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알레는 우경미 대표, 우현미 소장이 걷고 있는 ‘마이 웨이’다. 반짝이는 이정표 하나 없는 길을 가지만 자매는 디자인 사무소라는 정체성에 안주하지 않는 작업을 세상에 펼쳐 보여왔다. 천천히 귀 기울이면 낮은 울림에 공명하게 되는 그들의 이야기, 이번에는 바우어 새에게 헌정되었다.

↑ 전시장 입구에서 안쪽으로 바라본 모습. 실내를 가득 채운 자연 소재 덕분에 정글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긴 겨울 땅속의 삶을 도모했던 초록 식물들이 깨어나는 소리로 이 산 저 산 술렁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신부의 면사포처럼 흰 벛꽃잎이 거무튀튀하던 아스팔트 도로 위로 흩어지니 자연의 알람에 초록이 기상할 때였다. 3일간의 봄 마켓을 마친 과천 마이 알레는 집들이를 마치고 손님들이 빠져나간 집처럼 잔치의 흔적과 다시 돌아온 고요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을 넘은 지 10분 남짓 지났을 뿐인데 도시의 소란과 먼지를 말끔히 벗어낸 그곳에 들어선 순간, 시청각은 좀 전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작년에 읽었던 소설을 올해 다시 집어 들었을 때의 소회가 다르듯 새순이 돋아나던 작년 봄의 감동과 올봄의 감동이 다르다. 그렇다면 자연은 문학 작품일까. 자연은 시간이라는 비정형의 지휘 속에서 나오고 들어가야 할 때를 정확히 안다. 그렇다면 자연은 관현악단일까. 자연의 순환이 선사하는 감동은 진자의 원리처럼 알면 알수록 진폭이 넓어진다.

↑ 마이 알레의 우경미 대표와 우현미 소장.
우경미 대표와 우현미 소장, 과천 마이 알레를 이끌고 있는 자매는 그것을 삶에 들이는 다양한 시선을 제안해왔다. 압구정동 알레 시절을 거쳐 이곳 과천에 정착한 지금까지 두 사람은 조경 디자인에서 공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기저에 두고 알레다운 언어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차별화된 마켓을 지향했던 그들의 봄 마켓 중 백미였던 전시 <바우어 새의 정원>은 그들이 품어온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드러낸 편린이었다. “프로젝트를 의뢰 받아 일을 진행하던 기존과는 달리 이번 전시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무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어요.” 비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아침, 우경미 대표의 얼굴은 행복한 피곤함으로 가득했다. “회의 중 누군가가 바우어 새를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얘기했어요. 그런데 얘길해보니 너도 나도 바우어 새에 대해 다들 알고 있던 거예요. 한 번씩 들어봤거나 프로그램을 보았고 기억을 하고 있더라는 게 참 재미있었죠.” 취향의 합일은 구름에 가려진 목표를 향해 진격하게 만드는 가장 큰 동인이 된다. 전시 기획과 사전 조사에 3주 정도 걸렸던 것에 비해 실제 설치는 일주일 만에 끝냈다. 과천시 삼부골에 재현될 바우어 새의 정원을 위해 알레 식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몰입도를 발휘했다.

↑ 각종 파란색 소품을 자연의 소재와 조화시킨 모습. 바우어 새의 영역으로 인간이 침투함에 따라 예상치 못했던 흔적이 종종 발견되는 것을 표현 했다.
바우어 새는 호주와 뉴기니 일대에 서식하며 마치 학습된 것처럼 건축적이고 아름다운 집과 뜰을 가꾸는 정원사로 알려져 있다. 색깔과 구조에 대한 식견은 새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섬세하다. 빨간색 계열의 열매와 꽃잎으로 장식하는 바우어 새가 있는가 하면, 검은색이나 노란색만 고집하기도 하고 연출법도 제각각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원이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요. 바우어 새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모아두기만 해도 훌륭한 정원이 될 수 있는데 말이죠.” 전시는 미물로 폄하될 뻔한 바우어 새로부터 얻은 교훈과 반성을 담은 서정적인 측면과 동시에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도모한 서사적인 측면도 있다. 오랫동안 집성촌처럼 형성되어 있는 과천시 삼부골 원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어느 날 불시착한 우주선과도 다름없었을 마이 알레. 별다른 교류 없이 데면데면 어깨를 맞대고 살아온 그들은 바우어 새의 정원을 그리는 데 밑그림이 되어줄 질료를 이웃한 과수원에 쌓여 있던 전지 더미에서 찾았다.
“쌓아둔 나뭇가지를 보고 저희가 써도 되겠냐고 여쭈었더니 흔쾌하게 허락해주셨어요.” 고마운 마음은 전시장 입구에 남겨 두었다. ‘바우어 새의 정원은 삼부골 이경수 님의 과수원 나뭇가지로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외에도 서초구청, 과천시청의 허락을 받아 사용한 것까지 모두 트럭 열 대 분량의 나뭇가지가 천장과 벽을 감쌌다. 서로 다른 하늘 아래 있던 나뭇가지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소품을 바우어 새처럼 그러모았으니 전시 컨셉트만 빌려온 것이 아니라 작업의 골격도 바우어 새의 습성을 따라간 셈. 바닥에는 퇴비화시킨 나무껍질인 바크를 융단처럼 깔고 곳곳에 파란색 소품를 두었다. “의외로 우리 생활 주위에 파란색이 많다는 거 아세요? 파란색은 스펙트럼이 넓으면서 굉장히 몽환적인 색이에요. 이런 파란색의 매력과 자연 식물의 대조를 살려보고 싶었어요. 파란색을 좋아하는 바우어 새에게 바치는 정원이랄까요.” 우현미 소장의 설명을 듣자니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보았던 파란색이 떠올랐다.

↑ 우현미 소장의 탁월한 심미안을 엿볼 수 있는 연출. 이질적인 요소를 이질감 없이 녹여냈다.
희망이자 절망, 꿈이면서 현실이기도 한 장면마다 등장했던 다양한 깊이의 파란색은 영화 내내 화면을 채우지 않았던가. “이게 뭔지 아세요?” 우현미 소장이 창가에 드리워진 흰색 천 소재를 들추며 물었다. “어부들이 조업 시 사용하는 어망이에요. 레이스처럼 하늘거리지 않아 차분하게 가라앉는 맛이 있으면서 적당히 바깥을 가려주는데 이것도 직원들과 회의하다가 나온 즉흥적인 아이디어였어요. 그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죠.” 창밖의 풍경을 한번 걸러내는 동시에 전시장의 컨셉트를 보호하는 흰색 어망과 천장으로부터 물구나무선 나뭇가지, 바닥 곳곳에 널린 파란색 소품 사이에 멍하니 서서 나는 천천히 바우어 새에게 이입되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 반대편에 사는 바우어 새가 멀고 먼 이쪽으로 날아와준다면 두 자매가 헌정한 정원에 어떤 훈수를 둘지 궁금했다.
에디터 노은아 | 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