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절제하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픽디자이너 목영교는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중도의 미학으로 풀어냈다.
1 그래픽디자이너이나 아트 디렉터, 포토그래퍼, 브랜드 컨설턴트 등 비주얼과 관련된 일을 폭넓게 진행하고 있는 목영교. 2 갈대발을 늘어뜨린 거실에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가구들이 즐비하다. 맨 앞에 원형 테이블은 포토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한 것.
그래픽디자이너 목영교의 집을 찾았다. 주거 지역 같지 않은 한남동 골목에서 만난 이국적인 빌라는 그러나, 벌써 30년의 세월을 지나왔다고 했다. 당시 서울에 머물러야 했던 외국인들을 위해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오늘날 지어진 아파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감이 있었다.
그가 이곳에 정착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홍대 인근 지역에서 살고 일했지만 점점 많은 이들이 몰려드는 그곳이 불편해져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여기 온 지는 2년 정도 됐어요. 집주인과 얘기가 잘 통해서 괜찮은 가격에 전세를 얻을 수 있었어요. 전셋집이라 따로 손을 댄 부분은 없어요. 신혼부부가 살던 집이라 상태도 괜찮았고 이 건물 고유의 느낌도 좋았죠.”
유독 흐린 날이었다. 창문에 길게 늘어뜨린 갈대발과 군데군데 가죽이 벗겨진 오피스 체어, 낡은 책상이 놓인 거실을 마주했을 때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단박에 눈에 띄는 최신 제품은 책상 위의 애플 아이맥 정도였다. 흔히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도 아니고 싱글남의 집에서 상상할 수 있는 차가움이나 거친 질감도 없었다. “오래된 제품이 많죠. 깔끔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좋아하지만 집만큼은 편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만든 작품도 놓고 좋아하거나 의미 있는 소품 등을 군데군데 두었어요. 제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인 셈이죠.” 그래픽디자이너이자 포토그래퍼, 굵직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유명한 그와 집 사이에는 그렇게 미묘한 반전이 있었다.
↑ 50년이 넘은 나무장은 화장대 겸 액세서리 수납함으로 사용하고 있다. 앞부분을 열고 닫을 수 있어 자잘한 소품을 보관하기에 제격이다.
거실과 화장실, 부엌 그리고 방 2개인 단출한 구조로 방은 침실과 옷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침실에는 침대와 옷걸이, 그리고 2011년 디자인 코리아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작업인 ‘Save us’의 북극곰 작품만 두었고, 옷방에는 50년이 된 빈티지한 장과 무채색 계열의 옷이 정리돼 있었다. “50년이나 된 옷장이라는 게 믿겨져요? 지금 내놔도 전혀 손색없는 가구예요. 서랍도 많고 윗부분을 간이 테이블처럼 활용할 수 있어서 액세서리류를 보관하기에 제격이에요.”
1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아치형 입구의 부엌. 오래된 빌라의 구조가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2 거실 벽에는 토마도 선반을 달고 셀레티의 토일릿 페이퍼나 해골 오브제처럼 독특한 소품을 매치했다. 3 냉장고 옆에 둔 작은 수납함 위에도 쇼룸처럼 각종 소품들을 진열했다. 4 화분 등을 올려둘 수 있게 선반이 넓은 출창은 훌륭한 디스플레이 공간이 된다. 5 침대와 빈티지 오디오, 사이드 테이블로 구성한 빈티지한 침실.
이 집의 백미는 거실과 부엌이다. 아치형 입구의 고풍스러운 부엌에는 각이 진 창가가 있고 냉장고 옆에 둔 넓은 서랍장 위에는 좋아하는 소품을 연출했다. 거실에서는 주로 작업을 하거나 반들하게 길들여진 가죽 리클라이너 체어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책상 위에는 연필깎이부터 여행지에서 가져온 듯한 엽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스노볼 등이 어우러져 있고 벽에 건 토마도 철제 선반 위에는 셀레티의 토일릿 페이퍼 접시가 위트를 더했다. 심각한 듯 심각하지 않은 집주인의 성향이 집에서도 느껴졌다. 파리에서 찍은 사진을 원단에 프린트해서 침대 러너로 사용하고 있고 거실의 원형 테이블 위의 프린트도 포토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하는 등 집 안 전체를 빈티지 일색으로 꾸미지 않고 전체적인 조화와 절제미를 생각했다. “이 집에서 2년 정도 살면서 느낀 건 사계절 내내 좋다는 거예요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이 내릴 때도 좋고요, 오늘처럼 흐린 날도 운치 있죠.”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각진 창틀, 몰딩이 굵직한 방문 등 ‘요즘’ 공간으로 고치자면 전부 드러내야 할 것들을 그는 최대한 존중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입혔다. 마치 원래부터 계획했던 것처럼. “저만 생각하면 이 집을 사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집이에요. 전에 살던 사람도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거든요.” 하지만 목영교는 그 불편함마저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긍하며 살아갈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공간의 성격이나 위치는 개의치 않고 비 개인 오후의 차분함으로 물들일지 모르겠다. 바로 이곳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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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신진수 | 포토그래퍼 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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