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예술 시장의 중심이 된 아트 바젤 홍콩을 다녀왔다. 쇼핑 특구가 아닌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는 홍콩의 현재 모습에서 찬란한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 인도 작가 수보다 굽타와 강홍구의 작품을 선보인 아라리오 갤러리 부스.
3월 15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제3회 아트 바젤 홍콩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컬렉터, 미술 관계자, 기자, 예술 애호가 등으로 북적거렸다. 세계의 멋쟁이는 다 모인 것 같았던 VIP 오프닝 저녁, 미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민머리의 중국 아저씨가 타이도 매지 않고 재킷만 걸친 거구를 뽐내며 주요 갤러리 부스에서 흥정을 하고 있었고 저녁때 들른 아트 페어 전시장 바로 옆의 하얏트 호텔에서는 이브닝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서양인들이 파티 장소로 이동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아시아 미술 시장의 패권을 가르는 자리인 만큼 아시아 작품이 강세를 보였다. 일본은 페이스 갤러리와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요시토모 나라의 전시를 크게 연 것을 비롯해 야요이 쿠사마, 무라카미 다카시 등 스타급 작가들을 내세웠고 그 뒤를 잇는 마리코 모리, 코헤이 나와의 작품도 들고 나왔다. 한국은 단색화를 내세우며 한국의 현대미술을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국제 갤러리와 학고재 갤러리는 아트 페어 본전시에 참여했고 본전시에 참여하지 못한 갤러리들을 위해 올해 처음 열린 아트센트럴 페어에는 현대 갤러리가 명함을 내밀었다. 프랑스 갤러리로 홍콩에도 지점을 두고 있는 페로탱 갤러리는 작가 박서보, 몇몇 일본 갤러리는 작가 이우환을 소개했다. 아트 페어가 열린 박람회장 바로 옆의 하얏트 호텔에서 특별 프리뷰와 경매를 진행한 K옥션도 단색화를 대거 들고 나왔고 소더비는 <아시아 아방가르드> 특별전에서 단색화와 일본의 아방가르드 미술인 구타이를 소개했다. 소더비 전시는 경매일을 정하지 않는 특별 판매 방식이었는데 다수의 서양인들이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했고 심지어 많은 작품이 이미 팔렸다. 작품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어느 곳에 걸어도 어울리는 단색화의 고상한 매력은 한동안 미술 시장에서 강세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트 페어에 한국 현대미술이 주류를 이룬 것도 처음이라 작가와 갤러리는 물론 홍콩을 방문한 한국 사람들은 모두 애국심을 발휘하며 뿌듯해했다.
↑ 위 단색화와 양혜규의 작품을 선보인 국제 갤러리 부스. 아래 쉬 룽썬의 대형 작품이 걸린 인카운터 세션.
한편 아트 바젤 홍콩의 주최 측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수묵 작품을 들고 나왔다. 아트 페어 전시장 중앙에 걸린 쉬 룽썬 Xu Longsen의 거대한 수묵화가 대표적인 예다. 가로, 세로 약 10m에 달하는 거대한 수묵화는 동양화로도 서양 현대미술 못지않은 거대한 설치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웅장했고 이 작가를 추천한 한아트 Hanart TZ 갤러리는 시내 갤러리에도 쉬 룽썬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많은 이들에게 수묵화가 고루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 중국 측의 의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의 동양화가 이제는 표구사에서 파는 장식용 그림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과거 서양에서 아시아를 침략해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빼앗아 갔듯 지금은 아트 페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특히 중국의 신흥 컬렉터를 잡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현대 동양화의 화려한 부활을 통해 진정한 미래의 승자를 꿈꾸고 있었다. 역사 깊은 그들의 예술적인 업보를 꿋꿋하게 이어가겠다는 듯 말이다.
아트 바젤 홍콩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수준이 높아져서 그곳이 아시아 미술의 허브가 된 것은 아닌 듯하다. 금융인들의 도시이자 영어가 통용되는 서양과 동양의 가교 역할,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발맞춘 면세 정책, 중국 및 동남아시아 부호들의 해방구 등 홍콩을 도운 요소는 많다. 하지만 파라사이트, 아시아 소사이어티와 같은 연구기관, PMQ, 프린지, 홍콩 아트 센터와 같은 대안 공간, K11을 비롯한 새로운 중국의 아트 파운데이션 등 홍콩을 아트 허브로 변모시킨 자체적인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2017년에는 홍콩의 문화 예술 특별 지구를 위한 프로젝트 중 하나인 M+ 미술관이 개관할 예정이라고 하니 당분간 홍콩에서의 아트 열기는 계속될 것 같다. 볼 것 많은 예술 축제를 즐기기 위해 또는 변화하는 아시아 미술의 현장을 목도하기 위해 벌써부터 내년 3월의 홍콩이 기다려진다.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 에디터 신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