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소재 앞에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그만큼 소재는 도전을 불러일으키고 끊임없이 고뇌하게 하는 요소다. 남들보다 독특한 소재를 발견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 네 명의 작가를 만났다.

제스모나이트 소재를 사용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런던 RCA에서 프로즌 프로젝트 Frozen Project를 시작할 때 제스모나이트를 처음 접했다.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것같이 전혀 다른 성질로 변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제스모나이트는 어떤 소재인가?
최근 영국에서 개발된 신소재다. 물을 기반으로 한 액체와 파우더를 섞어서 쓰는데, 굳는 시간은 15분이 채 되지 않지만 굳으면 아주 딱딱하다.
프로즌 프로젝트는 어떤 작업이었나?
천을 재단한 후 그 위에 제스모나이트를 얇게 펴 바르고 안감으로 덮어서 0.5cm 정도 되는 1장의 천으로 만든 다음 내가 원하는 형태로 종이를 접듯 접는다. 금방 굳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작업을 해야 했다.
소재의 한계는 어떻게 극복했나?
제스모나이트를 섞으면 끈적한 액체 상태가 되는데 천을 이용해 굳히려다 보니 천 사이로 흘러나오기도 하고, 굳는 속도를 맞추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그래서 종이접기라는 방식을 착안했다. 접합체 없이 접는 방식에 따라 구조가 변하니까.
제스모나이트는 실용적인가?
인체에 무해한 제스모나이트는 2장의 천만 있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형태의 오브젝트를 만들 수 있다. 아주 매트한 우유 같은 표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자체로도 마감도 훌륭하다. 또 방수가 되는 재질이라 어떠한 용도로 써도 무방하며 특히 천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을 때 천의 재질에 따라 질감이 달라질 수 있어서 그 다양함이 무한하다.
앞으로 생각하고 있는 소재는?
작년에 소금호수에 사는 플라밍고를 다룬 BBC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소금을 나만의 레시피로 구워서 캔들 홀더를 만들었다. 다 쓴 후에는 물에 녹이면 되는데,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을 언젠가 다시 해보고 싶다.

작품의 소재로 비닐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모든 사물은 움직이고 변한다. 때문에 사물의 속성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영원함보다는 찰나의 순간이 더욱 이야깃거리가 많다고 생각했다. 비닐은 주로 일회적으로 사용하는 이미지가 있다. 또 외부의 힘에 의해 쉽게 구겨지고 늘어나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작품의 재료로 적합하다고 느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는가?
비닐을 잘게 잘라서 고온의 열을 가하면 비닐이 반응하면서 서로 당기기도 하고 밀어내면서 엉겨 붙는다. 예상치 못한 주름을 만들어내는데 그 형태가 모두 다르다. 그것을 재료 삼아 의자, 거울 등을 만든다. 비닐로 작품을 빚어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작품이 모두 검정색인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파란색은 시원함, 빨간색은 정열, 녹색은 자연을 떠올리는 것처럼 색은 각각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내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색채가 주는 이미지를 피하고 소재가 가진 움직임에 집중하도록 하고 싶었다. 따라서 무채색인 검정을 선택한 것이다.
이전 작업인 ‘스퀘어링’ 같은 경우는 네모 형태에 집중한 디자인이었다. 소재를 연구하면서부터 작업 방향이 달라진 것인가?
그 작업 역시 내가 말하고 싶은 ‘사물의 변화성’을 표현한 것이다. 스퀘어링이 사각형의 조합을 통해서 변화를 보여줬다면 비닐로 작업한 ‘아니탸 anitya 시리즈’는 그 주제를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소재를 활용했다.
비닐 외에도 관심이 가는 소재가 있는가?
스티로폼과 콘크리트다. 두 소재 모두 건축에서 많이 사용하는 재료인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재료를 재가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같은 형태, 소재여도 낯설고 매력적인 오브제가 나올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할 계획인가?
소재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가구 외에 오브제 작업이나 인테리어, 공간에 적용시켜볼 생각이다.

