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발견

3월의 발견

3월의 발견

지루했던 겨울이 끝나갑니다. 3월호를 준비하다 보니 마음은 이미 봄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사들이고 싶네요. 에디터들의 장바구니에는 무엇이 담겼을까요?

봄을 여는 향기
대학생 시절에는 종종 외출 전 남동생 방에 들어가 남성용 향수를 몰래 뿌리고 나오곤 했었다.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시원한 향의 남성용 향수를 뿌리면 왠지 모를 시크함이 온몸에서 배어나온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하는 열기가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3월. 뭔가 새로운 기분을 내고 싶은 마음에 향수를 쇼핑하던 중 딥티크의 탐다오 오 드 퍼퓸을 발견했다. 처음 눈이 갔던 이유는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패키지 때문. 사각형의 각은 모두 사라지고 둥그스름해진 모양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향수를 몇 번 뿌려보니 시원한 나무 향이 나기 시작했다. 겨울의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한층 가뿐해진 발걸음에 어울릴 듯한 향기이다. 점원이 남성들이 주로 쓰는 향수라며 조심스럽게 귀띔했지만, 옛 추억도 떠오르는 것이 괜히 더 마음에 들었다. 스키니 진에 운동화를 신을 때 주로 뿌리게 될 것 같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딥티크 매장에서 구입. 75ml 15만원.
에디터 송정림

강박증자의 노트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니를 통해 반복 학습의 법칙을 유추할 수 있듯이 어떤 한 분야에 지독한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의외의 새로운 해답을 얻을 때가 있다.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킨키펌도 강박증을 앓고 있는 가상 인물을 통해 독특하고 재미있는 노트를 디자인했다. 플레인 빌라(Plain Villa) 201호에 살고 있는 새뮤얼 노이드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새뮤얼 노이드: 도큐먼트 타입’은 꼼꼼한 스케줄 관리가 필요한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패키지를 열면 진공 포장된 노트와 함께 새뮤얼 씨가 쓴 편지(일종의 설명서 역할을 한다)가 들어 있다. 또 노트에는 청결, 규칙, 기록, 수집에 집착하는 그답게 박테리아가 서식하는 장소, 소음 레벨 등의 정보를 수록하고 또 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도록 6개의 짧은 에피소드를 넣어 재미를 더했다. 내지는 한 페이지를 4개로 나누고 왼쪽에 칸을 나누어 중요한 내용을 간단하게 메모하기 좋다. 챕터원에서 구입. 1만6천원.
에디터 최고은

기분 좋은 티타임
커피 대신 핫초코를 즐겨 마신다. 요즘은 구수한 메밀차에 푹 빠져 있다. 그런 내게 주전자는 생활 필수 아이템이다. 빈티지 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때가 탄 스테인리스 소재의 주전자를 이제 그만 사용해도 되겠다 생각하던 차에 엄마의 권유로 편리함의 극치라는 무선 전기주전자를 구입했다. 무선 전기주전자 사용자들의 온라인 리뷰를 꼼꼼히 살폈다. 주전자 내부가 모두 스테인리스라서 환경호르몬을 걱정할 필요 없다는 영국 브랜드 러셀홉스와 일본 브랜드 레꼴뜨의 제품 중 고심하다 조금 더 길쭉하게 생긴 레꼴뜨 제품을 선택했다.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과 커피를 좋아하는 손님이 오면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주기에 좋은 긴 주둥이가 마음에 들었다. 소비전력이 1000W로 물이 끓는 속도가 느리다는 평이 있었는데 전기주전자를 처음 사용하는 내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즘, 나의 신중한 선택에 흡족해하는 중이다. 스칸에서 구입. 6만5천원.
에디터 이하나

