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재발견

건축의 재발견

건축의 재발견

N.E.E.D건축 김성우 소장의
건축의 재발견

한정된 대지에서 정해진 요구 조건에 맞춰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가끔씩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때마다 계절에 따라, 유행에 맞춰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동네 시장을 둘러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도시에서 건축가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해외 출장 중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길거리 시장을 둘러보는데 남아프리카의 해변 도시 더반 Durban에 있는 허브 시장은 내가 다녀본 곳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도심부 한복판을 높게 가로지르던 고속도로가 계획상의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 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허브를 팔던 가난한 상인들이 이 고속도로 위에 올라가서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서 더반에서 가장 큰 허브 시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고속도로의 중앙 분리대는 매대가 되고 도로를 비추던 가로등은 어두운 시장을 밝히는 조명으로 탈바꿈했다. 밤이 되면 도로 양 옆의 구조물에 가벼운 천막을 설치해 집까지 왕래가 어려운 가난한 상인을 위한 주거지로 변신한다. 이 허브 시장은 버려지고 방치된 구조물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접근해 활성화시킨 좋은 사례다. 이처럼 도시 속 건축물은 특정한 요구 조건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에디터 최고은 | 사진 김성우 | 일러스트레이터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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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소통하는 감성 의자

시간과 소통하는 감성 의자

시간과 소통하는 감성 의자

시간과 노력으로 아름다운 물건에 영혼을 불어넣는 장인의 이야기. 이번 달은 열다섯 번째 이야기로 올곧은 마음으로 가구를 만드는 목수 박홍구를 소개한다.

↑ 부드러운 잿빛으로 물든 감성 의자.

솔솔 바람이 불어오는 시월의 어느 날, 경기도 이천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가구로 소통하는 가구장이를 만났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마음의 눈으로 보고 느껴야 하는 감성 가구를 만드는 목수 박홍구.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1 작업을 할 때 착용하는 천연 가죽 앞치마. 2 나무로 만든 접시들.

박홍구 씨가 목수 일을 시작한 건 스무 살이 되던 해다. 목공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가구 공장에 들어갔다. 그의 감각은 남달라 누구보다 빨리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후 30년 동안 나무를 만지고 가구를 만들었다. 수많은 가구를 만들어왔지만 의자를 만드는 일이 특별히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던 그. 하지만 7년 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의자에 자신의 정체성을 담기 시작했다. “누가 아픈 청춘을 위로하고 보듬어줄 것인가. 그 주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감성 의자는 의인화된 듯 말을 하고 듣기도 하는 존재가 된다. 의자를 통해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앉아서 쉬게 만드는 작가만의 표현 방식인 것이다.

↑ 목수 이홍구의 작업 모습.

“주거 공간에서 사람은 주인공이며 다른 사물은 자연스럽게 조연이 되어야 합니다.” 나무의 성질을 존중하며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바라보는 여유로움은 가구의 주체인 사람에 대한 배려로 설명할 수 있다. 자극적인 색감과 화려한 디자인으로 사람보다 사물이 눈에 먼저 들어오게 되면 공간의 조화가 깨져버린다. 감성 의자는 사람의 존재를 부각시켜주는 정적인 감성으로 채워져 있다. 의자를 만드는 방식은 조금 남다르다. 잘 만든 가구를 밖에 내놓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태풍이 오면 거센 바람을 맞게 한다. 감성 의자가 되기까지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이렇게 4~5년 자연의 시간을 견뎌낸 의자는 여느 가구와 달린 부드러운 잿빛을 띤다. 아내와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가족이자 가구를 함께 만드는 파트너다. 가족을 통해 놓치고 있었던 시점, 색다른 관점을 가족과 상의해 하나씩 채워간다. 결국 감성 의자는 가족이 함께 만드는 가구인 셈.

↑ 강원도 산골에서 공수한 나무들이 집 앞마당에 쌓여있다.

박홍구 목수는 감성 의자 외에도 다양한 가구를 디자인한다. 강원도 산골에서 채취한 나무를 사용하며 7~8년간 말려서 가구로 제작한다. 나무에도 강약이 있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목수의 몫이라며 오늘도 목수는 가족과 소통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구는 사람과 환경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고 믿는 그는 나무에 난 구멍도 애써 막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강조한다. “돈으로 무언가를 하는 거 같지만 결국엔 시간이 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 투자하는 마음은 공예를 향한 우리 모두의 바람이자 소박한 마음이다.

글과 사진 이정민(물나무 스튜디오) | 에디터 박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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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의 마법사

구성의 마법사

구성의 마법사

미니멀리즘의 대가라는 수식어 대신 건축가 정도로 불러달라는 피에로 리소니. 시종일관 유쾌한 매너를 보여준 그가 비즈니스 호텔을 만든다면 어떨까?
피에로 리소니의 디자인 철학이 반영된 신라스테이 역삼에서 그와 마주했다.

