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 않아요

어렵지 않아요

어렵지 않아요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늘 헷갈리는 테이블 매너. 도구 사용법 신경 쓰랴, 체면치레하느랴 정작 음식에 집중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미리 알아두면 한결 여유로운 식사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기본적인 테이블 매너를 소개한다.

1 와인잔
종류별로 미리 세팅되어 있는 정찬일수록 더욱 헷갈리는 와인잔. 이때 테이블 위 잔이 3개가 놓여 있을 경우 가장 작은 잔이 물, 중간 크기의 잔이 화이트 와인, 가장 크고 퉁퉁한 잔이 바로 레드 와인을 위한 것이다. 웨이터가 와인을 따를 때는 잔을 잡지 않는 것이 매너다. 하지만 양손이나 한 손으로 술을 받는 한국의 정서상 와인잔 받침에 가볍게 손을 얹고 목례나 미소를 짓는 정도는 무방하다. 와인을 마실 때는 온도에 민감한 와인의 특성을 고려해 볼록한 잔 말고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로 와인 다리의 중간을 잡는 것이 좋다. 건배를 할 때에는 잔을 45도로 기울여 흉내만 낼 정도로 살짝 부딪힌다.

2 빵 접시와 버터 나이프
여러 명이 앉는 정찬 테이블일수록 더욱 헷갈리는 것이 바로 식전 빵과 잔의 위치. 혹 실수로 옆 사람의 것을 먹을까 노심초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때는 ‘좌빵우물’이라는 공식을 기억한다. 중앙 접시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것이 빵 접시, 오른쪽에 있는 것이 본인의 잔이다. 빵은 손으로 한입 크기로 뜯어 먹고 버터 나이프는 버터를 바르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3 냅킨
옷의 오염을 막고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닦는 용도의 냅킨. 엎지른 물이나 젖은 손과 립스틱을 닦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일행이 모두 자리에 앉으면 턱받이마냥 목에 걸지 않고 무릎 위에 펼친다. 식사 중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의자 등받이에 걸어둔다. 식사를 마쳤을 땐 되도록이면 고이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게 좋은데 이는 식사와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나타낸다.

4 커트러리
접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커트러리부터 사용하면 된다. 즉 왼쪽 가장 바깥쪽의 나이프는 샐러드용, 오른쪽 가장 바깥쪽의 스푼은 수프용이다. 접시와 가장 가까운 안쪽의 포크와 나이프는 코스의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를 위한 것. 포크는 왼손으로, 나이프는 오른손으로 잡는데 왼손잡이의 경우 방향이 바뀌어도 무방하다. 식사 중간에는 포크는 오후 8시, 나이프는 오후 4시 방향, 즉 ‘八’ 모양으로 내려놓는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런히 모아서 오후 4시 방향으로 놓는다. 커트러리를 떨어뜨렸을 때는 직접 줍지 않고 웨이터를 부른다. 메인 접시 윗부분에 가로로 놓인 것은 코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디저트용 포크와 스푼이다. 식전 빵에 바르는 버터 나이프로 착각하지 않는다.

5 코스별 식사법
수프는 몸의 앞에서 바깥쪽으로 떠먹는 영국식이 보편적인 에티켓. 남은 수프는 몸에 가까운 쪽의 수프 볼을 살짝 들어올려 반대쪽의 끝에 모이게 한 다음 다시 몸의 앞에서 바깥쪽으로 떠먹는다. 스테이크는 육즙이 빠지므로 먹을 때마다 잘라 먹는다. 감자, 고구마 등의 부드러운 가니시는 포크로 으깨면 훨씬 먹기 편하다.

