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흙이 보석보다 드물다. 그러나 흙은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보살피니 보석보다 귀하고 고맙다. 4월에는 흙과 나무와 풀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초록 생명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도 강렬한 음색의 노래를. <메종>은 너른 마당, 텃밭 없이도 초록의 노래를 변주해온 다양한 사람과 사례를 만났다. 그리고 긴 겨울 굳은 땅을 뚫고 나오는 새순의 에너지를 담았다.

<6> 농장 같은 벽
오랑쥬리 가든의 주례민 대표는 농장 관리에 필요한 가든 용품을 창고에 숨겨두지 않고 벽에 매달아 장식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각종 도구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벽 장식까지 겸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벽에 커다란 액자처럼 원목 프레임을 설치한 뒤 곳곳에 못을 박아 각종 기구와 앞치마를 걸고, 초록 식물을 담은 행잉 화분과 봄꽃을 심은 철제 바구니를 함께 걸면 취향이 담긴 아트 월을 완성할 수 있다. 스틸로 제작한 스프레이 통과 포크모양의 모종삽은 모두 모제인송에서 판매. 행잉 화분은 모두 에이치픽스, 물뿌리개는 하우스라벨, 벽에 매단 철제 바구니는 이노메싸에서 판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임태준 | 스타일리스트 정재성(세븐도어즈)
<7> GREEN ARCHITECTURE
가든을 넘어서 조경과 건축을 접목한 사례가 늘고 있다. 자연은 자신을 돋보이게 할 건축을, 건축은 특유의 건조함을 덜어내기 위해 자연을 찾고 있다. 자연과 인공이라는 전혀 다른 두 분야가 만나 이뤄내는 녹색 시너지의 파장이 도시를 서서히 물들인다.
에디터 신진수

↑ 사진 Efrain Mendez 프로젝트 Balmori Associates, H Associates, 해안건축.
<7-1> 자연에서 출발한 도시 계획
정부종합청사가 위치한 세종시의 행정타운 계획의 당선작인 `Flat City, Link City, Zero City`는 건축과 조경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진 인상적인 마스터플랜이었다. 조경 건축가인 발모리 여사는 나지막하고 작은 구릉이 산재해 있는 대지에 낮게 올린 청사 건물을 제안했고 14km에 달하는 옥상정원과 공공 공간은 모두 자연 지형에 순응하는 디자인으로 제안했다. 건물과 건물을 옥상으로 연결해 하나의 마을처럼 설계한 점도 흥미롭다. 옥상 텃밭이나 옥상정원이 흔해지고 있지만 정부 건물로서 이렇게 길고 넓은 옥상정원은 국내에서는 거의 처음일 것이다. 사계절에 따라 바뀌는 옥상정원의 모습도 아름답고 건물의 가장 위층을 공공 공간으로 계획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특히 옥상정원은 이곳에서 일하는 직장인뿐만 아니라 원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하지만 당선작 선정 후 실제 프로젝트 진행 초기에 조경가와 건축가가 배제된 채 계획을 진행시킨 것은 아직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계획의 기본 개념이었던 주변의 자연 지형이 사라졌고 인공적으로 형성된 평지 위에 세워진 청사 건물이 단순한 용 모양의 성곽으로 다가온다. 모든 도시가 그 나름대로의 생명을 갖고 긴 시간 동안 발전하듯이 세종시 행정타운 또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스스로를 조정하며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글 Diana Balmori. FASLA | 김상목 · AIA LEED AP BD+C

<7-2> 버려진 철도의 새로운 임무
이제 뉴욕을 상징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 하이 라인 파크는 원래 맨해튼 로워웨스트 지역의 개발 및 개선을 위해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12번가 미트패킹 디스트릭부터 34번가에 이르는 2.33km 길이의 고가 철도였다. 공원으로 조성되기 전 철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지만 뉴욕 시의 발전과 굴레를 함께한 역사적인 의미의 철도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컸고 2004년에 철도는 새로운 임무를 얻게 됐다. 2009년 6월 공원의 첫 번째 구역을 오픈했을 때 뉴요커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도심 속에 있는 고가 공원이라니! 2014년 9월에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을 오픈하며 하이 라인 파크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사람들은 뉴욕 시를 내려다보며 공원처럼 조성된 철길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피크닉을 즐겼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잘 조성된 공원 길을 걸으며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 삼삼오오 야외용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이들로 북적거렸고 차도를 옆에 두고 걷는 대신 풀과 꽃을 보며 편안하게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하이 라인 파크는 버려진 산업 공간을 보는 관점을 바꾼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된 철도가 모두를 위한 공원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통해서 뉴요커들은 공공 공간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었고 앞으로 도시를 어떻게 가꿔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지표가 되었다.
글 · 사진 정환영(뉴욕 통신원)

<8> 꽃 하는 여자, 가든 하는 남자
플로리스트 엄지영과 가드너 강세종은 삼청동에서 9년째 ‘가드너스 와이프’라는 플라워숍을 운영하고 있다. 인생 2막으로 꽃과 가든을 선택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가드너스 와이프’라는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강세종 친누나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가드너인 제가 키운 꽃을 활용해 와이프는 작품을 만든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요.
다른 직업에 종사했다고 들었는데,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엄지영 답답한 직장 생활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꽃을 배우다가 결국 플로리스트의 길을 걷게 됐죠. 남편 역시 일을 뒤늦게 시작했는데, 어려서부터 꽃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요. 결국 취미 생활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거죠.
전공자가 아닌데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엄지영 저는 가구 디자인을 했고, 남편은 경제학을 공부했어요. 플로리스트가 되기 위해 3년간 국내 플라워 스쿨을 수강했고 실무 경험을 쌓은 후 영국 콘스탄틴 스프라이에서 연수를 받고 왔어요. 남편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원예와 조경 공부를 했는데, 전공자가 아님에도 조경 업체에 근무할 기회가 생겨 그곳에서 기획뿐 아니라 현장 업무에도 참여하며 차근차근 창업을 준비했어요.

