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맑음

유리는 맑음

유리는 맑음

전통 기술은 이어가되, 변화한 시대에 발맞춰 나아가는 것이 후대의 사명. 보헤미아 유리의 기술을 새로이 연구, 발전시키는 조명 디자인 회사 라스빗이 그런 예다.

↑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공개한 조명 ‘아이스’.

고대 켈트인들로부터 시작된 보헤미아 유리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대표적으로, 체코의 역사와 문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유산이다. 정교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체코의 크리스털이지만 과거의 전통만을 고집했다면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아마 외면당하지 않았을까. 조명 디자인 회사 라스빗 Lasvit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체코의 유리, 디자인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
체코 보헤미아 태생의 사업가 레온 자키믹 Leon Jakimic은 수세기 동안 쌓아온 체코의 유리공예 기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2007년에 라스빗을 설립했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보헤미아 유리의 이미지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접목시키기 위해 라스빗은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와 개발 시설을 건립했다. 그리고 장인들과 함께 고급 주택과 호텔, 부티크를 위한 수제 유리 조명을 맞춤으로 제작했다. 단순한 소품이 아닌 예술품을 방불케 하는 정교함과 섬세함은 라스빗의 성공을 견인한 주요인이었다. 이어 넨도, 아릭 레비, 마이클 영 등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새로운 발상을 적극 흡수하고 이 결과물로 탄생된 놀라운 제품을 매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메종&오브제,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박람회에 선보였다.

1 프라하에 위치한 라스빗의 쇼룸 내부. 2 다양한 공간에 활용할 수 있는 유리 벽 ‘리퀴드 크리스털 파빌리온’.

2011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는 체코 디자이너 로니 프레슬 Rony Plesl이 제작한 샹들리에 ‘우오보 Uovo’를 출품했다. 블로잉 기법으로 만든 달걀 모양의 유리 바깥 면을 은으로 도금한 우오보는 2m라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넨도가 디자인한 ‘패치워크’는 체코의 정교한 유리 세공을 담아낸 화병 시리즈다. 각기 다른 패턴이 있는 유리를 불에 쬐어 한데 붙인 이 제품은 영국 디자인 매거진 <월페이퍼>의 2014년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1,3 입으로 불어 만든 유리에 금속을 얇게 입힌 조명 ‘라비린스’와 돌에서 영감을 얻은 ‘크리스털 락’은 아릭 레비가 디자인한 제품. 2 볼쇼이 극장의 샹들리에를 재해석한 ‘네버 엔딩 글로리’ 컬렉션. 4 고체인 얼음이 액체인 물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한 조명 ‘프로즌’. 5 아부다비에서 열린 2015년 월드 테니스 챔피언십을 위한 트로피. 6 꽃 또는 나뭇잎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 돋보이는 펜던트 조명 ‘앨리스’. 7 마이클 영이 디자인한 ‘클로버’ 시리즈 중 플로어 조명.’

라스빗은 조명, 오브제뿐 아니라 건축 자재로서 유리의 가능성을 실험, 발전시켜 나간다. 2010년에 콘체른 디자인 스튜디오 Koncern Design Studio가 디자인한 ‘라스빗 크리스털 월’은 1960~70년대 유리를 적용한 체코의 전통 건축 기술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기하학적 구조, 오리엔탈 스타일 등 20여 개의 다양한 패턴을 강화유리로 제작하고 건물 구조에 맞게 조립할 수 있도록 모듈화했으며 반투명, 도금 등 다양한 색상을 선택할 수 있어 활용도를 높였다. 또 2012년에는 영국의 산업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 Ross Lovegrove가 디자인한 ‘리퀴드 크리스털 파빌리온’을 1년간의 실험 끝에 완성시켰다. 라미네이션 기술로 가공한 유리로 만든 이 벽은 고체이면서 액체처럼 보이는 디자인이 특징. 주택, 사무실 등 다양한 장소의 실내외뿐 아니라 커튼월 시스템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설립 8년 만에 프라하, 뉴욕, 런던, 파리, 싱가포르, 두바이, 모스크바 등 세계 각지에 11개의 지사를 둘 만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라스빗. 유리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으며 오늘도 체코 유리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다.