그 외
단정한 옷차림이 무난한데 호텔이나 파인 다이닝, 즉 정통 레스토랑일수록 좀 더 격식을 갖추는 것이 좋다. 이때 짙은 화장과 향수는 다른 손님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삼간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빈자리를 찾아 무턱대고 앉지 않는다. 반드시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착석하고 만약 안내한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새로운 자리를 요청해도 된다. 상대방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대각선으로 앉아도 무방하다. 코트는 의자에 걸어두는 대신 웨이터에게 보관을 부탁하고 핸드백은 등과 의자 사이에 놓는다.

*식기와 커트러리는 모두 무겐인터내셔널.

에디터 이경현 | 포토그래퍼 안종환 | 어시스턴트 권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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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에른에서의 미식 여행

독일 바이에른에서의 미식 여행

독일 특유의 고집과 완고함이 탄생시킨 건 비단 세계적인 명차만이 아니다.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에서는 중세시대 맥주
순수령에서도 비밀스레 지켜온 밀 맥주, 장인 정신으로 만든 수제 소시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으로 떠난 맛 기행을 소개한다.

“아우프 디 게준트하이트 Auf die gesundheit!” 구식 독일어 건배사가 거친 회벽으로 둘러싸인 둥근 천장 아래의 공간을 채우고, 음식을 나르는 중세풍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덩달아 연신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손길도 바빠진다. 젖먹이 아이처럼 턱받이를 한 사람들은 한 손에 칼을 들고 고기를 잘라 맨손으로 먹는다. 이곳은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의 벨저 쿠헤 Welser Kuche. ‘벨저가 家의 부엌’이라는 뜻을 지닌, 중세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레스토랑이다. 한때 남미에 개인 식민지까지 경영했던 유력 가문인 벨저가의 연회에 쓰이던 전통 레시피를 재현한 요리를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중세의 바이에른 사람들의 테이블 매너까지도 함께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자분들은 음식이 떨어져도 잔이 비어도 손 하나 까딱해서는 안 됩니다. 주변에 계신 여자분들이 모든 시중을 들어주셔야 해요. 고맙다는 인사를 해서도 안 됩니다. 만일 이 규칙을 어기면 여기 있는 중세 형틀에 들어가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중세의 하인 복장을 한 매니저의 유쾌한 설명이 이어진다. 서빙되는 음식은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아기 돼지 통구이, 각종 허브로 속을 채운 거위 요리, 약한 불에 천천히 익혀 육즙이 함빡 배어 있는 송아지 정강이 요리 등 500년 전 유럽의 최고 부자들이 즐기던 호방한 요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호사스런 식도락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바이에른뿐만 아니라 독일 전 지역은 슈파겔 Spargel, 즉 흰 아스파라거스 열풍에 휩싸인다. 시장의 가판대며 레스토랑 메뉴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슈파겔 축제가 열리는 곳도 많다. 얼핏 보면 양초처럼 보이는 이 밍밍하고 심심한 맛의 채소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열광은 우리가 복날 삼계탕에 대해 가지는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슈파겔을 요리하는 법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끓는 물에 껍질을 벗긴 슈파겔을 넣고 푹 삶은 다음 달걀노른자와 식초, 버터와 레몬즙을 넣어 만든 홀랜다이즈 소스를 끼얹으면 끝이다. 이 소박하고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독일 농부들이 느꼈을 안도감과 즐거움을 상상하다 보면, 의외로 밍밍하게만 느껴지던 요리에서 우묵한 단맛과 함께 행복감이 밀려든다 .