폴리에스테르 선으로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소재에 대해 알아보던 중 가방의 모서리 부분을 처리하는 폴리에스테르 선을 알게 되었다.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데 열경화성이 높아서 열을 가하면 매우 단단해지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재미있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재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나?
나무, 금속 등 보편적인 재료로 제작한 기존 작품과 다른 것을 만들고 싶었다. 색다른 소재의 특성에 따른 새로운 가공 방법을 연구해서 완성한 작품은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소재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어떤 실험 과정을 거쳤는가?
덩어리로 된 플라스틱은 가공이 어려웠고 열을 쐬었을 때 표면에 타고 남은 재가 있어 코팅 처리를 해야 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 선으로 된 것은 변형이 잘 되어서 가공이 수월했고 얼기설기 엮이면서 밀도를 만들어내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다양한 쓰임의 가구 중 왜 의자와 테이블, 조명으로 구현했는가?
의자와 조명, 테이블 등 가구는 내부적으로 복잡한 기술이 들어가는 다른 제품군에 비해 표현의 자유가 많은 편이다. 또 폴리에스테르 선은 열을 쐬면 단단해지기 때문에 테이블이나 의자로서 기능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또 다른 소재가 있나?
3D 프린터가 플라스틱 선을 이용해 열로 가공한 후 단단해지는 성질을 이용하는데 이 과정이 내가 하는 작업과 매우 흡사하다. 3D 프린터의 재료는 선뿐만 아니라 접착제와 나일론 가루, 플라스틱 액체, 합성수지 덩어리 등 다양하다. 나는 이러한 재료를 가지고 손으로 가공해서 컴퓨터와는 다른 느낌으로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지금 하는 것을 더욱 연구해볼 생각이다. 지금은 열을 통해 1차 가공만 한 상태이지만 그 다음 다시 평평하게 깎거나 검정이 아닌 다른 색상을 혼합하는 등 더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찾고 싶다.

풍선에 에폭시를 입힌다는 것이 독특했다. 어떤 발상에서 착안한 것인가?
특별한 생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풍선에 에폭시를 바르면 광택이 날 것 같아서 해봤는데, 표면 느낌이 좋아 시작하게 됐다.
어떤 제작 과정을 거쳐서 가구를 만들었나?
처음에는 풍선에 에폭시를 발라 조명을 만들었다. 풍선에 에폭시를 바르면 바람이 빠지지 않는다. 조명의 경우 2~3번 정도만 에폭시를 바르면 되지만 스툴이나 소파의 경우는 더 여러 번 작업을 반복해서 만든다.
어떻게 풍선에 에폭시를 바르나?
처음에는 묽은 에폭시를 위에서 붓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밑에 에폭시를 받아서 다시 부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서 붓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다 좀더 점도가 있는 에폭시를 사용하게 되면서 손으로 바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풍선을 너무 크게 불어서 터질 때도 있고, 에폭시를 바르는 도중에 터진 적도 있다. 작업실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소리가 크다.
나무나 금속에 에폭시를 바를 수도 있는데 왜 하필 풍선이었나?
처음에 풍선을 선택한 이유는 에폭시가 발린 풍선의 표면 느낌이 좋아서였다. 풍선이 주는 자유로운 볼륨을 에폭시로 굳혀서 모양을 유지하는 재미가 있다. 나무나 금속에 에폭시를 바른다면 단지 표면 마감으로 그쳤을 것이다.
풍선이란 소재가 주는 어려움은 없었나?
아무래도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구여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앉았을 때 버틸 수 있도록 구조적인 면을 많이 생각했다.
풍선을 이용해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가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만들었나?
풍선끼리 닿는 면이 많아질수록 안정적인 것 같다. 에폭시의 특성상 충격을 주면 깨질 수가 있는데 서로 닿는 면을 많이 만들고 연결하면 연결 부위가 훨씬 더 강해진다. 요즘은 더 두껍게 코팅을 하고 있다.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에폭시를 통한 다른 작업도 구상 중이고 우연히 만들어진 이 작업의 느낌이 좋아 더 해보고 싶다. 소재를 정하고 작업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러 소재를 다양하게 다뤄보고 싶다.
에디터 신진수 · 최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