에디터 최고은 | 자료제공 라스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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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라는 이름의 다리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다리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다리

디자인은 사람과 자연, 사물 그리고 기술을 잇는 수단이 될 때 제 역할을 다하며 빛을 발한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 소재에 집중하던 디자이너들이 이제는 사람과 사물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 디자인 스튜디오 도소피오리토의 관찰하는 화분 ‘피토피힐레’

우리 주변을 채우는 사물이 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 삶이 변화하는 속도를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다. 끊임없이 변모하는 사회와 문화, 기술을 절묘하게 반영하며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중심은 여전히 사람이다. 기원전부터 출발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공예와 기술, 두 가지 요소가 디자인계에서 오랫동안 화두가 되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디자인계에서는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전통 공예를 중심에 두고 있는 이탈리아 디자인 스튜디오 ‘도소피오리토 Dossofiorito’와 멕시코 디자이너 ‘모이세스 에르난데스 Moises Hernandez’, 그리고 3D 프린터를 적극 활용하는 스튜디오 ‘미날레 마에다 Minale Maeda’ 세 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2012년 설립된 도소피오리토는 리비아 로시 Livia Rossi와 지인루카 지아바르도 Gianluca Giabardo 두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2014년 밀라노 가구국제박람회에서 돋보기와 거울을 화분에 부착해 식물이 성장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피토피힐레 The Phytophiler’를 선보이며 식물과 새로이 교감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전 세계 디자이너와 큐레이터, 저널리스트의 환호를 받았다. 이들은 소재에 대한 실험이 주를 이루던 디자인계의 흐름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새롭게 연결하는 디자인을 보여주었기에 더욱 흥미를 끌었다.

1,3 멕시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디자인 브랜드 디오리오의 제품들. 2 2006년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미날레 마에다를 함께 이끌어온 두 사람.

기존 변방으로 여겨지던 멕시코 디자인도 최근 재평가를 받고 있다. 멕시코 디자인 브랜드 디아리오의 디렉터인 모이세스 에르난데스가 작년 9월 영국문화협회에서 올해의 젊은 사업가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 스페인어로 일상을 뜻하는 디아리오는 맥시코의 전통을 재해석해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로, 에르난데스의 고향이기도 한 오악사카 Oaxaca 지역의 전통 직조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식탁보가 대표작이다. 멕시코 전통은 그대로 고수하지만 장식적 요소를 과감히 생략하고 자연의 색을 강조한 현대적 이미지로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1,2 연결 부품은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목각을 끼우는 형식으로 디자인된 ‘키스톤’. 3,4 기하학적인 구조물에 목각을 끼우고 상판을 올리면 책상을 만들 수 있다.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의 총장인 토마스 비데르스호번 Thomas Widdershoven이 작년 10월, 영국 매거진 <디진 Dezeen>과의 인터뷰 당시 “이전의 기술이 산업을 위한 것이었다면 현재에는 일반인을 위한 조력자로서 그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례로 이탈리아인 마리오 미날레 Mario Minale와 일본인 쿠니코 마에다 Kuniko Maeda 두 사람이 함께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미날레 마에다의 ‘키스톤 Keystones’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키스톤은 3D 프린터와 기존의 오픈 소스 가구 구조를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으로 소비자가 책상, 옷걸이 등 만들고 싶은 가구의 연결 부품 도안을 온라인에서 주문한 다음 3D 프린터를 통해 집에서 부품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머지 목각 재료 등은 집에서 가까운 공방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3D 프린터가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적용하기란 어려운 시나리오지만 5~10년 뒤에는 집이나 혹은 가까운 3D 프린터 전문 매장에서 키스톤의 연결 부품을 출력하여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이 혁신적인 프로젝트는 벨기에의 비영리단체 비엔날레 인테리어에서 주관하는 ‘인테리어 어워드 2015 Interieur Awards 2015’ 대상, 네덜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더치 디자인 어워드 Dutch Design Awards’ 등을 수상하면서 진가를 인정받았다. “디지털 데이터를 빌딩-블록형 구조와 같은 아날로그 형식으로 변환하면 자신이 원하는 사물을 눈앞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마리오가 키스톤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무형의 디지털 정보와 유형인 사물의 접점이 더욱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점점 더 실감하면서 나는 쿠니코 마에다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술과 디자인의 접점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자세히 들어봤다.