사실 독일은 300개가 넘는 군소 국가들로 분열되어 통용되는 돈의 종류만 해도 6000종류에 달할 만큼 경제가 낙후된 지역이었다. 서민들의 밥상 사정이 넉넉할 수 없음은 물론이었다. 1834년 독일어를 쓰는 국가끼리 관세 동맹을 맺으면서 하나의 경제권으로 거듭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지역의 살림살이는 주름을 펴기 시작했고 통일된 국가를 향해 착실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바이에른은 소시지의 천국이다. 도시마다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다양한 소시지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2가지를 꼽으라면 뉘른베르크의 브랏부어스트 Bratwurst와 뮌헨의 바이스부어스트 Weißwurst다. 브랏부어스트는 목재를 때는 화덕에 직화로 구워 먹는 맛이 일품이다. 거칠게 다진 돼지고기에 각종 허브를 섞어 양의 창자에 채워 만든다. 때문에 입에 넣고 씹었을 때, 육즙이 툭 터져나오며 고기 알갱이가 씹히는 맛이 매력 포인트다. 우리의 김치에 해당하는 시큼한 양배추 요리 사우어크라우트 Sauerkraut와 맥주를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흰색 소시지인 바이스부어스트는 송아지고기를 곱게 갈아 돼지 창자에 넣어서 만든다. 돼지 창자는 양 창자에 비해 얇기 때문에 불에 구우면 터져버린다. 이런 이유로 바이스부어스트는 끓는 물에 삶아 조리하는데, 담백하고 차진 맛이 그만이다. 여기에 바이에른의 특산물 바이스비어 Weißbier(백맥주로 뿌연 빛이 감돌며 신맛과 단맛 등 일반 맥주에 비해 복잡한 향과 맛을 내는 것이 특징)를 함께 즐긴다면 그 순간만큼은 바이에른의 공작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밀이 주원료인 바이스비어는 보리, 홉, 물로만 맥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4세의 맥주순수령(1516)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맥주이기에 근대에 이르기까지 공작 가문 내에서만 비밀스럽게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사람들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자 역시 가난했던 시절의 역사를 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감자를 먹는 대표적인 방법은 삶은 감자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새콤한 와인 비네거 소스에 버무려 샐러드로 먹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것을 카르토펠 잘라트 Kartoffel salat라고 하는데, 특히 브랏부어스트와 찰떡궁합이다. 삶은 감자를 으깨서 버터와 육두구를 넣고 경단처럼 빚은 뒤, 끓는 물에 데친 것을 카르토펠 크뇌델 Kartoffel knödel이라고 하는데, 이것만 주식으로 먹기도 하고 고기 요리에 가니시로 곁들여 먹기도 한다. 경단을 의미하는 크뇌델은 감자뿐만 아니라 고기, 생선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 수 있다.
특히 오래된 빵을 활용해 만드는 젬멜 크뇌델 Semmel knödel은 바이에른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오래 놔둬 딱딱해진 빵을 버리지 않고 맛있게 먹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라는 점에서 스위스의 퐁듀와도 통한다. 잘게 조각낸 빵에 우유, 달걀, 파슬리, 양파 등을 혼합해 둥글게 빚어 삶는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외양이 좀 큰 타코야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젬멜 크뇌델은 그 빛깔과 모습 자체로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음식 중에서도 빵이야말로 독일 사람들의 자부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밀뿐만 아니라 호밀, 보리, 옥수수, 쌀, 기장 등 다양한 곡물로 만드는 독일 빵은 건강에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전역에 퍼져 있는 빵의 종류만 해도 400여 가지가 된다고 하니, 문자 그대로 ‘빵의 나라’라는 별명이 이처럼 어울리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것일수록, 비범함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리고 그 이면엔 피나는 노력과 장인 정신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로텐부르크는 중세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눈송이를 닮은 과자, 슈니발렌 Schneeballen의 고향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중세 시대의 각종 형벌 도구를 전시해놓은 중세범죄박물관이 있다. 주정뱅이를 가두고 망신 주던 술통부터, 솜씨 없는 악사의 손가락을 묶어놓고 벌 주던 피리 모양의 형틀까지 총 3000점에 달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앞뜰에 전시해놓은 지렛대 끝에 매달린 새장이다. 말이 새장이지, 사람 하나가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다. “이 도구의 이름은 ‘제빵사의 세례식’이라고 합니다.” 박물관 큐레이터 올라프 브뤼거만의 설명이다. “제빵사가 빵의 무게를 속여 팔거나 하면 이 장치에 넣어서 물에 담그는 벌을 주었죠. 간혹 물보다 더 더러운 액체에 담그기도 했다고 해요. 이 형벌은 제빵사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고, 맥주 양조업자를 비롯한 모든 장인들에게 해당되었어요.” 가난함 속의 비범함을 발전시켰던 것은 결국, 바이에른 사람들의 고집과 완고함이었다. 그리고 이런 성격은 빵을 만들 때나 자동차를 만들 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모양이다. 바이에른 모터 주식회사에서 만드는 자동차가 세계적으로 그렇게 인기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 참, 그 회사의 머릿글자를 따면 BMW라고 하던가.