피에로 리소니 Piero Lissoni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비트라, 카시나, 카펠리니, 카르텔, 프리츠 한센, 리빙 디바니, 뽀로 등 글로벌 명품 가구 브랜드와의 활발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간결하고도 따뜻한 디자인 DNA를 곳곳에 홀씨처럼 뿌려왔다. 가구 디자인뿐 아니라 호텔 건축, 인테리어, 상업 공간의 쇼룸 등을 디자인해온 건축가이자 아트 디렉터, 디자이너 등 그를 따르는 타이틀 역시 다양하다. 심플함에 기반을 두는 그의 디자인은 두드러진 디자인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비례와 균형이 만드는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탁월한 기능성은 그만이 이뤄낼 수 있는 전매특허. 수많은 브랜드가 그와의 작업을 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2002년부터 호텔 건축과 인테리어를 진행해온 그는 암스테르담의 알코브 컨서버토리엄 호텔을 비롯해 뭄바이의 타지 플레이스 호텔, 싱가포르의 스튜디오 엠 호텔, 예루살렘의 말리아 호텔 등 주로 5성급 호텔들을 디자인해왔다. 때문에 이번에 그가 강남 한복판에 선보인 비즈니스 호텔은 협소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스마트 디자인’ 철학이 돋보인다. 한국의 정서와 이탈리아의 감성을 ‘결혼’시킨 공간이라는 그의 설명에 공간의 곳곳이 달리 보였다. 호텔의 등급을 떠나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호텔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신라스테이 역삼. 그곳에서 그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구성미를 경험했다.

인사동에 방문했다고 들었다. 어떤 것을 보고 느꼈나?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도자기 가게가 있고, 그 옆에는 한지 가게, 구슬 파는 가게들이 나란히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명품 매장이 없는 것도 좋았다. 옛 디자인과 요즘의 디자인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공간이 매우 흥미로웠다. 미래에는 구시가지가 될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신라스테이는 동탄에 이어 당신이 두 번째 오픈한 비즈니스 호텔이다. 비즈니스 호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작할 때부터 글로벌 프로젝트로 생각했다. 한국의 특정 지역에 오픈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더 큰 그림을 보면서 아시아, 유럽 진출도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기업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좁은 공간에 기능과 편리를 반영해야 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5성급 호텔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협소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디자인해야 하는 것과 비용적인 측면까지 모두 고려해야 했다. 지난 2년 동안 신라 측과 수없이 미팅을 해왔지만 그때마다 명확했던 점은 스마트한 공간을 만들자는 거였다.

스마트 디자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협소한 공간을 기능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탠더드 객실의 경우, 욕실과 침실 사이에 슬라이딩 도어를 달았는데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도어 하나만으로도 공간은 손쉽게 분리된다. 욕실도 사용자의 동선을 고려해 기능적인 공간으로 설계됐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떤 곳인가?
욕실이다. 욕실에서의 동선을 고려해 콤팩트하지만 기능적인 디자인을 염두에 두었다. 또 섹시한 욕실을 만들기 위해 욕실 면에 유리창을 도입했는데 이 점을 실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신라 측을 설득해야 했다. 신라스테이는 비즈니스를 위해 잠깐 머무는 호텔이 아닌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호텔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한국적인 문화를 접목시킨 호텔이라고 했는데, 한국적인 느낌을 어떤 공간에 접목시켰나?
예를 들면 호텔 밖 건물의 벽면은 수공으로 작업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규칙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자연스럽고 클래식한 느낌이 든다. 이런 부분은 한국 전통의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앤티크 제품과 세라믹 작품 수집이 취미인데, 그동안 한국 도자기를 다수 수집해왔다. 도자기 표면에 감도는 약간 유리 같은 느낌이 한국적인 느낌을 살려주는 것 같다.

비즈니스 호텔이 갖춰야 하는 덕목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젊은 층이 특정 금액을 내고 어느 정도의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호텔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물, 소재의 사용, 방 크기와 조명 등 어느 정도 수준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곳을 말한다. 유럽에 가면 저가 호텔들이 많은데 막상 들어가면 감옥 같은 느낌이 든다. 5성급 호텔에 갈 돈이 없다면 수준이 낮은 저가 호텔에 투숙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데 비용은 저렴하지만 일정 수준을 갖춘 호텔을 만들고 싶었다.

여느 비즈니스 호텔과 차이를 둔 점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호텔에는 카펫이 깔려 있다. 신라스테이 객실 전체에는 마루를 깔았는데, 좀 더 내 집처럼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다. 공간은 짙은 회색을 주조로 디자인했는데, 회색은 내 디자인의 DNA와도 같다. 비즈니스 호텔은 호텔 안에서도 업무를 보는 특성상 조명의 조도가 밝다. 하지만 신라스테이는 조도를 상대적으로 낮췄다. 그 이유는 투숙객들이 객실에 머물면서 편안하고 따뜻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공간을 완성하는 당신만의 법칙이 있는가?
한 가지 간단한 룰을 적용하는데, 그것은 심플함과 우아함의 결합이다. 심플함이라는 단어는 단순함을 연상케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심플함의 이면에는 복잡한 것들이 존재한다. 우아함은 공간 자체가 주는 뉘앙스가 될 수도 있고, 차별화된 장식품이 될 수도 있다. 여러 가지가 뒤섞인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조화로움, 그것을 우아함이라고 생각한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안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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