INTERVIEW
스튜디오 미날레 마에다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부탁한다. 2006년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을 졸업한 뒤 나와 마리오가 함께 스튜디오를 꾸렸다. 우리는 사물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 문제를 기회로 변화시키는 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물의 미세한 부분에 집중해 디자인을 한다.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디자인을 제시하는 일은 언제나 환상적이다. 하지만 그 개념을 현실 속 사물로 해석해내는 과정 역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품 디자인에서 기술과 미디어가 얼마만큼 영향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나? 나는 항상 기술과 미디어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학 시절 수학자이자 기호학자인 미하이 나딘 mihai nadin 교수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그에게서 기술이 사람과 사회, 문화 등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올바른 것인지 배웠다. 점차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 덕분에 미디어와 콘텐츠, 제품이 점점 융합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전통 공예와 자연에 관한 역풍을 만들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작업은 이 두 가지 현상의 갈등을 담고자 한다.

3D 프린터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3D 프린터는 더 많은 이들이 디자인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점, 우리가 왜 이 제품을 디자인했는지 그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최근 3D 프린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품질이 향상되면서 가능성이 더욱 넓어졌다. 우리도 그에 걸맞게 더 아름답게, 더 실용적으로 3D프린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단지 형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구 제작 시스템을 고안하기 위해 3D 프린트 기술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어떤 완성된 형태를 출력하는 것보다는 직감적으로 보았을 때 다양한 상황과 장소에서 유용하게 여겨지는 사물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사물의 모양에만 집중한다면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제약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반면 몰드 형식으로 만들면 사물을 해석하는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3D 프린트 기술을 사용한 다른 프로젝트를 계획 중인가? 우리는 앞으로도 3D 프린터를 사용할 생각이다.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만들 때나 고전적인 분위기의 장식 등 오래된 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때 활용하고자 한다.

김진식(가구 디자이너) | 에디터 최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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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는 공간

공유하는 공간

공유하는 공간

혼자 혹은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모인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다. 그동안 메종이 만난 세 곳의 작업실 속 다채로운 풍경들.

↑ 작업실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책상과 책장은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엔조 마리가 누구나 쉽게 가구를 만들 수 있도록 오픈 소스를 풀어놓은 책을 참고해서 만들었다.

↑ 디자인메소즈의 디자인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켠에 모아둔 곳. 벽면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작품을 일대일 스케일로 스케치를 하기 위해 칠판으로 만들었다.

↑ 천장 높이가 5m 정도로 공간이 넓고 시원하다 보니 작업도 훨씬 수월하다. 빛, 동선 등을 모두 고려해 오로지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 작업실은 마치 화이트 큐브로 만든 갤러리를 연상하게 한다. 권기수 작가는 벽에 마음대로 못을 박고 붙여가며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 구가도시건축에 의뢰해 40년 정도 된 주택을 작업실로 개조했다. 예스러운 거실과 창가에 둔 무성한 식물들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 ‘그림 파는 가게’라는 간판을 내건 숍 비코의 안쪽에 위치한 작업실. 몇 개의 책상과 회의실을 갖춘 이 공간은 비코의 윤소담, 이진아 대표를 비롯 젊은 건축가 그룹 문지방의 박천강 건축가와 프로젝트 디자이너 최진규, 그래픽디자이너 김선화 등 다섯 식구가 함께 하고 있다.

↑ 공간을 공유하듯 각자의 프로젝트에 서로의 의견을 물으며 생각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책상 하나하나가 곧 개인 사무실이 되기도 한다.당신이 꿈꾸는 작업실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 <메종>에서는 2~10인이 옹기종기 모여 일하는 작업실, 소규모 회사를 새롭게 꾸며주는 공간 꾸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메종>의 2015년 디지털 프로젝트 `페북으로 집 고치기`를 주목해주세요! <메종> 페이스북 www.facebook.com/maisonkorea 에디터 신진수 · 최고은 | 포토그래퍼 신국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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