탁재형(다큐멘터리 PD) | 에디터 이경현 |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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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은 어디인가?

나의 집은 어디인가?

지난 9월, 2014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기간에 눈길을 사로잡는 전시가 있었다. ‘집이라 불리는 것 A place called Home’이라는 주제로 네 팀의 디자이너가
자신이 생각하는 집의 이상향을 완성한 것.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집을 보며 진정한 집의 의미를 생각했다.

↑ 트라팔가 광장에서 펼쳐진 ‘집이라 불리는 것’ 전시.

영국인에게 집은 ‘하우스’보다는 ‘성’이라는 개념에 가깝다. 이는 영국 출신의 인류학자 케이트 폭스가 저술한 <영국인 발견 Watching The English>에서도 비중 있게 다룰 만큼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들에게 집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꺼려지는, 자신의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소이기 때문에 폐쇄적이다. 해자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처럼 여기는 것은 이러한 내밀한 관습에서 비롯된 것.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놓은 중세 시대의 성에 종종 비유하는 영국인이 자신의 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수백 년간 굳어진 영국인의 집에 관한 고정관념은 에어비엔비 Airbnb의 출현을 계기로 최근 몇 년 새 급변하고 있다. 일반 가정집은 물론 원두막, 이글루, 심지어 보트나 카라반 등 어떤 형태든 상관없이 주거가 가능한 공간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이트에 등록해 누구나 자신의 집을 빌려줄 수 있고 여행자들은 사이트에 접속해서 예약할 수 있다. 미래에는 전 세계에서 공유할 수 있는 집을 통해 항상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의 유목민이 출현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는 지금, ‘집이라 불리는 것 A Place Called Home’ 전시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1 디자인 듀오 페터니티가 그들이 디자인한 작품 앞에 서 있는 모습. 2 패터니티는 집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패턴으로 만들었다.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파리 메종&오브제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박람회로 손꼽히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은 런던 전역에 있는 300여 개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소규모 갤러리에서 펼쳐지는 행사로 매년 9월, 런던을 전 세계의 중심에 올려놓는다. 런던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트라팔가 광장에는 페스티벌이 개최될 때마다 행사를 대표하는 거대한 조형물이 설치된다. 올해는 트라팔가 광장의 조형물을 책임질 인물로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 Jasper Morrison, 로 에지스 Raw Edges, 스튜디오 일세 Studio Ilse, 패터니티 Patternity가 선정되었다.

1,2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비둘기 애호가를 위한 집’ 스케치와 실내.

이들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집 home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주제 아래 같은 크기의 다른 집 네 채를 완성했다. 9월 13일에 시작된 페스티벌의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어가는 9월 18일 정오.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의 디렉터인 벤 에반스 Ben Evans와 에어비엔비의 창립자 브라이언 체스키가 트라팔가 광장에 섰다. 그들의 소개로 프로젝트에 참가한 4팀의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작품이 베일을 벗고 대중에게 소개되는 순간이었다. ‘비둘기 애호가의 집’이라 이름 붙여진 재스퍼 모리슨의 집은 비둘기 조각으로 꾸며진 외부부터 비둘기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내부 벽까지 온통 비둘기를 테마로 만들었는데,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있는 수많은 비둘기떼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광장을 향해 크게 낸 유리창은 실내에서 비둘기를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로 아주 유용하다는 설명이었다. 아마도 그에게 집이란 취미와 일이 하나가 된 여유로운 공간을 의미하는 듯했다.

