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의 안목과 취향은 평범한 가구에 의미를 부여하고 공간에 온기를 더한다. 이곳 한남동의 아파트도 전통과 현재를 아우르는 가구와 작품들로 채워져 세월이 흐를수록 보석처럼 빛날 집이었다.
↑ 조지 넬슨의 소파, 아르네 야콥센의 에그 체어, 피트 하인 이크의 티 테이블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가구를 배치한 거실.
다양한 집을 촬영하다 보면 전문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집주인이 직접 꾸민 집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게는 전문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공간을 꾸밀 수 있는 감각과 안목, 정형화된 공간 구성을 탈피하는 남다른 혜안이 있다는 것이다. 한남동에 위치한 이 아파트 역시 디자인 뒤에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관심,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빈티지 가구와 작품을 골라내는 집주인의 안목이 만나 탄생한 집이다.
↑ 남편의 서재 역시 유명 디자이너들의 빈티지 가구들로 꾸몄다. 폐타이어로 만든 지용호 작가의 동물 오브제와 리처드 페티본의 작품을 걸어 장식한 공간은 작은 갤러리 같다.
네 식구가 사는 264㎡의 아파트는 입구에서 왼쪽으로는 거실과 주방, 부부 침실, 드레스룸이 있고, 복도 중간에는 서재가 있다. 복도 끝에는 두 아이 방과 공부방이 자리한다. 이 집의 백미는 거실과 주방. 디자인 전시관을 방불케 하는 역사적인 빈티지 가구들, 예를 들어 알바 알토와 샬럿 페리앙, 조지 넬슨, 장 푸르베, 핀 율, 세르주 무이 등 디자인 애호가들의 수많은 연서를 받았을 가구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부모님께서 빈티지 가구 애호가셨어요. 대부분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구들인데 어릴 적부터 봐왔던 가구들이 이제는 저희 집으로 오게 된 거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멋스러운 가구들이에요.” 집주인은 집 안에 들이는 가구나 소품을 고를 때 명확한 기준이 있다고 말한다. 세월이 묻어나는 가구와 소품일 것. 작가의 작품이지만 생활에서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피트 하인 이크의 식탁과 의자를 주방에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피트 하인 이크의 타원형 식탁은 주방을 하나의 작품처럼 꾸며주는 가구예요. 세월의 흔적을 입은 폐자재들을 이어붙여 만든 하나의 작품으로 래커 마감을 하지 않아 더 멋스럽죠.” 식탁 위로는 아르텍의 빈티지 조명이, 벽에는 김환기의 초기 작품이 다이닝 공간에 깊이감을 더한다.
↑ 아르망의 의자 작품을 배치한 부부 침실.
해가 잘 들어 종일 따스한 빛을 품고 있는 실내의 주조색은 회색과 갈색. 남편이 선호하는 색상을 존중해 편안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으로 꾸몄다. 공간의 구조 변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구와 소품 그리고 홈 드레싱만으로 각자의 취향을 공간 곳곳에 부여했다. 회색과 갈색을 오가는 색상들은 색의 온도 차이와 가구의 형태를 고려해 믹스매치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자칫 무겁고 탁한 분위기로 흐를 수 있었지만 발랄한 그림이나 위트 있는 작품으로 차분한 분위기에 리듬감을 더한 것 역시 집주인의 감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 가령 복도 끝 벽에 건 리오넬 에스티브의 작품이나 서재에 있는 리처드 패티본의 작품이 그 예다. “남편을 위한 서재에는 장 푸르베의 책상과 세르주 무이의 조명을 두었어요. 빈 벽에는 가나아트센터에서 얼마전에 전시한 팝아트의 거장 리처드 페티본의 작품을 걸었는데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복제해 만든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 피트 하인 이크의 식탁 주변으로 우치다 시게루의 선반장과 김환기의 작품을 걸어 장식한 다이닝.
부부 침실은 침대를 가운데 두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빈티지 사이드 테이블을 대칭으로 배치했다. 침대 위로는 백승우 작가의 작품과 창문 쪽으로는 아르망의 의자 작품을 두어 작은 갤러리 같은 공간 컨셉트가 이어지도록 연출했다. 아이들 방 역시 침대만 배치한 심플한 공간이지만 벽면에 다양한 그림 작품을 걸어 공간에 포인트를 주었다. “아이들 방 벽에 건 작품들은 남편이 수집한 발랄한 색감의 작품들이에요. 별다른 소품 없이 작품으로 포인트를 준 것으로 햇살이 벽 쪽에 비치면 이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 변신해요.”
↑ 거실 한쪽에는 핀 율의 파이어 플레이스 의자를 배치했다.
↑ 회색과 갈색의 조화로 안락하게 꾸민 침실 주변으로 작가 아르망의 의자 작품과 백승우의 그림 작품을 걸었다.
한번 사면 좋은 것을 사서 오래 쓰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을 때는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집주인의 설명. 그렇게 하나하나 마음먹고 구입한 것들이라 변덕스러운 유행과 무관하게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당당한 존재감을 발한다. “빈티지 가구들은 오래될수록 더 애착이 가지요. 미술 작품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집은 함께 변모해 어느 것 하나 소외되지 않고 함께 시간 속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가구들. 일관된 자신의 목소리와 개성을 지켜가는 이 집은 분명 주인과 같은 꿈을 꾸고 있다.
↑ 복도와 거실 사이, 갈색 유리 안쪽에는 서재가 있다. 벽에는 생동감을 주는 발랄한 색감의 리오넬 에스티브의 작품을 걸었다.
↑ 아기자기하게 꾸민 아이들 방.
⁎ 에스티 로더에서 안티에이징 파워커플, 마이크로 에센스와 갈색병을 집주인께 선물로 증정했습니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