싸게 사는 짜릿함
뒤늦게 소셜 커머스의 매력에 빠져 마우스를 붙잡고 며칠 밤을 지새는 중이다. 특히 신혼 때 구입한 살림살이가 지겨워지기 시작한 7년 차 주부인 나에게 ‘프리미엄 주방’ 배너는 유혹 그 자체다. 르크루제와 스타우브의 주물냄비, 휘슬러의 압력밥솥, 웨지우드와 로얄코펜하겐의 테이블웨어가 30~60% 할인된 가격으로 선보이는 데다 ‘한정 수량’에 ‘마감 임박’이라며 애교 섞인 협박까지 해대니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쌓여가는 택배 박스에 남편은 “대중화된 프리미엄은 더 이상 프리미엄이 아니다”라며 비웃지만 단순한 나는 그저 예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좋기만 하다. 특히 단돈 3만5천원에 건진 이딸라 커피잔은 횡재 중에 횡재. 내일쯤엔 2만2천원에 구입한 로얄코펜하겐 빈티지 이어(year) 플레이트가 도착하겠지. 아, 언젠가는 에르메스 커피잔도 나왔으면 좋겠다!
에디터 최영은

에디터 <메종> 편집부 | 포토그래퍼 진희석
출처 〈MAISON〉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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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부르는 향기

봄을 부르는 향기

봄을 부르는 향기

처음 맞이하는 것도 아닌데 봄은 늘 현재형으로 다가옵니다.

처음 맞이하는 것도 아닌데 봄은 늘 현재형으로 다가옵니다.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냉이와 달래의 쌉싸래한 내음, 자꾸만 심호흡을 하고 싶어지는 청량한 허브 향, 바람에 실려오는 봄꽃 향기까지…. 이렇듯 봄을 부르는 향기들은 겨우내 동면에 들어갔던 감각을 뒤흔들고 생명력과 희망을 느끼게 해주는 묘약입니다.

– 파스텔 그레이와 블루가 산뜻한 레오 액센트 테이블. 블루 라이닝으로 포인트를 부드러운 형태의 3인용 소파, 그레이 쿠션과 옐로 쿠션은 라이프스타일 숍 이노홈의 2014년 신상품이다. 문의 www.innohome.co.kr

에디터 박명주ㅣ 포토그래퍼 진희석
출처 〈MAISON〉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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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WORDS