1,2 로 에지스는 작은 공간에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도록 공간 활용을 극대화했다.

로 에지스가 선보인 집은 작은 공간에 거실, 침실, 부엌, 욕실 등의 기본적인 생활 공간을 모두 갖추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공간들이 벽면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 공간을 넓히거나 없앨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작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를 위한 최적의 디자인이었다.

세 번째로 소개된 집은 일세 크로포드 Ilse Crawford가 이끄는 디자인팀 스튜디오 일세의 조형물로 짙은 파란색으로 칠한 건물의 지붕에 ‘HOME?’이라는 네온사인이 설치되었다. ‘과연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내부 바닥을 장식하고 벽면에는 페스티벌 기간 동안 트위터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영상으로 투시해서 보여주었다. 최소한의 인테리어와 테크놀로지가 부각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몇 분마다 바뀌는 트위터 메시지를 읽느라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런던의 떠오르는 디자인 듀오 패터니티는 그들이 보여주었던 행보에서 한발 나아간 작품을 선보였다. 2009년 설립 이후 애플, 리바이스, 셀린느, 셀프리지스, V&A 등 유명 브랜드와 함께 작업하며 그들만의 독특함이 묻어나는 패턴 개발에 앞장서온 패터니티가 주목한 핵심은 집이라는 친숙한 환경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패턴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설계한 집을 관통하는 거대한 만화경은 주위의 이미지를 투사해 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내고 다시 이 패턴이 집의 다른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형식. 직접 만화경을 들여다보고 싶은 관람객들의 기나긴 줄이 증명하듯 최고의 인기를 모은 작품이었다.

1,2 스튜디오 일세는 실내에 관객들의 집에 관한 생각을 담은 트위터 메시지를 영상으로 투영시키는 색다른 디자인을 선보였다.

4팀의 야심 찬 작품을 감상하고 나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더 본질적으로는 ‘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라고 자문하게 되었다. 나에게 집이란, 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 신발을 벗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만약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면 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오프닝 행사 때 일세 크로포드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이 넘쳐나는 런던을 통해 더 이상 디자인이 어렵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 역시 이번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비록 상상에 그쳤지만 나의 집을 그려보지 않았는가? 수많은 사람이 그리는 집의 초상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언제든 돌아가 쉴 수 있다는 편안함이 가장 공통된 해답이 아닐까. 자그만 방 한 칸이라도 나에게 편안한 안식을 선사할 수 있는 곳이 진정한 나의 집이다.

INFO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매년 9월 열리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은 런던 패션 위크, 프리즈 아트 페어, 런던 영화제와 함께 런던을 대표하는 축제다. 2003년 시작하여 올해로 12주년을 맞은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디자인 커뮤니티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최대의 장식미술과 디자인 박물관인 ‘빅토리아&알버트 뮤지엄’을 중심으로 콘란숍, 민트 등 디자인계에서 주목할 만한 숍이 자리한 브롬톤 디자인 디스트릭트, 젊은 디자이너들의 아지트인 쇼디치 디자인 트라이앵글, 소규모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가 즐비한 첼시 디자인쿼터, 비영리 디자인 단체의 밀집 지역인 클락큰웰 디자인쿼터, 쇼핑과 문화의 중심지 피츠로비아 나우 등 5곳에서 148개의 행사가 일주일간 펼쳐진다. 100% 디자인 런던, 텐트 런던 Tent London, 디자인 정션 Design junction 등 3개의 박람회는 물론 다양한 세미나와 전시, 팝업 스토어 등 크고 작은 이벤트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문의 www.londondesignfestival.com

정지은(런던 통신원) | 에디터 최고은 | 사진 제공 a place called home with airbnb for london design festival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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