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발상은 제약으로부터 시작된다. ‘최소’라는 조건으로 여러 주거 모델을 제시하는 ‘최소의 집’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건축가 정영한이 <메종> 독자들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 건축가 김희준이 최소의 집 프로젝트로 선보인 ‘정 · 방’. ⓒ김용관
미지의 세계를 향해 출발하기 전 여행객이 자신의 배낭 속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을 골라야 하듯 나 역시 글을 쓰기에 앞서 하나의 주제를 위한 다양하고 싱싱한 재료들을 고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주제를 ‘최소’라는 가치로 시작하되 다양한 시선으로 그 가치를 이야기하며 건축 안에서 ‘최소’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건축물의 이야기나 대표적인 장소를 소개하려 한다. 또한 우리의 생활 이야기가 출발하는 장소로서 ‘집’의 다양한 소개 또한 병행하기로 하였다.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든다면 8마리 반려견 또는 3대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집이라든지 왼손잡이 가족을 위한 집 아니면 반려동물 중 고양이와 개가 함께할 수 있는 집, 여름과 겨울에만 살 수 있는 집, 이혼 후 다시 재결합을 위해서 만든 집 등 세상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다양한 사연이 깃든 집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내가 ‘최소’를 주제로 정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부분이 다수의 가치를 지향한다. 특히나 집의 문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점점 비대해지는 집의 규모 혹은 평수를 소유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주류에 속한다고 믿는 것이다. 문제는 집의 규모가 사회적인 신분을 정하는 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이러니한 풍경에 대한 자각이다.
↑ 9×9 주택 외관. ⓒ김재경
두 번째는 애초에 갖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며 하나씩 버리거나 정리하여 줄여가는 생활방식이나 처음부터 작게 시작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필요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무 無’로 시작하면 매번 새로운 것을 가지는 것에 대해 신중히 고려할 텐데 우리는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생에서 사람과의 인연이 있듯 물건과의 인연도 있는 법이다. 일회일기 一期一會란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연이라는 그 사전적 의미 또한 인간관계뿐 아닌 우리가 만나는 물건과의 인연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기존의 주택 공간은 대개 다가구가 각각의 공간을 점유하여 정의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거실엔 소파와 TV가 있어야 하고 침실엔 침대와 옷장, 주방엔 식탁과 주방 가구가 있어야 하지만 바꿔 말해 소파가 있으면 거실이고 침대가 있으면 침실, 식탁과 주방 가구가 있으면 주방으로 정의된 공간들이 우리의 삶을 여전히 정의하고 있다. 그러한 가구들이 어느 날 방에서 사라져 모두 벽으로 숨어버리게 된다면 그간 가구에 의해 제한적으로 사용된 공간들은 사용자들에게 그 선택권이 돌아가 필요에 따라 정의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발상으로 ‘9×9실험 주택’ 설계가 시작되었다. 설계를 하면서 건축주 부부는 불필요한 가구를 정리하게 되었고 이 주택의 주요 컨셉트 중 하나인 ‘최소 기능의 수납 장치 Furniture Corridor’를 통해 생활에 필요한 최소의 가구를 벽 속에 숨겨 움직이는 벽이나 슬라이딩 문의 개폐에 따라 사용할 수 있게 계획했고 수납공간을 제외한 공간은 거주자의 필요에 따라 정의해서 사용할 수 있는, 나름 작지만 가변적이고 실용적인 공간으로 설계했다. (참고로 9×9는 주택의 가로와 세로 길이가 9m로 설계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주택을 구성하는 방들은 대개 벽에 의해 공간이 분리되지만 이 주택은 벽 대신 유리 벽에 의해 감싸져 있고 그 사이마다 작은 외부 정원이 들어와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흐려져 마치 미로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 9×9 주택 내부. ⓒ김재경
결국 이러한 컨셉트를 실현시키기 위한 건축가의 고민과 노력에 대해 무엇보다 공간을 이해해준 건축주 내외는 9×9 실험주택이 완공된 후에도 나름 자신들의 생활 방식에 맞게 최소의 가구와 내부로 들어와 있는 작은 외부의 정원을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 작업을 통해 건축가로서 나는 다음과 같이 최소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최소의 집은 작은 집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거주자 스스로가 공간을 정의하여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건축이 반영된 집을 의미한다.’
* 집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생각을 최고은 기자 (deneb@mckorea.com) 앞으로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최소의 집’에 대한 개념을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글 정영한(스튜디오 아키홀릭) | 에디터 최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