가드너스 와이프만의 특화된 차별점이 있다면요? 엄지영 일반 플라워숍에서는 줄기가 잘려 있는 꽃에만 집중하는 데 반해, 저희는 단순히 예쁘게 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이 성장하는 과정과 특성을 고려해 디자인해요. 남편이 키운 수국이나 난 화분에서 줄기를 잘라 종종 다발을 만드는 작업을 해요. 강세종 아무래도 플라워숍에서 다루는 식물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 위주로 제안하면서 간단한 실내와 실외 정원 작품도 만들고 컨설팅도 하고 있어요. 삼청동에 위치해 한옥 조경의 의뢰도 많이 들어와요. 대부분 동백, 작약, 설유화같이 꽃이 피는 나무를 제안하는데 여백의 미를 두고 디자인하는 편이에요.
매장 주변에 죽은 화분이 많이 보이는데 이유가 있나요? 강세종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숍을 운영하다 보니 주변분들이 죽어가는 화분을 살려달라고 가져옵니다. 화분 팔기에 급급해서 성장 촉진제를 놓은 화분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경우 뿌리가 깊더라도 오래 살지 못해요. 시간과 정성을 들여 관리하면 다시 생명을 찾게 되죠. 옥상에는 이런 화분들이 가득합니다.
아파트 베란다 공간에 어울리는 식물과 꽃을 추천한다면요. 강세종 모든 베란다에서 꽃을 기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절화와 식물의 공간은 분리되어 있어야 해요. 식물은 햇볕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절화는 햇볕을 쐬면 빨리 개화해버리고 수명이 짧아져요. 작은 베란다에도 다른 기후가 존재하는데 빛의 양을 고려해 그에 맞는 식물과 꽃을 제안해요. 봄에 키우기 좋은 식물로는 요즘이 알뿌리식물의 개화기라 라넌큘러스, 튤립, 아네모네, 프리지어 등을 구입하면 휠씬 오래 두고 감상할 수 있어요. 히야신스의 경우 향도 좋고 절화를 해도 비교적 오래 버텨 추천하고 싶네요.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박상국

<9>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가 제안하는 베란다 레시피
현재 속초에서 1박2일 힐링 정원학교와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며 <가든 디자인의 발견>의 저자이기도 한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가 누구나 따라 하기 쉽고 간단한 베란다 정원을 제안했다.
미니 텃밭 스티로폼 택배 상자를 활용할 수 있는데 흰색 스티로폼이 거슬린다면 에나멜 페인트를 구입해서 원하는 색상으로 칠한다. 열매채소인 가지나 고추, 토마토, 오이, 애호박, 완두콩을 심으려면 20cm 깊이의 상자가 필요하다. 여기에 덩굴식물이 타고 오를 수 있는 대나무 지지대를 만들어주면 금상첨화다.
초본식물 화단 양 옆으로는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라일락과 가을철 빨갛게 단풍이 드는 단풍나무를 심었다. 베란다에서 나무를 키울 수 있는지 묻는 이들이 많은데 환기를 자주 시킬 수 있고 키가 2m 미만인 나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라일락, 개나리, 철쭉, 동백나무, 귤나무, 스카이 향나무, 단풍나무 등을 추천하는데 이때 화분은 적어도 30cm 깊이는 되어야 한다. 또 화분에 대나무를 뭉쳐 심으면 겨울에도 베란다를 바라보는 풍경이 한결 싱그럽다.
거는 화분 지게차로 물건을 옮길 때 쓰는 나무 팔레트를 이용한 ‘거는 화분’ 연출이 최근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나무 팔레트 사이의 틈에 부직포를 넣어 감싼 후 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못질하고 원예 상토를 넣어 일년생 초본식물이나 상추, 치커리 등을 심으면 훌륭한 수직 정원의 연출이 가능하다. 벽에 선반을 제작하고 다양한 다육식물을 심어서 올려두는 것도 멋스럽다. 다육식물은 스스로 잘 자라기 때문에 벽에 거는 정원 식물로 안성맞춤이다.
에디터 신진수 | 글 · 그림 오경아

<10> 일룸의 버티칼 정원
일룸 논현점 쇼룸 벽과 계단 통로에는 수직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가구 회사로서는 색다른 모험을 한 셈이에요. 관리가 만만치 않거든요. 쇼룸이 통유리라 바깥 날씨가 영하가 되면 식물들도 냉해를 입을 수 있어서 겨울에는 난방을 틀어놓고 퇴근해요.” 논현점 이명수 대표는 쇼룸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직 정원의 식물을 조화라고 생각하고 살짝 만져보았다가 깜짝 놀란다고 전했다. 일룸에서는 최고 친환경 등급의 자재를 사용하고 있고 도장이나 접착 시에도 유해 물질 방출을 줄이기 위해 수용성 처리를 하고 있다. 때문에 가구가 많은 쇼룸에서도 식물이 죽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다. 식물원에 온 것처럼 사시사철 푸른 식물이 쇼룸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저는 참 좋아요. 삭막해 보일 수 있는 쇼룸에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거든요. 병충해를 입은 적도 있고 햇빛을 잘 받지 못하는 쪽의 식물은 시들기도 하지만 수직 정원을 관리하는 재미도 쏠쏠해요. 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계속 두고 싶어요.”
에디터 신진수 | 포토그래퍼 박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