파트를 경험한 건 9살, 반포에서였다. 전업주부로서 고만고만한 이웃사촌과 친척분들 사이에서 세 딸의 뒤치닥거리에 턱밑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루하루를 살던 엄마에게 고급 정보가 흘러갔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자석에 이끌린 철가루 같았던 엄마의 선택은 두고두고 주위분들의 부러움과 탄성을 자아냈다. 내일을 모르는 인간사에서 미래를 내다본 예지력의 소유자, 8학군을 중심으로 한 강남의 발전상을 미리 꿰뚫은 현대판 맹모. 우리 가족의 반포행은 의도나 진실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해석되었다. 1961년 대한민국 최초의 마포 아파트가 지어지고 그로부터 18년 후였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끌어올리던 아파트가 곳곳에 출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 만난 반포는 도시도 시골도 아닌 오후 3시 같은 어중간한 아파트촌에 가까웠다. 비 그친 여름 오후, 배수펌프장 부근 찰박찰박하게 고인 물을 휘저으면 어김없이 올챙이를 잡을 수 있었다. 겨울방학이면 마루 걸레질을 한 대가로 엄마로부터 3백원을 받아 쥐고 노는 논에 물을 대어 얼려 만든 스케이트장으로 출근했다. 짧은 겨울 해가 넘어갈 때까지 내복이 젖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스케이트를 탔다. 거의 매일 옥양목이 찢어지는 듯 신음하는 스피커를 뚫고 퀸시 존스의 ‘Ai no Corrida’가 흘렀다. 흥에 겨워 타다가 문득 내 핏속에 자맥질하고 있을지 모를 그러나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천재 스케이터의 DNA를 의심하곤 했다. 아파트촌에서의 시절은 지금도 올챙이의 서식지를 짚어내는 본능적인 직감, 퀸시 존스 음악 세계에의 개안이라는 두 가지 소득을 남겼다. 그러나 정작 타인들에게 낯선 반포행이 부러움의 대상으로 치환되었 던 것은 다름 아닌 부동산의 환금성에 있었다. 최상급 극성 엄마들이 결집한 다는 8학군의 한 가운데 살았으면서도 정작 엄마의 교육은 세 딸 모두의 자율에 맡기는 방목에 가까웠기에 폭풍의 핵에 휘말려 산다는 고달픔도 없었다.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나 의미도 알 리 없었다. 세상을 깨닫기 전에 공동주택에 서의 삶은 끝나고 결혼과 동시에 다시 단독주택의 삶으로 유턴했다. 도돌이표를 찍는 것 같았던 주택으로의 귀환은 성인이 된 후 다시 ‘집’의 기억을 과거로부터 호명하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집은 가족의 성소에 대한 복기다. 행정구역으로 분류되는 ‘동’이 아니라 동네, 동네 산책이라는 단어의 푸근함을 각인 시키는 이 동네는 우리가 2002년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아이 한 명 어른 네 명 그리고 두 마리의 대형견으로 구성된 대가족을 위한 방공호 같았다. 아버님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 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님의 짧은 문장 속에 겹겹이 함축된 의미를 하나씩 알아갔다. 이를테면 담장 너머 우리 집 쪽으로 걸쳐진 감나무 가지가 미안했던 옆집 할머니는 늦가을이면 주먹만한 감을 쟁반 가득 담아 주 셨다든지 눈 내린 다음 날 앞집 아저씨가 골목을 쓸어 놓으시면 다음에 눈이 왔을 땐 우리가 일찍 나가 치운다든지 하는. 집은 각각 개별로 존재하면서도 삶의 거점이라는 서사적인 의미를 초월한다는 깨달음을 선사하는, 사소하지 만 긴 여운을 남기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집집 마다 이유와 사연이 제각각인 개들이 한두 마리씩 마당에서 불침번을 서다가 누가 오면 초인종보다도 빨리 반응했다. 집은 그렇게 적극적인 위로와 충전, 소통의 방공호로서 존재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성의 논리 앞에서 집의 순기능을 외치는 목소리는 최후의 단말마처럼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동네를 향해 밀물처럼 낮게 진격하던 상공간들이 띄엄띄엄 보이더니 1년 새 변화에 가속이 붙은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못 보던 가게들에 간판이 내걸린다. 슬금슬금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환호하던 이웃들은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옆집 할머니는 지난가을 감나무가 벌겋게 물들기 전 이사 갔다. 돌보는 이 없던 감나무는 고사했다. 봄이면 옆집은 주택을 개조한 상가 건물로 레노베이션될 것이라 했다. 뒷집은 다세대 주택을 올릴 예정이라 했다. 평범한 주택가였던 동네의 원주민들이 빠져나가자 카페와 식당에서 내놓은 쓰레기며 이방인들의 불법 주차로 난맥상을 이루었다. 나무를 지탱하는 잔뿌리 같던 주민들은 집을 팔고 떠나는데 우리는 여전히 떠날 계획이 없다. 집 한 채가 삶의 족적 전부라 해도 늘그막에 삶의 터전을 바꾸고 싶지 않다던 범부의 바람을 지켜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개들이 물어뜯고 아이의 낙서가 뒤섞여 흡사 잭슨 폴락 같다고 위로했던 벽지와 스팀 청소기 남발로 망가진 마룻바닥부터 고쳐야겠다. 올봄 홈&데코의 위력을 누구보다 강렬히 실감할 듯하다.
메종 마리 끌레르 한국판 편집장 노 은 아
출처 〈MAISON〉2014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