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소비자는 단순히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만드는 과정까지 정직하고 도덕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브랜드를 원하고 있다.
↑ 마리몬드의 핸드폰 케이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고 소비자들은 과대 포장과 거품 가격으로 치장한 물건 가운데 알짜배기를 골라내는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기업을 지탄하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그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드림 소사이어티>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미래 학자 롤프 얀센 Rolf Jensen이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며 소비의 형태가 상품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견했듯 이제 소비자는 물건을 생산, 판매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원칙을 지킨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고 있다.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를 고려해 생산된 물건을 우선하는 윤리적 소비 문화는 기업의 경영 방침을 투명하고 정직하게 바꾸도록 요구하는 한편, 건강한 사회를 위한 초석으로 기능한다.
몇몇 국내 기업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착안해 사회 공헌 이벤트를 진행하지만 마케팅에 그치고 마는 것이 현실. 이에 반해 소규모 브랜드는 좀더 실질적인 방법으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 리사이클 디자인 브랜드인 ‘에코파티메아리’는 재단법인 아름다운가게에 소속된 사업국으로 아름가운가게에 기증된 물품 중 재사용이 어려운 일부 의류 등을 활용한 쿠션, 오가닉 인형 등 다양한 제품을 재생산하고 있다. 또 홍대점과 삼청점 2개의 편집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오브젝트’는 자연환경과 사회 구성원을 고려해 작가와 디자이너들을 찾아내고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고품질 제품을 생산, 판매한다. 뿐만 아니라 구매자가 가격을 정해 상품을 구매하는 ‘양심 가격 상품’, 쓰지 않는 물건을 갖다 놓고 필요한 물건과 바꿔 가져가는 ‘물물교환 프로젝트’ 등 사람들로 하여금 물건의 가치와 그 소중함을 느끼도록 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오브젝트의 유세미나 대표는 “오브젝트에서 현재 쇼핑백 재사용을 하고 있는데 지방에서 쇼핑백을 택배로 기부해주는 분도 있었다”며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에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왼쪽 플로리스트로 활동했던 故 김순악, 故 심달연 할머니의 작품으로 만든 데커레이션 페이퍼 북.
오른쪽 버려지는 간판 원단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을 덧입혀 만든 가방.
오브젝트에서 발굴한 대표 브랜드 몇 곳을 소개한다. 먼저 ‘브라더 앤 시스터 Brother and Sister’는 유행이 지나거나 약간의 흠집 등으로 인해 버려진 가구를 전국 각지에서 수거, 기부 받은 다음 해체해 새롭게 디자인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선보인다. 또 디자이너 김미영과 나율이 함께 만든 리빙 브랜드 ‘클라우드롭 Cloudrop’은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 ‘순환’의 의미를 담고자 하며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한 가지 제품이 다양한 기능을 하도록 디자인해 사용자로 하여금 구입한 물건을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리몬드 mary mond’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예 심리치료 과정을 통해 꽃을 눌러 만드는 미술 작품을 모티프로 활용한 디자인 상품을 제작한다. 실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통해 역사 속으로 잊혀질 뻔한 이야기를 우리 세대에 전달하고자 한다. 그 밖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오픈 프로젝트 ‘블룸바이 Bloom by’를 진행하고 있으며 상품 디자인과 콘텐츠 제작, 공연 기획 등에 참여하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또 마리몬드는 판매 순이익의 70%를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전달해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실버 세대와의 소통을 중점에둔 브랜드 ‘무스타쵸스’는 손바느질에 능숙한 할머니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으며, 귀여운 콧수염이 인상적인 캐릭터 인형을 우리마포복지관의 할머니들이 손수 제작하고 있다.
왼쪽 위, 오른쪽 강원도에서 정성껏 키운 토종 흰꽃 민들레 패키지.
왼쪽 아래 오브젝트 홍대점의 매장 전경.
윤리적 소비 문화는 먹거리에도 적용된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재료를 속이고 많은 합성첨가물을 사용하는 일부 기업들의 행태가 도를 넘어서면서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진 요즘,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더욱 크다. 전남 영광에 있는 ‘유레카 목장’은 들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자란 소의 젖으로 정성껏 유제품을 만든다. 플레인 요거트, 무지방 우유, 발효 버터 등을 주문할 수 있으며 가장 신선하고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일주일에 화요일 단 하루만 배송하고 있다. 또 소박한 강원도 농민의 이야기와 정직한 먹거리를 소개하는 ‘브라이트 모닝 Bright Morning’은 정직한 땀방울로 일궈낸 우리 농수산물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강원도 양구에서 생산한 토종 흰꽃 민들레와 민들레 뿌리, 개똥쑥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세심하게 포장해서 배송하기 때문에 선물용으로도 적합하다.
윤리적 소비 문화 정착에 앞장서온 소통라이브러리의 김대호 대표는 “이러한 문화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취약한 윤리적 소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작은 것들부터 실천하는 소비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식 있는 행동 하나가 사회에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에 우리의 앞날은 희망차다.
위 아크릴 실을 이용해 손으로 직접 만든 냄비 받침.
아래 왼쪽 넉넉한 사이즈의 에코 백.
아래 오른쪽 클라우드롭은 심플하고 편안한 디자인의 제품을 선보인다.
1 파손된 테이블에서 사용 가능한 재료를 수집한 후 재가공을 거쳐 만든 스툴은 브라더앤시스터 제품.
2, 3 전국 각지에서 버려진 가구를 수거, 바지의 구실을 다한 데님 원단을 덧대 새롭게 만들었다.
↑ 손재주 좋은 할머니들이 직접 만드는 무스타쵸스의 인형.
에디터 최고은ㅣ어시스턴트 이현재
도움말 소통라이브러리 · 브라이트 모닝 · 오브젝트ㅣ자료제공 무스타쵸스 · 에코파티메아리ㅣ참고도서 <에코 크리에이터> 김대호, 아이엠북
출처 〈MAISON〉 2014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