EDITOR´S WORDS

EDITOR´S WORDS

2014 March Editor´s Words

대한민국에 얼마 남지 않은 주택가에 살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부촌도 아니고 오늘 저녁 옆집 반찬이 청국장인지 생선구이 인지 후각만으로 감별할 수 있는 하늘 아래 달 동네도 아니다.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그렇듯 유년 시절은 단독주택에서 보내다가 처음 아파트를 경험한 건 9살, 반포에서였다. 전업주부로서 고만고만한 이웃사촌과 친척분들 사이에서 세 딸의 뒤치닥거리에 턱밑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루하루를 살던 엄마에게 고급 정보가 흘러갔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자석에 이끌린 철가루 같았던 엄마의 선택은 두고두고 주위분들의 부러움과 탄성을 자아냈다. 내일을 모르는 인간사에서 미래를 내다본 예지력의 소유자, 8학군을 중심으로 한 강남의 발전상을 미리 꿰뚫은 현대판 맹모. 우리 가족의 반포행은 의도나 진실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해석되었다. 1961년 대한민국 최초의 마포 아파트가 지어지고 그로부터 18년 후였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끌어올리던 아파트가 곳곳에 출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 만난 반포는 도시도 시골도 아닌 오후 3시 같은 어중간한 아파트촌에 가까웠다. 비 그친 여름 오후, 배수펌프장 부근 찰박찰박하게 고인 물을 휘저으면 어김없이 올챙이를 잡을 수 있었다. 겨울방학이면 마루 걸레질을 한 대가로 엄마로부터 3백원을 받아 쥐고 노는 논에 물을 대어 얼려 만든 스케이트장으로 출근했다. 짧은 겨울 해가 넘어갈 때까지 내복이 젖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스케이트를 탔다. 거의 매일 옥양목이 찢어지는 듯 신음하는 스피커를 뚫고 퀸시 존스의 ‘Ai no Corrida’가 흘렀다. 흥에 겨워 타다가 문득 내 핏속에 자맥질하고 있을지 모를 그러나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천재 스케이터의 DNA를 의심하곤 했다. 아파트촌에서의 시절은 지금도 올챙이의 서식지를 짚어내는 본능적인 직감, 퀸시 존스 음악 세계에의 개안이라는 두 가지 소득을 남겼다. 그러나 정작 타인들에게 낯선 반포행이 부러움의 대상으로 치환되었 던 것은 다름 아닌 부동산의 환금성에 있었다. 최상급 극성 엄마들이 결집한 다는 8학군의 한 가운데 살았으면서도 정작 엄마의 교육은 세 딸 모두의 자율에 맡기는 방목에 가까웠기에 폭풍의 핵에 휘말려 산다는 고달픔도 없었다.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나 의미도 알 리 없었다. 세상을 깨닫기 전에 공동주택에 서의 삶은 끝나고 결혼과 동시에 다시 단독주택의 삶으로 유턴했다. 도돌이표를 찍는 것 같았던 주택으로의 귀환은 성인이 된 후 다시 ‘집’의 기억을 과거로부터 호명하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집은 가족의 성소에 대한 복기다. 행정구역으로 분류되는 ‘동’이 아니라 동네, 동네 산책이라는 단어의 푸근함을 각인 시키는 이 동네는 우리가 2002년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아이 한 명 어른 네 명 그리고 두 마리의 대형견으로 구성된 대가족을 위한 방공호 같았다. 아버님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 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님의 짧은 문장 속에 겹겹이 함축된 의미를 하나씩 알아갔다. 이를테면 담장 너머 우리 집 쪽으로 걸쳐진 감나무 가지가 미안했던 옆집 할머니는 늦가을이면 주먹만한 감을 쟁반 가득 담아 주 셨다든지 눈 내린 다음 날 앞집 아저씨가 골목을 쓸어 놓으시면 다음에 눈이 왔을 땐 우리가 일찍 나가 치운다든지 하는. 집은 각각 개별로 존재하면서도 삶의 거점이라는 서사적인 의미를 초월한다는 깨달음을 선사하는, 사소하지 만 긴 여운을 남기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집집 마다 이유와 사연이 제각각인 개들이 한두 마리씩 마당에서 불침번을 서다가 누가 오면 초인종보다도 빨리 반응했다. 집은 그렇게 적극적인 위로와 충전, 소통의 방공호로서 존재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성의 논리 앞에서 집의 순기능을 외치는 목소리는 최후의 단말마처럼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동네를 향해 밀물처럼 낮게 진격하던 상공간들이 띄엄띄엄 보이더니 1년 새 변화에 가속이 붙은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못 보던 가게들에 간판이 내걸린다. 슬금슬금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환호하던 이웃들은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옆집 할머니는 지난가을 감나무가 벌겋게 물들기 전 이사 갔다. 돌보는 이 없던 감나무는 고사했다. 봄이면 옆집은 주택을 개조한 상가 건물로 레노베이션될 것이라 했다. 뒷집은 다세대 주택을 올릴 예정이라 했다. 평범한 주택가였던 동네의 원주민들이 빠져나가자 카페와 식당에서 내놓은 쓰레기며 이방인들의 불법 주차로 난맥상을 이루었다. 나무를 지탱하는 잔뿌리 같던 주민들은 집을 팔고 떠나는데 우리는 여전히 떠날 계획이 없다. 집 한 채가 삶의 족적 전부라 해도 늘그막에 삶의 터전을 바꾸고 싶지 않다던 범부의 바람을 지켜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개들이 물어뜯고 아이의 낙서가 뒤섞여 흡사 잭슨 폴락 같다고 위로했던 벽지와 스팀 청소기 남발로 망가진 마룻바닥부터 고쳐야겠다. 올봄 홈&데코의 위력을 누구보다 강렬히 실감할 듯하다.

메종 마리 끌레르 한국판 편집장 노 은 아
출처 〈MAISON〉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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